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1984년 오하이오 미들타운에서 태어났다. 유아 시절 부모가 이혼하며 부친은 새 가정을 꾸렸고 모친과 의붓아버지 사이에서 자랐다. 이후 모친은 이혼 뒤 남자 문제와 자살 기도, 마약 중독, 가정폭력 등의 문제를 일으킴에 따라 집 근처에 거주하고 있던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한다.[1]그런데 이 할머니 또한 할아버지 생전에 부부싸움을 하다가 화가 나면 남편한테 휘발유까지 뿌려댈 정도로 한 성깔하는 노파였고, 이웃집이나 건넛집 사람들로부터 소문난 욕쟁이, 말싸움에서는 이길 사람이 없을 정도로 기가 드셌다고 하지만 밴스의 정신적 지주였던 동시에 학업에 열중하라는 용기를 준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덕분에 이 지역에서는 이례적으로 대학교에 가고 싶은 꿈을 가지게 된 밴스는 일단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해병대에 입대해서 6개월 가량의 이라크 전쟁[2] 파병을 포함하여 5년간 사병으로 복무한다. 전략적 사고법과 규칙적인 생활법, 어른으로서의 삶 등 해병대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복무를 마친 뒤 2007년에는 제대군인원호법[3]의 혜택을 받아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 입학했으며, 2009년 정치학과 철학 학사 과정을 마쳤다.[4] 재학 당시 공화당 소속 오하이오 상원의원이었던 밥 슐러의 의사당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후 2010년 예일 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해 예일 법률 저널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재학 당시 교수[5]의 권유로 회고록인 힐빌리의 노래를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2. 경력
2013년 졸업 이후에는 공화당 상원의원인 존 코닌의 오피스, 켄터키동부지방법원 판사였던 데이비드 버닝 밑에서 재판연구원, 시들리 오스틴이라는 로펌[6] 등에서 근무하며 법조인으로 활동했다.2016년에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여 피터 틸의 미스릴 캐피털에서 근무하며 벤처투자자로 활동했다. 동년도 6월 출간된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작가로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덕분에 CNN에서 기고문을 올리기도 했으며, 해당 서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론 하워드에 의해 영상화되었다. 러스트 벨트에서 살아가는 백인의 삶을 적나라하게 서술하여, 아무도 예상치 못한 도널드 트럼프의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승리 배경을 이해하기 좋은 책으로 평가받는다.
2016년부터 공화당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도널드 트럼프를 반대하며 에반 맥멀린 후보 지지를 표명했었다. 트럼프 후보에 대하여 '미국의 히틀러', '바보', '문화적 헤로인' 등으로 부르며 조롱했다.####
2017년 미스릴을 떠나 레볼루션 LLC라는 벤처캐피털에 합류했다. 또한 고향인 오하이오로 이주한 뒤 비영리 사회복지재단인 아워 오하이오 리뉴얼을 설립하여, 본인이 사회적 질병이라고 간주하는 분야를 개선하는 활동을 했다.
2018년 1월에 2018년 미국 중간선거에 셰러드 브라운 연방상원의원의 대항마로 출마한다고 선언했다가 9일만에 철회했다.
2018년 2월에 파이낸셜 타임스와 인터뷰를 했는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동부 켄터키와 같은 지역들에서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미국민들의 좌절을 인식하는 몇안되는 정치인으로 언급하며 이전보다 트럼프에 대해 우호적인 스탠스로 바뀌었다.#
2019년, 피터 틸을 비롯하여 에릭 슈밋, 마크 앤드리슨 등의 벤처투자자들로부터 수천만 달러 투자를 유치하며 나르야 캐피털이라는 벤처캐피털을 설립했다. 대표적인 투자 사례로는 우성향 동영상 플랫폼인 Rumble이 있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재선을 지지했다. #
3. 연방 상원의원
2021년 1월 25일에 오하이오 연방상원 롭 포트먼 의원이 정계은퇴를 선언하였고 2021년 2월 밴스가 연방상원 출마선언을 했다. 그리고 직장 상사이자 투자자였던 피터 틸[7]이 천만 달러 규모의 수퍼팩을 출범시켜서 밴스를 지원사격했다. 데이비드 삭스도 90만 달러를 후원했으며,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로버트 머서도 후원금을 보탰다.2021년 5월에는 선대위를 꾸리고 2021년 7월에는 틸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의 마라라고 리조트에 찾아가서 2016년의 행적을 공식 사과한 뒤에 선관위에 후보등록을 했다.
2022년 4월에 트럼프가 밴스를 지지했으며 5월에 오하이오 재무장관 출신 조시 맨델, 현직 주상원의원 래리 돌런 후보 등을 제치고 32% 득표율로 공천을 받는 데에 성공했다. 밴스를 기회주의자로 여기던 트럼피스트들이 트럼프의 지지선언 이후 밴스 후보를 밀었기 때문이다.
2022년 11월 본선에서는 연방 하원의원 출신 팀 라이언 후보에 맞서 53%가 넘게 득표하여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임기 기간동안 인슐린 가격 인하, 미성년자 성별 확인 치료 중범죄화 등의 법안을 다뤘다. 또한 민주당의 2023년 미국부채한도 상향안에 반대했다.
4.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후보 중 하나로 여겨졌다.# 발표를 앞둔 상황에서 도박사들 사이에서는 더그 버검을 제치고 가장 유력한 후보로 지명되고 있었다.#2024년 7월 15일,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됐다. 1952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러닝메이트였던 리처드 닉슨 이후 최연소 부통령 후보이고, 당선 시 미국 역사상 세 번째[8]로 젊은 부통령이 된다.
밴스를 러닝메이트로 택한 데에는 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에릭 트럼프의 설득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밴스가 러스트 벨트 지역인 오하이오 빈민층 출신이란 점을 고려할 때 인접한 주요 격전지역인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에서의 승리에 필수적인 백인 노동층 유권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트럼프를 설득했다. 또 밴스 후보의 아내 우샤 밴스가 인도계 이민자의 자녀라는 점을 들어 소수계 유권자들에게도 호소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젊은 나이로 인해 트럼프의 고령 리스크 비판을 방어해낼 수 있으며 빈곤층 출신의 자수성가형 인물이라는 점에서 백인 표심을 결집시키기 용이하다. 벤처투자자 출신이었으며 피터 틸 등 페이팔 마피아와의 커넥션이 상당하기 때문에 자금줄을 끌어오기 용이하기도 한데, 실제로 일론 머스크와 데이비드 삭스, 터커 칼슨 등의 로비 활동이 밴스의 러닝메이트 지명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보도도 존재한다.
하지만 밴스 후보가 반트럼프에서 친트럼프로 180도 전향한 점, 상원의원이 된 지 2년도 안 된 신인인데도 벌써 부통령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맡게 된 점, 그리고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외교적 매파 성향이라는 점이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데일리 비스트의 기사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
7월 17일,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하면서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정치를 해서[9] 나라를 망친 사람이라고 조 바이든을 직격했다. 자신의 생애와 바이든의 정치행적을 일일이 비교[10]하며 바이든을 비판했다.#
그런데 오히려 과거 SNS 등을 통해 남긴 여러 발언들, 그리고 프로젝트 2025와의 관계 등 논란이 터지면서 오히려 트럼프 캠페인의 리스크가 되고 있다는 후문이 나온다. 특히나 민주당 대선 후보가 바이든 대통령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으로 교체되면서 여성, 유색인종이 다시 민주당 쪽으로 결집하면서 양 진영 지지율 격차가 다시 좁혀지자 뉴스위크 보도를 통해 트럼프가 밴스의 부통령 후보 지명을 후회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으나, 트럼프는 이를 강력하게 부정했다.
그러나 팀 월즈와의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는 평가가 크게 반등했다. 긴 시간 차분하게 자기 의견을 설명하고, 월즈가 본인의 자녀가 직접 총기난사를 목격했다는 발언을 하자 진지하게 유감을 표명하고 이어가는 등 토론의 태도는 훌륭했다는 평가가 많다.
11월 5일,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해리스를 누르고 당선되며 부통령 당선인이 됐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결과만 보면 밴스를 부통령으로 지명한 것은 분명한 이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2024년 미국 상원의원 선거에서 그의 고향인 오하이오의 현역 민주당 상원의원 셰러드 브라운의 인기가 높고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후보인 버니 모레노가 본선 경쟁력에서 부족한 것으로 보여서 탈환이 난망해 보였음에도 예상을 뒤집고 승리해서 최소한 상원에서 52:48의 다수당 지위를 보장받았기 때문이다.[11] 민주당이 부통령 후보 팀 월즈의 본진인 미네소타에서 2020년보다 못한 성적을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5. 부통령
[1] 밴스의 조부모는 10대 시절 독립하며 켄터키 잭슨에서 일자리를 구하러 오하이오로 넘어왔으며, 빈곤을 벗어나 중산층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자서전에 의하면 간호사 일을 하던 밴스의 모친과 트럭운전수인 의붓아버지의 소득합계는 10만 달러를 넘길 정도로 풍족했으나, 과소비 문제와 거듭된 이혼 등으로 인해 재정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2] 다만 실전 투입 대신 공보 업무를 맡았다.[3] G. I. Bill. 1944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행정부 당시 제정되었다.[4] 외교 정책 과목의 세미나에서 한 학생이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을 무지성적으로 폄훼하는 주장을 들은 뒤 대학교 생활에 염증을 느끼며 조기 졸업을 결심하여, 1년 11개월만에 복수학위로 졸업했다고 한다.[5] 국내에서도 '타이거 맘' 열풍으로 유명한 에이미 추아(Amy Chua) 교수이며, 출판 과정 외에도 직군에 따른 특정 경력의 중요성과 인간관계 우선순위 등 힐빌리의 노래에서는 그녀를 언급하며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타이거 맘은 에이미 추아가 미국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자녀의 자아 표현과 개성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서구식 양육법보다 학업적 성취를 우선시하는 중국식 양육법을 우선시하며 내세운 용어다.[6] 미국 톱10 대형 로펌 중 한 곳이며, 과거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가 근무한 바 있다. 하버드 로스쿨 출신으로 시들리 오스틴의 변호사이던 미셸과 하버드 로스쿨 재학생으로 인턴을 나온 오바마가 이곳에서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7]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의장.[8] 미국 최연소 부통령은 만 36세에 취임한 존 브레킨리지이고, 두 번째로 젊은 부통령은 만 40세 11일에 취임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다.[9] 조 바이든은 84년생 밴스가 태어나기 14년 전인 1970년부터 정치를 해왔다.[10] 예를 들어 자신이 4학년일 때(1993년) 바이든이 NAFTA을 지지해서 미국인의 일자리를 멕시코로 보내버렸다던지, 고3 때(2003년) 이라크전을 지지해서 미국을 재앙 속으로 보냈다던지.[11] 어차피 이번 선거에서는 공화당이 강세 지역인 몬태나, 웨스트버지니아의 의석을 탈환해서 51:49로 상원 다수당이 될 것이 거의 확실시 됐지만, 대선에 승리한 지금은 1석을 더 얻는 것의 의미가 남달라졌다. 공화당 상원의원들 중 반 트럼프 인사인 수전 콜린스, 리사 머카우스키가 반대표를 던져도 50:50이라 부통령이자 상원의장이 될 밴스가 Tie-Breaker로 찬성표를 던져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