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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6-25 10:52:26

동수역

동수역
파일:Incheonmetro1_icon.svg
검단호수공원 방면
부 평
← 0.9 ㎞
인천 1호선
(I121)

부평삼거리
1.1 ㎞ →
역명 표기
인천 1호선 동수
Dongsu
東樹 / 东树 / [ruby(東樹, ruby=トンス)]
주소
인천광역시 부평구 경인로 지하877 (부평동 686)
운영 기관
인천 1호선 인천교통공사
개업일
인천 1호선 1999년 10월 6일
역사 구조
지하 4층 (심도: 32.4m)
승강장 구조
복선 상대식 승강장 (횡단 가능[1])


1. 개요2. 역 정보3. 역 주변 정보
3.1. 출구 정보
4. 일평균 이용객5. 승강장6. 기타7. 둘러보기

1. 개요

2. 역 정보

파일:동수역.jpg
인천 1호선 동수역 대합실

언덕에 역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승강장이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2]

2014년 승강장 스크린도어 설치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이 역을 포함한 인천 도시철도의 모든역에 스크린도어 설치가 2014년 9월에 완료되었다.[3]

낸시 김의 안내방송 발음 덕분에 통수역으로 발음되었다고 한다. 귀를 기울여 듣지 않아도 This stop is Tongsu. 라고 들린다.

역명은 이 일대의 옛 지명에서 유래했다. 과거 이 일대는 고유어로 '동소정이, 동수정이, 동수재이' 등으로 불렀으며, 조선 시대에 이를 한자로 음차표기해 '동소정(東所井)'이라 불렀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이 일대의 행정구역이 부평도호부 동소정면(東所井面)[4]이기도 했다.

이곳의 비공식 지명 삼릉을 따서 처음에는 가칭 삼릉역으로 부르기도 했다. 삼릉은 다름 아닌 미쓰비시(三菱)의 한자 음역.

일제강점기부평역에서 인천역 방향으로 부평공원과 군부대, 쉐보레 공장을 포함한 땅에 히로나카 상공(弘中商工)의 제강공장과 인천육군조병창이 있었는데, 부평역 주변에는 조선인들과 일본인 종사자들을 위한 기숙사가 만들어졌고, 동수역 부근에 홍중사택이라고 이름이 붙은 조선인 종사자들을 위한 기숙사라고 이름붙은 매우 좁은 집으로 구성된 주택단지가 어마어마하게 있었는데[5], 해방 이전까지는 부평역 남부에서 안남로까지 전부 기숙사였을 정도로 매우 컸다.[6]

그리고 1942년에 미쓰비시가 히로나카의 제강공장을 인수하면서 주택단지 이름도 삼릉사택이라고 바꿨고, 이것이 해방 후에도 삼릉 줄사택 단지라고 전해져서 지명이 되었는데, 현재도 부평에 오래 거주한 분들은 동수역을 중심으로 부평2동을 '삼릉'이라 부를 정도이다. 그러나 삼릉이라는 지명은 일본식 지명에 전범기업 이름이라 큰 반발이 있었고, 이에 전근대 지명을 뒤져내 동수역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7]

2025년 9월 15일부터 12월 15일까지 노후 화장실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

3. 역 주변 정보

근처에는 주택가 위주이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을 갈 경우에는 2번 출구로 나와서 인천동수중학교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된다. 부평역 1번 출구가 병원과 더 가깝지만 가는 길에 사거리 횡단보도가 있고, 부평역 인천 1호선 승강장이 깊숙한 곳에 있어 1번 출구로 나오기가 번거롭기 때문에 동수역에서 가는 것이 더 편리하다.

동수역 북측 3번 출구 이설공사를 진행하여, 2024년 12월 완공된 e편한세상 부평역 센트럴파크와 동수역이 지하 통로로 직결된다. 또한, 2024년 11월 1, 2번 출구 방향으로 부평역 해링턴플레이스아파트가 완공되었다.

e편한세상 부평역 센트럴파크와 부평역 해링턴플레이스아파트 입주로 동수역의 이용 인원 증가에 긍정적 영향이 기대된다. 경인선을 이용할 경우에는 부평역까지 오래 걸어가야 해서 인천 시내를 오갈 때는 가까운 동수역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3.1. 출구 정보

파일:Incheonmetro1_icon.svg 동수역 출구 정보
1부평6동행정복지센터
부평남부체육센터
2인천성동학교
인천성모병원
3희망공원
부평사거리
4부평2동행정복지센터
인천부평남초등학교
인천동수중학교

4. 일평균 이용객

||<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759cce><bgcolor=#759cce> 연도 || 파일:Incheonmetro1_icon.svg ||<bgcolor=#759cce> 비고 ||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folding [ 2000년~2009년 ]
{{{#!wiki style="margin-top: -5px; margin-bottom: -11px"
2000년 4,841명 비고
2001년 5,368명
2002년 5,571명
2003년 7,006명
2004년 6,728명
2005년 6,529명
2006년 7,173명
2007년 6,495명
2008년 6,441명
2009년 6,334명 }}}}}}}}}
2010년 6,917명
2011년 7,312명
2012년 7,532명
2013년 8,359명
2014년 8,427명
2015년 8,206명
2016년 8,463명
2017년 8,593명
2018년 8,443명
2019년 8,392명
2020년 6,089명
2021년 5,940명
2022년 6,581명
2023년 7,183명
2024년 7,187명
2025년 8,664명
출처
인천교통공사 사전정보 공개자료실

인천 1호선 30개 역 중 24위, 하위권을 차지한다. 사실 이 역의 역세권은 지극히 평범한 주택가로서, 경인로 위에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승객을 끌어올만한 어떤 요소도 없다. 게다가 역의 남쪽은 산비탈로 경인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바로 미개발지가 나오고, 남서쪽으로 400m 거리에 희망공원이라는 고개길이 있다. 게다가 북동쪽으로 불과 600m 떨어진 위치에 지역의 대표역인 경인선 부평역이 있어서 역세권이 상당 부분 겹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하루 평균 8천 명의 이용객이라면 어느 정도 선방한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유가 하락 등의 영향을 맞은 2010년대 중반에도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인다는 점은 고무적인 결과이다. 실제로 초대형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2025년에는 역대 최대 이용객을 기록하기도 했다. 서울을 오갈 때에는 부평역이 편하지만, 인천 시내를 오갈 때에는 이 역이 압도적으로 수월하기에, 향후 1만 명 돌파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5. 승강장

파일:2025년 동수역 승강장.png
인천 1호선 승강장
파일:2025년 동수역 역명판.png
인천 1호선 역명판
파일:동수역.png
역 안내도

승강장은 2면 2선의 상대식 승강장을 구성된 지하역으로,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부평
부평삼거리
파일:Incheonmetro1_icon.svg 인천1호선 부평·작전·계양·검단호수공원 방면
인천시청·인천터미널·송도달빛축제공원 방면

6. 기타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2화에 약 2분 30초간 등장했다. 박수하장혜성의 옥탑방 근처 가로등을 모두 고치고 들른 지하철 역이 동수역이다. 이후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하려는 고성빈박수하가 구한다. 박수하가 서 있던 승강장은 국제업무지구 방면, 고성빈이 서 있던 승강장은 맞은편인 계양 방면이다.

한때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인기를 끌던 시절에는 대표 꼭지였던 혼자가 아니야의 보이지 않는 가상인물 '동수'와 엮는 사례도 있었다. 실제로 이용객 수가 많지 않은 승차량 중하위권 지하철역인지라 해당 꼭지의 보이지 않는 동수라는 캐릭터처럼 '존재감이 없는' 역으로 엮이기도 했다.

송도달빛축제공원 방향 선로에 회차선이 설치되어 있다.

7. 둘러보기

파일:Incheonmetro1_icon.svg 인천 도시철도 1호선 역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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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노선의 역 둘러보기

[1] 엘리베이터로는 횡단할 수 없다.[2] 7호선 석남역이 개통 이전에는 인천광역시에서 가장 깊은 지하철역이었다.[3] 「인천도시공사, 인천지하철 29개 전체 역에 스크린도어 설치 완료」, 2014-08-19, 뉴스타운[4] 동소정면은 이 역이 위치한 부평동(대정리)을 비롯하여 부개동(마분리), 일신동(항동리), 구산동 일대를 관할했다.[5] 들어가보면 매우 좁은데, 그런 방 안에 1~2명이 아닌 최대 8명을 몰아 넣었다.[6] 일본인들의 주택들은 북쪽에 있는 백마장을 중심으로 형성됐다.[7] 참고로 부평6동(부평역 이남)의 이전 명칭이 '부평2동 동수동'이었다. 1977년 인천시가 행정동명을 대대적으로 손보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