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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1988)/플레이 스타일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김현수(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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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플레이 스타일
2.1. 타격2.2. 수비2.3. 주루2.4. 기타

1. 개요

야구선수 김현수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 정리한 문서.

2. 플레이 스타일

2.1. 타격

파일:기멘수의 장타.gif
파일:어린이날 투런 현수.gif
특유의 호쾌한 한 손을 놓는 스윙[1] 홈런[2]
KBO 리그 최고의 안타 제조기 중 한명으로 주전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초창기 3년 간은 우투좌타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장타율, kbo 최고 수준의 선구안, 좌타임에도 불구하고 낮지 않은 좌완 상대 타율 등 타자로서 정말로 약점이 없는 선수였다. 역대 최고의 교타자인 장효조, 양준혁도 김현수 나이 때는 그 정도 활약을 하지 못했다.[3] 2년 연속 .350 이상의 타율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이다. 2010 시즌의 부진[4]으로 3년 연속에는 실패. 그 이후 홍성흔이 2009~2010, 이대호가 2010~2011, 양의지가 2018~2019 2년 연속 .350 이상을 기록했다. 현재 통산 타점 8위에 랭크되어 있기도 하다.(1212타점)

2008, 2009시즌의 폭발적인 퍼포먼스에 비해 정체되었던 시기가 있었던 게 아쉽지만 그래도 2015년까지 계속 3할 이상의 타율은 보장하는 리그 정상급 좌타 교타자 중 한 명이었다.[5][6] 국내에서 가장 넓은 잠실야구장에서 2020년까지 합쳐 20홈런 5시즌을 기록했으며, 컨택이 하락했다고 여겨진 2011시즌 이후로도 두자릿수 홈런은 무리없이 칠 정도의 장타력도 보유하였다.

매 시즌 시작할 때마다 장타자로 변신하겠다고 다짐하는 인터뷰를 하고, 실제로 슬러거에 가까운 스윙을 때때로 보여주지만 국내에서 가장 넓은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으며, 공을 끝까지 보고 치는 교타자에 가까운 성향 탓에 장타자로의 변신이 오히려 타격 밸런스를 망치는 원인이 아니냐는 의견이 다수였다. 장타 욕심 때문에 교타자로서의 메리트가 상당히 상실되었다는 평가도 받았다.[7]

본인의 파워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매년 시즌이 끝나면 장타자 변신을 선언하곤 했는데 정작 다수의 팬들은 기겁했다. 2010년 이후로 김현수의 최고 장점이었던 정교한 타격과 선구안이 동반 하락하였는데, 그 원인이 지나치게 장타를 의식한 스윙에 있다고 보는 의견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장타가 늘어나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만 문제는 시즌 중 롤코를 타는 일이 2010시즌 이후 급격히 늘어나서 시즌 내내 타격폼을 바꾸는 실험이 잦다는 것이다. 당장 시즌 중 김현수의 인터뷰를 보면 "큰 것을 의식하다 타격폼이 무너졌다", "내년 시즌엔 장타를 의식하지 않고 내 타격을 찾겠다"라는 기사가 상당수다. 결과적으로 홈런은 다소 늘어나긴 했지만 4할도 못치는 쓰레기라고 불리던 신인 시절에 보여준 '무결점 타자'로서의 위상은 많이 사라졌다. 2015년 폼을 상당히 회복하고 팀을 우승시키면서 그간의 부진(?)에 대한 아쉬움은 어느 정도 지워졌다.

2015 시즌에는 .326이라는, 김현수라는 이름에 걸린 기대치를 감안하면 그럭저럭인 타율과 두산 소속 좌타자 역대 최다홈런인 28홈런, 팀 프랜차이즈 최다 타점인 121타점을 기록하며 원래의 기대치에 부응했다.[8]

선구안은 커리어 내내 매우 좋은 편이다. 2020년 기준 통산 BB/K가 1을 넘는다.[9] 단 LG로 이적한 후에는 BB%가 상당히 감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에서도 볼삼비는 꾸준히 1을 넘기고 있다.

꾸준한 모습을 보이고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지만 LG 이적 이후에는 약간의 타격 부진과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30대 중반이라는 나이도 무시 못하는 듯. 와이드형으로 팔이 벌어지는 스타일이며 지금도 꾸준히 타격감을 어느정도 이어가고는 있지만 2021년~2022년부터 에이징커브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사실 에이징커브라기보단 슬러거 타입으로 플레이 스타일에 변화를 준 것에 더 가깝다. 실제로 김현수는 2022 시즌 말인 9월과 10월에는 장타를 포기하다시피 했으나 이 시기 타율은 3할을 훌쩍 넘었다. 마음만 먹으면 여전히 신들린 컨택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과 에이징커브를 심하게 타고 있지는 않는다.

좌완을 상대로 약점을 보였었다. 물론 2009 시즌 2할 9푼 7리의 좌완 타율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완 타율 3할 9푼 7리와 비교하면 1할 가량 떨어지고, 특히 리그 최정상급 좌완한테는 쪽도 못쓰는 면모를 보였다. 봉중근은 김현수에게 거의 저승사자 수준...[10] 2012년과 2013년부터는 연신 타격폼을 연구하고 바꾸는 등의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좌상바를 극복한 모습. 그리고 2014년에는 우투 상대 타율 0.296, 좌투 상대 타율 0.374로 완벽하게 좌상바를 극복해냈으나 오히려 우투수 상대로 약한거 아닌가?라는 느낌을 줬다. 그러나 2015년에는 우투 상대 0.328, 좌투 상대 0.329로 균형까지 맞추며 14년이 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해냈다. 그리고 사이드암 선수에게 엄청 약한데 최근 사이드로 던지는 선수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모르는 팬들이 많다. 그러나 2021년부터는 좌완 상대 타율이 0.218을 치며 다시 좌상바 기질이 나타나는 건 물론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11]

2021년부터 3년 연속 타율 3할에 실패하면서 타격 기계라는 과거 명성은 크게 흠집이 났다. 살을 빼고 시프트가 완화된 2024년 조차 3할이 깨지면서 이제는 에이징커브를 극복하기 어려워보인다.

2.2. 수비

좌익수 수비는 초창기에는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했지만[12] 갈수록 타구 판단, 글러브질 등이 좋아졌으며, 2010 시즌 이후 적어도 KBO 리그의 좌익수로는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준수한 수비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펜스 플레이나 타구 판단은 두산 경기를 보면 알 수 있었듯이 KBO 리그 최정상급 이었고 두산 시절 호수비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송구의 경우 강견은 아니지만 대단히 정확한 송구로 2011년에는 좌익수 보살 1위를 찍을 정도. 2009 시즌 후반부터는 팀 사정상 종종 1루수로도 선발 또는 교체 출장하고 있다. 고교야구 때의 주 포지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13년 포스트시즌 1루수로 뛰면서 최악의 활약을 보여주며 비상시 외에는 사실상 봉인 상태였다. 최준석이 이탈한 2014 시즌부터는 1루수로 해당 경기 풀타임을 뛰는 일도 종종 보였다. 그리고 2015 시즌에는 1루수로 출장시간이 조금 증가했으며 수비도 준수해졌다.

그러나 상술한 내용은 메이저리그 진출 이전 두산 시절 한정이며 국내 유턴 및 LG 입단 이후 살이 많이 찌고 스피드와 민첩성이 현저히 떨어지며 수비력이 많이 떨어졌다. 2019 프리미어 12 결승전에서 아쉬운 펜스플레의로 점수를 헌납한 것이 좋은 예. 그 이후에도 리그에서 계속해서 불안한 좌익수 수비와 좁은 수비 범위를 보여줬고, 2023년 WBC 체코전에서는 잡을 수 있는 라이너성 타구를 뒤로 빠뜨리며 2실점을 헌납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민첩성과 수비 범위가 매우 중요한 외야수를 맡기에는 몸이 너무 비대해졌다.

그리고 1루수를 시키면 타격이 약해지기에 안 시키는게 낫다. 2022시즌에는 1루에 채은성, 문보경, 이영빈이 있으니 1루수로 나올 일은 로었으며 실제로 2022시즌 1루수 출장이 없다. 2023 시즌을 앞둔 시범 경기에서도 1루수 테스트를 거쳤으나 둔한 몸으로 눈이 썩는 수비와 실책 퍼레이드를 보여주며 1루수를 맡을 수 없다는 것만 재확인 시켰다. 이제는 지명타자 외에 수비를 하는게 본인에게나 팀에게나 폐가 되는 지경.

2.3. 주루

주루는 평균에서 약간 떨어지는 평범한 수준이다. 두산 시절에는 뜀박질을 장려하는 팀 분위기 덕에 성공률과는 별개로 시도가 많았고, 2015년에는 두 자릿수 도루를 달성했다. 단 LG 이적 후에는 도루 시도가 줄었다. 준족들이 많기 때문.[13] 사실 발 자체는 전력질주를 하면 상당히 가속도가 붙는 편인데, 문제는 빅볼에 강력한 타선을 가진 두산 때도 중심타선이었던 선수가 LG에서 중심타선에 안 서는 게 말이 안되므로[14] 전력질주를 할 상황이 적다. 그래도 필요할 때는 하며, 그 덩치에 두 자릿수 도루를 두 번이나 할 정도면 절대 느린 발은 아니다.

그러나 2021년부턴 햄스트링이 계속 괴롭히는 탓에 적극적인 주루가 줄었고, 몸이 비대해지는 만큼 발 자체도 많이 느려져서 현재는 포수 다음으로 느린 수준이라 사실상 주자가치는 제로라고 보는 것이 맞다.

2.4. 기타

명성이 높은 타자치고는 가을야구에서 못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김현수만 아니었으면 2000년대 두산은 2번은 우승했을 것이다"라고 두산팬들이 한탄하는 것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못했다. 2018 한국시리즈 박건우의 삽질 이전까지 두산 선수 중에서 단일 포스트 시즌 최저 타율을 기록함은 물론이고 아예 SK 전성기의 주역 중 한 명이라는 오명을 받을 정도. 이렇게 가을야구에서 부진한 이유로는 만성 비염 때문에 환절기 컨디션이 폭락해서라는 추측이 많다. 그런데 국가대표에 소집되면 또 잘하는 이상한 커리어를 반복 중이다.[15][16] 실제로 시범경기나 4월 초반 경기는 역시나 비염의 영향인지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간간히 보인다.

2008 시즌부터 KBO 포스트시즌에서 상당히 부진하다. 대표적인 예가 2008년 김쿠바.[17][18] 하지만 2015년 포스트시즌에서는 타율은 낮았지만 중요한 때마다 적시타를 올렸고, 한국시리즈에서는 4할 타격과 호수비를 선보이며 팀 우승에 보탬이 되었다. LG 이후에는 계속 부진하다가도 2022년 가을 때 가을맹구답지않은 맹활약을 했으나 나머지 타자들이 전부 무너진데다가 감독이 이상한 투수 기용을 보여주며 가을야구를 망쳤다.

국제 대회에서는 최강이기 때문에 김현수가 큰 대회에 강한 건지 약한 건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국대에 나가면 사못쓰가 되지만[19] 포스트시즌에선 김쿠바가 되어버리니 축구의 루카스 포돌스키처럼 애국자 모드가 발동되는 건지도 모른다. 다른 이야기로 가을에 부진한 것은 만성비염 때문이라는 카더라도...[20] 운 나쁘게 국제대회가 환절기에 열리더라도 보통 늦가을 - 초봄 때인 경우가 많아 돔구장에서 경기가 치러지는 경우가 다반사라 비염에 의한 문제가 별로 생기지 않는 듯 싶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묘하게 두산과 LG팬들보다는 타 팀 팬들의 평가가 높은 편이다. 두산 팬들은 2008~2009년의 포스를 다시 보여주지 못하다 보니 기대치에 비해 못한다고 여기고, 타 팀 팬들은 성적이 좀 떨어졌더라도 그만한 성적 꾸준히 찍어주는 외야수 구하기가 힘들다 보니 자연스레 평가를 높이 하는 편. 아래 사도스키 리포트에서도 그렇듯, 클래식 스탯에 비해 현장의 평가가 대체적으로 꾸준히 좋은 선수이기도 하다. 김현수는 2012년 로우 커리어 시즌을 보낸 뒤였는데도 사도스키는 WBC 리포트에서 김현수를 이대호 다음 최고의 타자로 꼽았다.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꾸준히 평이 좋은 편. 2015년 이후 대박 FA가 되리라고 주목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던 듯. 2017 시즌 KBO 복귀 이야기가 나올 때도 기본 100억 정도는 깔고 간다는 평가를 받았고 결국 115억 원을 받았다. LG팬들에게도 정규시즌에서는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는데도 9~10월부터 시작해서 포스트시즌만 되면 죽을 쑤니 불만인 경우가 많고, 타 팀 팬들에게는 그래도 김현수만큼 명성높은 타자가 어딨냐고 여기는 것이다. 특히 FA 마지막 해였던 2021년 FA로이드는 커녕 9년 만에 3할 타율 등극에도 실패하였으며, 3년 동안 가을야구 진출해서 개죽을 쑤기만 했다. 팀 내 최고의 타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을만 되면 죽을 쑤니 어두웠던 비밀번호 시절을 지나 이제는 우승에 근접해진 팀이 된 LG가 한끗차이로 미끄러질때마다 팬들에게 가장 욕을 먹는 선수이기도 하다. 물론 LG엔 없어선 안되는 최고의 타자라는것을 팬들도 잘 알지만, LG와의 1차 FA계약이 끝난 시점에서 김현수 나이가 적은 편이 아니고, 바로 전 시즌 성적이 타격기계라고 하기엔 애매하니 꼭 잡겠다고 선언했지만 얼마를 줘야 하나 난감하다는 게 LG 프런트 입장이다. 그래도 LG라는 팀을 바꾸고 팀 분위기를 잘 형성시킨것을 높이 평가하여 다음 계약도 보장금액 4년 90억원을 받으며 대박을 터트렸다. 옵션까지 포함하면 4+2년 115억원이므로 사실상 종신계약이라고 볼 수 있다.

S급 타자 중에 시즌 별 스탯이 특이한 케이스다. 19세에 준주전급 타자로 자리매김한 후 바로 2년차 다음시즌인 20세에 MVP 컨텐더급 성적을 기록했다. 소포모어 징크스란 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닌데 데뷔 2년차에 바로 리그 최상위권 성적을 만들어 내면서, 굉장히 어린 나이에 포텐이 바로 터지게 된다.[21] 심지어 그 다음 시즌에도 변함없는 MVP급 성적을, 아니 오히려 클래식 스탯만을 놓고 봤을때는 더 발전된 성적을 가져오게 된다. 그런데 바로 다음 시즌 한창 성장할 나이인 22세부터 에이징 커브를 맞은 것처럼 스탯이 점점 떨어졌다. 그나마 09~11시즌은 리그 정상급, 혹은 최소 팀에서는 손꼽히는 타격이었지만 12시즌에는 좌익수인걸 감안하면 전혀 뛰어나다고 볼 수 없는 성적이었다. 그리고 야구 선수들이 평균적으로 정점에 가까워지는 만 25세~27세에서야 타격폼을 점진적으로 회복한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S급 선수들의 에이징 커브가 n자 모양이라면, 김현수의 에이징 커브는 v자인 것. 다만 2021년부터 좌익수 수비가 많이 불안해지고 움직임도 둔해지는 등 수비에 있어선 확실히 떨어지고 있다. 비슷한 커리어를 가진 선수로는 구자욱이 있다.[22] LG 이적 후에는 짝수해(2018 ,2020, 2022)에는 리그 정상급이자 커리어 하이급 성적을, 홀수해(2019, 2021, 2023)에는 커리어로우급의 성적을 기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LG 트윈스로 이적한 이후 젊은 외야수가 많이 발굴되면서 지명타자로 뛰는 빈도가 늘었는데, 정작 본인은 지명타자보다는 좌익수 수비를 병행하면서 경기를 뛰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지명타자로 대부분 나오다가도 좌익수로 출장하는 경기도 여전히 많다.


[1] 이 호쾌한 스윙으로 홈런도 곧 잘 만들어낸다.[2] 이 홈런이 팀의 어린이날 경기 승리와 3연패 탈출의 기반이 되었다.[3] 장효조는 20대 후반이었으며 양준혁은 데뷔 시점에 미친 수준의 wRC+를 기록했으나 대졸이라 20대 중반 정도였다.[4] 어디까지나 2008, 2009년 성적 기준으로 부진이지, 스탯 상으로는 웬만한 선수의 커리어 하이 수준이다.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3할 20홈런을 기록했으니...[5] 어디까지나 김현수니까 가능한 말. 실제 그의 통산 성적을 보면 웬만한 선수들의 커리어하이는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로 빼어나다. 그만큼 김현수는 한국 야구에 있어서 기대를 한몸에 받던 젊은 선수였다.[6] 다른 한 사람은 2010년부터 급성장한 롯데의 손아섭. 통산 성적은 김현수가 타율을 제외하고 전부 앞선다. 2015년에는 손아섭이 부상으로 부진했던 반면 김현수는 폼을 회복하면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FA 이후 미국 진출에 성공했다. 재미있게도 두 사람은 2008년에서 2017년까지 번갈아 가며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7] 사실 잠실을 쓰면서 30홈런 이상을 친 좌타자는 1999년 이병규와 2016/2017/2018년/2020년 김재환*, 2020년 로베르토 라모스 세 명 뿐이다. 다만 2015 시즌 김현수는 당시 기준 두산 소속 한 시즌 좌타자 최다 홈런인 28홈런을 쳤다.[8]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 해 자신이 떠난 좌익수 자리를 메꾼 김재환에 의해 이 두 기록이 모두 깨졌다. 다만 김현수는 홈런타자가 아니니 비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타점 역시 자신만 잘한다고 얻을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9] 통산 BB/K가 1보다 높은 선수는 매우 드문 편, 게다가 BB%도 11.7%로 매우 높은 축에 속한다.[10] 2009년 기록, 대 봉중근 13타수 1안타, 대 김광현 8타수 1안타, 대 이승호 7타수 1안타, 대 이현승 13타수 2안타, 대 류현진 12타수 2안타. 통산 기록도 비슷해서 봉중근에게는 26타수 5안타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김거김을 실현할 정도로 양현종에게는 강했다.[11] 특히 좌완 상대 타석에서 아예 엉덩이가 뒤로 빠지면서 정타가 잘 안 나온다.[12] 이 이유로 인해 200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못받았을 확률이 컸을 것이라고 한다. 결국 두산에 신고선수로 입단하기는 했지만.[13] 김용의, 정주현, 신민재, 오지환[14] 단 2020시즌에는 채은성에게 3번 타자를 내 주고 본인은 강한 2번타자로 자리잡은 듯 하다가 채은성의 부진으로 다시 3번 타자 출장이 많아졌다.[15] 가을에 열리는 국가대표 경기가 주로 돔구장에서 열리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16] 또한 클러치에서 꾸준히 약한 모습을 보이는 박건우와는 다르게 김현수의 시즌 득점권 타율과 WPA 수치를 보면 전혀 클러치에서 약한 타자가 아니고 오히려 클러치 상황에서는 악마가 되는 타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만성비염이 김현수를 포스트시즌이 열리는 가을에 괴롭히고 있을 확률이 높다.[17] 예외적으로 2012년 포스트시즌은 가을야구에서 죽쑤던 그답지 않게 엄청난 맹활약을 했지만 대신 팀이 다 망쳐놨다.정확히는 김진욱 감독의 뻘짓으로 망했다.[18] 김현수의 가을맹구 징크스는 이후 박건우, 홍창기 등이 그대로 이어받았다. 물론 이어받지 않은 케이스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정수빈채은성이 있다.[19] 스몰샘플의 영향인지 4할 넘기는 경우도 있다.[20] 실제로 환절기 시즌에는 김현수가 일시적으로 부진하는 경향이 있다. 이른 시범경기나 4월 중순에서 5월 초순에 가끔씩 부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 등으로 시즌이 늦게까지 넘어가 버리면 타격이 부진해지기도 한다.[21] 실제로 21세, 만 20세에 더블 A에서 wRC+ 176.5를 찍으며 폭격하면 미국에서도 특급 대우받는 유망주 테크를 탄다. 한국 야구가 더블A 수준이므로 김현수는 객관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만한 재능이었다는 것. 그러나 장타자 변신을 시도하다 오히려 정체기를 겪으며 결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는 지지부진한 성적을 거뒀다.[22] 이쪽도 3년차에 거포 변신 선언을 하고 폼이 떨어져 전성기 대비 타율이 낮아졌다. 단 이쪽은 컨택 자체가 좋은 편이기는 하지만, 김현수처럼 미친 수준의 컨택으로 승부하는 타입이 아닌 호타준족형이다. 1, 2년차의 퍼포먼스는 구자욱이 조금 떨어지는 편이지만 암흑기 시절의 낙폭은 김현수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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