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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C 나폴리/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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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시즌 2011-12 | 2012-13 | 2014-15 | 2015-16] | 2016-17 | 2017-18 | 2018-19 | 2019-20 | 2020-21 | 2021-22 | 2022-23, 리그 | 2023-24
관련 인물 역대 감독 | 역대 주장 | 아우렐리오 데 라우렌티스 | 잔루카 그라바
문화 응원가
더비 매치 파일:AS 로마 로고.svg 데르비 델 솔레
구단 시설 경기장 스타디오 파르테노페오1930~1942 |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1959~현재
훈련 시설 SSC 나폴리 코나미 트레이닝 센터
기타 필마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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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SC 나폴리의 역사를 설명하는 문서

2. 창단

1905년에 이탈리아 남부리그의 한 팀으로 출발했으며, 1926년 당시 구단주였던 조르조 아스카렐리에 의해 AC 나폴리라는 이름으로 출발하게 된다. 하지만 아스카렐리가 1930년에 35세의 나이에 복막염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아스카렐리는 신축 구장을 단 2주 밖에 볼 수 없었다. 그의 사망 이후 나폴리 구단은 그의 이름을 홈구장에 붙여 기렸다. 하지만, 조르조 아스카렐리 구장은 2차 대전 때 폭격을 맞고 파괴되었고, 1959년부터 지금의 홈구장인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1]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1964년 어쏘시아치오네 칼초 나폴리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후 전성기는 세 번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처음은 디노 조프, 조세 알타피니, 오마르 시보리 등이 포진한 1960년대, 두 번째는 마라도나로 대표되는 1980년대 중후반[2], 그리고 데 라우렌티스가 클럽을 부활시킨 이후 카바니, 함식, 라베찌의 삼각편대에서 메르텐스, 카예혼, 인시녜로 이어지는 삼각편대의 시절인 2010년대이다.

3. 1980년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폴리는 루드 크롤을 위시하여 3위에 오르는 등 리그에서 꽤 경쟁력있는 팀이었으나, 1984년 승점 1점차로 겨우 강등을 모면하며 성적이 상당히 떨어졌다. 팀의 핵심인 크롤의 노쇠화가 원인이었는데 결국 1984년 6월 30일 나폴리는 당시 이적료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FC 바르셀로나로부터 디에고 마라도나를 영입했다. 또 치로 페라라, 살바토레 바그니 등의 가세로 점차 강력한 스쿼드를 구축하게 되었다.

세리에 데뷔 시즌에 전체 평점 1위를 기록하며 놀라운 기량을 보여준 마라도나였지만 팀의 성적은 8위에 그쳤다. 다음 시즌인 1985-86 시즌에는 비앙키 감독이 새로 부임하고 공격수 지오르다노와 골키퍼 가렐라, 리베로 레니카 등을 영입하며 보강을 마친 나폴리는 3위의 성적을 기록하였고, 1986-87 시즌에는 페르난도 데 나폴리 등을 영입하며 더욱 스쿼드의 질을 향상시켰다. 결국 이러한 스쿼드 강화는 효과를 보았고, 1987년 5월 역사적인 첫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3] 이 트로피의 주인공은 단연 디에고 마라도나였고, 미셸 플라티니, 마르코 판바스턴, 로타어 마테우스, 지쿠 등을 제치고 리그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나폴리 사람들에게 단순히 축구 선수가 아닌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종교적 아이콘으로 등극하게 된다.

1988-89 시즌에는 지난 시즌 리그 준우승 자격으로 출전한 UEFA컵에서 유벤투스 FC, FC 바이에른 뮌헨을 차례로 꺾은 뒤 결승에서 독일의 VfB 슈투트가르트를 상대로 난타전 끝에 승리하며 첫 유럽 무대 타이틀을 획득한다. 이듬해 나폴리는 전설적인 감독 아리고 사키가 팀을 이끌고 오렌지 삼총사를 보유한 AC 밀란을 승점 2점차로 따돌리며 다시 스쿠데토[4]를 차지한다. 이 시즌에는 리그 16골을 기록한 마라도나도 대단했지만 브라질 대표팀의 카레카와 중원에는 페르난도 데나폴리, 수비에는 치로 페라라 등 걸출한 팀 동료들의 지원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4. 1990년대~2000년대

그러나 1991년 AS 바리와의 경기 이후 실시된 도핑 테스트에서 마라도나가 코카인 양성반응을 보였고 15개월 정지 처분을 받았다. 1991-92 시즌을 마라도나 없이 치르게 된 나폴리는 지안프랑코 졸라의 활약으로 4위에 올랐으나 결국 마라도나는 나폴리를 떠나게 된다. 마라도나가 떠난 나폴리는 더 이상 우승을 바라볼만한 전력을 갖추지 못하게 되었고 중위권 정도의 성적에 머무르게 된다. 여기에 나폴리의 펠라이노 회장이 정치권과 관련된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나폴리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빚을 갚기 위해 지안프랑코 졸라, 파비오 칸나바로, 치로 페라라 등 주요 선수들을 내다 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폴리는 1997-98 시즌 단 2승만을 거두며 승점 14점 최하위로 강등당하고 만다.

2년 뒤 나폴리는 세리에 A에 승격하는데 성공하지만 공동 구단주 조르지오 코르벨리가 승격을 이끈 왈테르 노벨리노 감독을 자르고 즈데넥 제만 감독을 선임하면서 다시 꼬이기 시작했다. 제만은 단 6경기만에 경질되었고 그 중 단 한 경기도 승리하지 못했다. 이후 에밀리아노 몬도니코 감독을 선임했으나 다시 강등되고 만다. 2002년 구단주 코르벨리가 미디어 스캔들에 연루되어 체포되었으며 결국 2004년 8월 7000만 유로의 부채를 안고 파산을 선고받는다.[5] 팀은 세리에 C로 떨어졌으며 숨통이 끊긴 듯했다.

그러나 아무리 암울한 상황에도 한줄기 빛은 있다고, 유명 영화제작자[6]이자 나폴리의 오랜 팬이었던[7] 아우렐리오 데 라우렌티스가 3900만 유로에 나폴리를 인수하면서 대대적인 개혁과 투자가 시작된다. 그는 팬들에게 5년 이내에 나폴리를 1부 리그에 올려놓고, 그 후 5년 내에는 나폴리를 우승 경쟁을 다투는 팀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팬들은 5만 명 이상 운집하며 화답했고, 세리에 C 최다 관중 동원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는 첫 약속을 3년만에 달성시켰는데, 2007년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복귀시켰다.[8] 승격 직후 나폴리는 어렵사리 두 명의 선수를 데려온다. 팬들은 이에 반발하며 구단 사무실 앞에서 시위까지 벌였으나, 이날 데려온 마렉 함식에세키엘 라베시는 나폴리의 핵심 선수로 성장하면서 팀을 이끌어갔다. 2009-10 시즌에는 나폴리에서 태어난 파비오 콸리아렐라를 영입했으나 2010-11 시즌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유벤투스 FC로 이적시키면서 팬들의 원성을 샀다. 엘프스보리와의 유로파 리그 경기에서 이적이 확정된 콸리아렐라가 벤치에 앉아 있었고 대체자로 데려온 에딘손 카바니가 뛰었는데, 이날 카바니는 멀티골을 넣으며 팬들의 야유를 환호로 바꿔버렸다. 카바니는 2010-11 시즌 총 33골을 넣으며 함식과 더불어 세리에 올해의 팀에 선정되며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거듭났다.

5. 2010년대 이후

성공적이었던 2010-11 시즌을 마치고 나폴리는 끊임없이 이적설이 나돌던 함식, 라베찌, 카바니를 지키는데 성공하고, 우디네세에서 검증된 미드필더 괴칸 인러를 영입해 미들진 보강을 이뤄냈다. 또 블레림 제마일리, 마리오 산타나 등 즉시전력감 선수들을 영입하며 얇았던 스쿼드를 보강했으며 인테르에서 고란 판데프를 임대영입했다.

2011-12 시즌은 챔피언스 리그에서 나폴리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시즌이었다. 죽음의 조[9]에 속했지만 맨시티를 탈락시키면서 3승 2무 1패로 16강에 당당히 진출했다. 이어진 16강 1차전 첼시와의 경기에서 파올로 칸나바로의 실수로 마타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라베찌의 동점골과 카바니의 역전골에 이어 라베찌가 쐐기골을 넣으며 3:1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2차전에선 연장전까지 가서 4:1로 패하면서 첼시에게 8강행을 넘겨줬다. 그러나 이 당시 나폴리의 돌풍같은 활약은 많은 해외축구팬들에게 나폴리라는 클럽의 가능성을 유럽에 알린 계기가 되었다.[10] 반면 리그에서는 작년같은 포스가 나오지 않아서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 바깥에서 헤매다가 5위로 마무리하면서 UEFA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얻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나마 25년만에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하면서 1990년 스쿠데토 이후 무려 22년만에 무관에서 벗어났다. 무엇보다 리그 무패 우승을 거두고 코파 이탈리아도 무패행진을 달리며 더블을 노리던 유벤투스 FC를 상대로 2:0으로 승리해서 그 의미가 더 컸다.

이후 나폴리는 2012-13 시즌 리그 준우승, 2013-14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등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세리에 A의 강호로 다시금 자리잡았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시즌별 링크 참조.

5.1. 2011-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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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12-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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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2013-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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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2014-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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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2015-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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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2016-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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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2017-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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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2018-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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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2019-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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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20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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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 2021-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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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2022-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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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 2023-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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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이름은 스타디오 산 파올로[2] 이때를 최전성기라고 보면 된다. 리그 우승 2번과 코파 이탈리아, UEFA컵 등 굵직한 대회에서 잇따라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3] 1970년 칼리아리 칼초의 스쿠데토를 제외하면 로마 이남 지역에서 스쿠데토를 따낸 팀은 나폴리가 처음이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북부 동맹이 정권을 쥐고 있었으며 그들의 남부 지방에 대한 차별 속에서 따낸 나폴리의 스쿠데토는 단순히 축구에서의 성공이 아닌 정치·사회적으로 상징적인 반항 행위라고 할 수 있었다.[4] 첫 스쿠데토 후 2년 연속 준우승을 했는데 당시 우승팀은 1987-88 밀란, 1988-89 인테르.[5] 이때 클럽명인 S.S.C. 나폴리 사용금지 처분을 받는다. 후술된 데 라우렌티스가 구단을 인수해 '나폴리 사커'로 재창단해서 2006년 5월에 파산 이전까지의 S.S.C. 나폴리로 복원시켰다.[6]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영화제작사인 필마우로의 소유주[7] 출생지는 로마이지만, 집안이 나폴리 출신[8] 복귀하는 과정이 상당히 드라마틱한데, 나폴리는 당시 2위를 달리고 있었고 마지막 경기인 제노아 CFC와 비기기만 해도 자력승격이 가능했다. 제노아 또한 승격을 노리는 팀이었기에 팽팽한 경기가 이어지다가 경기 종료 몇 분을 남기고 당시 4위였던 피아첸차가 비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나폴리와 제노아의 스코어는 0-0으로, 이대로 끝나면 두 팀 모두 승격할 수 있었다. 팬들은 경기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다. 심판이 간신히 사태를 진정시키고 경기를 속행했지만, 선수들의 유니폼은 경기장에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결국 선수들은 근처에 있던 유니폼을 아무거나 주워입었고 이들은 각각 팀 동료의 유니폼을 입은 채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 경기 이후 나폴리와 제노아 서포터들은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9] 뮌헨, 맨시티, 비야레알과 한 조가 되었다.[10] 삼각편대가 유럽에 이름을 알린 것도 이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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