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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1988)/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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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선수 경력: 김현수(1988)/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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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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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7 BAL 17 P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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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두산 베어스4. 1차 FA5. 볼티모어 오리올스6. 필라델피아 필리스7. 2차 FA8. LG 트윈스9. 국가대표 경력10. 수상 경력
10.1. KBO10.2. 국가대표10.3. 기타
11. 연도별 성적

1. 개요

LG 트윈스 소속 외야수 김현수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파일:external/www.chosun.com/200506070005_00.jpg
신일고 시절 김현수
신일고 시절부터 뛰어난 타격으로 이름을 날리며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혔다. 하지만 AAA대회 당시 멤버 중 김현수만 혼자 프로구단에 지명을 받지 못했다. 정확한 이유는 미스터리지만, 발이 느리고 수비를 무성의하게 한다는 평가가 있었던 점, 하지만 김현수를 가르쳤던 한 코치의 증언에 의하면 "현수는 쳤다 하면 2루타여서 열심히 뛸 필요가 없었다."라고 증언하는 것을 보면 스카우트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 하다. 미국으로 진출한 신일고 동기 남윤희에 대한 보복으로 각 구단 스카우트들이 담합하여 지명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지만[1] 1987년생 드래프트를 보면, 남윤희와 김현수 사이에 지명된 신일고 출신인 모상기, 김상수도 있고 김현수와 남윤희는 태어난 해만 다를 뿐 신일고 동기이다. 2차 지명 회의 다음날 국내/외 많은 구단 관계자들이 김현수의 집을 찾았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롯데 자이언츠에서 김현수를 지명할 예정이라 했으나 김문호를 지명하면서 그만뒀다고도 한다. 대학 진학보다는 프로에서 뛰고 싶어 고민하다, LG 트윈스에는 박병호정의윤이 이미 많은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기에 두산에 신고선수로 들어가기를 선택했다고. 박현철 기자의 기사[2] 대학 진학의 경우 고려대로의 진학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위에 김현수와 김문호 사이에서 고민했다는 건 체면치례용 아니면 면피성 발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김문호는 2006년 신인 드래프트 2차 3라운드에서 지명되었는데, 만약 정말로 김현수와 김문호 사이에 고민을 했다면 다른 팀들이 김현수를 안 뽑는 걸 보고 4라운드에 '이게 웬떡이냐~'며 김현수를 지명해야 하는게 정상이다. 아니면 최소한 그 뒤에 라운드라도. 그런데 김문호를 지명하고도 9라운드 6명을 더 뽑을 동안 지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냥 애초부터 김현수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물론 롯데 만이 아니라 8개 구단 스카우트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야구팬들은 농담 삼아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 때문에 기피한 거 아니냐 하기도 하지만, 8개 구단 프런트들이 전부 저런 저주를 철석같이 믿고서 안 뽑았을 리는 물론 없다. 발이 느리고 수비가 약한 데다가 장타툴이 없는 외야수라는 평으로 다들 기피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3] 어쨌든 결과적으로 김현수는 스카우트들의 보는 눈이 틀렸다는 것을 완벽히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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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두산 베어스

파일:현수우승.jpg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환호하는 모습.[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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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을 뛰면서 두산 베어스를 대표하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5] 2006년 어느 팀에게도 지명을 받지 못하여 결국 두산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이내 타격 잠재력을 뽐내며 단숨에 리그 수위타자로 발돋움 하며 신고선수 신화를 썼다. 2008~2010 3년연속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으며, 2015 시즌에는 마침내 꿈의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달성하였다.

4. 1차 FA

2015시즌 전 "우승을 한다면 두산에 잔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두산은 2015년에 삼성을 꺾고 정말로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공약으로 두산에 남겠다고 했지만 그건 시즌 전 이야기였고 본인은 현재 신중한 상태이지만 메이저리그의 호평도 있고 관련기사 박병호 역시 해외 진출을 했기 때문에 미국행 티켓을 끊을 것이 유력해 보인다.

2015 WBSC 프리미어 12가 끝난 후 귀국 인터뷰에서 남는다면 다른 팀은 못갈 것 같다는 말을 해서 두산 팬들을 안심시켰다. 팀을 떠나고 싶은 게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원한다는 내용이었기에 두산팬들은 안 가면 좋겠지만 가게 되면 잘하라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김현수가 두산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

김현수, MLB 사무국으로부터 신분조회 요청 12월 1일 MLB에서 정식으로 신분조회 요청이 들어왔다. 김현수 본인은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일단 관심이 있는 팀은 분명히 존재하는 듯하다.

그리고 12월 15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비트 라이터 댄 코널리의 트윗에 따르면 오리올스가 김현수에게 2년 6~8M의 오퍼를 날렸다고 한다. 같은날 미국 '볼티모어선'은 '볼티모어가 김현수와 협상을 벌이며 2년간 연평균 300만~400만 달러 수준을 제의했다'고 알렸다. 제의가 사실인 것으로 보여 오리올스와의 계약이 진행중으로 보인다. 그 외에 피츠버그 샌디에이고에서도 관심이 있는 듯 하다. 일본의 소프트뱅크 호크스, KIA 타이거즈NC 다이노스가 FA 거취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기사도 떴다. #

그리고 12월 17일 오전 메디컬 테스트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 7M 노옵션 계약에 합의했다는 트윗이 떴다! 국내의 리코스포츠가 김현수의 에이전트 역할을 맡아 주도적으로 움직였는데, 김현수의 이해관계와 딱 맞는 좋은 계약을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메디컬 테스트가 끝나고 주말이 지났음에도 정식입단 발표가 나지 않아 고질적인 뼛조각 부상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인터넷에 잠깐 돌기도 했다. 그러나 현지 기자의 주장에 따르면 크리스 데이비스 계약과 연동되어 늦어지는 것이라면서 이는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예전부터 저질러온 짓거리라 한다.

그리고 한국 시각으로 12월 24일 새벽 공식 입단이 발표되었다. 등번호는 25번. KBO 리그 최초로 FA를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야수이다. 배리 본즈의 번호라는 에이전시의 권유로 25번을 달았다고.[6]

5. 볼티모어 오리올스

파일:/image/117/2015/12/24/201512240056512210_3_99_20151224072203.jpg

5.1. 2016 시즌

파일:external/65.media.tumblr.com/tumblr_o8j59qdJcK1sqk8veo3_128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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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식도 못 가는 연습생이었는데, 그런 것도 없는, 이게 진짜 신기해 나는, 전광판이...
ㅡ 볼티모어 입단식에서.#[7]

5.2.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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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필라델피아 필리스

6.1.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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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차 FA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맺었던 2년 계약이 끝나고 FA가 되었다. 메이저리그에 남든 KBO로 복귀하든 자유로운 신분 상태이다.

본인은 빅 리그에 남고 싶어 하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은지라 시즌 후반 이후 KBO 리턴설이 지속적으로 나왔다. 현지 언론 역시 시즌중에도 계속 김현수가 2017년을 끝으로 귀국하리란 전망을 내놓았다. 17시즌의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인해 지난 계약 수준의 빅 리그 잔류 보장 가능성은 어느 팀에 가더라도 매우 적으며 마이너리그 스플릿 계약으로 백업과 AAA를 오가는 고된 생활을 감수할 생각이 없다면 윈터 미팅에서 현실을 확인하고 리턴하리라는 전망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애초에 타격은 물론이고 수비,주루 조차 안좋은 -WAR타자를 영입할 메이저리그팀은 없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두산 베어스에 대한 진한 애정을 보여준 말들이 있었기에, FA 시장이 본격화되기 전에 야구 팬들은 김현수가 어느 국내 구단과 계약할 것이냐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모기업 두산그룹의 상황이 영 좋지 않음이 알려지고 민병헌에게 오퍼 한 번 넣지 않고 롯데와 계약하도록 그냥 두었음이 알려지면서 김현수의 거취가 2017 스토브리그의 최대 화두로 급부상하게 된다.

객관적인 전력과 모기업의 사정, 신인 육성이 강점인 팀 특성상 민병헌을 잃었다고 두산이 100억을 호가하는 외야수를 사야 할 이유는 크지 않았다.[8][9] 하지만, 김현수는 2008년 베이징 뉴비 유입 시기와 맞물리면서 두산 팬덤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차세대 프랜차이즈 스타였기에 놓칠 경우 구단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실제로 두산 팬들이 팬 페스티벌 등[10]에서 산발적인 실력행사에 나서는 등 김현수를 잃었을 때 팬들이 받을 심리적 타격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었다. 때문에 후일 밝혀지기로 여론을 인지한 두산 구단 프런트 측에서도 모기업에다가 ‘반드시 잡아야 할 선수’로 보고를 올렸다고 한다.

한편 성적을 불문하고 고참 선수들을 대거 정리하며 팬들의 원성이 최고조에 이른 LG 트윈스가 김현수 영입에 관심이 있는 유일한 구단으로 떠오르게 되고.. 삼성[11][12] 등 다른 후보구단이 루머 수준에서 모두 정리되면서 김현수에게 오퍼를 낼 구단은 잠실 라이벌인 LG와 두산 두 팀으로 좁혀 지게 되었다. 하지만 김현수는 메이저리그에 미련이 남은 상태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접촉 소식은 없이 일단 김현수의 복귀소식이 윈터 미팅 이후로 예상되었다.

그리고 윈터 미팅 결과 김현수가 보낸 에이전트는 구단 관계자들의 차가운 반응 속에[13] 만족할만한 오퍼를 받아오는 데 실패하고, 김현수의 리턴이 가시권에 들어오게 된다.

12월 18일, 원 소속팀 두산과 협상이 최종 결렬 되었다는 기사가 났으나#, 몇 분 후 사실 무근이라는 반박 기사가 나왔다.[14] 두산 팬들은 여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지만...
파일:LG 트윈스 김현수.jpg

결국 김현수는 2017년 12월 19일, LG 트윈스4년 총액 115억원(계약금 65억원, 연봉 12.5억)에 계약[15]을 하면서 KBO 복귀가 확정되었다. 메이저 리그에서 영입의사가 있는 구단은 있었지만 주전 보장을 원한 김현수의 의도를 맞춰줄 구단은 없었기에 주전 보장이 있는 국내 복귀를 선택했다고 한다. LG가 라이벌 두산 소속의 FA 선수를 영입한 것은 지난 2007년 박명환 이후 11년 만이다.

계약 직후,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친필 메시지를 남겼다.
파일:김현수 LG 이적 후 메시지.png
안녕하세요? 김현수입니다. 오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라운드에서 뛰고 싶다는 희망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경기를 뛰고 싶었습니다. 신고선수로 출발한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응원해주신 두산 베어스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제 이름을 외쳐주시던 팬들의 함성은 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저를 응원해주신 두산 팬 여러분의 사랑을 절대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정말 고맙습니다. 제 고민의 시간을 기다려주신 LG 트윈스 구단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LG의 승리를 위해 선수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LG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후 엠바고가 풀렸는지, 두산과의 계약 성사가 처음부터 가능성이 없었음에 힘을 싣는 기사와 발언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얄궂게도 지난 10년간 두산을 대표하는 간판타자로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프랜차이즈 스타의 행방이 걸린 중요한 해였지만, 하필 이 때에 모기업이 야구단에 돈을 전혀 쓸 수 없는 상황에 몰렸고, 짜기로 유명한 프런트까지 '그럼에도 꼭 잡아야할 선수'라며 보고를 보내며 적극적인 소요제기를 하였으나 결국 사정상 모기업 측이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온갖 루머와 달리 구단 측에서 기자들에게 “올해 FA 시장은 조용히 지나갈 것입니다”라고 언급했다고.

김현수는 수차례 두산 구단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협상 해달라며 무언의 항의를 했으나, 그럼에도 두산이 사정상 김현수에게 전혀 오퍼를 하지 못하여 두산이 아닌 타팀으로 가야 할 상황이 되자 에이전트와 함께 울었다고 한다.

두산에서 썼던 등번호 50번은 이미 외국인 투수 헨리 소사가 선점하고 있어서 결번 중 22번을 자신의 등번호로 선택했다. 공교롭게도 22번은 신일고 선배인 김광삼이 은퇴 직전에 달던 번호이다.

메이저리그 시절에 대한 질문에 훈련량은 KBO가 많지만 메이저리그는 선수들의 타고난 신체능력과 체계적인 훈련의 질과 몸관리가 남다르다는 대답을 하였다.

메이저리그 진출 전 실패자 발언에 대해 크게 후회하고 있는 듯 하다. 겁이 없던 상태에서 했던 발언이었다고. 여담으로 아버지가 MBC 청룡 원년 팬 출신으로, 김현수가 두산에 입단하기 전까진 LG 골수팬이였다고 한다.

한편, 두산은 보상선수로 투수 유재유를 지명했다.
파일:PYH2017122124920001300_P2_20171221161155396.jpg
입단식에서의 모습

LG는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까지 지속적인 타자육성실패로 30대 초반의 타자 중에서 중심을 잡아줄 정도로 성장한 선수가 없었기 때문에 김현수의 영입은 돈은 많이 들었어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 선택은 LG 트윈스라는 팀을 바꾼 최고의 선택이 된다.

8. LG 트윈스

파일:어린이날김현수.jpg
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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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팀인 두산을 떠나, 이제는 라이벌팀 LG 트윈스의 간판타자로 활약중인 김현수. 김현수의 영입 이후 LG는 간신히 5강 싸움만 하는 팀에서 우승 경쟁을 하는 팀으로 성장하며 윈나우를 노리는 중이다. 홀수해 성적은 상당히 아쉬웠지만, 어쨌든 영입 이후 꾸준히 성적이 우상향한 LG에게는 최고의 영입이 아닐수없다.

2023년엔 정규시즌에서 커리어로우를 기록했지만, 김현수를 영입한 최대의 이유였던 우승을 드디어 만끽하는데 성공했다. 김현수 본인 또한 자신에게 짊어졌던 우승청부사로서의 모습으로서 클러치 상황에서 맹활약하며 팀 통합우승에 톡톡히 기여하면서 이제는 두산의 간판타자, LG의 간판타자를 넘어 두산의 레전드이면서 동시에 LG의 레전드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커리어를 가지게 되었다.

9. 국가대표 경력

파일:20210804_23050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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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야구에 약한 반면 야구 대표팀에서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10. 수상 경력

10.1. KBO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svg

김현수의 KBO 수상 경력
2008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 타율 1위 / 최다안타 1위 / 출루율 1위 / 동군 올스타(감독추천)
2009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 최다안타 1위 / 이스턴 올스타(베스트10)
2010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 이스턴 올스타(베스트10) /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우승
2011 이스턴 올스타(감독추천)
2012 이스턴 올스타(감독추천)
2013 이스턴 올스타(베스트11)
2014 이스턴 올스타(베스트11) /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우승
2015 한국시리즈 우승 /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 드림 올스타(베스트12)
2018 타율 1위 / 나눔 올스타(베스트12)
2019 나눔 올스타(베스트12)
2020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 나눔 올스타(베스트12)
2021 나눔 올스타(베스트12)
2022 나눔 올스타(베스트12)
2023 한국시리즈 우승 / 나눔 올스타(감독추천)

10.2. 국가대표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 2.svg

김현수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상 경력
2008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 금메달
2009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
2010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14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15 2015 WBSC 프리미어 12 우승
2015 WBSC 프리미어 12 MVP
2018 2018 자카르타 • 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19 2019 WBSC 프리미어 12 준우승

10.3. 기타

김현수의 기타 수상 경력
2005 이영민 타격상
2008 일구상 최고 타자상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
제일화재 프로야구대상 대상
스포츠토토 올해의 상 올해의 타자상
2009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조아바이톤상
2015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대상
2016 일구상 특별공로상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특별상
카스포인트 어워즈 공로상
프로야구 스포츠서울 올해의 상 올해의 특별상

11. 연도별 성적

11.1. KBO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김현수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2006 두산 1 1 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000 - -0.02
2007 99 353 87 19 3 5 33 32 5 26 46 .273 .335 .398 .733 107.4 1.62
2008 126 558 168
(1위)
34
(1위)
5
(3위)
9 83
(4위)
89
(5위)
13 80
(1위)
40 .357
(1위)
.454
(1위)
.509
(4위)
.963
(2위)
176.5
(2위)
7.14
(1위)
2009 133 572 172
(1위)
31
(3위)
6
(2위)
23 97
(3위)
104
(2위)
6 80
(4위)
59 .357
(3위)
.448
(3위)
.589
(3위)
1.037
(3위)
169.5
(3위)
6.88
(1위)
2010 132 565 150
(3위)
29
(4위)
0 24 88
(3위)
89 4 78
(3위)
64 .317
(7위)
.414
(5위)
.531 .945
(3위)
152.0
(3위)
5.24
(3위)
2011 130 561 143 25
(5위)
2 13 71 91
(3위)
5 71
(4위)
63 .301 .392 .444 .836 133.4 4.20
2012 122 491 127 17 1 7 47 65 6 46 50 .291 .358 .382 .741 118.2 2.76
2013 122 510 131 23 1 16 63 90
(5위)
2 62 71 .302 .382 .470 .852 129.2 3.40
2014 125 528 149 26 0 17 75 90 2 53 45 .322 .396 .488 .884 132.2 4.13
2015 141 630 167 26 0 28 103 121 11 101
(3위)
63 .326 .438
(4위)
.541 .979 163.2
(4위)
6.70
(3위)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2018 LG 117 511 164 39 2 20 95 101 1 47 61 .362
(1위)
.415
(4위)
.589 1.004
(5위)
155.2
(4위)
4.79
2019 140 595 160 37
(3위)
0 11 75 82 3 54 52 .304 .370 .437 .807 125.8 3.57
2020 142 619 181
(5위)
35 2 22 98 119
(3위)
0 63 53 .331 .397 .523 .920 148.4 5.31
2021 140 595 144 23 1 17 70 96 3 77 42 .285 .377 .435 .811 128.3 3.31
2022 141 604 150 25 2 23
(5위)
78 106
(3위)
2 71
(3위)
62 .286 .375 .473 .848 145.1 4.88
2023 133 556 143 22 2 6 53 88 2 58 53 .293 .364 .383 .747 114.1 1.69
KBO 통산
(15시즌)
1944 8249 2236
(5위)
411 27 241 1129 1363 65 967 824 .314 .396 .482 .878 141.9 65.61

11.2. MiLB

역대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2016 보위 베이삭스(AA) 2 7 .286 2 0 0 1 2 1 0 0 .286 .714 1.000
<colbgcolor=#ffff88> MiLB 통산
(1시즌)
2 7 .286 2 0 0 1 2 1 0 0 .286 .714 1.000

11.3. MLB

파일:MLB 로고.svg 김현수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16 BAL 95 346 92 16 1 6 36 22 1 36 51 .302 .382 .420 .801 1.3 0.9
<rowcolor=#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17 BAL/PHI 96 239 49 8 1 1 20 14 0 22 46 .231 .307 .292 .599 -1.0 -1.2
MLB 통산
(2시즌)
191 585 141 24 2 7 56 36 1 58 97 .273 .351 .368 .719 0.3 -0.3


[1] 정근우가 고교 졸업 당시 지명받지 못했을 때도 추신수의 미국 진출에 따른 보복설이 거론된 바 있다. 그와 유사한 소문. 당시 부산고 출신으로는 김백만이 한화에 2차 1라운드로 뽑혔고, 이후 (대졸이긴 하지만) 2명이나 더 지명받았다. 정근우의 미지명 사유는 작은 체구로 인한 낮은 발전 가능성.[2] 손시헌, 이종욱, 김현수 같이 두산에서 신고선수 성공 사례가 많다 보니, 이후 서울 팜 중 두산에 입단하고 싶어한 고교 선수도 많았다고 한다. 허나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가 많이 가는 대신 베테랑들에 대한 예우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3] 사실 고등학교 투수와 프로 투수의 차이는 어마어마해서 고교 때 타격으로 날렸어도 프로에서는 전혀 못 때리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다. 위에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라는 것도 사실 전혀 저주가 아닌 게, 고등학교때 잘했다고 프로에서 잘한다는 보장이 없는게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장의 고교 성적보다도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지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에는 신인지명에 있어서 타격이나 선구안을 과거보다는 더 중시여기는 편이지만, 이 때는 지금보다 더욱 툴을 중시하던 시점이었다. 게다가 고교 야구 대회 몇개 성적으로 타격을 평가하기에는 샘플이 너무 적기도 하고. 그리고 김현수가 뛰던 당시는 알루미늄배트에서 나무배트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2004년 봉황대기부터 나무배트 적용)[4] 김현수의 두산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5] 당시엔 영구결번 0순위 후보였으나 2024년 현 시점에서 김현수가 두산에서 영결될 확률은 매우 낮다. 애초에 두산에 오랫동안 공헌한 영결 1순위 김동주는 사생활 문제로 그렇다 쳐도, 더스틴 니퍼트유희관, 정재훈 같이 커리어로만 따지면 영결이 되어도 납득할만한 선수들도 전혀 영구결번에 대한 논의 자체가 없을 만큼 두산에서 영구결변에 굉장히 박하고 베테랑에 대한 대우가 그리 좋은 편에 속하지 않는다. 또한 2018년부터는 라이벌 팀 LG에서 뛰고 있다는 점도 어느 정도 고려될 것이고, 어느덧 LG에서의 근속년수도 7년차가 되면서 사실상 LG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추가로 김현수를 영입하면서 그토록 원했던 우승까지 이뤄낸지라 앞서 서술된 이유도 있거니와 두산 입장에서는 굳이 영구결번까지 할 필요가 없다.[6] 참고로 이 당시 25번을 달고 활약했던 거포로는 배리 본즈뿐만 아니라 마크 맥과이어, 라파엘 팔메이로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문제는 셋 다 약쟁이... 다만 이 번호를 단 선수 중에는 짐 토미마크 테세이라앤드류 존스도 있었던 만큼 완전히 약물로 더럽혀진 번호는 아니다. 결정적으로, 이 번호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영구 결번이기도 하다.[7] 신고선수에서 메이저리그까지 걸어온 그의 인생 과정을 잘 나타내는 말이다.[8] 이미 좌익수에 김재환이 있고 정수빈도 돌아오기 때문에 잡을 가능성은 낮았다. 거기다 김인태조수행, 이우성을 썩힐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9] 이 때문인지 두산 구단도 모기업의 재정과는 별개로 애초에 협상 의지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민병헌을 그대로 롯데로 가게 내버려 뒀다.[10] 대표이사가 참석한 자리에서 김현수를 잡아달라는 어필을 했고, 크게 번지지는 않았지만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두산베어스 해시태그에 FA 관련 문구를 도배하려 하기도 했다.[11] 자금이야 충분했지만 내야에 관심이 있다는 기사를 내고 또다른 대어인 강민호를 낚아가며 사실상 철수.[12] 강민호를 잡지 못한 롯데는 말 그대로 팬들에게 큰 비난을 받았다.[13] 메이저리그의 트렌드가 홈런대잔치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교타자의 매력이 떨어진 상황. 하물며 김현수는 잘 하지도 못했다. 때문에 윈터 미팅에서 구단 관계자들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한다.[14] 결과적으로 이 반박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오퍼도 못 넣었고 협상도 못 했는데 어떻게 결렬이 나겠는가(...)[15] 역대 FA계약중에서는 이대호 (4년 150억) 다음으로 큰 계약이였으나 2018년 12월 11일 양의지가 4년 총액 125억에 NC와 계약을 채결해 3위로 밀려났다. 바로 다음이 최형우의 4년 10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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