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맹꽁이 서당/에피소드
맹꽁이 서당 | |
에피소드 | |
조선편 | 1권 · 2권 · 3권 · 4권 · 5권 · 6권 · 7권 · 8권 · 9권 · 10권 |
고려편/기타 | 11권 · 12권 · 13권 · 14권 · 15권 · 기타 |
등장인물 |
1. 이자겸, 척준경의 몰락
한 선비가 당당하게 귀양가는 모습을 학동들이 보고 훈장님께 말씀드렸더니 보통 선비가 아니라면서 놀라워하고는 강직한 선비 임형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임형수는 정미사화에 휘말려 사약을 받고 죽게 되었을 때 아들에게 자기 이름 쓸 정도 이상으로는 글을 배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한 학동은 이를 듣고 부러워했다가 훈장님께 코를 비틀렸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임포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더 이상 글을 배우지 않았는데 나중에 아버지의 무고가 밝혀져 명예가 회복된 이후가 문제였다.
평범한 농부로 지내던 그가 덜컥 벼슬을 받고 고을 현감으로 근무하게 되었을 때 글을 제 이름 쓸 정도밖에 몰라, 상급 관청에서 시문을 보내오자 읊을 부(賦) 자를 도적 적(賊) 자로 착각해 급히 소집나팔을 불었고, 나중에 형방이 정정해주자 해산나팔을 불게 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닮아 힘이 세서 말의 편자를 박을 때마다 직접 한 손에 말의 두 다리씩을 들고서 편자를 박게 도와주었는데, 어느날 다른 고을 현감이 방문했다가 이를 보고 놀라 "이 고을 현감은 다 말을 들고 편자를 박나?"라고 말하자 부끄러워 말을 들고 도망쳤다고 한다. 그렇게 비록 벼슬은 했지만 평생 글을 못 배운 걸 후회했다.
그 뒤 훈장님이 무인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학동들이 '거 봐요. 글 못 배웠어도 이렇게 출세하잖아요, 훈장님은 반성하라'고 얘기했다.
2. 묘청의 난
훈장님이 사람이 제 잘 나야지 남한테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했더니, 학동이 우리가 다 정승, 판서감인데 무엇이 모자라서 남한테 의지하겠냐고 한다. 훈장님은 어이없어 하며 정승, 판서가 누구 집 개 이름이냐고 때렸다. 마지막엔 묘청의 난으로 난리를 겪은 인종이 경기했다고 얘기하니까 우리도 글공부하면 도중에 경기한다고 얘기했다.3. 인종과 공예왕후
겨울날 학동 셋이 서당에 가면서 공자는 별로 대단한 인물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한 선비가 셋을 혼내면서 그런 소리는 다 나쁜 놈들이 공자님을 시기해서 만든 소리라고 했다.그러면서 공자를 두고 '상갓집 개' 같다고 한 말을 듣고 공자가 웃으며 긍정한 이야기를 했고, 아량 넓은 신석조 대감 이야기를 하며 공자가 훌륭하다고 하는데 학동들이 그런데 선비님은 왜 공자를 본받아 아량을 베풀지 않고 우릴 다그치냐고 몰아붙여서 말문이 막힌 선비는 과거길 바쁘다고 도망쳤다.
그새 시간이 오래 돼서 학동 셋은 지각한 벌로 손 들고 있는데, 마지막에 그 중 한 명이 꿈을 꿨는데 서당에 불이 나서 홀랑 다 타는 바람에 봄이 될 때까지 서당을 쉰다는 내용이라니까 훈장님이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런 꿈을 꾸냐며 혼냈다.
4. 삼국사기 쓴 김부식
학동들이 설날에 세배 가는 길에 서낭당에서 소원을 빈다. 다들 글 안 읽게 해달라고 비는 건 물론, 한 명은 장가도 빨리 보내달라고 해서 다른 애들이 철없는 놈이라고 하고, 다른 한 명은 매일 먹을 것 많이 달라며 내 소원 안 들어주면 막 욕할 테니 각오하라는 협박(?)을 했다.어쨌거나 다들 서당에 와서 훈장님께 설날 세배를 드리려고 하는 찰나에 마당쇠가 서당에 난입. 종놈이 여길 끼어드냐는 학동들의 말에 "이 도령들이 사람 웃기네"라고 하고, 말 다 했냐니까 "그래 다 했소. 이 맹꽁이 서당에서 날 빼면 볼 게 뭐 있소? 조연들이 까불어. 주연한테-"라고 패기 넘치는 발언도 했다.
그러면서 비록 종놈이라도 이 나라의 백성이니 설날에 설빔 차려입고 세배는 드릴 수 있다고 당당하게 외치자 학동들도 아무 말 못하고 같이 세배했다. 훈장님이 세뱃돈을 주려고 다락을 찾아보는데 안 나와서 학동들이 의심하는데, 잡동사니 속에서 돈을 잔뜩 찾아서 무려 열 냥씩 세뱃돈을 받아서 좋아했다가 학동들이 뭔가 좀 이상하게 여겼다.
마당쇠가 살펴봤더니 돈의 정체는 당백전이었다. 명백히 못 쓰는 돈인데다 엿장수도 안 받는 거라 학동들은 방방 뛰었고 훈장님은 그걸 보고 역시나 제기나 만들라고 한 다음 선대왕 공부를 했다. 마당쇠와 학동들은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다.
마지막에 역사 기록 이야기를 하니까 학동들은 나중에 이 일도 역사에 기록되기 전에 당장 바꿔달라고 아우성을 쳤고 훈장님은 '없는 걸 어떡해'라고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5. 다가오는 무인시대
훈장님이 조심성 없는 사고뭉치 학동을 보고 참을성을 기르라는 이야기를 하자[1] 학동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방울을 달아대는 통에 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건 기본이고, 어느 학동은 절의 종을 훔쳤다가 훈장님에게 혼나 벌을 섰다. 그걸 보고 훈장님이 '사람이 똑똑치 못하면 3대가 고생하는 걸 몰라'라고 하자 학동들이 '낄낄 우리에게 배우신 거다'라고 했다가 훈장님에게 담뱃대로 맞았다.나중에 선대왕 공부[2]가 끝날 때 그 학동이 5살 때 예전에 가위를 가지고 놀다가 할아버지 수염을 싹둑 잘라서 집안에서 난리가 났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했더니 훈장님이 '으이구, 니 집안도 알만하다'라고 하면서 한탄했다.
6. 무인시대
7권 때처럼 훈장님이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고 입춘방을 쓰고 학동들에게 무슨 뜻인지 묻는다. 그런데 학동들은 봄을 맞아 서당을 쉰다는 뜻이라고 해서, "이게 어째서 그런 뜻이야? 봄을 맞아 좋은 일만 생기라는 뜻이지!"라고 하니까 "그게 그거잖아요. 우리한테 좋은 일은 서당을 쉬는 거니까요."라고 답해 훈장님이 뒤집어졌다.그런 다음에 훈장님은 "겉보다 중요한 것은 깨끗한 마음이다."라고 얘기하며 사육신 때의 인물인 무신 봉석주에 대한 얘기를 해 주었다. 그는 계유정난의 공신으로 탐욕이 많기로 유명했는데 어느 날 바늘 장수를 불러 술대접을 한 다음 바늘 몇 쌈을 바치라고 한다. 바늘 장수는 불평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바늘을 바쳤고, 그 다음 하인에게 바늘을 소작농들에게 하나씩 나눠 준 다음 바늘로 달걀을 사서 병아리를 까라고 했다. 그 뒤 가을이 되자 이제 그 병아리가 닭이 되었을 테니 그 닭을 찾아오라고 하인에게 명령했다.
정말 어이 없는 명령이었지만 권세가 무섭던 터라 소작농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닭을 바칠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이 장면에서 닭들이 "얘들아 저것도 사람이니?", "닮긴 닮았는데..."라고 한다. 그 뒤에도 그는 계속에서 탐욕을 부리다가 결국 몇 년 뒤에 역모죄로 처형되었다.
7. 살아남은 문신 문극겸
어느 날 사이가 매우 나쁘기로 유명한 두 학동이 계속해서 다투어대자 훈장은 두 학동이 말썽을 못 일으키게 참을성을 기르도록 해보라 제안했다.그러던 어느 날, 다른 학동들이 두 학동이 미나리꽝에서 싸운다고 훈장님에게 알리자 달려가봤더니 진흙탕에서 흙범벅이 된 두 학동이 말하기를, 서로 참을성을 기른다고 미나리꽝에 서로 처넣는 식으로 훈련했다고...[3] 그걸 들은 훈장과 학동들은 기절해버렸고 미나리꽝에 들어갔던 학동의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 얼굴을 가렸다.
8. 피바람 속의 무인시대
학동 한 명이 울면서 서당에 왔는데 훈장이 그 학동에게 자세히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 학동은 집안이 가난한 집안이다보니 다른 학동들에게 자주 가난뱅이라고 놀림과 멸시를 받았다고 한다.훈장은 학동의 사연을 듣자 학동을 놀린 다른 학동들을 욕한 다음 그 학동을 달래주며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고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그 학동에게 문김 생원이라 불린 한 선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6권에서 다뤘던, 영조 시절 오성 이항복의 후손인 이종성과 수문장으로 임명된 손호준의 일화에서 자세한 전말을 추가한 것으로 문씨 성을 가진 한 선비의 조카딸이 궁으로 가서 후궁인 숙원으로 임명된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후궁의 오빠는 단숨에 부자가 되었고 일족 전부가 흥청망청 살았을 때도 숙원의 큰아버지인 문 생원은 이를 경계해 어머니의 성씨인 김씨를 합쳐 문김 생원으로 개명하고 자신의 일가족은 다른 문씨 일족과 관계를 끊고 지내와, 변함없이 궁기가 흐르는 가난한 삶을 살았고 조카가 가끔 숙부인 그에게 선물 같은 것을 가지고 올 때도 역정을 내면서 거절했다.
그 뒤 일족이 계속해서 흥청망청한 짓을 저지르자 더 있다간 자신에게도 화가 치밀 것을 우려해 그는 아내와 자녀, 손주들에게 자신은 앞으로 몇 년간 여행을 갈 것이고 오는 날은 섣달 그믐날 정도라고 당부를 한 뒤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팔자에도 없는 여행을 다니며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고, 섣달 그믐날에나 가족과 재회하고 날이 밝으면 또 집을 떠나기를 반복했다.
몇 년 뒤, 그의 우려대로 조카딸이 기군망상의 대죄를 저질러 사약을 받고 숨졌고 문씨 문중은 전부 대역죄로 일족이 몰살당했다. 촌수는 가깝지만 교류를 끊고 지내온 문김 생원의 집안만 빼고....
조카딸이 저지른 기군망상죄는 영조에게 회임했다고 속인 뒤 오빠에게 민가에서 갓난 사내아이를 구해달라 한 뒤 그 사내아이를 이용해 왕가의 씨를 바꾸려는 대역죄였다. 수문장은 한 나인이 구해온 바구니가 수상해서 조사를 하려던 중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자 냅다 칼로 내리쳐서 아기와 바구니를 베었고 나중에 나인이 이실직고하자 왕에게 보고를 올려 문 숙원과 그 일가가 저지른 죄가 매우 중하니 덕망이 높고 일족과의 관계를 일절 끊고 지내온 문김 생원의 가족을 제외한 문씨 일족 전체를 몰살하게 해달라 부탁하자 영조는 그것을 받아들여 문 숙원의 일족을 문김 생원의 집안만 빼고 전부 몰살시켰다.
이후 이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문씨 문중은 참으로 악독하지만 문김 생원은 오덕(인, 의, 예, 지, 신)을 갖춘 현명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했다.
이야기 이후 그 학동은 자신감을 되찾았는데, 서당에 온 다른 학동들이 자신들만 빼놓고 옛이야기를 한 것을 알자 화를 내면서 훈장에게 우리만 빼놓고 이야기를 하는 게 어딨냐며 '훈장님은 반성하라! 반성하라! 반성하라!'라고 마구 악을 쓰며 성화질이었다. 이에 훈장은 기막혀했다.
9. 소금장수 아들 이의민
한 학동이 아버지에게 오늘만은 서당을 쉬게 해달라고 한다. 자세히 들어보니 엉덩이에 종기가 독이 잔뜩 오른 채 나서 도저히 앉을 수 없어 종기가 나을 동안은 고약을 붙이고 몸보전을 해야 하는데 차마 종기라 얘기할 수 없어 뾰루지라고 에둘러 말하니 아버지는 글공부하기 싫어 핑계 댄다면서 아들을 후려팼다.도망쳐서 서당으로 왔을 때 훈장이 왜 제대로 앉지 않느냐 묻자 말 못 할 사정이 있다고 얘기하자 훈장은 "아니, 말 못 탈 사정? 말 타고 어딜 가려고?"이라 반문했고 학동들은 "훈장님이 동문서답 하셨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후 훈장이 말 못 할 사정이라고 겨우 알아들으니 도저히 말할 기분이 아니라고 한숨을 쉰다. 친구인 다른 학동에게 훈장이 저 애가 왜 그러냐 물어보니 친구는 그 학동의 사정을 이야기했고 훈장이 그 학동에게 몸 상태가 어떠냐 묻자 어찌나 독이 오른 종기놈이던지 고약을 바르기는 했지만 2주는 가야 떨어질락 말락하다고 한숨을 쉬며 얘기했고 훈장은 병을 길렀다며 끌끌 혀를 찼다.
훈장은 종기 얘기가 나오니 종기에 관해서라면 엄청난 명의가 한 명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드라마 마의로 유명해진 백광현으로, 그는 침술로 종기를 잘 빼냈는데 처음에는 말들의 종기를 빼는데 도사였지만 이후부터는 사람들의 종기를 고치는 침술로 사람 여럿을 치료해주었다고 한다.
이야기가 끝나자 비명소리가 들렸는데 그 학동의 친구가 침으로 종기의 고름을 빼준다고 종기에 침을 놓자 아파서 비명을 지른 것이었다. [4] 결국 그 학동은 돌팔이 될 거냐며 훈장님에게 혼났다.
10. 무신 최충헌 시대
하루는 마당쇠가 일을 하면서 불평하다가 장작에 도끼가 박혀 떼내려는데 자루가 빠져 나무째로 날아가버려 간장독을 깨뜨렸다. 그 바람에 주인에게 혼나게 되자 원래는 글공부를 하고 싶은데 신분이 안 되어서 공부를 못 하는데 한 번 서당에 보내주시면 열심히 공부를 하겠다고 해서 맹꽁이 서당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그러다가 몇 시간도 안 돼서 글공부가 싫다고 집으로 도망쳤다가 학동들에게 붙잡혀 밧줄로 꽁꽁 묶였다.[5] 그러자 '세상에 이렇게 묶어 놓고 공부하는 데가 어디있습니까'라고 울고 불고 그랬더니 학동들 曰 '여깄잖아, 맹꽁이 서당.'
마지막에는 '노랭이 훈장아 옛날 이바구(이야기) 한 자루 더 해라'라고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11. 노비 만적의 난
붓장수 공서방이 서당에 찾아와서 10권에서 했던 환술쟁이 이야기를 했다. 참고로 이쪽에서는 선 부자가 김 부자로 바뀌었고, 선비들의 후일담이 추가되었으며 어찌나 혼이 빠졌는지 한양에는 갔지만 몽땅 낙방했다고 한다. 훈장님은 참 좋은 이야기라며 학동들도 교훈을 얻어 교만하게 굴지 않을 거라고 했다.12. 최충헌을 제거하라
마당쇠가 훈장님에게 "졸개들은 벌이 나가고 두령님 혼자 산채를 지키는 군요."라고 말하는데,[6] 무슨 말인고 하니 지금 학동들이 노랭이 영감댁 배 서리를 하다가 모두 잡혔다는 것. 학동들이 오니까 "두령님 졸개들이 석방되어 옵니다"라고 해서 훈장님이 담뱃대를 휘두르면서 도적 타령 좀 그만하라고 했고 마당쇠는 재밌어하며 도망쳤다.훈장님은 학동들 종아리를 때린 다음 손 들고 벌 세웠는데, 도둑질하지 말라니까 학동들이 "서리는 서리지 도둑질하고는 다르다"고 주장하자 짧은 옛날 이야기 두개를 했다. 첫번째는 소 도둑이 잡혔더니 소 서리를 한 거지 도둑질한 게 아니라고 주장해 포졸이 무시하고 감옥으로 끌고 갔다는 이야기.
두번째인 아래적 이야기는 옛날에 아래적(我來賊)이란 도적이 있었는데 항상 나 아(我), 올 래(來) 자를 써서 아래(我來)라는 표식을 남겨놓고 다녔다. 포졸들은 그놈을 못 잡아 안달이었지만 일반 백성들은 오히려 재미있게 생각했다. 그러다 결국 끈질긴 추적 끝에 잡혔는데 본인이 9살 때 참외 서리한 게 첫 도둑질이라고 하자 학동들이 "우리들 훈계하려고 서리 얘길 갖다붙였다"고 하다가 지방 방송은 끄라며 훈장님에게 맞았다.
결국 아래적은 감옥에 갇혔는데, 홀로 경계를 서는 포졸이 워낙 궁핍해보여 말을 걸었는데 얼추 열댓 식구를 혼자 벌어먹인다고 한다. 이에 불쌍해진 그가 내가 산 속에 천 냥 정도 감춰놨으니 찾아서 쓰라고 했고 과연 포졸이 산 속에서 천 냥을 찾아내 감격했으며, 이때 아래적이 살 방도를 떠올렸다. 아래적은 나를 잠시만 놓아주면 새벽에 돌아올 것이며 그럼 나는 살 수 있다 하자, 포졸은 설마설마 하면서도 자신을 도와줬기에 결국 풀어줬더니 정말로 새벽에 돌아왔다.
그 뒤 날이 밝자 포도대장이 저놈은 아래적이 아니니 즉시 석방하라고 하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그날 밤 아래적이 포도대장의 침소에 들어가 깔고 자던 비단 요를 슬쩍하고 아래라고 표식을 남기자, 포도대장은 옥에 갇힌 게 아래적이 아니라고 생각해 풀어준 것. 그 뒤 그는 손을 씻고 장사하며 떳떳하게 살았다고 한다.
학동들은 첫번째 이야기를 듣고는 펑펑 울며 반성하는 척하더니, 두번째 이야기인 아래적(我來賊)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이래도 서리할 거냐는 말에 "네, 합니다"라고 크게 말해 훈장님은 쇠 귀에 경 읽기도 아니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한숨을 내쉰 다음 선대왕 공부로 넘어갔다.
[1] 조선시대의 문신 이상의의 어린 시절 얘기로 천방지축이었던 성격을 고치기 위해 방울을 달고 다녔다는 일화.[2] 무신정변의 발단이 된, 김돈중의 정중부 수염 소각사건.[3] 처음에는 서로에게 욕을 하면서 참을성을 기르고 있었다.[4] 세균감염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니 전문 의사가 아니면 절대로 따라하면 안 된다.[5] 어찌나 어이가 없었는지 마당쇠의 상전은 저건 더 혼나봐야한다고 말했다.[6] 당연히 영문을 모르는 훈장님은 서당을 도둑 소굴로 보냐며 역정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