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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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코치 | ||
김영삼 Kim Young-Sam | ||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출생 | 1982년 4월 4일 ([age(1982-04-04)]세) | |
경기도 화성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조건 | 174cm | |
직업 | 축구선수 (수비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코치 | |
학력 | 세류초등학교 (졸업) 안용중학교 (졸업) 정명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 학사) | |
소속 |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선수 | 울산 현대 (2005~2016) → 광주 상무 불사조/상주 상무 피닉스 (2010~2011 / 군 복무) |
지도자 | 울산 현대 (2017~2019 / 유소년 스카우트) 수원 FC (2020~2021 / 수석 코치) 수원 FC (2021~2023 / 코치) 부산 동명FC U-18 (2024~ /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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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現 축구코치이자 울산 현대의 원 클럽 플레이어.2. 선수 경력
화성 화산초 4학년에 축구를 시작해 세류초-안용중-정명고를 거쳤다. 정명고 시절 박이천 감독의 지도 아래 성장했고, 청소년 대표 주전 왼쪽 윙백으로 활약하며 고려대학교 01학번으로 입학한다. 고려대 신입생 시절 4학년 박동혁을 롤모델 삼아 수비진 모든 포지션과 윙포워드를 소화했고, 4년 간 조민국 감독 아래서 발군의 기량을 선보였다.고려대를 졸업 후 신인 자유계약으로 2005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여 프로 무대에 입문하였다.
신인시절부터 리그 16경기에 나와 2득점을 기록하며 후기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챔피언결정전 끝에 울산의 K-리그 두 번째 우승에 기여했다.
2006년에는 전북을 누르고 K리그 수퍼컵 우승, 여름에 열린 A3 챔피언스컵 우승하며 2관왕에 기여했고, 리그와 리그컵 도합 29경기에 나서며 김정남 감독의 신임을 한몸에 받으며 러시아로 이적한 현영민의 공백을 잘 메웠다.
2007년에는 하우젠컵 우승을 이끌었고, 2008년까지 2년 연속 리그 30경기 이상 출전하며 완벽한 주전으로 자리했다.
그러나 2009년을 앞두고 팀에 부임한 김호곤 감독의 구상에 완전히 제외되었고, 부상이 겹치며 2009년 한 경기 출전에 그친다. 결국 2009 시즌이 끝난 후, 군 문제를 해결하고자 광주 상무 불사조에 입대했다. 2011년 시즌 상주로 연고지가 바뀌는 팀에서 공격수부터 수비수까지 여러 포지션에서 중용받다가, 시즌 막판 전역했다. 울산에 복귀하자마자 주전으로 나섰고, 2011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12년에는 좌측풀백 주전으로 나서며 팀의 사상 첫 AFC 챔피언스 리그 무패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공헌을 했고, FIFA 클럽 월드컵 무대까지 밟게 되었다. 이로써 K리그에서 차지할 수 있는 모든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든 선수가 되었다. 2013 시즌에도 좌풀백 주전으로 나섰지만 팀이 K리그 클래식에서 아쉬운 준우승을 거뒀기 때문에 고베를 마셨다.
2014 시즌을 앞두고 대학 시절 은사인 조민국이 울산에 오며 계속 중용받았지만, 팀이 좋지 못한 성적을 받아들이며 한 시즌 만에 감독을 떠나보냈고, 이어 부임한 윤정환 체제에서는 아예 전력에서 제외돼 2년 간 리그 6경기 출전에 그친다.
2016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한 김영삼은 11월 2일 열린 제주와의 시즌 마지막 리그 경기에서 후반 42분 교체 출전하며 선수 생활 마지막 경기를 치렀으며, 동시에 울산에서의 K리그 및 리그컵 통산 200경기 출전을 달성하였다. 이 경기를 끝으로 12년 간 이어온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였으며, 2003년 정정수의 은퇴 이후 13년 만에 울산의 원클럽맨으로 은퇴하는 선수가 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 시절에는 울산의 싸움닭 역할을 자처하며, 왕성한 활동량과 스피드를 보여주며 울산의 중원 장악에 힘을 보태었던바 있다.하지만 군복무 이후 김영삼의 위치는 애매해져 버렸다.
김호곤 감독은 김영삼을 중앙 미드필더 보다는 사이드 풀백으로 기용하길 원하나, 김영삼 선수의 수비력 부족이 자주 도마에 오르고있다. 다행히 13시즌 들어 수비 센스가 개선되면서 팀의 상황에 맞추어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않고 활약했다.
4. 지도자 경력
은퇴 이후 울산의 유소년 스카우트로 선임되었다.2020시즌을 앞두고 울산에서 맺은 인연으로 김호곤 단장과 김도균 감독이 있는 수원 FC의 수석코치로서 프로 지도자 생활에 첫 발을 내딛는다. 또한 김영삼은 수원에서 축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자신의 고향에서 프로 지도자를 시작하게 됐다.
수석 코치 부임 1년 만에 팀의 K리그2 준우승과 1부 리그 승격을 성공시키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K리그1 입성 후 반 년 만에 이정수가 팀에 합류함에 따라, 수석 코치에서 수비 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2023 시즌을 앞두고 이정수 수석코치가 팀을 떠나 실질적인 수석코치 역할을 다시 하게 됐다.
2023 시즌 종료 후 김도균 감독이 나가며 팀이 코칭스태프 개편 과정에서 김영삼 역시 팀을 떠났다.
2024년 1월 4일 부산 동명FC U-18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유소년 지도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6. 여담
- 김영삼 대통령과 동명이인으로서 김대중, 김종필, 이재명 등과 함께 정치인 동명이인 축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예 이름이 정치인인 선수도 있다. 이 때문에 김영삼이 은퇴할 때 정치인과 김대중이 각각 은퇴사를 보내기도 있다.
- 이전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 1997년 외환 위기 사태가 터진 것과[1] 달리 축구인 김영삼은 경제적으로도 뛰어난 투자 능력을 갖췄다고 한다. 신인 때부터 펀드에 조금씩 투자한 김영삼은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인한 주가 하락 때도 전혀 손해를 보지 않을 정도로 투자의 귀재라고 하며, 펀드 열풍이 불 때는 주변에 조언을 해줄 만큼 경제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 ‘울산의 워렌 버핏’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그의 방에는 재테크 관련 책이 빼곡히 쌓여 있을 만큼 그는 늘 경제와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