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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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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gorius Anicius)
존호 대 그레고리오
(Gregorius Magnus)
출생 540년
파일:라바룸.svg 동로마 제국 로마
사망 604년 3월 12일 (향년 63~64세)
파일:라바룸.svg 동로마 제국 로마
재위기간 제64대 교황
590년 9월 3일 ~ 604년 3월 12일
(13년 194일)
축일 9월 3일[1]
3월 12일[2]

1. 개요2. 생애3. 기타

[clearfix]

1. 개요

하느님의 집정관(Consul Dei)
그레고리오의 묘비[3]

제64대 교황. 레오 1세에 이어 대교황[4]이란 칭호를 받은 두 번째 교황으로, 서방 교회 4대 교부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면서 중세 교황직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 교사들의 수호성인으로 지정되었다. 축일은 9월 3일.

2. 생애

부유한 귀족 고르디아누스의 아들로 태어난 그레고리오는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고, 랑고바르드족의 이탈리아 침략이 로마를 위협하고 있을 당시에는 로마의 장관이었다. 수도생활을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그는 574년에 로마와 시칠리아수도원을 세우고 35세 무렵에 수도자가 되었다. 579년부터 585년까지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교황 대사로 활약하다가, 5년 후에 자기 수도원으로 돌아온 뒤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수사(修士)가 교황으로 선출됨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교회법령을 정비하고 무능한 성직자들을 해임시켰으며, 막대한 경비를 들여 자선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으로는 이런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교회와 주교들을 기반으로 한 행정망을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는 중세의 교황들이 어지간한 군주 이상으로 세속적 권력을 누릴 수 있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그는 지혜롭게 로마 교회 재산을 관리했고, 랑고바르드 왕국으로부터 포로들을 석방시켰으며, 부당한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기근의 희생자들을 구호하였다. 593년 그는 랑고바르드족 침략군을 설득하여 로마를 지켜냄으로써 사람들로부터 평화의 수호자로 존경을 받았다.

그레고리오의 학덕은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주교의 직책과 의무', '욥기 주해', '대화집'을 비롯하여 서한 800여 통 속에 담긴 그의 사상은 서방교회의 공식 예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유럽의 역사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그는 잉글랜드의 선교사업을 진척시켰고[5], 교황권이 교회의 최고 권위임을 재확립하였으며, 교황을 일컫는 칭호인 "Servus servorum Dei(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란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위대한 설교가였다. 로마 전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그레고리오 성가[6]의 편집자로 추앙받는다. 그가 교황이었을 때 제정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 스스로 매우 겸손한 태도를 취했다. 자신이 학문이 깊지 못하고, 라틴어 문법에 밝지 못하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또한 베네딕토회를 면속시켜 교황의 권위하에 두었다.

한편, 그레고리오는 601년 앵글로색슨족에게 선교사로 보낸 주교 아우구스티노와 멜리토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교방법을 제시하는데, "이교 신전은 살린 채 단지 우상들만 치우고 난 후, 성당으로 개조하라."라고 했다. 문화적 우월주의로 야만족에게 그리스도교를 그냥 주입시키는 식이 아니라, 가능한 한 그리스도교와 그들의 기존 종교관습의 연결점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그리스도교의 정신과 내용으로 승화시키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이민족의 문화를 존중하는 선교의 이러한 토착화 방식은, 지역민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한 것이다.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걸친 랑고바르드족의 침입으로 벌어진 동로마 제국의 전쟁으로 로마를 포함한 이탈리아가 황폐화되었고, 로마 원로원 역시 이 시기 소멸했다. 이에 그레고리오는 원로원은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느냐고 한탄했다[7].

604년 3월 12일 선종했다. 사후 시성됐고 축일은 선종 날짜인 3월 12일로 지정됐으나 사순 시기였기 때문에 503년 그레고리오 1세가 주교로 서품받은 날인 9월 3일로 변경됐다.

3. 기타

그레고리오의 부제 베드로는, 그레고리오가 책을 쓸 때 성령비둘기 모습으로 그의 머리 위에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레고리오의 성화에 귀밑에 흰 비둘기가 속삭이는 모양을 그리는 것도 이에 기인한 것이다.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한 일화도 여기서 나왔다.

영국의 한 역사가는 '중세 시대에 교황이 없었다면 중세의 혼란 상태, 불법, 혼잡이 어떠했을지 생각조차 불가능하며, 중세 시대 교황 중의 진정한 교황은 그레고리오 대교황뿐'이라고 서술했다. 실제로 혼란한 중세시대 유럽 치안에서 그나마의 자정 활동을 가톨릭 교회가 수행하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다.
[1] 가톨릭 축일.[2] 정교회, 동방 가톨릭, 성공회, 루터교회 축일.[3] "로마의 베드로 대성전에 있는 대 그레고리우스 묘비에 새겨 있는 이 비문은 그가 사회와 교회에서 맡은 이중 역할을 가장 함축적으로 묘사한다."(H. R. 드롭너, 《교부학》, 하성수 옮김, 641쪽)[4] 사람에 따라 대교황을 대종(大宗)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교황을 교종(敎宗)이라고도 하므로, 대교종을 대종으로 줄인 것.[5] 교황이 되기 전 어느 날 로마 광장을 거닐다가 시장에 노예로 나온 금발에 푸른 눈의 앵글로색슨 출신 청년 노예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6] 이 성가는 새의 노래를 듣고 그걸 그대로 불러서 한 줄씩 만들었다는 전설 같은 야사가 전한다.[7] 기록상 남은 로마 원로원의 최종적인 활동은 603년 포카스에게 즉위를 축하하는 서신을 보내고, 비슷한 시기에 포로 로마노에 그에게 아첨하는 기둥을 세운 것이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