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강용흘 姜鏞訖 | Younghill Kang | |
출생 | 1898년 6월 5일 |
함경남도 홍원군 운학면 산양리 둔지마을 | |
사망 | 1972년 12월 2일 (향년 74세) |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헌팅턴 | |
국적 | [[대한제국| ]][[틀:국기| ]][[틀:국기| ]]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진주 강씨 (晉州 姜氏) |
직업 |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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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계 미국인 문학가.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성여(聲汝), 호는 초당(草堂)·백령초부(白嶺樵夫)이다.한국계 미국인 문학의 아버지(The father of Korean American literature)라는 별명이 있다.
2. 일생
1898년 6월 5일 함경남도 홍원군 운학면 산양리[1]# 둔지마을에서 진주 강씨 교리공파 26대손인 아버지 강신풍(姜信豊)과 어머니 청주 김씨의 외아들로 태어나 함흥영생중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독립을 위해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1921년에 캐나다로 건너가 잠시 달하우지 대학교(Dalhousie University)에서 수학하다 미국으로 건너갔다. 보스턴 대학교에서 의학,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미문학을 전공했다.하버드 졸업 이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취직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편찬 작업을 도왔다. 1928년 프랜시스 킬리(Frances Keeley)와 결혼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아내의 코치를 받아 영문학 작품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1931년에 첫 작품 ‘The Grass Roof(초당)’를 출간해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1932년에 구겐하임 상과 펠로에 뽑혔다. 하버드대 동문이자 뉴욕 대학교에서 함께 교편을 잡았던 친구 토마스 울프(Thomas Wolfe)가 그의 책 출간을 주선했다고 한다.
등단에 성공하면서 뉴욕 대학교 등에서 동양문화와 비교문학을 강의했고, 장편소설 The Happy Grove(행복한 숲, 1934), East Goes West(동양인이 본 서양, 1965)과 희곡 왕실에서의 살인(Murder in the Royal Palace, 1935) 등을 발표하였다. 그 외에도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아내 프랜시스 킬리와 함께 번역하는 등 한국 문학을 미국에 널리 알리고자 했다. 비문학 분야로는 영어교재와 미국사 저술을 남기기도 하였다.
미국 작가 펄 벅은 그를 '동방의 가장 빛나는 예지'라고 격찬한 바 있다.
1972년에 뉴욕 주 롱아일랜드 헌팅턴에서 타계했다.
3. 여담
- 미국에 거주하면서 민주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덕에 대한민국 초기 이승만 정부의 정치에 크게 실망해 ‘나쁜 경찰국가’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승만 정부는 권력을 이용해 그를 빨갱이로 비방했으며, 당시 미국의 매카시즘 속에 FBI의 집요한 사찰을 당하며 대학에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떠돌이 지식인으로 가난 속에 살았다. 그 때문에 생전에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교과서에도 올라간 적이 없다.
- 펄 벅의 소설 대지에서 왕룽이 이화를 돈으로 사서 첩으로 삼는 장면을 두고 '중국에는 이런 일이 없다'고 벅이 중국인의 도덕적 품성을 비하했다고 공격한 바 있다. 그러나 벅은 이에 대해 "'중국에서 만난 노부인들이 자신들이 실제로 겪은 일을 들려준 증언에 기반한 내용'으로 그저 '원론적인 도덕론을 내세워 분명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부정하려는 태도는 선교사들의 오리엔탈리즘적인 우월주의와 다를 바 없다'"고 밝혀 처참하게 역관광당했다.
강용흘이 이런 반응을 보인 건 당시만 해도 동아시아를 중국과 일본도 구별못하고 지금도 서구권에서 닌자가 중국 것인지 아는 이들도 여전히 많은 것처럼 그 때는 더했기 때문이다. 한국 옛날 이야기와 문화를 글로 써서 대중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미국 문학계에 알린 강용흘이었으니 《대지》에 담긴 중국인 이미지가 이웃 한국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여겼던 걸 우려했기에 이런 두둔을 했으나... 사실을 등한시한 결말은 좋지 못했다. 중국이나 한국의 유교적 도덕 원칙과는 별개로 실제로 최근까지 매매혼이나 축첩이 있던 것 자체는 부정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