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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26 03:00:28

마이클 오언

마이클 오웬에서 넘어옴
마이클 오언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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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98 · 1998-99
파일:PFA_UK_logo.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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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FIFA 월드컵 신인상
파일:발롱도르 트로피.png
파일:World Soccer.png
베스트팀
파일:PFA_UK_logo.png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파일:ESM.png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Player of the Year 1998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마이클 오언
3위
호나우두
2001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지네딘 지단 마이클 오언 로베르 피레스
}}} ||
마이클 오언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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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 리그 통산 득점 순위 Top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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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555555,#aaaaaa
순위 선수 국적 득점
1 앨런 시어러파일:UEFA ENG.png 260
2 해리 케인파일:UEFA ENG.png 213
3 웨인 루니파일:UEFA ENG.png 208
4 앤디 콜파일:UEFA ENG.png 187
5 세르히오 아구에로파일:UEFA ARG.png 184
모하메드 살라파일:UEFA EGY.png 184
7 프랭크 램파드파일:UEFA ENG.png 177
8 티에리 앙리파일:UEFA FRA.png 175
9 로비 파울러파일:UEFA ENG.png 163
10 저메인 데포파일:UEFA ENG.png 162
11 마이클 오언파일:UEFA ENG.png 150
12 레스 퍼디난드파일:UEFA ENG.png 149
13 테디 셰링엄파일:UEFA ENG.png 146
14 로빈 반 페르시파일:UEFA NED.png 144
15 제이미 바디파일:UEFA ENG.png 143
16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파일:UEFA NED.png 127
손흥민파일:UEFA KOR.png 127
18 로비 킨파일:UEFA IRL.png 126
19 니콜라 아넬카파일:UEFA FRA.png 125
20 라힘 스털링파일:UEFA ENG.png 123
드와이트 요크파일:UEFA TRI.png 123
22 로멜루 루카쿠파일:UEFA BEL.png 121
23 스티븐 제라드파일:UEFA ENG.png 120
24 이안 라이트파일:UEFA ENG.png 113
25 디온 더블린파일:UEFA ENG.png 111
사디오 마네파일:UEFA SEN.png 111
27 에밀 헤스키파일:UEFA ENG.png 110
28 라이언 긱스파일:UEFA WAL.png 109
29 피터 크라우치파일:UEFA ENG.png 108
30 폴 스콜스파일:UEFA ENG.png 107
31 대런 벤트파일:UEFA ENG.png 106
32 디디에 드록바파일:UEFA CIV.png 104
33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파일:UEFA POR.png 103
34 맷 르티시에파일:UEFA ENG.png 100
35 엠마누엘 아데바요르파일:UEFA TOG.png 97
36 야쿠부 아이예그베니파일:UEFA NGA.png 95
뤼트 판니스텔로이파일:UEFA NED.png 95
38 디미타르 베르바토프파일:UEFA BUL.png 94
39 케빈 필립스파일:UEFA ENG.png 92
마크 비두카파일:UEFA AUS.png 92
41 제임스 비티파일:UEFA ENG.png 91
올레 군나르 솔샤르파일:UEFA NOR.png 91
43 올리비에 지루파일:UEFA FRA.png 90
44 케빈 데이비스파일:UEFA ENG.png 88
칼럼 윌슨파일:UEFA ENG.png 88
46 데니스 베르캄프파일:UEFA NED.png 87
마커스 래시포드파일:UEFA ENG.png 87
크리스 우드파일:UEFA NZL.png 87
49 크리스티안 벤테케파일:UEFA BEL.png 86
50 에덴 아자르파일:UEFA BEL.png 85
루이 사하파일:UEFA FRA.png 85
페르난도 토레스파일:UEFA ESP.png 85
출처 https://www.premierleague.com/stats/top/players/go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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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0F0F0 0%, #fff 20%, #fff 80%, #F0F0F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f> 파일: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통산 득점 순위 To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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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e31e31> 순서 선수 이름 득점
1 해리 케인 71
2 웨인 루니 53
3 바비 찰튼 49
4 게리 리네커 48
5 비비안 우드워드 44
지미 그리브스 44
7 마이클 오언 40
8 냇 로프트하우스 30
앨런 시어러 30
톰 피니 30
}}}}}}}}}}}}}}} ||
리버풀 FC 앰버서더
Liverpool Football Club
파일:Michael Owen.webp
<colbgcolor=#d00027> 이름 마이클 오언
Michael Owen
본명 마이클 제임스 오언[1]
Michael James Owen
출생 1979년 12월 14일 ([age(1979-12-14)]세)
잉글랜드 체스터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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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73cm[2] / 체중 67kg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윙어 / 은퇴)
축구 해설자
주발 오른발
소속 <colbgcolor=#d00027> 선수 리버풀 FC (1991~1996 / 유스)
리버풀 FC (1996~2004)
레알 마드리드 CF (2004~2005)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05~200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9~2012)
스토크 시티 FC (2012~2013)
국가대표 89경기 40골[3] (잉글랜드 / 1998~2008)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5.3. 개인 기록5.4. 출전 기록
6. 논란
6.1. 할리우드 액션6.2. 대한민국의 개고기 문화 반대6.3. 방송인 성희롱
7. 여담
7.1. 가족7.2. 외모
8. 오언에 대한 헌사9. 같이 보기

1. 개요

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이며, 현역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현재까지 리버풀 소속 선수 최초이자 마지막, 그리고 잉글랜드 국적 선수의 마지막 발롱도르 수상자로 남아있으며[4] 지금은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역대 발롱도르 수상자 중에서도 가장 초라한 말년을 보낸 축에 속한다.[5][6]

2. 클럽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마이클 오언/클럽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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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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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마이클 오언/클럽 경력#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마이클 오언/클럽 경력#|]][[마이클 오언/클럽 경력#|]]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국가대표 경력

오언은 어렸을 때부터 특출난 수준이었다. 이미 U-17, U-19 등에서의 활약이 워낙 좋았기에 스티븐 제라드보다도 이른 나이에 성인 무대에 데뷔했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오언은 글렌 호들이 이끄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 승선해 튀니지와의 1차전에 교체로 출전해 잉글랜드의 FIFA 월드컵 참가 최연소 출전 선수가 되었다.

루마니아와의 경기에서 오언은 또다시 교체로 출장했으며 동점골을 넣어 18세 190일로 잉글랜드의 월드컵 최연소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다.[7] 하지만 팀은 2:1로 패해 빛이 바랬다. 루마니아전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오언은 잉글랜드가 콜롬비아와의 조별 리그 최종전을 치를 때 선발로 출전했다. 잉글랜드는 경기에서 승리했고, 오언은 아르헨티나와의 16강전에도 선발로 나섰다.

아르헨티나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6분 선제골로 앞서나간 와중에 오언은 페널티 구역에서 로베르토 아얄라에 걸려넘어졌고,[8] 앨런 시어러페널티킥 키커로 나서서 동점골을 기록했다. 16분, 오언은 개인기로 전진 쇄도해 역전골까지 성공시키며[9] 잉글랜드를 하드 캐리했다. 물론 잉글랜드는 연장 접전 끝에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패해 대회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오언은 역전골의 임팩트로 원더 보이라는 별명까지 얻었고, 세상은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의 뒤를 이은 축구천재의 등장이라고 들썩였다. 또한 이 골로 오언은 축구팬들에게 본인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오언은 UEFA 유로 2000 예선전 초반에 잉글랜드의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그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잉글랜드는 예선전 기간 동안 부진했고, 호들이 지휘봉을 내려놓고 케빈 키건이 감독이 되었다. 1999년 9월 4일, 오언은 6-0으로 이긴 룩셈부르크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웸블리 첫 골을 기록했다. 대회 본선에서 오언은 조별 리그 세 경기에 모두 출전했지만 루마니아를 상대로 한 골을 넣는데 그쳤으며[10] 잉글랜드는 조별 리그에서 일찍 떨어졌다.[11]

앨런 시어러가 은퇴하고, 스벤예란 에릭손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오언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주 공격수로 발돋움했다. 그는 뮌헨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열린 독일과의 2002년 한일 월드컵 예선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것을 포함해 6골을 넣었고, 잉글랜드는 예선전에서 조 1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2002년 4월, 그는 파라과이와의 친선전에서 부상으로 빠진 주장 데이비드 베컴을 대신해 잉글랜드의 주장 완장을 찼다. 오언은 1963년의 바비 무어 이래 최연소 주장이었고, 이후에는 베컴이 부재할 경우 주장을 찰 부주장으로 정식 활약했다. 제주도 에서 열린 대한민국 경기서 선제골로 앞서 갔으나 박지성의 헤더 동점골로 1:1로 무승부에 만족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에서 오언은 조별 리그에서 무득점으로 침묵했다. 스웨덴과 첫경기 캠벨 헤더 선제골로 앞서가더니 알렉산드르손의 동점골로 비겼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에게 걸려 넘어지는 할리우드 액션을 보여서 페널티 킥을 유도했고 베컴페널티 킥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했다.[12] 나이지리아 마지막 경기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스웨덴 잉글랜드 사이좋게 1승2무로 기록했으나 다득점으로 스웨덴 1위 잉글랜드가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오언은 덴마크와의 16강전에서 기어이 첫 골을 넣었으며,[13] 브라질과의 8강전에서 잉글랜드의 선제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했지만 [14] 본인의 실력을 다시금 입증했다.

이후 UEFA 유로 2004 예선전에서 5골을 기록했지만 대회 본선에서 오언은 조별 리그에서 또다시 골을 신고하지 못했다. 그리고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3분만에 골을 기록해 잉글랜드 최초로 4번의 주요 대회 본선에서 골을 넣은 선수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승부차기에서 패해 탈락했다.

오언은 2006년 독일 월드컵 예선전에서 5골을 넣었다. 2005년 5월 자이언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콜롬비아와의 친선경기에서 국가대표팀 경기 두 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2005년 11월, 오언은 숙적 아르헨티나와 치른 친선경기에서 막판에 2골을 추가해 잉글랜드에게 3-2 승리를 선사했다. 2006년 5월 25일, 오언은 벨라루스와의 친선경기에서 경기를 치러 2006년 독일 월드컵과 현장 복귀를 앞두고 몸상태 점검을 했다. 그는 이 경기에서 주장을 맡아 61분을 뛴 후 교체되어 나갔다.

오언은 2006년 독일 월드컵 파라과이트리니다드 토바고와의 1, 2차전 경기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선발로 출전했지만,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개인 80번째 출전 경기이자 스웨덴과의 조별 리그 최종전에 출전한 오언은 전반 1분경 오른쪽 무릎이 틀어지는 중상으로 들것에 실려 경기장을 나갔다. 6월 21일에 진행한 부상 진단을 통해 오언 무릎의 전방 십자 인대가 파열된 것으로 밝혀졌고, 조기 귀가 조치가 내려져 대회에 더 이상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 경기가 오언이 뛴 메이저 대회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이후 오언은 알바니아와의 경기에 복귀한 후, 신축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릴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와 에스토니아와의 UEFA 유로 2008 예선전을 앞두고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 복귀했고 “저는 예리해진 것 같고, 기회를 잡았을 때 문전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라고 감정을 드러냈다. 오언은 두 경기에 모두 출전해 에스토니아전에서 득점을 올렸고, 게리 리네커가 종전에 세웠던 잉글랜드의 역대 최다 공식대회 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2007년 9월 12일, 오언은 3-0으로 이긴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2골을 추가해 구 웸블리 경기장과 신 웸블리 경기장에서 열린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모두 득점을 올린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잉글랜드가 유로 2008 본선진출에 실패하면서 스티브 맥클라렌 감독이 경질되었고 파비오 카펠로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오언은 파비오 카펠로 부임 후 2008년 3월의 프랑스와 치른 친선경기에 한 경기에서 교체로 출전하는데 그쳤고 더이상 삼사자 군단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2009년 3월, 오언은 자신이 자주 부상을 당하는 이유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의 부상 때문이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부상에서 재활하는 와중에 조급히 현장에 뛰어들지 말았어야 했었다고 인정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 시절 플레이 스타일은 스피드스터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주력부터가 최고 수준이며 볼을 가지고 움직일 때 쓸데없는 움직임이나 리스크 없이 효율적으로 볼을 운반하기 때문에 현란한 발동작 없이도 수비수 한둘쯤은 무리없이 제치고[15],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침착하게 슈팅해 강한 킥력 없이도 최고의 골 결정력을 보여줬다. 위치 선정이 뛰어나서 작은 키로도 헤더골을 많이 넣었다. 오언 하면 치달을 많이 떠올리지만 짧고 간결한 터치, 그리고 이어지는 후속동작의 테크닉도 좋았고 순간적인 센스도 뛰어난 그냥 기본기 자체가 탄탄한 타입이었다.

그러나 오언은 잦은 부상으로 악명이 높았고[16] 그 때문에 2006년 월드컵에서 당한 십자인대 부상 이후 본인의 장기이던 속도를 잃어버렸고 잦은 부상의 여파로 30대를 넘어서자 급격한 기량 저하를 보이고 만다.[17]

은퇴하기 전 마지막 약 6년 동안은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머리에서는 '지금 스프린트를 해서 공간 침투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또 동시에 본인의 몸상태를 잘 알기 때문에 머리의 다른 한쪽에서는 뛰지 말라고 명령을 했다고... 결국 이처럼 머리 속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면서도 부상 위험 때문에 그러한 플레이를 하지 못하여[18] 점점 폼이 떨어졌고 나중에는 뛰어들어가면 되는 포지션 자체를 안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개인 기록

5.4. 출전 기록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6/97 리버풀 FC 프리미어 리그 2 1 0 0 0 0 0 0
1997/98 리버풀 FC 프리미어 리그 36 18 0 0 4 4 4 1
1998/99 리버풀 FC 프리미어 리그 30 18 2 2 2 1 6 2
1999/00 리버풀 FC 프리미어 리그 27 11 1 0 2 1 0 0
2000/01 리버풀 FC 프리미어 리그 28 16 5 3 2 1 11 4
2001/02 리버풀 FC 프리미어 리그 29 19 2 2 0 0 10 5
2002/03 리버풀 FC 프리미어 리그 35 19 2 0 4 2 12 7
2003/04 리버풀 FC 프리미어 리그 29 16 3 1 0 0 6 2
2004/05 레알 마드리드 라리가 36 13 4 2 - - 5 1
2005/06 뉴캐슬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11 7 0 0 0 0 0 0
2006/07 뉴캐슬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3 0 0 0 0 0 0 0
2007/08 뉴캐슬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29 11 3 1 1 1 0 0
2008/09 뉴캐슬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28 8 2 0 2 2 0 0
2009/1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19 3 1 0 4 2 6 4
2010/1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11 2 2 1 1 2 2 0
2011/1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1 0 0 0 2 3 1 0
2012/13 스토크 시티 프리미어 리그 8 1 1 0 0 0 - -

[A] 진한 부분은 리그 최고 득점 기록이다.

6. 논란

6.1. 할리우드 액션

1998년2002년아르헨티나 수비진을 상대로 시뮬레이션 액션을 해서 페널티킥을 얻어내었다. 특히 2002년 월드컵에는 아르헨티나에 패배를 안겨주며 아르헨티나의 조별 리그 탈락에 크게 일조했다. 1998년에는 로베르토 아얄라를 상대로 페널티 킥을 얻어내었고, 2002년 월드컵에서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에게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부당하게 페널티 킥을 얻는 바람에 프란츠 베켄바워에게 비난 받았다. 2002년의 행동은 대표적인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꼽혀서 KFA 홈페이지의 경기규칙강좌에서 대표적인 시뮬레이션 액션 사례로 사진이 실려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후 오언은 1998년과 2002년의 시뮬레이션 액션을 모두 스스로 인정했다.

사실, 마이클 오언의 페널티 킥이 잘못 되었다면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가 따지려다가 말았고, 다른 아르헨티나 선수들도 항의를 하지 않았다. 오언의 연기가 워낙 좋기도 했지만, 당시의 심판이 명심판으로 유명한 피에를루이지 콜리나였기 때문에 콜리나 심판이라면 제대로 봤겠지? 하고 믿은 선수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또 이 당시 VAR만 있었어도 시뮬레이션 액션이 잡힐 수도 있겠지? 라는 이야기도 나왔을 수도 있었다.

6.2. 대한민국의 개고기 문화 반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대한민국개고기 문화에 반대한다며 오언은 잉글랜드 대표팀과 소속팀 리버풀의 동료인 에밀 헤스키, 제이미 레드냅이 한국의 개고기 문화에 대한 반대와 압력을 넣는 서명에 참여했고, 이어서 프랑스 대표팀이자 첼시 FC 소속의 에마뉘엘 프티도 이 서명에 동참했다. 당시 기사[20]

6.3. 방송인 성희롱

영국 축구선수중에 사생활이 막장인 선수가 많지만, 오언은 결혼 후 별다른 스캔들이나 추문이 없이 조강지처와 4자녀를 두는 등, 모범적인 가정을 꾸려왔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2021년 6월, 방송 출연중 알게 된 리얼리티쇼 여성 진행자 레베카 제인에게 계속 누드사진을 요구하는 문자를 보냈다고 보도되어 # 망신을 당했다.

7. 여담

7.1. 가족

아버지 테리 오언은 1949년생 축구선수였고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였다. 1966년 에버튼 FC에서 축구를 시작해 19년동안 저니맨 생활을 했다. 형제사항으로는 4명의 형제자매가 있다.

10대 시절부터 친구였던 루이스 본셜과 성인이 된 후 연인으로 발전해 오래 연애하고 2005년에 결혼했다. 자녀로는 2003년생인 젬마 , 2006년생 아들 제임스 , 2007년생 에밀리 , 2010년생 제시카가 있다.

이중 큰딸인 젬마는 18세에 자신의 수영복 브랜드를 런칭했고 직접 모델 역할을 하면서 운영하고 있다. 2022년 5월에는 누군가가 그녀를 다른 비키니모델과 헷갈려서 불륜이라는 가짜뉴스가 나기도 했다. 젬마는 러브 아일랜드에 출연하여 큰 화제가 되었는데, 그는 월스트리트 저널와의 인터뷰에서 딸의 방송을 보기에 부끄럽긴 하다고 밝혔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19금 예능 프로그램이다. #

7.2. 외모

사진에서 보이듯 심각한 머리스타일을 고수하는데 그걸 청순함으로 커버해버리는 꽃미남 축구선수였으나, 시대를 지날수록 심각한 머리스타일이 발목을 잡아 아저씨가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중년미는 보여주는 중이다.

8. 오언에 대한 헌사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축구선수가 누구였냐고요? 마이클 오언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어렸을 때 오언은 최고의 선수였거든요.”
케빈 더 브라위너
“어렸을 때 오언 때문에 리버풀을 좋아했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할 때도 오언처럼 하고자 했다.“
세르히오 아구에로

9. 같이 보기

1 제임스 · 2 G. 네빌 · 3 A. 콜 · 4 제라드 · 5 테리 · 6 캠벨 · 7 베컴 · 8 스콜스 · 9 루니
10 오언 · 11 램파드 · 12 브리지 · 13 로빈슨 · 14 P. 네빌 · 15 · 16 캐러거 · 17 버트
18 하그리브스 · 19 J. 콜 · 20 다이어 · 21 헤스키 · 22 워커 · 23 바셀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벤예란 에릭손

1 로빈슨 · 2 G. 네빌 · 3 A. 콜 · 4 제라드 · 5 퍼디난드 · 6 테리 · 7 베컴 · 8 램파드 · 9 루니
10 오언 · 11 J. 콜 · 12 캠벨 · 13 제임스 · 14 브리지 · 15 캐러거 · 16 하그리브스 · 17 제나스
18 캐릭 · 19 레넌 · 20 다우닝 · 21 피터 크라우치 · 22 카슨 · 23 월콧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벤예란 에릭손


[1] /ˈmaɪkᵊl dʒeɪmz ˈoʊᵻn/[2] 프리미어 리그 공식 프로필[3]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6위.[4] 리버풀 기준으로는 오언의 수상 이후 2005년 스티븐 제라드, 2008년 페르난도 토레스가 포디움에 들었지만 모두 3위에 그치고, 2019년 버질 반 다이크와 2022년 사디오 마네가 포디움에 들었지만 모두 2위에 그쳤다. 잉글랜드 국적 기준으로는 오언의 수상 이후 2005년 프랭크 램파드스티븐 제라드가 포디움에 들었지만 각각 2위와 3위에 그쳤다.[5] 어린 시절 리버풀에서의 짦은 전성기를 끝으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때부터 내리막이 시작되었고, 이후 뉴캐슬, 맨유, 스토크 시티 등을 떠돌고, 그 사이 잉글랜드 국대 커리어도 하향세를 겪게 되면서 그저 그런 커리어로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현역 때도 문제가 있었지만 은퇴 후에도 잇따른 실언으로 빈축을 사는 등 스스로의 행실 문제가 좀 있다.[6] 오언과 함께 발롱도르 수상자 중 가장 초라한 말년을 보냈다고 평가받는 인물로 파비오 칸나바로가 있다. 게다가 칸나바로는 FIFA 올해의 선수 수상자 중에서도 가장 초라한 말년을 보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유벤투스 1기와 2006 독일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으로 2006년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를 수비수로서 모두 수상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에는 새로운 리그에서의 적응 실패와 30대 중반에 들어서며 신체 능력 저하로 인해 라리가에서 가장 쉽게 돌파당하는 수비수로 선정되어 버리면서 내리막길이 시작되어 버렸다. 이후 유벤투스에 다시 복귀하지만 당시 나이가 만 36세로 이미 노쇠화 되어버린 상태라 수비진에서 구멍으로 전락해버리며 결국 소속팀의 암흑기를 불러와버렸고, 결국 2009-10 시즌 리그 7위를 차지해 버리며 칠벤투스화에 크게 일조하고 만다. 또한 이탈리아 국대 커리어도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주전 센터백으로 참가했지만 이탈리아의 광탈에 일조하고 만다.[7] 2022년 현재도 오언의 득점 기록은 역대 월드컵 최연소 득점자 부문 4위이다. 오언의 앞에는 펠레와 마누엘 로사스, 가비가 있다.[8] 사실 할리우드 액션이었다.[9] 2013년에 이 골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고의 골 3위에 올랐다.[10] 전반 막판에 골키퍼까지 따돌리고 2:1을 만드는 추가골을 넣었다. 그리고 후반전에 두 골을 먹으며 팀은 2:3으로 패배했다.[11] 첫 경기에서 포르투갈에게 2대 0으로 이기다가 2:3으로 역전패를 당한 것이 패착이었다. 독일을 1:0으로 이기긴했지만 조별리그를 2위로라도 통과하려면 루마니아에 최소한 비겨야했다.[12] 이 패배가 빌미가 되어 아르헨티나는 사기가 꺾였고, 결국 스웨덴을 밀어붙였음에도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조 3위로 처진다.[13] 전반에만 퍼디난드 오언 해스키 골폭죽으로 3:0 승리[14] 다만, 지금도 회자되는 히바우두의 동점골과 호나우지뉴의 프리킥 결승골에 팀은 1:2로 역전패.[15] 가끔은 페인트 동작도 잘 쓴다[16] 많은 사람들이 오언이 너무 어릴 때부터 많은 경기를 뛰었기 때문에 유리몸이 되었다고 얘기하는데 오언 본인은 그것도 틀린 얘기는 아니겠지만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도 부상을 달고 산 것(축구선수였다고 함)을 보면 자신은 유전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부상이 많았던 것 같다고 설명한다. 또한 스피드를 주무기로 삼는 플레이 스타일 상 부상을 워낙 당하기 쉬웠던 면도 한몫했다. 그래서 스피드가 죽어 버리니 다른 능력도 죽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비슷한 케이스로는 안드리 셰브첸코, 카카, 페르난도 토레스 등이 있다.[17] 비슷한 시기 1979년생 동년배 선수들인 디에고 밀리토디에고 포를란이 매우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것을 생각하면 당시 오언의 급격한 기량 저하로 인한 몰락은 상대적으로 큰 아쉬움을 남겼다. 밀리토는 레알 사라고사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9/10 시즌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이적하여 세리에 A 클럽 사상 최초의 트레블에 크게 일조하고, 밀리토 개인으로서도 세리에 A 득점 2위를 포함해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상, 올해의 공격수상,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 2010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등 각종 개인상을 휩쓸었다. 마찬가지로 포를란도 2007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적 이후 2009-10 시즌 소속팀의 유로파 리그 우승과 조국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2010 남아공 월드컵 4위, 코파 아메리카 2011 우승에 크게 일조하고, 포를란 개인으로서도 2008-09 시즌 생애 두 번째 라리가 득점왕과 유러피언 골든슈 수상, 2009-10 시즌 유로파 리그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회 골든볼, 베스트팀, 토너먼트의 골 선정, 코파 아메리카 2011 대회 베스트팀 선정, 2009년, 2010년 우루과의 올해의 축구 선수 등을 수상하였다. 반면 오언은 급격한 몰락으로 2009년과 2010년 동시기 이 두 선수와 비교했을 때 활약상이 적은 편이었다.[18] 달리는게 너무나 무서웠다고 한다.[A] [20] 참고로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는 이에 대해서 한국의 전통문화일 뿐이라며 개고기 문화를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영국은 여우사냥을 왜 그만두지 않냐고 비꼬았다. 그리고 당시 FIFA 회장인 제프 블라터가 반대파인 정몽준을 깎아내리기 위해 개고기를 가지고 트집을 잡도록 유도했다는 설도 있다.[21] 참고로 이 때 리버풀 유스는 스티븐 제라드, 제이미 캐러거 등을 포함해 우수한 선수를 한꺼번에 대거 배출해서 황금세대라고 불린다.[22] 맨유의 셔츠는 절대 걸어놓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루니의 셔츠도 국가대표팀 셔츠로 장식되어있다.제라드 본인도 맨유와 관련된 것은 자기 집에 들이지 않는다고 인터뷰했다.[23] 이와 별개로 오언이 맨유로 간 것은 정말 맘에 들어하지 않는 듯 하다. 제라드의 아스톤 빌라 감독 부임 이후 첫 인터뷰 당시에 오언이 안필드의 분위기는 압도적이며 자기는 안필드 원정을 가는 것이 너무 싫었다고 하자 제라드가 나도 맨유에서 뛰었으면 안필드 원정 가는게 싫었을거라고 받아쳤다.[24] 전성기가 지났다고 평가받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에도 유니폼 판매량 순위는 항상 상위에 랭크했었다.[25] 여담으로 퍼거슨 감독은 오언이 리버풀 유스일 때부터 매우 높이 평가했는데 아직 어릴 때부터 계속 출장하는 것을 보고 성장이 완료되지 않은 선수를 혹사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고 한다. 사실 어린 나이에 혹사를 당하게 되면 부상이 빈발하는 유리몸이 되기 쉽다.[26] "골을 넣는 선수가 필요해요. 그래야 이기죠" "골 포스트를 넘어갔다면 골이 됐을텐데요" 이런걸 말하니 까인다.[27] 다만 유리몸 부분은 피지컬이 절망적으로 낮게 책정되어서 없어도 부상을 잘 당한다.[28] 아이러니 하게도 이 시즌 맨유는 후반기에 반등하면서 리그 3위로 챔스 진출권을 따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