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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군밤의 왕/개변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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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시아2. 유럽
2.1. 프랑스2.2. 러시아 제국 → 소련(소비에트 자유국 연방)2.3. 대영제국2.4. 독일 제국2.5. 오스만 제국 → 이슬람 공화국2.6. 이탈리아 왕국2.7.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중유럽 합중국2.8. 스페인
3. 아메리카4. 아프리카
4.1. 콩고 자유국4.2. 트란스발 공화국4.3.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4.4. 모로코 술탄국4.5. 아샨티(가나)
5. 전세계

1. 아시아

1.1.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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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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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류큐 왕국

1.4. 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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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대남

1.6. 필리핀

1.7. 하와이 왕국

1.8. 이스라엘

1.9. 인도

1.10. 이란

2. 유럽

2.1. 프랑스

2.2. 러시아 제국 → 소련(소비에트 자유국 연방)

2.3. 대영제국

2.4. 독일 제국

2.5. 오스만 제국 → 이슬람 공화국

2.6. 이탈리아 왕국

2.7.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중유럽 합중국

2.8. 스페인

3. 아메리카

3.1. 미국

3.2. 베네수엘라

4. 아프리카

4.1. 콩고 자유국

4.2. 트란스발 공화국

4.3.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

4.4. 모로코 술탄국

4.5. 아샨티(가나)

5. 전세계


[1] 예를 들어 동양적 군신관계의 기본 전제인 충(忠)의 개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2] 말이 설득이지 사실상 유력가들과 연회에서 노는 거라 명예직이라 봐도 무방하다.[3] 베이징 대학의 초대 교장이다.[4] 1887년 미국인 및 미국계 하와이인들이 무장조직 '호놀룰루 소총대'로 칼라카우아 국왕을 협박해 제정한 헌법. 하와이 왕국은 입헌군주제 국가이며 비백인 주민들은 참정권이 없다고 명시했다.[5] '호놀룰루 소총대가 무엄한 생각 품지 못하도록 단단히 경고를 해 주라'는 어명을 '호놀룰루 소총대가 무엄한 생각 품지 못하게끔 하라'라고 잘못 번역했다.[6] 청불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 어뢰가 실전에 투입된 적이 없었다.[7] 초반에 전쟁의지를 잃어버린 이탈리아를 전쟁에서 이탈하지 못하게 하는 억지력으로도 활용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8] 코뮌 출신 회계사들이 호조 관원들에게 서양식 회계를 알려줬고 벨레가 참의대부에 당선된 소식은 프랑스 본토에서도 꽤 화제가 되었다고.[9] 원 역사에서와 같이 작중에서도 사돈관계가 되었는데 드레퓌스 대위와는 성만 같고 혈연 관계는 없는 랍비 명문가이다. 그런데 조선에선 이게 와전되어서 오페르트의 집안이 알프레드 드레퓌스의 집안과 사돈을 맺은 것처럼 알려져서 오지랖 넓은 조선인들이 볼 때마다 제 일처럼 걱정하다 못해 오페르트가 30년 동안 그렇게 바라던 사직이 이루어졌다.[10] 이 덕분에 원 역사에서 아나키스트에게 암살당한 프랑스 대통령 사디 카르노와 이탈리아 왕 움베르토 1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가 목숨을 건졌다.[11] 원 역사에서는 마르토프가 "여러 계층의 인물들이 참여하는 대중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12] 당연하다. 원 역사에서 레닌의 볼셰비키가 전위 정당론을 설파한 이유는 그나마 제국의회 출마 및 당선은 가능했던 독일과 달리 러시아에는 정치적 자유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피의 일요일 이후 두마 선거를 제한적으로 실시하기로 결정하자 레닌은 볼셰비키 원로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두마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정했고, 이들은 두마에서 당시 러시아 민중과 볼셰비키의 스피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즉 레닌에게 마르토프는 당시 러시아의 정세에 대한 이해도 없이 독일 사민당의 전례만 답습하자고 주장하던 교조주의자(그의 표현에 따르면 경제주의자)였던 것. 원 역사의 독일보다도 더 진전된 본 세계관의 러시아라면 레닌과 마르토프의 포지션이 바뀌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셈이며, 작가의 높은 이해도를 반증한다.[13] 독일의 빌헬름 2세가 의회에 자기 세력을 심어서 재미를 보는 걸 그와 교류하던 니콜라이도 알고 있었고, 영국과의 협상에서 협상카드로 쓰기 위해서기도 했다.[14] 즉, 위에 어느 무지렁이가 외친 "신께서 보우하시는 차르 폐하 아래의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로!"가 진짜로 실현됐다.(…)[15] 원 역사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외무 장관 언드라시 줄러가 제안한, 오스만 제국의 자유화를 통한 발칸 평화안을 담은 문서를 말한다.[16] 원 역사에서 OPDA, 오스만 공적 채무 관리국[17] 외부에서는 여전히 투르크나 터키, 조금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이름을 그대로 음독하여 알리예국이라고 부른다.[18] 헤자즈, 바그다드, 바스라, 요르단 강 연안 등은 하심 가문에게 맡겨 소련식으로 독립시켰고, 예루살렘 일대를 제외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은 유대 복지재단에 팔아 99년간의 장기상환을 통해 근대화 재원 마련의 수단으로 활용했으며, 이스탄불 정부에서 유지가 가능한 레반트와 모술은 종교의 자유와 자치권을 준 뒤 철저하게 장악했다.[19] 이에 대해 벨기에 정부처럼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뜯기고만 있을 뿐이라면 콩고인들에게 제대로 수혜가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니, '진심으로 백인의 의무를 믿고 있는 이상주의자들'이 달려가서 진심으로 콩고인들을 도왔으리라는 해석이 나왔다.[20] 정확히는 누가 공급했는지는 알고 있지만 쉬쉬하는 수준이다.[21] 중유럽 합중국[22] 대전쟁에서의 선전으로 유럽의 병자에서 중동의 패권국으로 거듭났다.[23] 거수기가 필요했던 영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24] 조선이 양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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