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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 ← | 2015년 | → | 2016년 |
1. 시즌 전
두산 베어스 No.88 |
김태형(金泰亨) |
2. 페넌트레이스
2015년 시즌 개막전에서 김경문 감독과 함께.[1]
2.1. 3월 ~ 4월
시즌 초반에 중간계투진을 포함한 투수진들이 부진하면서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빅볼송일수, 한국말 잘 하는 송일수, 송태형 등의 굉장히, 매우, 상당히 안 좋은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나머지 커뮤니티에서도 데이터를 보지 않는 듯한 좌우놀이식 선수기용과 허접한 작전능력, 투수진에 대한 제로에 가까운 영향력 등을 지적받고 있으며 넥센의 서건창 부상에 대한 미숙한 대처 등으로 인해 타 팀 팬들 사이에서의 이미지도 별로 좋지 않은 편. 시즌 초반부터 엄청난 이슈를 몰고 다닌 김성근 감독에 다소 묻혀서 그렇지 상당히 까였다. 하지만 시즌이 지나면서 전반적으로 선발투수 관리와 야수 관리는 매우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부상의 징조라도 보이면 바로 후보 선수를 기용하고 특히 포수에 양의지와 최재훈을 번갈아 사용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선수 한명 한명에게 믿음을 주고 발전하기를 기다리는 운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윤명준의 경우 14패 중 5패를 했으나 자기 페이스를 찾기를 기다리며 꾸준히 기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김재환도 1루에서 정말 치명적인 실수로 빠질만도 했지만 꾸준히 기용하며 미래 두산의 1루수 육성에 힘쓰는 모습이다. 다만 투수 운용에 관해서는 아쉬움이 많다. 특히 유네스키 마야가 노히트 노런 이후 한경기당 평균 7실점하는 가운데에도 투수교체를 하지 않았을 정도 [2] . 그래도 다행인건 최악의 불펜으로 평가 받던 두산 불펜이 점점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는 것.
2.2. 5월
5월 들어서 홍성흔은 2군으로, 윤명준은 노경은 복귀 이후 마무리 대신 불펜으로 돌렸고, 김재환은 5월에 대폭발하면서 5월 27일 현재 .277/.400/.535의 준수한 타격을 기록, 감독의 믿음이 옳았음을 증명 중이다. 다만 이제 노히트노런 이후 14 노경은급 삽질을 거듭하고 있는 용병투수를 어떻게 처리할 지가 문제.5월 27일 NC전에서 벤치 클리어링 이후 박동희 칼럼을 통해 인터뷰를 냈는데 상당히 생각이 깊고 선수를 끌어안는 리더십으로 두산 팬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KBO(한국야구위원회)의 규칙과 규정이 그렇다면 존중한다. 만약 KBO에서 징계를 내린다면 그것도 존중하겠다. 홍성흔의 그런 장면을 보고 언짢으셨던 분들이 계셨다면 그분들의 의견도 존중하고, 감독인 제가 정중히 사과드리겠다. 하지만, 두산 감독 입장에선 팀 동료들을 지키고자 그라운드로 뛰어나간 홍성흔의 결정 역시 존중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세상 모든 사람이 비난해도 홍성흔은 우리 팀 선수고, 난 그 선수를 책임져야 할 감독이다. 내 책임이 크다. 홍성흔에게 쏟아질 비난이 있다면 제게 해주셨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팬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2.3. 6월
6월 들어서 NC, 삼성과 치열한 선두 자리 다툼을 벌이는 중. 3위 밖으로 밀려나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잘 해주고 있다.2.4. 7월
전반기를 47승 34패 단독 2위로 마무리 하였다.[3] 사령탑역을 처음 맡아본 초보감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전반기는 상당한 호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잔여경기가 63경기로 10개 구단 중 가장 많아서[4] 후반기 팀 운용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전반기 MVP는 김재호를 선정했다.
7월 24일 경기에서 9:3으로 크게 앞선다고 1루까지 산책 주루를 한 김재호를 호되게 질책하는 모습이 잡히기도 했다. 영상 기사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 김재호의 인터뷰에 의하면 사실 질책하는게 아니라 힘내라고 격려해준것이였다고 한다.
2.5. 8월
8월 11일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여전히 홍성흔이 필요하다고 했다.8월 29일부터 이틀동안 진행된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모두 승리하였다. 청출어람이 따로 없을 정도다.
2.6. 9월
후반기들어 두산이 갑자기 흔들리면서 연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9월 12일 KT 와의 대결에서 삼중살 포함 6이닝 연속 병살타라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대패하고 6연패에 빠저들었다. 어느새 순위는 4위까지 가라 앉아 팬들의 비난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2.7. 10월
10월 4일 KIA전에서 3위를 확정하였다. 전반기에 2위까지는 했던 것을 생각하면 후반기를 힘들게 이끌고 나간 셈이 되지만 초짜감독으로서는 여전히 좋은 결과를 냈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두산 베어스의 '김씨 감독 효과'도 이어나갔다.[5]3. 포스트시즌
2015시즌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의외의 입담을 과시하는 동시에 염경엽 감독의 조상우 혹사(?)를 디스했다. 영상 32분부터그런데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혹사당하던 조상우가 무너지면서 예언자로 등극했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3병헌 6성흔을 기용하면서 모든이들의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는데..결과는...[6]
2, 3차전에서 함덕주가 무너진 이후, 이현승을 4차전 2이닝, 5차전 3이닝동안 기용하여 대성공, 두산을 KS에 올려 놓았다. 덧붙여 시즌 내내 부진하면서도 부활을 기대하며 꾸준히 등판시켰던 노경은이 가장 중요할 때인 한국시리즈 4차전서 5.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3:1 리드 상황에서 총력전을 펼치겠다고 선언한 5차전을 13대 2로 압승,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4년연속으로 우승을 거둔 삼성 라이온즈를 4승 1패로 털어버리고 최종 우승의 영광을 거둔다.
동시에 류중일 이후 최초로 부임 첫해에 팀을 우승시킨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7] 선수로 우승했던 팀에서 감독으로도 우승한 최초 감독 타이틀은 덤.[8]
4. 총평
전임 감독이 망쳐놓았던 팀을 빠르게 재정비하여,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올려놓았다. 전임 감독이 주로썼던 번트 작전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실제로도 번트보단 강공을 주로 사용하며, 뒤지고 있던 경기를 일거에 역전시켜버리는 경우가 꽤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1014 대첩.코치진도 순혈 베어스보다는 외부 영입을 함으로써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기존 투수코치였던 권명철이 해괴한 투수교체로 경기를 말아먹자, 권코치가 봉와직염으로 입원해 있는 사이에 한용덕 코치를 1군 투수코치로 승격시켰고, 이는 적중하여, 권명철이 투수코치를 맡던 때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투수운영을 가능케했다.
무엇보다도 김태형 감독의 가장 큰 업적은 좌완 왕국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사실 게리 레스가 두산 좌완투수 최다승수였다는 점만 봐도 두산은 토종 좌완을 잘 키워내지 못했다. 2010년에 지명한 장민익도 키가 크고 좌완이라는 이유로 지명했지만, 성장이 정체되어 있다가 결국 2018년 한장두를 끝으로 방출되었다. 하지만, 이상훈 2군 투수코치가 맡고 있던 2군에서 화수분처럼 좌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존 유희관에 FA로 데려온 장원준을 필두로, 뜬금없이 2군에서 콜업되어 인생투를 보여준 허준혁, 선발 불펜에서 전천후 역할을 해준 진야곱, 좌완 셋업맨의 핵으로 떠오른 함덕주, 한국시리즈 선발에까지 오른 이현호처럼 엄청난 좌완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는 팀의 미래를 보다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 요소로, 이를 팀의 우승과 함께 가져온 김태형 감독의 2015 시즌은 우승 외적으로도 그야말로 최고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사실 김태형이 감독으로 갓 취임한 후, 이상훈에게 전화해서 제의를 했다고 한다.
20년 전인 1995년의 우승을 이끌었던 스승 김인식 감독과 비슷한 점이 많다. 팀이 하위권에 빠져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부임한 신임 감독으로서,[9] 불과 1년만에, 무려 14년 동안 기다려야 했던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말이다.[10]
5. 여담
우승 이후 엄청 술 먹다가 통풍이 왔다고 한다. 그래서 미야자키(마무리 훈련) 출국일을 11월 15일로 미뤘다.[1] 그리고 김태형 감독은 두산을 떠난 김경문 감독에게 승리, 두산 팬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주었다.[2] 심지어 투코조차 올라오지 않았다.[3] 1위 삼성(49승 34패)과는 1게임차[4] 잔여경기 최소팀 LG - 57경기[5] 김진욱 감독도 부임 첫 해 최종 3위의 성적을 기록했으나, 준PO에서 광탈했다. 반면 김태형 감독은 KS는 진출했으니 어찌 보면 더 높게 평가받아 마땅할지도 모른다.[6] 3번타자로 출장한 민병헌은 솔로홈런과 쓰리런 홈런으로 멀티홈런을, 6번타자로 출장한 홍성흔은 개인통산 포스트시즌 100안타째인 솔로홈런을 때려냈다.[7] 이 타이틀은 2015년 기준 1983년 김응용, 2005년 선동열, 2011년 류중일, 그리고 2015년 김태형 4명만 가지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1982년 김영덕도 맞기는 한데 그때는 원년이라 누구나 초보감독이었던데다 김영덕은 프로야구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을 실업야구 시절에도 지도자를 했으므로 일반적으로 부임 첫해에 팀을 우승시킨 감독으로 포함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정식 감독 부임은 첫 해더라도 전년도에 이미 감독 대행을 치른 1984년 강병철/1999년 이희수도 포함하지 않는다.[8] 총 4명이 선수로도 우승하고 감독으로도 우승했으나 나머지는 팀이 달랐다. 최초 우승 선수 출신 감독인 김재박은 선수 시절 우승은 1990년 LG에서 한 게 유일하지만, 감독으로써의 우승은 현대에서만 했다. 선동렬은 해태 원 클럽 플레이어 선수 출신이지만 감독으로써는 삼성에서만 우승을 맛봤다. 조범현은 1982년 OB 우승 멤버지만 OB-두산 감독을 맡은 적은 없다.[9] 다만 1995년의 김인식 감독은 이미 쌍방울 초대 감독을 포함하여 감독 경험이 풍부했던 중견 지도자였지만, 2015년의 김태형은 그야말로 처음 감독을 맡은 초보였다.[10] 1995년 우승은 원년 우승 이후 13년, 2015년 우승은 2001년 이후 14년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