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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12 01:26:04

제너럴 일렉트릭 TF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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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제너럴 일렉트릭 로고.svg 제너럴 일렉트릭의 항공기용 제트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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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2. 개요3. 관련 링크

1. 제원

명칭 길이
(m)
지름
(m)
자체중량
(kg)
최대추력
(lbf)
압축기
(LPC-HPC)
터빈
(HPT-LPT)
압축비 바이패스비 적용기종
TF39-GE-1 4.79 2.60 3,190 40,800 0-16 3-6 26.0 8.0 C-5A
TF39-GE-1C 43,000 C-5A/B/C[1][2]

2. 개요


General Electric TF39

1960년대미국제너럴 일렉트릭(GE)에서 개발한 터보팬 엔진. 미국 공군의 초대형 수송기C-5 갤럭시의 엔진으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며, 세계 최초의 고바이패스 터보팬 엔진이기도 하다.

1961년, 미국 공군은 기존의 수송기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인 "전략수송기(Strategic Airlifter)"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연구를 시작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당시 개발 중인 C-141 스타리프터에 대해서 미국 육군이 많은 불만을 표시했기 때문인데, 전차를 수송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고사하고 C-141 자체의 최대탑재중량에 도달하기도 전에 기내가 이미 꽉 차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즉, 육군의 입장에서는 기껏해야 M113 같은 장갑차나 병력의 수송 외에는 C-141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구석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것에 대한 해결책으로 동체의 면적을 옆으로 넓힌다거나 심지어 엔진을 6개까지 장착하는 방안[3]도 고려해봤지만 아예 새로 개발하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고, 결국 1963년 말부터 C-5 개발의 계기가 되는 "CX-X(Cargo Experimental)" 개발 계획이 시작되었다.

4개의 엔진, 80톤 가량의 최대적재중량, 기체의 앞/뒤로 모두 필요한 화물용 램프 등의 구체적인 컨셉이 나오자 CX-X 계획의 명칭은 "CX-HLS(Cargo Experimental-Heavy Logistics System)"로 변경된다. 1965년, 프랫 & 휘트니(P&W)는 이 거대한 수송기의 동력으로서 JTF14[4]라는 기술실증용 터보팬 엔진을 들고 나왔고 GE 역시 GE 1/6[5]이라는 엔진을 내밀었는데, 결국 GE가 이 경합에서 승리한 후 미 공군과 무려 4억 6천만 달러 규모의 초대형 계약을 체결, GE 1/6은 TF39라는 정식 명칭을 지닌 제품으로 개량되게 되었다. 1967년에는 B-52E의 우측 날개에 장착되어 최초로 하늘로 올라가는 경험을 했고, 이듬해인 1968년에는 C-5A의 첫 비행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어 미 공군에 납품되기 시작했다. TF39는 추후 상업용 엔진인 CF6로 개량되어 여객기 엔진 시장에서도 P&W의 JT9D와 경쟁했는데, 월등한 추력과 진보된 기술력으로 꼬박꼬박 P&W에게 찬물을 끼얹으며 곧 JT9D를 퇴물로(...) 만들어버렸다. 항공기 엔진 시장에서 가장 잘 나가던 P&W의 점유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이 이 무렵이었다. 이후로도 P&W는 영국롤스로이스 plc에게도 점유율 2위 자리를 내어주게 되는 등, 그 후유증을 현재까지도 겪고 있다.

해당 전략수송기 제작 입찰에는 록히드, 맥도넬 더글라스, 보잉 등 여러 쟁쟁한 항공기 제작사들이 입찰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항공기 제작사들이 마치 서로 담합을 한 것처럼 조종석이 화물칸 위에 위치해있다거나[6] 주익으로는 후퇴익, 수직미익으로는 T자형 수직미익이 적용되어 있는 등 설계안이 대부분 비슷했다는 것. 이후 최종적으로 채택된 설계안은 록히드의 설계안이었다. 당시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조지아주에 위치한 록히드의 공장이 C-141의 생산을 끝마치고 빈둥빈둥 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쟤들 손가락만 빨고 있으니까 좀 밀어주세"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록히드가 선택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7]

TF39는 바이패스비 8.0을 지닌 진정한 고바이패스 엔진으로 개발됐으며 운항 중 터빈의 강제 냉각이 가능했다. 기존의 주력 상품인 J79가 지닌 압축기 날개(Stator)의 각도를 변화시키는 기능은 그대로 유지시키는 한편 2축 구조(Double Spool)를 채택했으며, 현대적인 역추진 장치 덕분에 착륙거리를 획기적으로 단축시켜서 C-5의 작전 능력을 향상시켰다. 팬 블레이드가 추력 생성과 저압 압축기의 역할을 동시에 하며 흡기와 나란히 위치하는 독특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 이런 디자인은 이후 CF6 엔진에서 저압 압축기(LPC: Low Pressure Compressor)를 구동하는 저압 터빈(LPT: Low Pressure Turbine)이 신설됨으로서 크게 변하게 되었고, 타사의 엔진 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TF39 엔진은 최종 모델인 TF39-GE-1C이 1988년까지 생산된 것을 끝으로 단종되었다. 1,000 시간당 수리 비율(SVR : Shop Visit Rate)이 꼴랑 0.37회에 불과할 수준으로 신뢰성은 높았지만, 유지보수의 어려움과 추력 부족 등으로 인해 2000년 8월에 기존 C-5의 항전장비 업그레이드 및 엔진 교체를 목적으로 하는 C-5M 슈퍼 갤럭시 개량 사업이 결정되었다. TF39 자체로서는 C-5 외에 다른 항공기에 채택된 실적은 전혀 없지만, TF39의 개량형 엔진인 CF6가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GE의 위상까지 완전히 바꿔놓는 큰 업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2010년대 말, 미 공군의 모든 C-5 갤럭시가 C-5M 슈퍼 갤럭시 사양으로 개량되었으며, 엔진 또한 TF39의 개량형 엔진인 CF6로 모두 교체됨에 따라 기존의 TF39 엔진은 현역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TF39 엔진은 웬만한 전투기들보다도 더 크고 날카로운 특유의 엔진음으로 유명하다. 이 엔진음 때문에 C-5에 매료된 밀덕/항덕들도 의외로 많은 편. 그러나 상술했듯이 2010년대 말까지 모든 C-5가 C-5M 사양으로 개량되어 CF6 엔진을 장착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TF39 특유의 엔진음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3. 관련 링크

(영문 위키백과) General Electric TF39
[1] NASA에서 로켓 부품이나 인공위성 등을 수송하기 위해 특별히 개조 (SCM : Space Container Modification)된 형식으로 딱 2대만 보유하고 있었는데 NASA에서의 운용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미 공군으로 반납된 후에는 그냥 통상적인 임무에 사용됐는데 무려 1970년에 제작된 [age(1970-01-15)]년 묵은 기체이긴 하나 별로 빡세게 굴리지 않아 상태가 괜찮다고 판단했는지 2대 모두 2017년 C-5M 슈퍼 갤럭시로 개조가 완료되었다. 1968~1973년까지는 C-5A를 생산했다가 다시 1985~1989년 사이에 C-5B로 재개됐는데 C-5B 가운데 일부 상태가 안 좋은 기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C-5M으로 개조되었다. 그리고 2017년 9월 7일을 마지막으로 C-5A는 미 공군에서 완전히 퇴역했으며, TF39 엔진 또한 자연스럽게 현역에서 물러나게 되었다.[2] 록히드는 1973년 C-5A의 생산이 종료된 후 이란에 수출할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으나 1979년 호메이니이란 혁명 때문에 모든 것이 나가리가 되자 공장과 기체 생산에 필요한 기계와 연장 등을 그대로 대충 방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 미 공군이 군수물자 공수능력의 부족을 지적하며 스스로를 비판하자 록히드가 기골과 전자장비 등이 개량된 기체를 저렴하게 공급하겠다고 열심히 꼬시기 시작했고 결국 미국 정부가 이 꾀임에 넘어가게 된다. 이에 1982년 12월 약 50대를 새로 계약하게 됐고 정확히 3년 후 C-5B의 첫번째 기체가 미 공군에 전달됐는데 록히드는 계약된 물량의 납품이 끝난 후 더 필요하지 않으시냐고 했으나 미 공군은 C-17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C-5의 생산은 완전히 종료된다.[3] 엔진이 6개나 장착된 항공기는 후일 미국이 아닌 당시 소련에서 C-5 갤럭시보다도 더 큰 An-225 므리야를 개발하며 실존하게 되었지만, 이후 An-225는 2022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파괴당했다.[4] 훗날 JT9D로 발전하게 되는 엔진이다.[5] 이후 해당 엔진의 출력을 10,000 lbf 정도로 축소시킨 엔진이 TF34이다. 이후 TF34는 1960년대 후반, 미국 해군대잠초계기S-3 바이킹의 엔진으로 채택되었다.[6] 기체가 화물을 적재한 상태에서 불시착하거나 큰 충격을 받았을 때 조종실이 화물에 깔아뭉개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7] 여담으로 해당 전략수송기 사업에서 탈락하게 된 보잉은 자신들의 설계안을 살짝 변경하여 대형 여객기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는데, 이 변경된 설계안이 훗날 보잉 747로 발전하게 되며 항공우주 역사에 또다른 한 획을 긋게 되었다. 보잉 747-200의 화물형(F) 모델에서 시작된 특유의 화물 전용 기수부 도어는 이 전략수송기 설계안에서 나온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객기 시장에서는 쌍발기로 세대교체가 거의 완료된 현재까지도 화물기 시장에서는 여전히 보잉 747을 더 높이 평가하는 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