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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전설적인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이 은퇴한 이후, 맨유의 지휘봉을 잡았던 감독들인 데이비드 예스, 루이 , 주제 리뉴, 올레 군나르 샤르, 에릭 하흐를 줄여서 부르는 말. 퍼거슨의 은퇴 이후로 암흑기를 맞은 맨유의 감독 자리를 맡아 기대보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감독들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원래는 앞의 세명을 묶어 "모반무"[1]라고 불렀지만, 솔샤르 역시 말년을 아쉽게 보내고 시즌 중에 경질되면서 모반무솔로 늘어났다. 여기에 솔샤르 경질 이후 임시감독으로 명성에 비해 아쉬운 모습을 보였던 랄프 랑닉을 묶어 "모반무솔랑" 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에릭 텐하흐 감독마저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면서 모반무솔텐, 또는 모반무솔랑텐이라고 불린다.

2. 상세

퍼거슨의 은퇴 이후 맨유의 암흑기를 상징하는 감독들이다.

2.1. 데이비드 모예스

재임기간 : 2013.07.01 ~ 2014.04.22[중도경질]
전적 : 51전 27승 9무 15패
우승 기록 : 커뮤니티쉴드(2013-14)
재임 당시 리그 성적 : 7위[중도경질]
이적시장 지출 : £67.8m

퍼거슨이 직접 고른 후계자로[4][5] 맨유에게 무려 6년 계약[6]을 제시받는 등 큰 기대를 받았다. 당시 모예스는 에버튼에서 장기집권하며 재정적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면서도 팀을 챔스권 바로 아래에 꾸준히 안착시키는 등 리그 내에서 상당히 유망한 감독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모예스호는 시작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코치진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퍼거슨 아래에서 일하던 유능한 코치진이 대부분 팀을 떠나버리는 일이 발생했고,[7] 풍족한 재정적 지원을 처음 받아보는 모예스와 초짜 단장 에드 우드워드 콤비는 이적시장 내내 죽을 쑤었다.[8] 그 결과 당시 맨유의 스쿼드는 전 시즌 우승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실했으나 여름에 영입된 것은 마루앙 펠라이니가 전부였고, 겨울에도 후안 마타 한 명만을 겨우 데려왔다.

결정적으로 모예스의 전술적 능력 자체가 중위권 팀에나 맞는 것이었지 강팀에서는 전혀 쓸 수 없는 수준이었고, 결국 부임 9개월 21일 만에 경질 당하며 맨유 암흑기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특정 팀들을 상대로 여러 차례 몇십 년만의 패배를 당하는 등 '기록파괴자'라는 오명을 쓰면서 시즌 중반에는 9위까지 추락하며 "맹구"라는 치욕적인 멸칭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2.2. 루이 반 할

재임기간 : 2014.07.01 ~ 2016.05.23
전적 : 103전 54승 25무 24패
재임 당시 리그 성적 : 4위 - 5위
우승경력 : FA컵(2015-16)
이적시장 지출 : £183.59m

반할은 직전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뛰어난 경기력으로 네덜란드를 3위에 안착시켰기에 상당히 기대를 모았다. 우드워드 역시 전 시즌에 호되게 당하며 배운 것인지 말 그대로 폭풍영입을 보여 주었는데, 데일리 블린트마르코스 로호처럼 월드컵에서 크게 활약한 알짜배기 선수부터 루크 쇼, 안데르 에레라같이 각 리그에서 탑급 활약을 한 젊은 선수, 디마리아, 라다멜 팔카오라는 거물까지 영입하며 맨유는 금방이라도 이전의 위상을 되찾을 것처럼 보였고, 기대에 비해 실망스럽긴 했으나 부임 첫 시즌은 4위로 마무리하며 챔스 진출에 성공하여 맨유를 원 궤도에 올려놓는 듯했다.

그러고 이듬해 역시 다르미안, 슈바인슈타이거, 슈나이덜린, 데파이 등 공격적인 이적시장을 보냈으나 안토니 마샬을 제외한 이적생 전원이 부진하며 챔스는 조별리그에서 충격적인 3위 광탈 후 유로파에서도 16강에 머물렀고, EFL컵에선 3부리그 MK 돈스에 4:0 대패, 리그는 5위를 기록하며 챔스 진출에 실패하며 경질되었다. 그나마 경질 직전 FA컵에서 우승하고 마커스 래시포드, 제시 린가드, 마샬 등 유망주를 발굴한 것이 위안거리.

2.3. 주제 무리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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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 2016.07.01 ~ 2018.12.18[중도경질]
전적 : 144전 84승 32무 28패
재임 당시 리그 성적 : 6위 - 2위 - 6위[중도경질]
우승기록 : 커뮤니티 실드(2016-17), 리그컵(2016-17), 유로파리그(2016-17)
이적시장 지출 : £308.51m

직전 시즌 첼시에서 충격적인 부진 끝에 경질되었으나 전전 시즌 리그 우승자였고, 당시만 해도 여전히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인식되었기에 이번에는 확실히 암흑기를 벗어날 것처럼 보였다. 포그바, 미키타리안, 즐라탄, 에릭 바이등을 영입하자 기대치는 더욱 올라갔다. 부임 첫 해 리그 성적은 실망스러웠지만 유로파와 리그컵 우승을 달성하며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듬해에는 맨시티에 이어 리그 2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멜루 루카쿠, 알렉시스 산체스는 실패한 이적이 되어가고 있었고,[11] 포그바와의 갈등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또한 2위라고는 하나 시티의 압도적인 1위에 비해 크게 떨어진 2위였던데다가[12] 무관을 기록했다. 거기에 브리스톨 시티에 EFL을 광탈하고 세비야한테 졸전 끝에 챔스에서 탈락하는 등 암운이 드리운다.

3년차에선 레이레아 시절부터 함께한 오른팔 루이 파리아가 사임, 그 자리를 마이클 캐릭, 스테파노 라페티, 키에른 맥케나가 대신했으며, 이적시장에서 보드진과의 마찰을 제대로 보이면서 저조한 영입으로 불안한 시즌 스타트를 했고, 그 불안감이 시즌이 시작하자 그대로 드러나며 끔찍한 경기력을 보였다.[13] 특히 포그바를 중심으로 한 선수단과 끝없는 잡음과 성적부진 끝에 3년차 징크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경질되었다. [14]

그나마 트로피 3개를 따오며 다른 세 명보다는 낫지만 본인의 이름값도 하지 못하고 퍼거슨 시절 영광에도 못미치는 편. 당시 불화나 특유의 인터뷰 스킬 때문에 구단 분위기가 상당히 좋지 못했어서 모반무솔텐 중 가장 성과를 냈음에도 최악으로 꼽는 사람도 많은 편이다.

그러나 후임감독 이 제대로 삽질을 하는 바람에 점점 재평가 여론이 생기고 있는 감독이다. 경질 당시에 폴 포그바 대신 무리뉴를 믿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IF도 커뮤니티에서 간간이 얘기거리가 되기도 한다.[15]

허나 애초에 무리뉴의 14-15 우승 이후 리그 성적이 TOP4에 들어간 적은 17-18 뿐이었다. 또한 챔스 16강 무대는 도중 부임한 19-20을 제외하면 18-19를 끝으로 하락세가 명확한 감독이며 정작 18-19 시즌 포그바 없이 뭘 보여준 것도 없기에 어디까지나 IF놀이에 불과하다.[16][17]

2.4. 올레 군나르 솔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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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 2018.12.19[중도부임] ~ 2021.11.21[중도경질]
전적 : 168전 91승 37무 40패
재임 당시 리그 성적 : 6위[중도부임] - 3위 - 2위 - 6위[중도경질]
우승기록 : X
이적시장 지출 : £375.78m

무리뉴의 경질 이후 18/19시즌 임시감독으로 중도부임해 연승행진으로 중위권의 맨유를 챔스 진출권 및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로 반등시켜 정식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무리뉴 때 까먹은 성적과 정식감독 부임 후의 아쉬운 성적으로 6위로 마감했다.

풀타임 첫 시즌인 19/20 시즌 전반기에 강팀은 잘 잡고 중하위권 공략에 어려움을 겪으며 부침을 겪었으나 겨울이적시장에서 브루노 페르난데스를 영입한 것이 반등의 계기가 되면서 후반기에 상승세를 타 3위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20/21 시즌에는 리그 2위를 달성하며 전임 모반무와는 다르게 리빌딩도 잘 이루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22] 하지만 과도하게 브페에게 의존하는 등 경직된 전술에 대한 지적이 항상 있었고 이 때문에 19/20 시즌, 20/21 시즌 모두 유로파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는 등 모반무와는 다르게 부임 기간 내내 트로피를 하나도 들어올리지 못했다.

결국 21/22 시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파엘 바란, 제이든 산초 등 굵직한 영입이 이루어졌음에도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자 시즌 도중 경질을 피하지 못했다.

모반무솔텐 중 유일하게 커뮤니티실드도 따지 못한 무관 감독이다.

준수한 리그 성적과 시원한 역습축구로 강팀 상대로 선전하는 경기력을 자주 보여주었고, 최소한 타 감독들처럼 하부 리그에 컵 대회를 떨어지는 흑역사를 찍지는 않았으며, 모반무를 거치며 약화되었던 유스에 집중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23] 다만 역습 전술을 지향하는지라 약팀 상대로는 약한 면모를 보여주었고, 우승컵 목전에서 매번 전술적 한계를 보인 것, 또한 산초, 반더비크 등을 특징도 잘 모르고 사모은 것 등이 주요 비판점이다.

2.5. 에릭 텐하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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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 2022.4.21 ~ 2024.10.28[중도경질]
전적 : 128전 72승 20무 36패
재임 당시 리그 성적 : 3위 - 8위 - 14위[중도경질]
우승기록 : EFL컵 (2022-23), FA컵 (2023-24)
이적시장 지출 : £616.8m

첫 시즌은 분명히 긍정적이었다. 물론 이적시장은 안토니를 필두로 리산드로 마르티네즈 등 비싸다는 평이 많았지만, 마티치의 노화 이후 빈약해진 3선 및 중원 자원에 카세미루와 에릭센을 보강하는 등 약점을 보완하는 이적 시장을 보냈으며, 호날두의 팀 저격 인터뷰 등을 잘 수습했다. 시즌 중후반부터 눈에 띄는 경기력 저하가 있긴 했지만 전 시즌 처참했던 스쿼드를 이끌고 FA컵 준우승, 리그컵 우승, 리그 3위라는 분명한 업적을 만들어내며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그러나 2023-24시즌은 모반무솔텐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실패한 시즌이 되고 만다. 이적시장부터 메이슨 마운트, 라스무스 호일룬 등 의아한 영입이 이어지더니 시즌이 시작되자 전 시즌 후반기의 부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문자 그대로 매 경기가 참사와 다름없는 경기력이 이어졌고, 심지어는 이것이 시즌 끝까지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지속되었다. 마지막에 FA컵에서 맨시티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나 리그 8위, 챔스 조 4위라는 끔찍한 성적표를 가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똑같이 FA컵을 우승했지만 경질 당했던 루이 판 할과는 다르게 반할보다 리그 순위가 3위 더 낮은 8위를 기록 했음에도 재계약을 맺고 한 시즌을 더 보게 되었는데, 이는 역대급 악수였다.

2024-25 시즌 초반부터 토트넘리버풀 상대로 홈에서 0:3 대패를 하는 등 재앙급의 경기력을 그대로 보여주다 경질되었다. 경질 시점 기준 리그는 3승 2무 4패로 14위, 유로파리그는 3무로 21위라는, 모반무솔랑 중 그 어떤 감독과도 궤를 달리하는 압도적 부진이다. 모반무솔랑이 '맨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정도라면 텐하흐는 아예 맨유를 중위권 수준으로 만들어버렸다는 평.

1년차 후반기 이후 전술적인 한계를 개선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고, 본인 주도하의 천문학적인 이적료 사용 대비 막장 타율의 영입 성공률, 그리고 처참한 인터뷰 스킬과 선수들과의 보이지 않는 갈등 등이 비판받는다.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공격력 부족.[26] 긍정적인 점은 있다면 16-17시즌 이래 길었던 트로피 가뭄을 끝낸 것과 확인되지 않은 불화설 등으로 구단을 뒤흔들던 기자들[27]을 출입금지 시키는 등 언론의 마타도어에 강경 대응하는 면모는 호평받을 만하다.

3. 랑?

3.1. 랄프 랑닉

21/22 시즌 솔샤르가 역대급 부진 끝에 경질당하자 시즌 종료 후 맨유의 컨설턴트직을 맡는 조건으로 시즌 종료 시까지 임시감독으로 부임한다. 부임 직후 몇 경기는 크게 달라진 경기력을 보였으나 이후엔 솔샤르와 다를 바 없는 끔찍한 경기력으로 일관했으며, 이것과 후임 감독 텐하흐의 의중, 오스트리아 감독직 등 여러 상황이 겹치며 컨설턴트직 사임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말로 맨유 생활이 마무리되었다.

가끔 모반무솔랑텐으로 묶여 불리곤 하지만, 컨설턴트직을 조건으로 임시감독에 부임했으며 재임 기간도 짧고 전임자가 워낙에 망쳐놓고 간지라 모반무솔텐 사이에 섞이기에는 애매하다는 반응이 꽤 있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면 발렌시아 네빌 수준의 성적을 맨유에서 찍으면서 경기만 패배했다하면 언론플레이를 난사했으며 더욱이 시즌 도중 오스트리아 감독 부임 오피셜을 띄우고 시즌 종료 1주일 만에 컨설턴트 직에서 사임하는 무책임한 행보를 보인게 제일 문제다.[28] 또한 사임한 컨설턴트 위약금을 24년 6월까지 수령하면서 구단 컨설팅 하라는 돈으로 자기 노후 컨설팅을 했다. 또한 열심히 하다가 망한 것이라고 보기에도 뭐한게 코치도 똑바로 못 데려와서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에 잔류한 본인의 컨설턴트 사업 동업자이자 수석코치인 라스 코르네트카가 원격으로 훈련 세션을 짜거나 전술 지시를 내리고, 또한 커리어가 빈약한 크리스 아르마스가 랄프 랑닉의 인맥으로 맨유 코치직을 얻고서 시즌 종료 반 년만에 라이벌리가 있는 리즈 유나이티드 코치직을 얻으면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고 심한 경우 거의 괴뢰 감독 취급할 정도로 극혐하는 경우가 많다.

4. 기타

유벤투스 FC에도 비슷하게 로 불리는 2009-2011년의 암흑기를 상징하는 감독 라인이 있다.


[1] 모반무로도 이 문서로 리다이렉트할 수 있다.[중도경질] [중도경질] [4] 이 때문에 당시 현지에서는 모예스에게 'The chosen one'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기도 했다.[5] 다만 퍼거슨이 가장 원했던 것은 펩 과르디올라였는데, 맨유가 아닌 바이에른 뮌헨으로 갔다. 훗날 퍼거슨은 펩 포함 반할, 클롭, 무리뉴, 안첼로티 등 당시 명장들의 행선지가 이미 결정나서 꿩 대신 닭으로 골랐다는 늬앙스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6] 빅클럽을 처음 맡아보는 감독에게 너무 위험한 제안을 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당시 맨유는 퍼거슨의 은퇴라는 초유의 혼란 속에서 '포스트 퍼거슨'을 찾아야만 했고, 퍼거슨이 직접 고른 모예스가 그 적임자라면 '당연히' 장기집권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보드진에게든 팬들에게든 팽배했다. 퍼거슨 은퇴 후 10년이 넘게 지난 텐하흐 시절에도 성적이 조금 좋지 않더라도 감독에게 기회를 오래 줘야 한다는 팬들이 많은 것을 보면 퍼거슨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은 맨유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7] 1군 스탭진만 해도 마이크 펠란, 르네 뮬레스틴, 에릭 스틸 등이 이탈했다.[8] 안데르 에레라의 바이아웃 세금 문제나 에버튼의 중추였던 펠라이니+베인스에 겨우 £28M을 제안했다 퇴짜를 맞는 등 미숙한 이적 시장 운영을 보였다.[중도경질] [중도경질] [11] 그래도 루카쿠는 그 시즌 맨유의 최다 득점자였다.[12] 시티와의 승점 차가 무려 19점이었다. 다만 이는 시티가 승점 100점이라는 너무나도 압도적인 시즌을 보낸 탓이 크긴 했다. 81점이면 일반적으론 충분히 우승 경쟁을 할 만한 승점이다.[13] 프랭크 램파드의 더비에 OT에서 EFL을 탈락할 정도[14] 경질 당시인 17R 기준 승점 26점으로 4위였던 첼시보다 승점 11점이 뒤쳐졌으며, 18등 번리보다 승점 14점이 많았다.[15] 18-19 시즌 당시 포그바와 무리뉴의 불화는 극에 달해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무리뉴가 경질되고 포그바는 솔샤르 밑에서 승승장구하면서 구단이 감독을 내치고 선수의 손을 들어준 듯한 모양새가 되었기 때문. 물론 당시 무리뉴의 성적이 경질당하기에 충분했음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16] 당장 폴 포그바는 16-17 시즌 유로파리그 최우수 선수로서 선정되었다. 또한 18-19 폴 포그바가 결장하거나 벤치에서 경기를 끝낸 4 경기 중 프랭크 램파드의 더비에 EFL 탈락을 포함해 1승 1무 2패에 그쳤다[17] 도핑 징계 경감 이후 폴 포그바 본인이 이 당시를 회고했는데, 맨유에 리턴하고 성적이 안 나와서 이적을 요청했는데, 솔샤르는 이적에 동의했지만 우드워드가 이적을 막았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19-20부터 20-21까지 펜데믹으로 유럽 축구판에 대형 이적 자체가 극히 줄어서 애초에 구단이 할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중도부임] [중도경질] [중도부임] [중도경질] [22] 당시 잉글리시 코어 정책을 지향하여 완비사카, 해리 매과이어를 영입했고 데클란 라이스, 제이든 산초 등을 1순위 타겟으로 뒀으며, 유스 정책을 펴 유망주를 적극 기용하기도 했다. 현재 시점에선 완비사카, 매과이어, 산초 모두 실패한 영입이지만 당시엔 이러한 정책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23] 이 시기 아마드 디알로, 파쿤도 펠리스트리,윌리 캄봘라 한니발 메브리, 알레한드로 가르나초, 알바로 페르난데스 등을 영입했고, 메이슨 그린우드, 브랜든 윌리엄스, 타히트 총 등이 중용된 바 있다.[중도경질] [중도경질] [26] 1부 리그 팀 상대로 5득점 이상한 경기가 전무하고 4득점 또한 4번밖에 되지 않는다. 빈공으로 악명 높던 무리뉴도 5득점 이상 경기는 없지만, 4득점 이상 경기는 8경기로 텐하흐의 2배다.[27] 사무엘 럭허스트, 롭 도슨, 데이비드 멕도넬, 카르헤 숄헤콜 등[28] 제이미 캐러거는 랄프 랑닉 부임 당시 '임시 감독 역할이 중요한게 아니라 컨설턴트 역할이 중요하다'는 요지의 말을 했지만, 오스트리아 감독 부임 오피셜 이후 '빅클럽 감독직을 마트 계산대 알바처럼 여긴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