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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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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01.24. 정규앨범
1집 Got To Be There
1972.08.04. 정규앨범
2집 Ben
1973.04.15. 정규앨범
3집 Music & Me
1975.01.16. 정규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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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08.10. 정규앨범
5집 Off the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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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1.30. 정규앨범
6집 Thr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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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집 Bad 25
2014.05.09. 사후앨범
12집 Xscape
2017.09.29. 컴필레이션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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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8. 정규앨범 40주년 기념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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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곡3. 보컬4. 댄스

1. 개요

파일:마이클 잭슨 공연.jpg
마이클 잭슨은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천재답게 대부분의 분야에서 경이적인 능력을 보여주었다. 대중음악계의 여러 분야들[1]중 한 가지에서만 실력을 쌓아 뛰어난 성과를 보여도 성공을 거둘 수 있을 텐데, 마이클 잭슨은 이 모든 분야에서 여타 대중음악 가수들을 상회하는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일찍 두각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안주하지 않고 발전을 위해 거듭해온 노력은 마이클 잭슨을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큰 위상을 지닌 인물로 각인시켰다. 또한 비범한 인물이 현상유지에만 급급하지 않고 매진하여 발전을 거듭했을 때 어느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는지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2]

2. 작곡

나날이 세포분열을 하듯이 발전해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천재.
퀸시 존스 / 1984년 동아일보 기사
그의 비범한 재능은 한두 개의 영역에서 빛을 발한 게 아니다. 그는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가수이자 탁월한 역량의 작곡가, 위대한 프로듀서, 감각 있는 편곡자, 천재적인 춤꾼이자 안무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그리고 이상적인 공연기획자이자 연출가였다. 더 놀라운 건 흔한 멀티플레이어들이 그러하듯 여러 분야에 걸친 약간의 경험과 지식으로 흉내를 내는 수준이 아니라 전문가들을 감탄하게 할 정도의 감각과 실력, 아이디어, 실행력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이들의 마이클 잭슨을 향한 존경심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Thriller(1982) 앨범 이후 그가 걸어온 길은 말 그대로 대중 예술의 핵심요소들이 조화를 이룬 종합 예술 활동의 총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R&B와 팝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 사운드의 바탕에는 소울, 펑크(funk)디스코, 재즈, 그리고 컨템퍼러리 R&B의 선율과 힙합의 리듬을 결합한 뉴 잭 스윙에 이르는 여러 스타일이 자리한다.

물론 그의 치밀하고 완벽한 사운드의 완성에 퀸시 존스테디 라일리, 로드니 저킨스, 빌 보트렐 등과 같은 거물 프로듀서들이 지대한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방향과 색깔을 잡아가며 각 요소의 이상적 배치 및 조화를 통해 시너지를 창출한 인물은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인 마이클 잭슨이었다. 거의 모든 악기를 연주하고 스튜디오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장비와 음향기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재능 있는 아티스트로서의 마이클 잭슨이 여기 있다.
김경진 (Groovers 이사, 전 CJ E&M 음악사업부문 음악제작팀장)/ 출처

사실 작곡이라는 파트 자체가 댄스나 보컬 등에 비해선 어느 정도 가려지는 경향이 있어 마이클 잭슨의 작곡 능력은 실질적 재능에 비해서 덜 알려져 있었다. 마이클도 자서전 '문워커'에서 사람들이 나를 댄스 가수로만 알고 나의 작곡 능력을 몰라본다고 섭섭함을 토로했다. 사람들이 "이 곡 누가 만들었어?"라고 물을 때마다 슬프다고.

마이클은 자신의 빌보드 1위 13곡 중 8곡은 단독, 1곡은 공동으로 작곡했고 2002년에는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대표적인 단독 작사 / 작곡 곡으로는 Billie Jean, Beat It, Smooth Criminal, Dirty Diana, Heal the World 등이 있고 공동 작사 / 작곡으로는 Love Never Felt So Good, 라이오넬 리치와 함께한[3] We Are the World, 폴 매카트니와 함께한 Say Say Say 등이 있다. 현재 미국저작권협회 BMI에 등록돼 있는 마이클 잭슨의 단독 / 공동 작곡 곡들은 총 200곡이 넘는다.

당장 Thriller에서 가장 유명한 곡들인 Beat It, Billie Jean, The Girl Is Mine은 모두 마이클 잭슨 단독 작사작곡이다. 즉 다른 곡들을 대신 작곡해주는 작곡가들보다 히트곡을 만드는 능력이 뛰어났던 것. 그리고 Bad 앨범에서도 상당수의 곡들이 그가 작곡한 곡이며, 그의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잘 알려진 싱글들의 절반 이상이 그가 작곡한 곡이다.

마이클이 작곡을 하는 방식은 떠오른 선율들을 비트박스로 표현하여 테이프로 녹음한 뒤 이를 다른 뮤지션을 시켜 악보로 옮겨 적게 했다고 한다. 사실상 작곡과 동시에 편곡도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입으로 음음거리면서 베이스 라인을 녹음하고, 그 위에 비트를 빌드업시키고 멜로디를 얹는 방식으로 데모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미디가 없던 시절 입으로 프로그래밍을 한 셈. 이런 방식은 대중음악 업계에서도 매우 독특하다고 소문이 나 있는데 보통 아티스트들은 자신이 가장 잘 다루는 악기를 이용하며 작곡을 했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부터 작곡을 공부했다며 가장 존경하는 작곡가로 차이코프스키를 언급했고 "그의 호두까기 인형 앨범에서 큰 영감을 받았는데 대부분의 팝 앨범들이 몇몇 곡만 좋지, 나머지는 Side-B면에 넣는 형편없는 곡들로 채워 넣었다"며 자신은 호두까기 앨범처럼 모든 곡들이 히트할 가치가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어 한다며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낸 최초의 곡은 'Don't Stop 'Til You Get Enough'였다고 말했다.

마이클은 기타 연습을 위해 만든 손가락 연습곡을 바탕으로도 새로운 곡을 만들어 냈고, 최고의 작곡 훈련을 받은 뮤지션들도 마이클을 보고 종종 놀랐다고 한다. 드림윅스 레코드사의 존 맥클레인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마이클을 뽑았다. Invincible 앨범 작업을 함께한 프로듀서 로드니 저킨스도 마이클은 음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고 말했다.
2015년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100인에 마이클이 조지 해리슨, 엘튼 존, 빌리 조엘, 마빈 게이, 데이빗 보위, 커트 코베인 등을 제치고 34위에 선정되었다. 애초에 롤링 스톤 문서로 이동해 보면 알겠지만 강한 보수성, 지나친 로큰롤 중심 등으로 까인다.[4]
댄스와 비디오 같은 시각적인 측면 때문에 종종 잭슨은 보컬리스트 그리고 작곡가로서의 엄청난 능력을 간과당한다.
조셉 보겔 음악평론가 / 저서 'Man In The Music'
마이클 잭슨은 대단한 멜로디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요. 제가 백만년이 지나도 절대 생각할 수 없을 것들을 떠올릴 수 있죠.
그룹 토토의 맴버이자 작곡가 스티브 포카로 / 1987년 피플 매거진 인터뷰
마이클 잭슨은 정확한 음악적 직관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의 머릿속에는 곡이 앞으로 어떤 레코딩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에 대한 모든 것들이 다 담겨 있었죠. 이건 정말 흔치 않은 작업 방식인데, 보통의 경우에 사람들은 기타리스트를 고용하면 "여기 코드가 있습니다. 이렇게 소리가 나면 좋겠어요." 이런 식으로 요청을 하죠. 그러면 기타리스트가 나중에 사운드를 구상해서 가지고 옵니다. 하지만 마이클은 아니에요. 마이클은 모든 리듬과 음, 코드를 전부 입으로 표현해요. 근데 그게 너무 기가 막혀요. 어떤 사운드가 나와야 하는지 아주 정확히 표현하죠.
프로듀서 빌 보트렐 / 2004년 SoundOnSound 매거진 인터뷰
엔지니어들과 프로듀서들은 마이클이 곡을 스튜디오에 가지고 오면 함께 작업을 하곤 했는데, 그들조차도 마이클의 천재성에 놀라곤 했다.
사운드 엔지니어인 롭 호프만은 그 과정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어느날 아침 마이클이 밤새도록 작곡한 곡을 가지고 왔습니다. 우리는 기타리스트를 불렀고, 마이클은 각 코드의 모든 음을 그에게 노래로 들려주었습니다. "여기가 첫 번째 코드고 첫 번째 음입니다. 두 번째 음, 세 번째 음.. 또 여기는 두 번째 코드의 첫 번째 음, 두 번째 음, 세 번째 음..."
그리고 우리는 마이클이 음향조정실의 SM57 마이크를 가지고 가장 감동적이고 깊이 있는 보컬을 들려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이클은 우리에게 곡의 전체 현악 배치와 모든 파트를 노래해 들려주곤 했습니다. 한 번은 마이클이 작업실에서 현악기 파트를 노래하는 것을 본 스티브 포카로가 저에게 직접 그것에 대해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여덟 마디를 반복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마이클의 머릿속에는 곡의 하모니를 포함한 모든 구성 요소가 다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곡의 전체 구성을 미니 카세트에 녹음해 두곤 했습니다.
'
NME / 2014년 4월 'The Incredible Way Michael Jackson Wrote Music'
악보와 악기에 의지하지 않는, 다소 변칙적이지만 직관적인 마이클 잭슨의 작곡 스타일은 특히 90년대 이후 컨템포러리 뮤지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정규 음악 교육 대신에 뒤늦게 작곡 공부를 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기초적인 화성 진행을 통해 이론적으로 구현되는 멜로디 구성에는 능숙치 못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천부적인 멜로디 메이커 중 한 명이었다. 엘튼 존이나 폴 매카트니와 같은 초강력 멜로디 머신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 대신 창의적인 전천후 멜로디 메이커였고, 뛰어난 연주자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여러 악기에 동시에 능해 머릿속으로 구상한 소리들을 구현함에 있어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다만 화성이나 코드 진행의 정격성보다는 입으로 불러진 자유로운 멜로디 구성에 훨씬 능했는데, 이것은 다분히 그가 스승으로 모셨던 폴 매카트니의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은 여기에 리듬과 편곡이라는 요소를 더욱 적극 활용함으로써 "작곡 → 편곡 → 프로듀싱"이라는 관습적인 녹음 방식을 사실상 해체시켰다. 그와 작업한 프로듀서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바, 잭슨은 때때로 머릿속에서 편곡이 완성된 곡을 입으로 직접 불러내어 스튜디오에서 즉흥적으로 녹음으로 적용시켜 내기도 했으며, 특히 댄스 곡들의 경우 특별히 정해진 악곡 구성이나 화성의 진행이 없이 리듬과 즉흥적인 멜로디의 연결만으로 훌륭한 곡을 완성시키곤 했다.

김영대 음악평론가 / 음악취향Y, '마이클 잭슨' 특집
프로듀서로서도 재능을 보였는데 잭슨스 시절부터 형제들과 함께 앨범을 프로듀싱하면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성인 이후 첫 솔로작인 1979년 Off the Wall 앨범부터는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함께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잭슨은 1982년 Thriller 앨범까지는 Don't Stop 'Til You Get Enough, Billie Jean, Beat It 등 본인이 작곡한 곡들에 한해, 1987년 Bad 앨범은 작곡 여부와 상관없이 전곡을 퀸시와 함께 공동으로 프로듀싱했다.

Bad 앨범을 마지막으로 퀸시와의 모든 작업을 마무리한 잭슨은 그 뒤 1991년 Dangerous 앨범에 빌 보트렐과 뉴 잭 스윙의 창시자인 테디 라일리, 1995년 HIStory 앨범에는 지미 잼 & 테리 루이스, 데이비드 포스터 그리고 2001년 Invincible 앨범에서는 로드니 저킨스, 베이비페이스와 같은 프로듀서들을 기용하여 함께 앨범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앨범의 모든 곡들에 프로듀서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트랙을 프로듀싱하면서 앨범의 전체적인 제작을 총괄하며 최종 OK 사인을 내린 것은 잭슨이었고 일정 트랙에서만 저들과 함께 작업했기 때문에 앨범 크레딧을 보면 이전 Bad 앨범까지는 퀸시가 이름을 올렸던 메인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 항목에 Dangerous 앨범부터는 잭슨의 이름만 단독으로 올라가 있다.

잭슨이 단독으로 프로듀싱한 곡들로는 They Don't Care About Us, Stranger In Moscow, D.S, Money, Little Susie, Morphine, Superfly Sister, Speechless, The Lost Children 등이 있는데 특히 롤링 스톤스믹 재거와 함께 불러 빌보드 핫 100 3위까지 오른 State of Shock은 잭슨이 작곡, 편곡, 프로듀싱까지 혼자 다 한 곡으로 직접 들어보면 잭슨만의 사운드를 느껴볼 수 있다.
☞ 1981년 퀸시와의 작업 전 마이클이 집에서 혼자 프로듀싱한 빌리진 홈데모 버전.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들으면 녹음과 음향 수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마이클은 대단히 민감한 귀를 가진 듯합니다. 앉아서 만족할 수 있는 사운드가 나올 때까지 계속 '다시'를 외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될 만큼 사운드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가 막힙니다. 특히 엔지니어들이라면 마이클의 음악은 반드시 들어봐야 합니다. 마이클은 그토록 훌륭하고 경이로운 음악으로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임진모 음악평론가 / 저서 '젊음의 코드, 록'
마이클과 함께 빌리진을 믹싱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이클을 정말 좋아해요. 너무나도 재능이 많고 또한 굉장히 공손합니다. 같이 일하기에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죠. 마이클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브루스, 사운드가 완벽해요. 하지만 한 번만 더 해볼 수 있을까요?" 저는 흔쾌히 다시 믹싱을 했고 우리는 그렇게 91번이나 믹싱을 반복했습니다.
사운드 엔지니어 브루스 스웨디언 / 2012년 세일 대학교 강연
마이클은 자신이 원하는 음을 확실하게 알고 있고 또한 그것을 정확하게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마이클은 아주 실천적이어서 믹싱을 할 때에도 항상 함께하고, 세밀한 레벨 조정 등의 작업에도 함께합니다. 항상 스튜디오에 있습니다.
보컬 녹음에도 완벽주의여서 트랙의 사운드 퀄리티에도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좋은 음이 되느냐 하는 방법론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어서, 예를 들면 펀치가 부족한 음이 있는 경우에 어떤 이펙트 처리가 필요한지를 금방 압니다. EQ의 주파수 포인트까지요. 그런 의미에서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티스트는 우리들에게 맡겨 버리고, 한 번 노래를 부르고 나면 다시는 스튜디오에 오질 않습니다. 믹싱은 소리만 좋으면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지만 마이클은 몇 시에라도 매일 반드시 스튜디오에 와 있었습니다. 한 번은 마이클의 곡의 믹싱을 하고 있었는데 그 날은 밤 10시부터 작업을 시작하게 돼서, 마이클은 "믹스를 들을 수 있는 있는 건 몇 시쯤이 될까?"라고 물어보길래, 난 "아마 새벽 3시 정도일 것 같은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이클은 놀랍게도 새벽 3시 정각에 스튜디오에 나타나 "자, 들어봅시다"라고 하더군요. 그는 음악에 대해서는 진지합니다. 그래서 그의 앨범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고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보다도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일 겁니다. 진정으로 자신이 내고 싶은 새로운 사운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죠. 우리들도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진지하게 작업을 하지 않으면 그가 원하는 음에 따라갈 수가 없어요. 어중간한 자세로는 어림도 없죠. 마이클이 원하는 바로 그 음이 아니면 OK되질 않습니다. 그게 그의 방식입니다. 믹스에 관해서도 항상 완벽함이 요구됐습니다. 상당히 큰 공부가 되었죠.

프로듀서 로드니 저킨스 / 2002년 음향 잡지 Sound & Recording 인터뷰
프로듀서 퀸시 존스의 단짝이면서 잭슨의 영원한 음악적 동지가 된 레코딩 엔지니어 브루스 스웨디언의 손으로 마무리 된 MJ(마이클 잭슨)의 강렬한 레코딩 사운드는 그 모든 음악적 업적 중에서도 가장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다. 한때 잭슨의 'Dangerous'는 거의 모든 마스터링 스튜디오에서 레퍼런스 소스로 쓰였으며 'Bad'의 경우에도 스피커나 플레이어의 개발시에 단골 레퍼런스 디스크로 이름을 떨쳤다는 것은 레코딩 업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잭슨의 음반을 믹싱, 마스터링 했던 전문 스튜디오 엔지니어들이 이후 수많은 팝 아티스트들의 집중적인 주문 공세에 시달렸던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녹음실과 장비는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마스터링 엔지니어는 수많은 다른 가수들의 음반도 동시에 작업한다. 그런데 왜 유독 MJ의 음반은 자주 최고의 레코딩으로 거론되곤 하는가? 그의 음반에는 유독 다른 가수들이 쓰지 않는 새로운 테크닉과 장비들이 동원되기라도 하는 걸까? 여기서 우리는 현대 대중음악에서 좋은 '사운드'란 단지 마스터링 엔지니어들의 개인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디지털 소스나 프로그램 반주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최근의 음악들은 이미 음원의 선택과 조합 과정에서 그 음의 특색이 상당부분 정해지며 여기서 잘 조화된 음악들이 결국 믹싱이나 마스터링 공정을 통해서 완전히 가다듬어지게 되게 마련이다. 흔히 우리가 "음질"이라고 생각하는 상당 부분 역시 결국 "음원의 선택"이나 "균형감 있는 편곡"의 다른 이름인 경우가 많으며 다시 말해 좋은 사운드를 가진 최종 결과물이란 좋은 소리를 구분해 조합하는 최전방 전선의 뮤지션과 프로듀서의 안목이 선행되어 만들어지는 작업일 때만이 가능해 진다는 것.
음에 관한한 오디오 마니아 수준의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잭슨의 '좋은 귀'가 이런 소소한 설정을 가능케 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한 악기, 한 효과음의 선택에도 직접 관여했고 특히 그의 스승이자 동료였던 퀸시 존스가 떠난 이후 만들어진 'Dangerous', 'HiStory', 'Invincible'에서 그의 역할과 영향력은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음반의 메인 프로듀서 위치로까지 격상되었다. 물론 레코딩 마스터 스웨디언의 비중은 과소평가되어선 안 된다. 그는 믹 구저스키, 알 슈미트, 제프 에머릭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역대 다섯 명 안에 꼽을 레코딩 / 믹싱의 장인이며 잭슨의 앨범으로만 세 번의 그래미를 거머쥐었을 뿐 아니라 "HiStory"와 "Invincible" 등 후기의 앨범들에서는 프로듀서의 역할까지 겸하기도 했다. Acusonic Recording Process이라 불리는, 악기 하나 하나에까지 스테레오 사운드로 녹음해 최종 믹싱 과정에서 다양한 공간감과 효과를 이끌어 내는 특유의 녹음 및 믹싱방식은 악기 장르와 인종의 장벽을 넘나들기를 원했던 마이클 잭슨의 파워풀한 댄스 뮤직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테크닉이었다.
필 콜린스, 핑크 플로이드, 토토, 피터 가브리엘, 마돈나, 스틸리 댄.. 팝 음악을 소리의 예술로 승화시키곤 했던 80년대의 거장들의 이름 몇몇을 더 기억해 낼 수도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마이클 잭슨은 유독 언제나 그 흐름과 경향을 리드하는 몇 안 되는 프론티어였다. 그는 멜로디와 가사로 전달되는 대중음악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이 최상의 결과물로서 빛나게 할 수 있도록 편곡, 프로듀싱, 녹음, 마스터링 등 일련의 후반 작업과 부가 작업에는 누구보다도 많은 돈과 시간을 소비했다.

김영대 음악평론가 / 음악취향Y, '마이클 잭슨' 특집

앨범 크레딧에 있는 곡 정보와 주변인들의 발언을 바탕으로 마이클 잭슨의 악기를 다루는 실력을 조금이나마 유추해 볼 수 있다.

먼저 'Earth Song'에서 기타, 퍼커션, 키보드, 신디사이저, 드럼 연주에 공동으로 이름을 올렸고 'Morphine'에서는 드럼 단독, 기타는 슬래쉬와 공동, 퍼커션은 브라이언 로렌, 브래드 부서와 함께 연주자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Unbreakable', 'You Rock My World', 'Threatened'에서는 로드니 저킨스와 함께 그리고 'Break Of Dawn'에선 로드니 저킨스, 닥터 프리즈, 테디 라일리와 함께 모든 악기를 연주했다고 나와 있다.

또 사운드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인 브루스 스웨디언은 'Don't Be Messing Around'에서 마이클이 피아노 연주를 아주 잘 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스파이크 리 영화 감독도 배드 25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마이클이 실제로 피아노를 잘 쳤다고 밝혔다. 또 아일랜드의 음악 사업가 패디 던닝은 마이클이 2006년 아일랜드에서 본인의 집에 잠시 머물렀을 때 여러 곡들을 드럼, 피아노, 기타를 치며 들려줬는데 실력이 매우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3. 보컬

파일:마잭 .jpg
그는 너무나 조용하고 공손하며 친절하게 행동해서 가끔씩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녹음만큼은 철저히 프로페셔널이였죠. 적어도 저와 함께 했던 모든 작업에서 그는 파이널 녹음때 절대 가사가 적힌 노트를 보지 않았습니다. 가사는 모두 머리 속에 집어넣고 불이 꺼진 스튜디오에서 철저하게 감정에 몰입해서 노래를 불렀죠. 녹음 전에는 언제나 보컬 트레이너를 대동해서 한시간의 워밍업을 가졌습니다. 아마 저 대신에 침팬지가 앉아있었더라도 녹음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직업 가수를 꿈꾸는 당신, 만약 마이클 잭슨을 롤 모델로 삼는다면 그것은 최선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사운드 엔지니어 브루스 스웨디언[5]
마이클 잭슨의 어릴 때 미성은 흉내 내기도 어려울 만큼 너무 예쁘고, 멋있고, 훌륭해요. 어린 나이에도 그런 성숙한 표현력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워요.
가수 김범수/ Playdb 뮤지션's 취향
마이클은 제가 생각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에요. 사람들은 주로 마이클의 경이로운 솔로 커리어를 말하곤 하는데... 물론 그건 분명한 사실이죠.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마이클이 천재성을 가장 유감없이 발휘했던 시기는 어린 시절이에요. 아이였지만 제임스 브라운이나 아레사 프랭클린, 그 어떤 위대한 보컬리스트와도 같은 재능과 소울 그리고 깊이를 가지고 노래했죠.
가수 레니 크래비츠/ 2011년 CNN 인터뷰
그는 제임스 브라운과 재키 윌슨처럼 노래하고 춤췄으며, 인간의 슬픔과 열정을 담아 스모키 로빈슨의 'Who´s Loving You'를 불렀다. 그의 실력은 놀라웠다. 마이클은 스모키보다 더 뛰어났다. 나는 스모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봐, 마이클이 그 노래를 잘 알고 있더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모타운 창립자 베리 골디/ 마이클 잭슨 자서전 'Moonwalker' 서문
제가 처음 가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 저의 첫 프로듀서는 제가 마이클의 'Who's Loving You' 라이브 퍼포먼스를 계속 보게 했어요. 몇 시간이고 계속 반복해서 저에게 보여줬죠. 프로듀서가 원했던 건 제가 마이클의 소울을 느끼길 바랐던 거예요. 정말 그걸 느낄 수 있었죠. 마이클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 없는 어린아이였지만 베테랑이었어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다 큰 성인들보다도 더 감정을 잘 표출했죠. 그건 너무나도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것이었어요. 마치 신이 주신 것 같았죠. 마이클은 제게 때로는 테크닉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와 같은 고민을 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내가 느낀 감정 그대로 가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는 걸 가르쳐 줬어요. 마이클은 정말 저를 변화시켰어요. 덕분에 오늘날의 비욘세가 있게 됐죠.
가수 비욘세/ 2012년 비욘세 공식 사이트
어린 시절의 마이클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정도의 발성 기술이 필요하다. 복성부터 두성, 빠른 발음과 팔세토, 거기에 High G에서 High A까지 자유롭게 넘나드는 보컬 톤.. 마이클은 확실히 보컬의 모든 면에서 천재적이었다. 마이클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굉장한 음역대를 이전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방법으로 발성 운동과 결합시켰다. 거의 오페라 가수 수준으로. 마이클은 무엇보다도 감정 표현에 탁월했다. 저음역대로 노래를 부르다가도 초고음 팔세토로 순식간에 넘어가곤 했는데 이럴 때에도 그의 감정은 전혀 흐트러짐이 없이 완벽하게 유지되었다.
레온틴 해스 보컬 트레이너/ Voicecouncil 'Teaching Voice to Michael Jackson'
실제로 변성기 이전의 소년 마이클 잭슨은 고음역의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다이아나 로스식의 물 흐르는 듯한 보이스 테크닉을 결합한 독특한 보컬 스타일을 선보이면서, 잭슨 파이브가 1970년대의 포문을 여는 최초의 스타 팝 밴드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보컬리스트로서 마이클의 천재적 역량은... (생략) 특히 'I’ll Be There'는 순수하면서도 혼란스러운 10대의 감성을 마이클의 생기 넘치는 목소리를 통해 육화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이후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을 아우르며 무수히 양산되는 ‘1970년대식 틴 팝’을 위한 교과서 역할을 하였다. 모타운 시절의 잭슨 파이브를 단순히 10대 취향의 팝 그룹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흑인음악 자체의 맥락에서 평가하자면, 잭슨 파이브는 당시 보컬을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오로지 비트만을 강조하던 디스코의 대세에 제동을 걸 수 있었던 유일한 뮤지션이었다. 마이클의 보컬은 주류 디스코 사운드에 대한 대안일 뿐 아니라 흑인음악의 근간을 이루었던 아프로-아메리칸 가스펠/발라드 전통의 급락을 위한 촉매제 역할까지 하였다.
양재영 음악평론가/ 웹진 weiv 'Jackson 5 The Ultimate Collection' 앨범 리뷰

신이 내린 미성과 그루브의 소유자이자 최초로 음악적 흑백 통합을 이룬 흑인처럼 부르는 백인에 이어 전 세계를 사로잡은 '백인처럼 부르는 흑인'의 가창력을 보유하고 장르에 구애 받지 않는 천재적 보컬리스트로 평가 받는다.

어릴 때부터 대단한 가창력을 가진 신동이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불과 11세라는 어린 나이에 빌보드 차트 1위로 데뷔하며[6] 12세에는 4 싱글 연속으로 빌보드 차트 1위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밴드 가수 나얼스티비 원더와 함께 본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뮤지션으로 뽑기도 했고 '너무 독보적, 말도 안 될 만큼 대단한 보컬'이라며 특히 잭슨스 시절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또 가수 알리휘트니 휴스턴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보컬리스트로 잭슨을 뽑았고 배우 겸 가수 임창정잭슨은 태어날 때부터 99점을 타고나 조금만 연습해도 100점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Victory' 투어와 'Bad' 1차 투어를 보면 마이클 잭슨을 춤을 추면서 전 곡을 라이브로 소화하며 사람이 아닌 수준으로 날아다닌다. 인간 리듬머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 애초에 마이클 잭슨은 그 뛰어난 가창력을 인정받아 모타운과 에픽 레코드에서 아주 좋은 대접과 높은 로열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가창력이 20대에 진입하자 뛰어난 작사, 작곡 능력과 춤에 대한 재능까지 더해져 마이클 잭슨을 팝의 황제로 만들어줬다.

흔히들 마이클 잭슨은 춤 잘 춰서 가수가 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마이클은 댄스가수가 아닌 밴드 메인보컬 출신이다. 마이클이 춤으로 유명해진 것은 데뷔한지 14년이 지난 뒤의[7] 일이며 그 전에는 노래신동으로 유명했다. 어린애가 노래를 너무 잘해서 초등학생 때 데뷔시켰더니 빌보드 4연속 1위를 찍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춤은 더 잘 춰서 노래 실력이 묻힌 케이스랄까(...). 어린아이 특유의 귀여운 목소리로 인생 2회차 같은 가창력과 표현력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이 시절 라이브 실력을 볼 수 있는 영상으로 가오갤 쿠키영상으로 유명해진 I want you back, 영화 벤의 주제곡으로 14살에 아카데미 시상식에 초대되어 부르기도 했던 ben 등이 남아 있다.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 흑인인지 백인인지 구별히 힘들 정도의 맑고 개성 있는 미성을 가졌으며 4옥타브의 음역[8]을 넘나들며(in the closet 무대의 한 장면. 넓은 음역을 넘나드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무대 영상) 특유의 읔!(...)이라는 딸꾹질을 추임새로 자주 사용한다.[9]

마이클 잭슨의 노래는 실제로 불러보면 알겠지만 일반 남성의 파사지오에 해당하는 음역부터 여성의 고음역대까지 걸쳐져 있는 경우가 다반사라 다수의 일반인들이 제대로 소화하기는 매우 벅차고 음을 따라가도 밋밋한 느낌이 나기 쉽다. 원곡의 느낌을 내기 위해서 딸꾹질 창법 이외에도 강한 악센트, 가성(Don't Stop 'Til You Get Enough), 스타카토(Smooth Criminal), 바이브레이션(Human Nature)등의 다양한 창법까지 넣어야 하며, 거기다가 마이클처럼 고난도의 춤까지 춰야 한다고 하면...
다른 소리를 듣지 못하게 만드는... 다른 감성을 초라하게 만드는... 너무 대단한 목소리이기에...
2004년 가수 나얼싸이월드
마이클 잭슨과 스티비 원더는 득음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다. 잭슨의 음성은 귀곡성이다.
국악인 조통달[10]
마이클 잭슨의 가장 큰 특징은 그가 흑인임에도 노래하는 성향은 지극히 백인적이라는 것이다. 흑인은 그들이 장기로 하는 R&B적 성향의 독특한 창법을 기반으로 노래해 누가 들어도 흑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반면 마이클은 그 표현법이 R&B보다는 록의 창법에 더 가깝다. 보이스 자체가 이렇다 보니 그가 흑인임에도 우리 귀에는 백인에 더 가깝게 들리는 것이다. 또 흑인은 고음으로 올라갈 때 가성을 사용해 악절을 좀 더 부드럽게 연출하는 '흑인만의' 특징을 보인다. 하지만 마이클은 고음으로 올라가는 와중에도 가성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흑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어택이 강한 창법을 구사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저음에서 중음, 고음역대로 올라갈 때에도 소리가 한 치의 흔들림이 없다. 발음 또한 정확하다. 어택이 강하고 분명한 자기표현력을 보이고 있음에도 소리를 구사할 땐 힘이 들어가지 않고 극히 자연스럽다. 융합하기 힘든 이러한 상반성을 완벽히 갖추고 있는 것도 마이클이 지닌 실로 '놀라운' 능력이다. 스릴러는 그의 최전성기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이 당시의 그의 노래는, 마치 소리가 날이 시퍼렇게 서 살아있듯이 생생하게 꿈틀거리는 가운데 날카롭고 공격적이다. 창법에서 접할 수 있는 테크닉의 화려함이나 높은 수준도 감탄할 만하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이만큼 출중한 기량과 음악성을 키웠다는 것은 일반인의 상식으론 상상이 안 될 정도다.
조성진 음악평론가/ 조성진의 음치불가 '마이클 잭슨' 편
그 어떤 테너도 마이클 잭슨과 같은 수준으로 데시벨이 올라간 적은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정말로 질투를 느끼는 부분은, 전대미문의 케이스로, 빠르게 노래하는 동시에 안정적으로 High C를 유지하는 그의 천재성이에요.
오페라 테너 네일 쉬코프/ 1984년 피플 매거진 인터뷰
마이클 잭슨은 선천적인 미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스릴러 앨범부터 강한 악센트를 사용하고 비브라토를 강하게 사용하는 창법을 유지했다. 이런 창법이 상당히 고난이도인데 지르지 않고 강하게 발음하는 것은 그냥 서서 부르기만 해도 숨이 찰 것이다.
Ice J 음향엔지니어/ 개인 블로그
마이클은 타고난 고음과 함께 굉장한 음역대의 소유자다. 팔세토에도 능한데 이런 종류의 남성 싱어를 카운터 테너(Counter Tenor)라고 한다. 초고음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테너들이 팔세토를 쓰지만 마이클은 같은 음에서도 팔세토를 쓰든 쓰지 않든 자유자재로 이를 구사할 수 있다. 최저음부터 최고음까지 마이클은 그의 목소리(Vocal Instrument)를 완전히 활용한다. 아티스트로서, 그의 음악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는 순전히 마이클 본인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생략) 앞으로 미래 세대에게 카운터 테너라는 용어는 주로 비클래식(Non-classical) 음악과 관련이 깊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그리고 바로 그들에게 마이클은 분명 최고로 여겨질 것이다.'
Simon Ravens (Tudor Consort 합창단 지휘자)/ 저서 'The Supernatural Voice'
마이클 잭슨은 베이스, 바리톤, 테너 모두 가능했지만 대부분 테너로 노래했다. 마이클이 낼 수 있는 최저음은 베이스 성부의 Low C(가온 도보다 2옥타브 낮은 도, C2)였으며 비브라토까지 섞어서 깔끔하게 High C를 넘어 High G(남자의 3옥타브 솔, G5)까지 낼 수 있었다. 이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3옥타브 반을 넘는 것이었다. 한 번은 유럽에 있을 때 마이클에게 전화가 왔는데 마이클은 완벽한 바리톤 음성으로 'Hello~'라고 인사했다. 나는 그래서 왜 그런 목소리로 곡을 만들지 않냐고 했더니 마이클은 '저음은 싫습니다, 고음이 좋아요'라고 답했다.(2012년 Bad 앨범 발매 25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만약 누군가 나에게 그와 함께한 시간 중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나는 피아노에 앉아 있었고 그는 피루엣(발레의 턴 동작)을 하며 High C를 소리 내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를 보며 지금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고 마이클은 피루엣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아니 그것보다 방금 High C를 내지 않았냐고 어떻게 한 것인지 놀라서 물었다. 그때 마이클은 '모르겠어요. 그냥 그렇게 해보라고 해서..' 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2009년 Urban Spin 인터뷰)
보컬 트레이너 세스 릭스
'I Want You Back'과 'I'll Be There' 같은 히트곡들에서 마이클은 어린아이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의 감성을 파고든다. 지금 듣기에도 여전히 경이로울 정도로. 그러나 그가 기가 막힌 팔세토를 완벽하게 마스터하면서 보컬의 천재성을 확립한 것은 바로 성인 시기로서, 그의 쌍둥이 걸작들인 'Off the Wall' 앨범과 'Thriller' 앨범에서였다.
앤디 허먼 음악평론가/ LA Weekly, 'The 20 Best Singers of All Time'
마이클 잭슨의 진면목은 역시 그의 탁월한 보컬에서 드러난다. 전체적으로 그의 목소리는 깃털처럼 가볍고 가녀린 고음이면서도 힘을 지녔다. 그리고 팔세토를 넘나들 때에도 자유롭지만 정확하고 명쾌하게 음을 짚어내는 보이스 테크닉을 과시한다. 대부분 소년 시절의 절창들이 성인이 되면서 목소리의 매력과 테크닉을 상실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보컬리스트로서 마이클의 눈부신 진화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물론 마이클의 보컬리스트로서의 능력이 극대화되는 곳은 댄스 트랙들보다 앨범의 또 다른 한 축을 구성하는 R&B팝과 발라드의 영역이다. 특히 온갖 감정을 쥐어짜는 듯한 여리게 떨리는 그의 보컬을 전면에 내세운 절대적 발라드 “She’s Out Of My Life”는 이 앨범의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편 스티비 원더가 함께 작곡한 “I Can't Help It'이나 폴 매카트니가 제공한 “Girlfriend”에서 마이클은 건반과 베이스 라인을 따라 숨 가쁘게 날아다니는 리듬감 넘치는 보컬을 과시한다.
양재영 음악평론가/ 웹진 weiv, Off The Wall 앨범 리뷰
마이클은 저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어요. 무엇보다도, 보컬적인 면에서 마이클은 항상 저의 영감이 되었죠. 나도 노래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 앨범이 바로 'Off the Wall'이었는데 이 앨범을 통해 나의 팔세토를 찾았어요.
가수 더 위켄드/ 다큐멘터리 'Journey from Motown to Off The Wall'
춤만이 사람들을 홀린 것은 아니었다. 천재적인 감정 표현과 비트 감각에다 가창력 측면에서도 그는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생략) 이 모든 영광은 춤이 아니라 천부적 음악 재능, 즉 가창력이 동반됐기에 가능했다. 그는 비트 감각이 요구되는 빠른 댄스곡에도 능했지만 풍부한 감정 표현과 정확한 음 구사능력으로 발라드에도 실력을 발휘했다.
임진모 음악평론가/ 위클리 공감 기고문 '팝의 제왕.. 전설이 되다'
현란한 댄스 때문에 보컬에 대해 낮은 평가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마이클은 분명 탁월한 가수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비트 감각, 정확한 음표현, 어색하지 않은 기교, 대단한 음역... 웬만한 높이를 갖고 있는 사람도 마이클의 노래를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거의 소프라노 급이니까요.
배철수 DJ/ 2009년 배철수의 음악캠프
마이클 잭슨의 목소리를 단 몇 마디로 정의 내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때로는 카렌 카펜터즈처럼 맑고 다이애나 로스처럼 명랑하고 제임스 브라운처럼 격정적이며 로저 워터스처럼 드라마틱하다. 그가 소울 앤 알앤비라고 어중간하게 정의된 앨범으로 그래미에서 락 보컬상을 수상한 것과 알앤비 보컬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이 어쩌면 정답일지도 모른다. 그는 악보가 있어서 부른다기보다는 악보를 이정표 삼아 자신의 감성대로 드라마틱하게 온갖 복잡한 장르를 비웃으며 어느 경계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노래들은 비평하기가 어렵다. 쉽게 말하자면 마이클 잭슨이라는 브랜드의 음악인 것이다. 그를 알앤비 또는 소울 또는 락이라는 영역 내에서 바라본다면 그건 정말 위험한 착각이다. 그의 목소리는 단 한 번도 그런 문자화된 장르 안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다.
제인 맥길리언 음악평론가/ Village Voice' 92년 3월호
팝의 역사를 살다간 그 수많은 명인들 중에 단 몇 사람만을 꼽아 '역대 몇 위' 같은 등수놀이를 하는 것이 건강한 취미는 아닐지 모르지만 잭슨은 그 목소리만으로도 (아주 쬐금 과장을 보태면) 흑백을 통틀어 역대 팝 보컬리스트 중 열 명 안에 꼽아 억울할 게 없는 인물일 것이다.
알앤비 가수로서 잭슨의 소울풀함은 아레사 프랭클린, 스티비 원더브라이언 맥나이트의 사기적인 성량에 이은 무한 테크닉에는 미치지는 못할지라도 그들에 능히 필적하는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있다. 'Who's Loving You'를 거짓말같이 맛깔나게 불러제낀 어린 시절만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성인이 되어 발표한 일련의 곡들, 이를테면 'Human Nature'나 'I Just Can't Stop Loving You', 'Man In The Mirror'에서처럼 선율의 기본을 맛깔스럽게 훑어내면서도 때때로 소울풀하게 내지르는 테크닉은 흑인 가수로서 그의 본령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든다.
팝 발라디어로서의 능력이라면 더욱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평생 댄스 음악을 달고 다녔던 가수로서는 정말 드물게, 아니 거의 유일하게, 그의 발라드 능력은 동급 대비 최강의 감미로움을 더한다. 'Heal The World'에서처럼 각 소절을 각각 다른 느낌으로 미세하게 바꿔 부르는 능력, 'She's Out of My Life'나 'Gone Too Soon', 'Childhood'에서 들리는, 가사의 한 결 한 결을 섬세하게 짚어내는 전달 능력은 가히 동시대의 명가수 라이오넬 리치조지 마이클, 카렌 카펜터에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하다. 게다가 그 독창성과 카리스마라는 면을 보탠다면 역대 지존이라 불릴 고참들인 프랭크 시나트라냇 킹 콜, 엘비스의 유려함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 없다.
록커 잭슨? 코웃음부터 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동시대를 살다간 록의 거장들조차 잭슨의 보컬의 위대함은 쉽게 무시하지 못했다. 태생은 소울 가수였지만 그의 보컬은 수준급의 록 보컬리스트를 뺨치는 댐핑함과 샤우팅을 겸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릴러 앨범으로 록/팝/소울 부문을 모두 휩쓴 것은 이미 전설이 돼버린 기록일 뿐더러, 'Dirty Diana'나 'Come Together'의 러프한 샤우팅은 당대 탑 메탈 보컬리스트들이라도 좌절감을 느꼈을 만큼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는다. 'Smooth Criminal'의 기가 막힌 팔세토, 'Beat It'이나 'Jam' 등이 들려주는 속도감에 위협받지 않는 탄력적 딜리버리도 록커 잭슨의 포텐셜을 증명한다. 발라드, 댄스, 록을 모두 잘 부르는 가수는, 내 기억이 맞다면, 마이클이 유일하다. 그리고 그 수준은 그 어느 장르에서도 존경받을 만한 정도였다. 의심할 바 없이.

김영대 음악평론가/ 음악취향Y, '마이클 잭슨' 특집
주 장르인 팝뿐만 아니라 발라드, 댄스, 리듬 앤 블루스 등의 장르와 그 외의 여러 장르를 결합시킨 음악들도 무리없이 보컬로 소화한다. 깔끔하게, 거칠게, 맑게, 허스키하게, 까랑까랑하게도 부르는 등 곡 해석력 또한 다양하다. 이러한 보컬 능력은 Invincible 앨범에서 잘 표현되었지만 앨범이 부진하면서 묻혔다. 1984년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스릴러, 빗잇, 빌리진의 3곡으로 각각 최고의 팝 보컬, 락 보컬, R&B 보컬로 보컬 부문에서만 3개의 그래미상을 휩쓸어 갔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의 라이브 보컬로서의 실력은 한국 인터넷상에서는 꽤나 저평가를 받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위 '공연' 항목에서도 언급했지만 마이클 잭슨의 공연 동영상으로 그의 목소리가 매우 상했으며 대부분이 립싱크로 진행됐던 'HIStory 투어' 동영상이 광범위하게 많이 퍼졌기 때문이다. 반면 그의 라이브 보컬 전성기 시절인 80년대 영상물은 거의 풀리지 않았으며 그나마 풀린 영상조차도 화질이 매우 좋지 않다.

마이클 잭슨은 5세 때부터 각종 지역 행사와 밤무대를 뛰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서 12세 때부터는 프로 가수로서 투어를 돌기 시작하고[11] 성인이 된 후로는 격한 춤까지 추며 올라이브를 고집하여 목을 혹사시킨 탓에 다른 가수들보다 목이 빨리 상하게 된다. 서른 살까지는 모든 투어를 부분 립싱크도 없이 100% 라이브로 소화했고, 투어 중 라이브를 했던 비율이 립싱크에 비해서 훨씬 많지만[12] 라이브로 했던 공연은 60~80년대 자료라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립싱크 가수라는 콘서트 한정으로 이미지가 강하다.

마이클의 80년대 시절 화려한 라이브 보컬로서의 실력을 보고 싶으면 라이브 앨범인 'The Jacksons: Live (1981년)'을 필히 들어보길 바란다. 가장 카랑카랑 했을 때의 음색 그리고 댄스의 개입이 적었을 때라 마이클 잭슨의 화려한 가창력을 맘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Bad Wembley Tour'도 필수적이며 이 두 개가 잭슨 측이 공식적으로 발매한 유일한 라이브 앨범물이다.

화질은 썩 좋지 못 하지만 그래도 나름 보고 들을 만한 수준으로 나돌아 다니고 있는 Victory Tour (1984년) 시절 영상도 봐보자. 캐나다 토론토 공연이이 화질이 가장 좋으며 켄자스 시티와 달라스, 뉴욕에서의 공연도 볼 만 하다. Bad Tour는 일본에서 1987년에 한 공연들이 100% 라이브라 감상하기 좋다. 요코하마 공연이 가장 유명하며, 나레이션의 방해가 심하긴 하지만 Bad 투어 2일차 맛보기 영상도 전성기 시절의 보컬을 들어보기 좋다.

마이클 잭슨에게 온갖 나쁜 이미지를 갖다 붙이는데 여념이 없었던 80년대 당시 타블로이드 언론에서도 마이클 잭슨을 가창력으로 까는 경우는 없었다. "관객들이 마이클 잭슨을 세계 최고의 댄서라고 생각할 때 그는 발라드 노래를 흐느끼며 열창한다. 그러면 나는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그를 꼭 껴안아주고 싶다"라고 썼을 정도다.

또한 마이클은 각종 매체에서 전문가들이 뽑은 최고의 가수 순위에서 최상위권 단골손님이었다. 2003년 <Cove 매거진>이 뽑은 'Top 100 보컬리스트'에서 3위에 선정됐고, 사후인 2015년에는 보컬 전문지 <Voicecouncil>에서 선정한 '역대 가장 위대한 남성 보컬리스트 Top 5'에서 2위를 차지했다. 또 2016년에는 <Consequence-Of-Sound>가 선정한 '역대 가장 위대한 가수 Top 100'에서 1위, 같은 해 <LA Weekly>가 선정한 '베스트 싱어 Top 20'에서 8위에 선정됐다.

2018년에는 영국의 대표적인 음악 라디오 중 하나인 <Smooth Radio>가 선정한 '역대 가장 위대한 남성 보컬리스트 Top 14'에서 2위에 올랐다. 한편 2003년 <MTV>와 <Blender 매거진>이 공동으로 실시한 '가장 훌륭한 목소리 Top 22' 독자 대상 온라인 투표에서는 마이클 잭슨이 11위에 선정됐으며 2011년에는 1,000만 표 이상이 모여 투표가 실시된 <NME>의 '가장 위대한 가수 Top 20' 온라인 투표에서 1위에 올랐다.

하지만 가창력이라는 것에 객관적 기준을 적용하기란 상당히 모호하고도 힘든 일이므로 마이클을 포함하여 어느 가수든 선정하는 매체마다 순위 변동이 심하다. 고로 이 척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까지는 없으며 어쨌든 마이클 잭슨이 최고의 보컬리스트 중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는다는 사실만 알면 충분할 듯하다.

한편 가수로 데뷔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변성기가 안 온 것 마냥 여리고 가는 목소리를 유지했는데 이 때문에 그가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는 거 아니냐, 고자냐는 루머가 퍼졌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은 원체 음역대가 높았기에 변성기를 거친 이후에도 고음을 소화할 수 있었을 뿐 분명히 변성기를 거친 사람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정규앨범 녹음을 하며 성인 시기의 목소리와 비교해볼 수 있는 자료가 남았기 때문에 쉽게 확인이 가능한 부분. 친어머니 캐서린 잭슨에 의하면 잭슨 집안은 선천적으로 고음을 가진 사람이 많았고, 마이클의 형제 재키 잭슨의 목소리도 들어보면 60대 남자답지 않게 목소리가 되게 얇다.

세스 릭스와 리사 마리 프레슬리의 증언에 따르면 마이클의 실제 목소리는 'You are not alone'이나 'Heal the World'에서 듣는 만큼 매우 고음은 아니고 우리가 생각하는 목소리보다 좀 더 낮았다고 한다. 그 예로 HIStory 투어에서 in the closet 나레이션 부분이나 This is it에서 리허설 중의 일상 대화들을 들 수 있다.

4. 댄스

파일:마이클 잭슨 포스터.jpg
댄서로서 전문적으로 판단해볼 때, 잭슨은 탑이다. 당신은 댄스의 거장을 볼 수 있다. 마이클 잭슨은 동작을 동작 그 자체를 위해 사용하는 무용의 달인, 아방가르드 무용가다. 그의 댄스는 추상적이며, 세계적인 현대 무용가 머스 커닝햄처럼 그는 우리에게 동작이 그 자체의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거의 팝 스타들과는 달리 잭슨은 미리 딱딱 짜여진 대로 춤을 추지 않는다. 즉흥적인 춤으로 대중들과 소통한다. 잭슨은 위대한 일루셔니스트이자 진정한 마임가이다.
안나 키셀코프 무용가/ 1988년 뉴욕타임스
전문댄서가 아니면서 팝과 록을 겸비하는 뮤지션으로는 최초로 '미국 국립 무용 박물관 명예의 전당' 헌액.

미국 국립기관 Dance Heritage Coalition 선정 'America's Irreplaceable Dance Treasures 100' 등재.

대중음악계에서 '춤'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인물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댄서 중 하나. '춤꾼'이라고 칭하면 보통 일반 사람들은 마이클 잭슨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댄서들에게 그야말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국의 인기 댄스오디션 TV프로그램《So You Think You Can Dance》의 총괄 PD이자 심사위원이었던 나이젤 리스고에 의하면 수많은 지원자들이 춤을 추게 된 계기로 마이클 잭슨을 꼽았다고 한다.

댄스에 있어서는 펑크(Funk)의 제왕 제임스 브라운과 영화배우이자 전설적 춤꾼으로 유명한 프레드 아스테어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유년 시절에 열렬한 팬이었으며 그의 스텝을 연구했다고 한다. 이것이 그의 완벽주의적 성향과 결부되면서 어린 시절부터 꽤나 춤의 달인이었다고도 하며 그와 함께 작업했던 다이애나 로스는 그가 춤을 배우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댄서들이 따라갈 수 없다며 불평했다는 회상을 했다. MTV를 통해 전 세계를 강타했던 'Thriller' 뮤직비디오의 안무도 직접 했다(마이클 피터스와 공동 안무). Thriller 이후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그렇지 잭슨 5 시절부터 상당히 춤을 잘 췄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스핀 또한 이때부터 했다.

물론 전설적인 브루드웨이 안무가인 밥 포시의 춤도 잭슨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마이클의 트레이드마크인 모자와 장갑, 손의 움직임을 통한 감정 표현 등은 포시 안무의 가장 큰 특징이었으며, 마이클의 대표적인 춤사위는 포시가 1970년대에 완성한 동작들이다(아래 동영상을 2분 30초부터 보자).



밥 포시의 춤. "마이클 잭슨 흉내냈네!" 싶겠지만 이게 1974년작 영화다.

재키 윌슨은 마이클 잭슨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모두 익혔다고 했으며 잭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배웠다고 인정했다.

모타운 25주년 공연에서 그는 빌리 진 무대를 선보였는데 프레드 아스테어가 그것을 보고 마침내 자신의 후계자를 찾았다며 매우 기뻐하여 잭슨의 전화번호를 조사하여 전화까지 걸었다. 프레드는 잭슨에게 "네가 진짜 춤을 보여줬어" 라며 분노의 댄서라고 잭슨을 평가했다. 잭슨의 보컬 트레이너인 세스 릭스는 당시 장면을 회상하며 잭슨이 너무 흥분하여 병이 날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후 프레드는 직접 잭슨을 만나 문워크를 배운다.

1983년 최초의 마이클 잭슨 문워크 영상
문워크는 그가 전부를 직접 개발한 것은 아니다. 문워크와 비슷한 스텝은 1930년대부터 존재했고 마이클은 캐스퍼라는 한 소년에게서 백 슬라이드 스텝을 배운 뒤 이를 체계화된 현재의 문워크로 발전시켜 'Billie Jean' 공연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 공연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 500개의 순위 중 202위를 차지했으며 미국인들이 가장 다시 보고 싶은 장면 7위로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후일담에 의하면 본인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공연이 끝나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13] 그런데 지나가던 소녀가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줘서 그제야 기분을 풀었다고. 문워크의 뜻은 마치 을 걷는 듯 유연하게 미끄러진다며 붙어진 이름으로 초반에는 그저 미끄러지듯 뒤로 걷는 동작이었지만 87년 'Bad' 앨범 때 이후로는 옆으로 가는 문워크나 제자리 문워크, 마지막에 회전하는 문워크 등 몇 가지 변형 동작이 추가되었고 조금 더 복잡해졌다.


'Smooth Criminal'의 안무로 유명한 'Lean' 동작(30도 가량 비스듬히 기울어졌다가 다시 올라오는 동작)을 무대에서 보이기 위한 장치를 고안해서 특허를 받기도 했다(다른 스텝들과 공동 특허). 이 Lean 댄스는 특수 신발과 무대 고정 장치를 사용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댄서 개인도 몸이 똑바로 기울어졌다가 다시 올라오는 과정에서 지구력과 추진력, 그리고 균형 감각이 필요하기에 쉽지 않다. 그래서 한때 아킬레스건이 남보다 2배는 길다느니 재미있는 루머들이 난무했다. 이 린 댄스가 나올 때 관객들의 함성이 난리가 아니다. 장우혁2006년에 'Mr. 잭슨'이라는 곡을 내면서 오마주한 적이 있다.[14]

스텝에 있어서는 가히 기예와 같은 실력을 발휘한다. 발끝으로 서는 동작은 마이클 잭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 그의 '빌리 진' 퍼포먼스는 83년 초연 이후 다른 스텝과 동작이 추가되었는데 1992년 루마니아 공연 때를 보면 거의 발이 무대에서 날아다닌다. 문워크야 지금은 웬만한 댄서들이야 다 하는 동작이지만 원조는 원조인지라 잭슨 같은 유연함, 스피드, 능수능란한 테크닉을 재연하는 것은 힘들다. 발동작이 매우 빠르고 가벼운데 'Black or White' 뮤직비디오 뒷부분을 보면 뛰어난 스텝을 감상할 수 있다. 이렇게 현란한 스텝을 밟으면서도 온 비트가 정확하며 정지된 동작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 대중의 호응을 유도해내는 것이 특징인데 어느 평론가는 '잭슨은 춤의 본질이 움직임이 아니라 멈춤에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라고 평했다.

참고로 마이클 잭슨을 대표하는 의상 중 하나인 검은색 바지-하얀 양말-검은색 구두는 마이클 잭슨의 안무를 보고 무대 기획자가 공연을 직접 보러 온 관객들에게 마이클 잭슨의 현란한 스텝을 멀찌감치 서 조금이라도 잘 보이기 위해서 제안했다고 한다. 비록 꽤나 촌스럽고 격식에 안 맞는 조합이 될 것임에도 마이클 잭슨은 흔쾌히 허락했다.


스핀 실력도 수준급인데 그의 팬이 편집한 스핀 짜깁기 영상만 봐도 무지 어지럽다. 여기에서 포인트는 스핀을 실컷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바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는 것. 응용도 있는데 뱅글뱅글 돌다가 순식간에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 동작이다.[15]

로봇 댄스에도 능숙했다. 16살에 발표했던 Dancing Machine의 로봇 댄스 모음[16]

어린 시절에 춤을 추는 자료는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굉장히 짧은 영상 속에서도 춤에 대한 재능을 볼 수 있다. 데뷔 전 데뷔 초

그의 댄스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사타구니 잡는 동작은 87년 'Bad' 뮤직비디오 촬영 때 처음 나온 것이라고 한다.[17] 춤을 추다가 우연히 했던 동작인데 그게 느낌이 좋아서 계속 하게 되었다고. 사실 지금이야 댄스 여기저기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익숙해서 그렇지 사실 굉장히 섹슈얼한 동작이다. 적당히 사타구니를 잘 쥐어잡은 채로 각을 잡고 엉덩이를 유연하게 튕겨줘야 하는데 이게 내공이 없는 일반인이 하면 똥마려운 포즈로 보이거나 개그 요소가 될 수 있는 등 은근히 난이도를 필요로 한다. 사실 저 동작을 잘못 추면 저질 댄스, 자연스럽지 못하게 남발하면 꼬만춤소리 들으면서 씹히기 딱 좋은 동작. 실제로 마이클 잭슨 사후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 This Is It에서 나오는 장면으로, 백댄서가 연습 중 사타구니를 제대로 잡지 않고 손을 올려놓기만 하자 트레이너가 직접 가서 사타구니를 확실히 움켜쥐라며 지적하는 장면도 있다.

현란한 스텝을 보여주고 있지만 디테일한 면에도 신경 쓴다. 'Dangerous' 퍼포먼스에서 볼 수 있듯이 손에 감은 밴드 등으로 시각적인 포인트를 주는 것이다. 영상을 찾아보면 미묘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동작을 볼 수 있는데 한때 신화이민우가 오마주한 적이 있었다.

사실 잭슨은 군무보다는 독무를 좋아한다. 이유는 군무는 에어로빅 같아서 힙합 음악은 좋아하지만 힙합 댄스는 에어로빅 같아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적이 있었다.

마이클의 이러한 능력은 공연 때 마다 발휘되었으며 마이클이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여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의 정상급 댄서들 역시 그의 무대를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18]
마이클은 저의 댄스 커리어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어요. 아마 전문 댄서들 대부분은 저와 똑같이 말할 겁니다.
댄서 셰릴 버크/ 2009년 'Dancing With The Stars' 인터뷰
마이클은 춤과 안무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아이콘을 넘어 춤과 안무의 아버지를 잃었어요.
댄서 카리나 스미르노프/ 2009년 'Dancing With The Stars' 인터뷰
(마이클 잭슨의 춤이 본인에게 미친 영향?) 마이클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작과 음악성이 잠재해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마이클의 습관이 배였던 것 같아요.. 저에겐 스승이었고 음악이나 춤, 우상이나 마찬가지였죠.
가수 박남정/ 2009년 KBS 인터뷰
마이클 잭슨은 나의 정신적 스승이었고, 앞으로도 나를 비롯해 전 세계 모든 댄스가수들의 교과서로 남게 될 것이다.
가수 / 2009년 마카오 패션쇼 인터뷰
댄스가 스킬이 아닌 예술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댄서 잭슨의 성적은 A+ 학점을 주어도 아쉬울 게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에 수많은 댄서들이 살다 갔지만 그 중에 자신만의 시그니쳐 무브를 만들어 낸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누구나 춤은 기억하지만 댄서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지만 잭슨은 우선 저 유명한 '문워킹'이라는 시그니쳐 댄스를 남겼다. 빌 베일리의 탭 댄스에 제임스 브라운의 그루브를 자연스레 접목시킨, 이를테면 재활용 댄스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파워풀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잭슨의 동작은 선배들과는 전혀 새로운 감흥을 안겨주었다. 그는 테크니컬한 관점에서도 훌륭한 댄서였다. 굉장히 안정적인 자세에서 가볍고도 강렬하게 이루어지는 라킹이나 파핑 등 그가 공연에서 즐겨 추는 브레이킹 무브들은 춤에 어느정도 통달한 사람들만이 자연스레 모방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올라 있었다. 한편 그는 최신 댄스 팝을 50년대 이전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타일과 결합시키면서 새로운 경향을 창조해 내기도 했다. 프레드 아스테어나 진 켈리가 보여준 뮤지컬 특유의 낭만적인 몸짓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길거리 흑인 음악의 정수인 그루브함과 역동성을 부여해 그 이전 시대의 팝 아티스트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안무들로 승화시킨 것은 중요한 성과다. 그가 최고의 춤꾼들과 함께 고안해낸 'Thriller', 'Smooth Criminal', 'Dangerous'의 흥미로운 군무와 그 짜여진 동작 하나하나들의 디테일은 결국 팝 음악에서 안무라는 개념을 완전히 뒤바꾸었다. 팝이 낳은 가장 위대한 댄서의 반열에 오를 MJ. 그가 무대 위를, 아니 달 위를 걸었던 불과 10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은 앞으로 팝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한 계속 회상되고 이야기 되고, 감탄사를 자아낼 것이다.
김영대 음악평론가/ 음악취향Y '마이클 잭슨'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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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 가창력, 안무, 무대 연출, 디자인 등[2] 완벽주의적인 기질 역시 마이클 잭슨이라는 인물이 어떤 성향인지를 잘 보여준다. 예시로는 데모가 있는데, 곡의 데모란 원래는 곡의 기틀을 잡아가는 미완성 상태인 만큼 완성본에 비해 곡의 퀄리티가 미흡한 상태일 수 밖에 없다. 특히나 현대보다 음향 기술이 부족한 과거에는 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잭슨은 곡의 데모 버전까지도 최종 완성본 수준으로 사운드가 매우 깔끔하고 완성곡 수준의 퀄리티를 들려준다. 마이클의 주변 인물들이 'Bad 25' 수록곡인 'I'm So Blue'를 설명하면서 "다른 아티스트가 최종 녹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마이클은 데모라고 부른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3] 공동으로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마이클 잭슨의 누나 라토야 잭슨에 의하면 사실 거의 대부분 잭슨이 작곡했다고 한다. 라이오넬 리치에게 알리지도 않고 드럼, 피아노, 현악기, 코러스 편곡까지 혼자 다듬어 데모 테이프로 만들어서 퀸시 존스와 라이오넬 리치에게 들려줬더니 깜짝 놀랐다고... 출처[4] 실제로 '롤링스톤지 선정 위대한 OOO Top 10'같은 외국 유튜브 영상의 댓글을 보면 대부분이 롤링스톤 잡지를 구닥다리라며 욕하는 댓글이 대부분이다.[5] 2020년 작고한 전설적인 스튜디오 엔지니어로 마이클잭슨, 퀸시존스, 제니퍼 로페즈, 나탈리 콜, 폴 메카트니, 바버라 스트라이드 샌드등, 셀 수도 없는 가수들과 총 12번의 그래미 시상식에서 노미네이트 되었고 다섯번을 수상했다.[6] 최연소 빌보드 1위의 기록이지만 솔로가 아닌 그룹으로 낸 곡이기에 공식 기록으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룹이라고 해도 사실상 코러스 정도를 제외하고는 마이클 잭슨이 모든 곡을 혼자 다 불렀다.[7] 그 전에도 춤을 추긴 했지만 춤 실력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모타운25의 빌리진 공연과 빗잇, 스릴러 뮤비 이후.[8] 대표적으로 Smooth Criminal[9] 사실 이 추임새는 보컬의 리드미컬한 전개를 돕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순간적으로 들숨의 양을 확 늘이기 위해 사용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10] 판소리의 명창이며, 가수 조관우의 아버지.[11] 어린 시절에 데뷔하는 아이돌 가수들은 소속사에서 목 보호 차원에서 변성기 때만은 립싱크 공연을 시킨다든지 보컬 연습까지 자제시키는 경우가 흔하지만 마이클은 12세 때부터 20대 초반까지 한 해도 쉬지 못하고 세계 각지로 라이브 투어를 돌았다. 미성년자 시절에 했던 콘서트만 해도 300회 정도고 프로 데뷔 이전(5살~10살)에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한 숫자까지 합치면 끝이 없다.[12] 100% 라이브 공연이 약 550회, 85% 라이브 공연이 약 100회(Bad 2차), 절반 가까이 립싱크로 진행했던 공연이 69회(Dangerous), 대부분 립싱크였던 공연이 83회(HIStory). 투어가 아닌 방송에서는 종종 립싱크를 했다.[13] 위의 영상(3분 30초 부분)을 보면 문워크도 다소 마무리가 버벅 거리고, 스핀 후 발끝으로 버티려다가 무게중심이 무너져서 비틀거리는 모습도 보인다. 처음부터 완벽하진 않았던 셈.[14] 완전히 똑같진 않고, 특수 장치 없이 뒷쪽 발을 살짝 앞으로 내밀어 균형을 잡고 보다 천천히 내려갔다가 올라온다.[15] 대부분 실제 공연이나 뮤직비디오에선 바지 속에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한다. 그리고 마이클 잭슨이니까 문제없이 잘해낸 것이니 일반인이 함부로 따라하지 말자.[16] 이때 이미 스핀을 시전했다.[17] 이 동작 자체는 잭슨이 처음한게 아니라고 한다. 1982년 당대 가장 유명한 레즈비언 싱어송라이터였던 캐롤 포프라는 뉴웨이브 록 뮤지션이 시도했다고. ###. 캐롤 포프는 일찍부터 BDSM이나 호모섹슈얼요소를 집어넣어 보수주의자나 종교계에서 거세게 비난받았던 인물이다.[18] 마이클 잭슨 이후의 모든 댄서들이 마이클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건 놀라운 일이 아니며 감탄하는게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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