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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시즌별 상세3. 프로 데뷔 이전
3.1. 초중고 시절3.2. 2005년 신인 드래프트
4. 프로 데뷔 이후4.1. 천안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1기 (2005~2009)4.2. 2009년 일본 진출4.3. JT 마블러스 (2009~2011)4.4. 2011년 유럽 진출4.5. 페네르바흐체 SK (2011~2017)
4.5.1. 2011-12 시즌4.5.2. 2012년 흥국생명과의 이적 파동4.5.3. 2012-13 시즌4.5.4. 2013-14 시즌4.5.5. 2014-15 시즌4.5.6. 2015-16 시즌4.5.7. 2016-17 시즌4.5.8. 서포터즈
4.6.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 1기 (2017~2018)4.7. 엑자시바시 비트라 (2018~2020)4.8.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2기 (2020~2021)4.9.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 2기 (2021~2022)4.10.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3기 (2022~2025)1. 개요
김연경의 구단 경력을 정리한 문서.2. 시즌별 상세
[[김연경/2005-06 시즌| | [[김연경/2006-07 시즌| | [[김연경/2007-08 시즌| | |
2005-06 | 2006-07 | 2007-08 | 200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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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2 | 2022-23 | 2023-24 | 2024-25 |
3. 프로 데뷔 이전
3.1. 초중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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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지와 김연경 | 고등학교 시절 |
김연경은 1988년 2월 26일에 경기도 안산시에서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빠른 88년생이라서 1994년에 1987년생들과 초등학교에 입학하였고, 초등학교 4학년인 1997년부터 배구선수였던 6살 위 큰 언니를 따라 배구를 시작했다. 언니가 혹독한 훈련으로 인해 고생하는 걸 본 부모님은 막내 딸이 배구선수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반대했지만, 본인의 뜻이 워낙 완강했다고 한다.
중학교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키가 150cm가 채 안 됐다. 하지만 배구에 대한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은 단체 훈련이 끝나면 밥 먹고 쉬는 반면 연경이는 혼자서 공을 들고 체육관에 나가 놀았다. TV에서 남자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보고 특이한 점이 있으면 혼자서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성격이 쾌활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도맡아서 했다.
홍성령[1] (원곡중학교 코치)
홍성령[1] (원곡중학교 코치)
안선 서초 때는 키가 142cm 정도로 또래 선수들보다 작아 세터를 맡았다. 이후 원곡중학교에 진학했는데,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170cm도 되지 않을 정도로 키가 자라지 않아[2] 벤치 멤버를 전전했다. 출전할 때도 세터나 리베로 포지션을 담당했다. 본인은 이때 배구를 그만두려 했지만 부모님과 김동열[3] 감독의 만류로 그만두지 않고[4], 오히려 독하게 훈련을 하기 시작한다. 늦어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장을 뛰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으며, 11시가 되어서야 운동을 끝내고 귀가하였고, 잘 때조차 공을 안고 잘 정도였다고 한다.[5]
이후 한일전산여고로 진학하는데, 초반에는 리베로를 할까 하고 리베로 전문 훈련을 받았다. 다행히 고등학교 3년 동안 기적적으로 키가 20cm나 자라면서 공격수로 포지션을 옮기게 되고 초고교급 선수로 각광을 받게 된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04년,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2004년 청소년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을 수상하고 2005년 U-18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본선 득점 2위, 공격 성공률 7위로 돌풍을 일으켰다. 2005년 그랜드챔피언스컵에서 바로 성인팀에 합류하였다.
3.2. 2005년 신인 드래프트
신장이 작았던 중학교 시절, 팀에서 리베로와 세터 포지션을 도맡았던 김연경은 고등학교 3년 동안 기적적으로 무려 20cm가 자라며 압도적인 피지컬과 탄탄한 기본기로 무장한 선수로 성장했다. 당시 한일전산여고의 박기주 감독은 "여자 배구 사상 이런 대형 선수가 나오기 힘들다. 앞으로 배구 중흥을 이끌 매우 우수한 선수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프로 입문 전부터 고교 무대를 평정해 '여자 김세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엄청난 기대주였다.[6] 위로 1년 선배인 황연주[7], 동기 김수지, 아래로 2년 후배인 배유나와 함께 고교 여자 배구에서 한일전산 시대를 이끌기도 했다.
또한 2005년 U-18 세계 선수권과 청소년 아시아 선수권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고등학생 신분인데도 그 해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 받았다.[8] 이때 출전한 대회가 2005 FIVB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대회인데, 이 대회에서 전체 득점 3위를 기록했다. 고작 고등학생이 성인 무대에서 국가대표팀의 주포로 활약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 덕에 한국 여자 배구의 차세대 거포라는 평가를 받으며 프로 입문 전부터 배구계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그래서 김연경을 잡기 위해 2005년 원년 V-리그 당시 흥국생명과 GS칼텍스가 꼴찌 쟁탈전을 벌이는 병림픽을 또 한 번 저질렀는데[9] 결국 흥국생명이 GS칼텍스에게 패해 리그 꼴찌로 마감하였고, 2005-06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흥국생명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으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김연경을 지명하였다. 등번호는 10번.
차세대 거포' 김연경(한일전산여고) 등 고졸 신인 10명이 드래프트로 각 구단의 지명을 받아 올 시즌부터 프로로 전환하는 여자 배구 성인 무대에 발을 내딛는다. 186㎝, 70㎏의 레프트 공격수 김연경은 장신에 탄력과 수비력까지 좋아 즉시 전력감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여자 배구에 돌풍을 일으키며 작년 꼴찌팀 흥국생명에 큰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된다.
2005년 10월 26일, 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2005년 10월 26일, 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그리고 흥국생명의 이러한 선택은 대박을 터트렸다.
4. 프로 데뷔 이후
4.1. 천안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1기 (2005~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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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4.2. 2009년 일본 진출
흥국생명의 리즈 시절을 이끌고 게다가 국가대표팀에서도 캐사기 유닛 소리를 듣게되자 '국내 리그에서 뛰면 안 된다'라는 여론과 김연경 본인의 외국 리그 진출 의지가 합쳐져 결국 2009 오프시즌에 외국 리그 진출을 추진하게 된다.김연경은 지난 시즌부터 종종 “해외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해외 진출은 쉽지 않다.(...) 한편에서는 김연경이 해외로 나갈 경우 국내여자배구가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 김연경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해외무대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2008년 3월 24일, SPORTS2.0 제 96호 류한준 기자
2008년 3월 24일, SPORTS2.0 제 96호 류한준 기자
2006-07 시즌부터 종종 해외무대, 이탈리아 여자 배구 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말을 했던 김연경이었다. 황현주 감독은 유럽과 남미선수들보다 파워가 떨어진다며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고, 흥국생명 프런트도 팀의 공격과 수비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던 김연경의 해외 진출을 허락하기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2009년 챔피언 결정전 우승 타이틀을 거머쥔 흥국생명이었고, "프로 출범이후 여자부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던 팀에 차돌같이 단단한 팀워크가 더해짐으로써 당분간 흥국생명의 독주 시대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던 탓에 김연경의 부재에도 팀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여론이 일었다. #
2009-10 시즌 도중 흥국생명의 한 관계자는 ″이번 시즌을 마친 뒤 김연경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고 11일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확정지은 직후 한 인터뷰에서 김연경은 "이탈리아나 일본 프로 배구에서 외국 선수들과 겨뤄 보고 싶다"라고 해외 진출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이때 김연경에 대해 관심을 보인 구단은 이탈리아, 일본, 그리스, 터키의 구단이었다. 이 중 이탈리아의 한 구단은 시즌 후반 흥국생명 측에 약 25만 유로, 당시 환율로 5억 원 가량의 연봉을 주고라도 김연경을 데려가고 싶다는 뜻을 전달해 왔다는 후문이 들려왔다. #
해외 진출 조건과 관련해서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주전 출장이 보장되고 연봉 역시 김연경이 올 시즌 흥국생명에서 받았던 금액(1억 2천만 원)보다는 훨씬 많아야 한다는 점을 우선조건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며, 한 관계자는 "순 연봉이 4억원 이상은 돼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고. 또한 김연경이 활약할 팀이 상위권 성적을 올릴 수 있느냐 여부도 고려 대상이 되었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해외 무대에서 더 큰 경험을 쌓고 나서 팀으로 다시 돌아와 뛰기를 바라는 만큼 일정 기간 김연경을 임대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김연경은 고대했던 해외 진출에 성공하였다. 원래 본인이 원하던 이탈리아는 아니었으나 일본에서도 배울 점이 많을것이라는 의견 속에 2009-10 시즌부터 흥국생명 자매팀이었던 일본 JT 마블러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일본에서만 김연경을 영입하고자 했던 구단은 4개 이상이었으나 JT와 계약이 이루어진 이유는 대외적으로 국가대표팀 차출을 보장했기 때문이지만, 배구팬들 사이에선 흥국생명의 자매 구단이어서가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연봉은 한국에서 받던 것보다 훨씬 많은 4억 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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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8일, 흥국생명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 |
5월 18일 흥국생명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연경은 "일본 프로팀인 JT 마베라스에 입단하게 됐다. 국내 여자배구 선수 중, 처음으로 해외진출을 한만큼, 좋은 결실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일본에 진출하는 소감에 대해 밝혔다. 김연경이 일본에서 통할 수 있는 이유
당시 일본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부동의 주전 다케시타 요시에와 같이 뛰는 사실에 대해 "매우 흥분된다"라고 하기도 했다. "여자 선수로서는 처음 해외에 나가 뛰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감도 있고 두려운 것도 사실"이라며 "그러나 나는 원래 자신감을 가지고 하는 선수다. 일본에서도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겠다"고 당당한 각오를 밝혔다. #
JT 마블러스는 비록 다케시타라는 명세터와 뛰어난 리베로 이노우에 고토에등 세터 포지션과 수비는 탄탄한 편에 속했지만, 공격력에서 큰 약점을 보여 리그 하위권을 전전하는 팀이었다. 따라서 공격과 수비에 모두 능통한 김연경의 가세는 팀에 분명히 상승세를 미칠 것으로 예상되었다.
다만 김연경의 계약은 완전한 이적이 아니었다. 1년 임대에 시즌이 끝난 이후, JT 마블러스가 원하면 흥국생명과 다시 협상해 임대할 수 있는 조건으로 계약이 이루어졌다. 일본에서 뛰어도 여전히 김연경은 흥국생명 소속이며 시즌을 마치고 난 뒤, JT 마블러스와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국내 리그로 복귀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뛰어난 활약이 세계 무대에서 검증이 되면 유럽 무대로도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셈. 결국 김연경은 2009-10 시즌 전년도 최하위 팀 JT 마블러스를 25연승, 정규 리그 1위, 파이널 준우승과 2010-11 시즌 정규 리그 1위, 그리고 창단 이래 첫 파이널 우승으로 이끌며 제 가치를 증명해 냈다.
김연경이 빠져나간 흥국생명은 2009-10 시즌 10연패라는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10] 2009-10 시즌 4위, 2010-11 시즌 준우승, 2011-12 시즌 5위에 머무르며 흥국생명은 흥국 왕조라고 불리웠던 과거 명성에 반해 저조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4.3. JT 마블러스 (2009~2011)
JT 마블러스의 대에이스이자 일본 V.프리미어리그의 최고 용병이라는 평가를 받은 김연경은 팀의 창단 이래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11]4.3.1. 2009-10 시즌
참고하십시오. |
4.3.2. 2010년 프로배구 컵 대회
시즌 종료 후, 소속 신분은 흥국생명 선수라는 점을 이용해 수원에서 열린 2010 IBK 기업은행컵 프로배구대회에 참가하였다. 8월 31일 도로공사와의 경기에서 3-2 대역전승을 이루며 개인으로는 38득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였다.[12] # 2009-10시즌 4위에 머물렀던 흥국생명을 무패행진으로 우승으로 이끌고 기자단 투표 중 33표중 28표를 받으며 대회 MVP를 수상했다. | |
2010년 김연경의 복귀론이 불거져 나왔을 때 여자부 5개 구단은 임대된 선수가 원 소속 구단으로 복귀할 경우 잔여경기의 25%만 뛰면 한 시즌을 인정해 주는 이른바 '김연경 룰'을 만들었다.
4.3.3. 2010-11 시즌
참고하십시오. |
4.3.4. 2011년 V-리그 플레이오프 참가설
임대 이적이라는 신분 때문에 2009-10 시즌 종료 후 비시즌인 9월 KOVO컵때 흥국생명 소속으로 뛰기도 했고 2010-11 일본 V.리그가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도호쿠 대지진이 터져 시즌이 조기 종료되어 한국으로 일찍 귀국했다. 마침 그 시기가 국내 V-리그 포스트 시즌과 맞물리는 바람에 흥국생명으로서는 '김연경 룰'[13]을 적용해 김연경을 포스트 시즌에 반짝 출장시키고 싶었으나 여론의 뭇매로 김연경은 한 달여 간의 휴식을 취하고 컵대회인 흑취기에 참가하기 위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만약 김연경이 당시 흥국생명에 합류하였다면 정규 1위였던 현대건설의 전력을 훌쩍 능가할 것이라고 평가를 받아, 나머지 팀들이 크게 견제하였다. 한 기사에선 흥국생명이 김연경의 포스트시즌 출전을 강행했다 해도 이중등록 문제 등으로 김연경의 출전이 실현되기는 쉽지 않다고 전하기도 했다. # 물론 본인은 "원 소속팀인 흥국생명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는데 팀이 원한다면 경기에 뛰고 싶은 마음도 있다"며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김연경 "흥국생명이 원하면 뛰겠다"
4.4. 2011년 유럽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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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페네르바흐체를 이끌던 브라질의 조제 귀마레스 감독이 일본에서 활약하는 김연경을 보고 "이 아이는 훗날 세계 최고가 될 선수"[14]라며 페네르바흐체 회장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했다고 하다. 이에 따라 JT 마블러스와의 임대계약이 종료된 2011년 5월, 소속팀을 물색하던 김연경을 터키로 데려왔다.
여자 배구 무대에 있어 터키 아로마 리그는 유럽 최대의 빅리그 중 하나이고, 적응에 얼마나 성공할지는 미지수였던지라 페네르바흐체와도 1+1 계약을 맺었다. 같은 포지션의 월드클래스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일본에서도 '100년에 나올까 말까한 거포'라고 칭송할 정도였을 만큼 유럽에서 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상당했다.
김연경에 인터뷰에 따르면 페네르바흐체 제시한 연봉은 일본에서 받던 것이 두~세배즘이 되고[15] 아파트, 차량, 통역도 다 제공해준다고 했다고.
6월 13일 이스탄불 페네르바체 구단 프레스룸에서 입단식이 열렸고 이날 입단식에는 페네르바체 구단 관계자와 흥국생명 권광영 단장, 현지 언론 등이 참석했다. 바비올렛 두카 단장은 새롭게 영입한 김연경에 대해서 "각종 세계 대회에서 김연경을 눈여겨보면서 영입을 원했다"면서, "공격과 수비에 능한 아주 어린 선수다"라고 평했다. 또한 이번 시즌 팀에게 거는 기대가 정말 크다고 밝혔다. # 김연경은 "명문 구단인 페네르바체의 가족이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터키에서도 나의 모든 역량을 펼쳐 최고의 성적을 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
4.5. 페네르바흐체 SK (2011~2017)
세계 여자 배구 리그 중 최고의 레벨로 평가 받는 터키 리그에서 6년간 무려 7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명문팀 페네르바흐체 SK의 간판 스타로 활약하였다. 2019년 현재까지도 페네르바흐체의 최장기간 계약 용병이라는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김연경은 용병을 넘어선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대우 받을 만큼 구단과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4.5.1. 2011-12 시즌
참고하십시오. |
4.5.2. 2012년 흥국생명과의 이적 파동
|
2012년 기자회견 |
일본으로의 이적 당시 흥국생명이 선수 임대 방식을 이용, 당시 V-리그 선수 이동 규정에 없던 방식으로 제대로 신분 정리도 안 한 채 이적을 진행했기 때문에, 이는 김연경의 귀환을 간절히 원했던 프런트와 몇년 새에 세계 최고의 선수로 성장하여 큰 무대에서 더 활약하고 싶었던 김연경이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는 계기가 된다. V-리그의 흑역사 중 하나로 손 꼽히는 이적 파동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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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김연경 흥국생명 이적 파동#|]][[김연경 흥국생명 이적 파동#|]]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5.3. 2012-13 시즌
참고하십시오. |
4.5.4. 2013-14 시즌
참고하십시오. |
4.5.5. 2014-15 시즌
참고하십시오. |
4.5.6. 2015-16 시즌
참고하십시오. |
4.5.7. 2016-17 시즌
참고하십시오. |
4.5.8. 서포터즈
|
일명 페저씨들 |
엄청난 규모의 스포츠 구단인 만큼 열정적인 팬들이 많다. 김연경을 매우 아끼고 좋아하며, 서브를 넣을때 '킴, 킴, 킴!'하고 외치는 응원구호도 있을 정도.
| |
어린 페네르바체 팬들과 김연경 |
이러한 인기로 알아볼 수 있듯이, 페네르바흐체 여자배구의 상징이자 자존심이였던 김연경이 2018-19시즌 리그 라이벌팀 엑자시바시 비트라로 이적하는 바람에, 페네르바흐체 서포터들이 인스타그램에 몰려와 배신자라는 댓글로 도배하는 등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4.6.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 1기 (2017~2018)
김연경 구단 경력 | ||||
2016-17 시즌 | ← | 2017-18 시즌 | → | 2018-19 시즌 |
중국 슈퍼 리그에서도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며 소속 구단을 정규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상하이 팀은 17년 만에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다만, 아직까지 중국 리그가 빅리그가 아닌 관계로 2018년 오프시즌 때 여러 리그의 복수의 구단이 김연경 쟁탈전에 뛰어들었고, 결국 터키 리그의 강팀 중 하나인 엑자시바시로 이적하게 됐다.
4.7. 엑자시바시 비트라 (2018~2020)
|
7년간 생활한 페네르바체도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김연경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흔들고 있다.
(...)
하지만 김연경은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다. 임금체불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페네르바체는 김연경의 2016~2017시즌 연봉 중 일부를 아직도 지급하지 않았다. 페네르바체는 아직 새로운 메인 스폰서를 잡지 못해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연경이 페네르바체행을 꺼리고 있는 이유다.
'연봉 高' 터키·'체력관리' 中, 기로에 선 '배구여제' 김연경
(...)
하지만 김연경은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다. 임금체불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페네르바체는 김연경의 2016~2017시즌 연봉 중 일부를 아직도 지급하지 않았다. 페네르바체는 아직 새로운 메인 스폰서를 잡지 못해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연경이 페네르바체행을 꺼리고 있는 이유다.
'연봉 高' 터키·'체력관리' 中, 기로에 선 '배구여제' 김연경
페네르바흐체 소속 어떤 선수보다도 팀에 큰 애정을 갖고 있던 김연경인 만큼, 2017-18 중국 리그가 끝나고 다시 터키에 돌아간다면 페네르바체로의 유턴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많았다. 하지만 페네르바흐체는 김연경의 연봉을 체불해왔음이 밝혀졌으며, 최고연봉이라는 타이틀이 허울만 좋을 뿐이란게 드러났다. 따라서 2018-19 시즌 엑자시바시 비트라로 이적이 결정되었다.[16][17]
나중에 스폰을 잡은 페네르바흐체가 체불된 임금을 지급했다는 소식이 뜨기는 했지만...
엑자시바시와의 계약은 2시즌으로, 상하이와의 재계약을 고민하는 가운데 엑자시바시의 관계자가 한국까지 찾아와 고액 연봉은 물론 김연경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체력 안배가 가능한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고, 이에 혹해 계약을 맺은 듯. 금액만 비교했을 때 상하이가 더 높은 금액을 제시했지만, 여러 여건을 고려하여 터키로 복귀한 것이 추측된다. 이에 대해 국내 팬들은 환호하는 중.
엑자시바시는 김연경이 상하이로 이적할 당시에도 러브콜을 보였고, 이번에도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 뜻하던 바를 이루게 됐다. 김연경 영입 직후 구단 SNS를 통해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을 영입했다."고 밝히는 등 김연경에 대한 기대치가 굉장히 큰 편. 더욱이 엑자시바시는 2017~2018시즌 22경기에서 21승 1패로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를 거뒀던 팀으로, '배구 황제'가 뛰기에 손색없는 팀이다. 등번호는 선수 생활 내내 한결같이 써 왔던 10번[18] 대신 18번을 배정받았다.
4.7.1. 2018-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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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 2019-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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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2기 (20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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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4.9.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 2기 (2021~2022)
4.9.1. 2021-22 시즌
2021년 5월 19일, 김연경이 중국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와 계약을 마쳤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연경이 임대 신분으로 중국에서 뛴다면, 다음 해에 FA 자격을 얻는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흥국생명 구단은 90% 이상의 확률로 김연경을 임의탈퇴 신분으로 묶은 채 중국에 보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김연경은 FA 자격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흥국생명에서 1년 더 뛰어 6년을 채울 수 밖에 없다.
하루는 흥국생명 관계자가 진천선수촌에 찾아갔다고 한다. 이는 김연경의 국내 계약을 연장하기 위함인 듯 하지만, 김연경은 흥국생명 구단에 알리기도 전에 계약을 맺었다.(5월 19일) 흥국생명에 있었던 기간이 다사다난하여, 흥국생명을 떠난 걸로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국 6월 30일 선수등록 공시에서 임의탈퇴로 분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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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3기 (2022~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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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결번 No.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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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수지의 모친이다.[2] 사실 20대 여자 평균 신장이 160~161인 것을 볼때 15살이 160 후반대면 장신에 속하지만 배구 선수에게는 단신이다.[3] 김수지의 부친이다.[4] 너는 손발이 크니 언젠가는 분명히 키가 자랄 것이고 그때까지 기본기를 열심히 다져 놓으라고 했다고. 결과적으로 이 말은 현실이 되었으니 김동열 감독의 눈은 매우 정확했다. 실제로 김연경의 신발 사이즈는 290mm로, 본인보다 키가 약간 작은 절친 김수지(265mm), 양효진(270mm)보다 훨씬 더 크다.[5] 이때 익힌 기본기들이 이후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장신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리시브와 토스가 안정적인 이유가 이때 익힌 기본기의 산실이다.[6] 물론 현 시점에서의 평가는 당연히 김연경이 압도적으로 위다.[7] 다만 황연주는 부상으로 고교 시절 때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8] 고교 선수로서는 사상 3번째다. 이전에 발탁됐던 선수들은 김화복(1973), 지경희(1985).[9] 2005년 드래프트 이전에도 흥국생명과 GS칼텍스의 1순위 잡기 병림픽은 배구 팬들에게 유명하다. 2003년에 김민지, 2004년에 나혜원과 황연주가 이 병림픽 대상 선수.[10] 사실은 2008-09 시즌에도 흥국생명은 주축인 황연주와 김연경의 부상으로 인해 정규 시즌을 겨우 3위를 해 플레이오프부터 봄배구를 시작했지만 김연경과 카리나 오카시오의 크레이지 모드로 우승을 차지했던 것.[11] 2019-20 시즌, 미국의 라이트 애니 드류스가 합류한 JT가 9년만에 다시 일본 리그의 정상에 오르게 되면서 유일한 우승이란 기록은 깨지게 되었다.[12] 하지만 컵대회이기 때문에 트리플 크라운 기록에 포함되지는 않는다.[13] 김연경이 JT 마블러스로 (임대)이적할 때 생긴 규정. 시즌 전(全) 경기의 25%를 뛰면 한 시즌 뛴 것으로 간주.[14] (Disse que essa menina poderia se transformar em uma das melhores do mundo.) #[15] 기사: 구단에서는 구체적인 액수를 밝히지 않았지만 60~80만 달러로 추정된다. #[16] 물론 새로운 팀으로 이적을 결정한 요인이 임금 체불만은 아니지만, 페네르바체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결정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건 맞다.[17] 누구든지 살아가면서 돈이 중요하겠지만, 연봉을 포함한 '선수에 대한 구단의 대우'는 실제로 많은 선수들의 계약, 이적에 큰 영향을 준다. '구단이 나를 이만큼 소중하게 생각한다'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고연봉자'란 선수로서 프라이드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며 실제로 60년대 NBA의 라이벌 윌트 체임벌린과 빌 러셀의 경우 서로 계약을 미루다가 윌트가 10만달러에 계약하자 러셀은 즉시 10만1달러에 계약한 적도 있다. 시카고 불스의 제리 크라우스가 수많은 선수들의 증오를 받은 것도 연봉을 후려쳤기 때문. 김연경이 '최고연봉자'란 타이틀을 스스로도, 주변에서도 계속 강조하는 것도 그녀가 최고연봉자=최강의 선수란 가장 와닿게 나타내는 수식어이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 그녀를 잡으려고 할 때 백지수표를 제시한 것도 그만큼 김연경을 소중히 한다는 제스쳐. 그런데 아무리 자금난에 허덕여도 연봉을 체불한다는 건 선수 입장에서 서운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18] 10번은 이미 오랫동안 엑자시바시에서 뛰어온 현재 팀의 주장인 미국 레프트 조던 라슨이 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