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Light Helicopter(KLH) / 한국형 경헬기사업
1. 설명
KLH 사업의 최초 시작은 1988년으로, 이 당시 대한민국 육군은 AH-1S 코브라 공격헬기를 도입하자 이를 위한 스카웃헬기인 경헬기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미 경헬기로 500MD가 있었으나 500MD는 체급의 한계로인해 스카웃헬기의 필수 장비인 센서류나 표적 지시용 장비가 거의 없었으므로 경공격헬기/경량 다목적헬기로서는 효율적이었으나 스카웃헬기로서는 한계가 있었다.[1] 또한 KLH는 기존 도입후 이런저런 이유로 손실한 500MD를 대체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500MD가 맡던 경공격/경다목적 헬기의 역할도 함께 맡을 전망이었다.KLH 사업의 사업방식은 기술도입에 의한 생산으로 정해졌으며, 스카웃 헬기 뿐만 아니라 500MD 대체등을 고려하여 사업초기 소요량은 총 147대, 예산은 당시 기준으로 3천억원 규모의 사업으로 진행되었다.
이에 후보기종으로 대한항공/맥도널 더글라스의 500MD 개량안인 520MK, 대우중공업/MBB의 Bo-105, 삼미아구스트항공/아구스트의 A109, 벨의 OH-58 등이 제안되었으나, 520MK는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작되고 후보기종들끼리 경쟁을 하기도 전에 일찍 제시되었다가 광탈하고, OH-58 역시 성능 미달을 이유로 탈락하는 등 1989년 12월 A109와 Bo-105가 후보기종으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1990년 7월, 통상부가 율곡사업의 일환인 군항공기 8대 사업을 항공 4사에 배분하였다. 이 중 KLH는 대우중공업에 배분되어 어떤 헬기가 선정되든 생산을 대우중공업에서 하도록 결정되자 삼미항공이 항공사업을 포기하여, 대우중공업이 주계약자가 되어 KLH의 면허생산을 담당하기로 결정하였다. 1991년에는 면허생산으로 도입방식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1992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실시한 현지 실제 성능 검증에서 당시 검토중이던 후보기종으로는 군의 요구성능(특히 표적 조준장비와 항속거리 및 측배풍 능력, 성능개량 등)에 미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소요 역시 지속적으로 줄어 사업 초기에 147대였던 소요는 1990년 106대, 1992년 3월 86대를 거쳐 1992년 12월에는 54대까지 줄어들었다. 이러한 소요 감소의 원인은 크게 3가지로, 각각 정찰헬기를 운용할 공격헬기 대대의 축소, 각 공격헬기 대대별로 필요한 정찰헬기 편성 감소, 그리고 교육용 및 M/F 소요의 삭제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 1993년 국방부는 KLH 사업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 결과 사업방식을 해외업체와의 기술협력을 통한 공동개발으로 변경하는 새로운 방안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 계획안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공동개발에는 7~10년의 개발 기간이 걸리므로 당장 필요한 AH-1용 정찰헬기 36대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문제였다. 이에 군은 36대의 정찰헬기를 긴급수요물량으로 해외에서 직도입하고, 나머지 물량은 해외업체와의 공동개발을 통해 해결하는 안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사업방식이 변경되면 주계약자도 변경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삼성항공과 대한한공은 기대감 속에 자신들이야말로 공동개발에 적합하다고 이런저런 근거를 들어 어필하였다. 반면 이미 주계약자로 결정난 대우중공업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 되어 바로 대응에 나섰다. 대우중공업이 원하는 상황은 사업방식이 변경되지 않고 그대로 54대 소요를 지켜내는 것이었고, 설사 소요가 축소되더라도 주계약자 자리는 유지하려고 하였다. 심지어 도입수량이 최초 예상된 130대 수준에서 17~36대 수준으로 축소되어도 최초 130대 기준으로 제안한 대당 가격을 유지하겠다고 언급하기까지 하였다. # 또한 사업방식이 변경될 경우를 대비해 설사 변경 되더라도 통상부의 사업 분배에 따라 자신들이 생산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또한 차후 공동개발 방식의 사업에 대해 사업계획을 미리 준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결국 1994년 KLH 사업은 정찰헬기 긴급소요 36대로 조정되었다. 그리고 500MD 대체 용도의 헬기 공동개발안은 상공자원부에서 추진중이던 국산 다목적 헬기 개발과 맞아떨어지면서 1995년 KMH 사업으로 확정되었다. KMH 사업의 목표는 더이상 KLH의 정찰헬기 소요가 아니라, 기존에 보유한 250여대의 500MD 교체는 물론 UH-1과 AH-1S의 임무도 일부 소화할 수 있는 신형 다목적 헬기사업이었다.
그러나 1995년 시작된 KMH 사업에 응모한 국내 항공업체들은 바로 얼마전까지 KLH 사업만 준비해온 까닭에 KMH 사업에 응모하면서도 정작 제안하는 헬기는 하나같이 KLH용에 적합한 소형헬기들 뿐이었으며, 이 때문에 아예 KMH는 관두고 KLH 사업을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2]
그러나 군의 입장은 이미 KLH 보다는 KMH 쪽으로 기울었던 상태였기에 군은 아예 KLH 사업을 축소하거나, 심지어 아예 취소해버리고 KMH 사업을 진행하는 쪽을 원하였다.[3] 그러나 합참에서는 헬기의 성능을 군의 요구에 맞추는게 아니라 군의 요구성능을 헬기에 맞추는 식으로 억지로 ROC를 조정하면서까지 사업을 강행하였다. 심지어 이러한 ROC 축소 뒤인 1996년에 이뤄진 3차 성능평가에서 비무장시에는 전투용 사용이 가능이라는 평가가 나자, 한달만에 바로 ROC를 비무장 헬기로 수정하기까지 하였다.
한편 대우중공업은 어떻게든 KLH 물량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썼다. 심지어 이양호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1억 5천만원의 뇌물을 건네기까지 했다가, 이후 검찰이 이양호 전 국방장관을 구속하기까지 하였다. 뇌물을 건넨 사건이 드러난 뒤에도 대우중공업은 브로커에세 사기를 당했을 뿐이라며 자신들이 사업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결국 1997년 5월 KLH 후보기종에 대해 전투용 사용가 판정이 내려졌고, 11월 국방부 획득협의회에서는 A109와 Bo-105를 두고 표결을 한 결과 Bo-105 12대를 직도입 2대, 국내 면허생산 10대로 도입하는 것으로 KLH 사업이 최종 결정되었다.
KLH 12대는 기존 운용하던 한국공군의 AH-1과 함께 작전할 스카웃 헬기로서 최소한의 수량이었으며, 이후 군은 차기에는 정찰헬기 대신 UAV 등으로 전선 정찰/스카웃 임무를 대신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품고 KMH 사업을 확대해나갔다. 이러한 미래 전망은 국군 뿐만 아니라 미국 및 서방 몇몇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예상한 점이었는데, 현실은... 눈물.[4]
현재 UAV 만으로 스카웃 헬기를 대체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였기에 결국 KLH 사업의 후속격이라 할 수 있는 한국형 경공격헬기 사업, 즉 LAH 사업이 진행중이다. KLH 사업당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면허생산은 아니고 국내 개발이란 점. 어찌보면 95년 당시의 KMH 사업과 유사한 형태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헬리콥터 개발 사업 | |||||||
연도 | 사업명 | 최대 이륙중량 | 형상 | 사업방식 | 생산규모 | 결과 | |
1988 | KLH 한국형 경헬기 | 6,000 lbs | 소형 정찰 헬기 | 해외 모델 면허 생산 | 약 130대 | Bo 105 12대 면허생산 KMH 95로 대치 | |
1995 | KMH 95 한국형 다목적 헬기 | 8,000 lbs | 다목적 헬기 | 고유 모델 국내 개발 | 약 200대 | KMH 01로 대치 | |
2001 | KMH 01 한국형 다목적 헬기 | 13,000 lbs →15,000 lbs | 기동형/공격형 (동시 개발) | 고유 모델 국내 개발 | 약 500대 | KHP로 대치 | |
2004 | KHP 한국형 헬기 사업 | 기동형 19,000 lbs 무장형 10,000 lbs | 기동형/무장형 (순차 개발) | 해외 모델 한국화 | 약 500대 | H215 → 기동형 KUH-1 수리온 H155 → 무장형 LAH |
2. KLH 사업 연표[5]
- 88. 4월 : 육군이 합참에 경전투 헬기 147대 소요 제기
- 89. 12월 : 무기체계 후보 선정(이탈리아 A109, 독일 Bo-105)
- 90. 7월 : 주계약업체로 대우중공업 선정
- 90. 10월 : 소요 대수가 106대로 감소(500MD 부족분 소요 제거 됨)
- 91. 3월 : 획득방법으로 기술도입 생산(면허생산) 결정
- 92. 1~2월 : 이탈리아, 독일, 미국 등에서 대상기종 시험평가하였으며 후보기종들은 항속거리 미달, 표적획득지시기 비실용화로 ROC 미달.
- 92. 6월 : 소요 대수가 86대로 감소
- 92. 12월 : 소요 대수가 54대로 감소
- 94. 4월 : AH-X 사업 불투명으로 소요 대수가 36대로 감소
- 94. 11월 : 2차 시험평가 결과 보고되었으며 장비 신뢰성 입증 곤란
- 95. 11월 : 정찰헬기 소요를 소형 다목적헬기(향후 KMH가 됨)에 통합추진 건의
- 96. 1월 : 국방부 KLH 소요 재검토 지시하였으며 ADD는 Bo-105와 A109 모두에 대하여 ROC 미달이라 보고 하였고 KIDA는 36대만으로 비용대 효과면에서 면허생산이 경제성이 없다고 보고
- 96. 2월 : 육군이 국방부에 KLH 사업 삭제 요청
- 96. 4월 : 3차 시험평가 결과보고되었으며 대상장비가 비무장시에 한하여 전투사용이 가능하고 무장시에는 ROC의 항속거리를 충족할 수 없어 조군부 전투적합可 판정.
- 96. 5월 : 소형정찰헬기 ROC 수정여부 검토 회의 결과 ROC 항목의 항속거리를 적정수준으로 하향조정, 육군에서 ROC 수정건의토록 의결
- 97. 11월 : KLH 사업 Bo-105 12대 면허생산으로 최종 결정
3. 관련 항목
- 한성 ILS 월드콥터 - 국산 민간헬기
- 대한민국 국군/장비
[1] 때문에 개발국인 미국에서는 아무대나 전개할수있는 크기, 조용한 소음을 이용한 특수부대의 침투용도나 화력지원용도로 주로 사용했고 정찰의 경우 OH-58이 담당하게했다. 500MD계열이 제대로된 정찰장비를 탑재하게된것은 KLH사업이 이미 엉망이된지 수십년이 지난뒤 멕도넬더글라스조차 보잉에게 합병된후 보잉이 개량형인 AH-6i를 내놓고 나서야 탑재되었다.[2] 최우영, 한국 항공기 산업의 발전 과정과 현황, 한국항공우주산업 기술동향 9권1호(2011)[3] 과거 군사잡지 등에서는 국내 업체들이 KMH 사업을 위한 로비를 하여 KLH 사업이 위협 받았다고 언급되어있으나 실은 군과 국방과학연구소가 KLH 사업을 줄인 셈이다. 오히려 주계약자인 대우중공업이 각종 로비와 뇌물 살포를 강력하게 진행하였다.[4] 이런 식으로 전망이 빗나가 사업이 꼬인 것이 FX 1차 사업이다. F-35가 금방이라도 출고될 것 같은 환상에 빠져서 F-15는 징검다리로 생각했다. 원래 장기 계획은 KF-16면허생산 종료 후 KF-15 면허생산이었지만 IMF로 잊혀져 있었는데, F-35가 금방 나올 것 같으니 F-15먼허생산은 완전히 폐기되었고 F-35를 2000년대 중반에 도입하고 그 전에 F-15 40대를 사기로 하고는 추가구매 옵션계약(그랬으면 협상력도 향상되고 추가구매시 단가인상도 억제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평이다)도 없이 결정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F-35는 2010년이 될 때까지....[5] 96년 내용까지는 1996년 국회보고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