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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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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활동3. 회사 설립 이후4. 선거 이력5. 논란6. 앨범 목록7. 소속 정당

1. 개요

1981년 9월 25일생([age(1981-09-25)]세)으로 본명은 김원종. 래퍼이자 프로듀서 겸 현재는 폐교한 한국 콘서바토리 뮤직 프로덕션과 학과장이었다. 현재 한양대학교 사회교육원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 활동

통칭 Deegie, 데뷔 초기에는 Insane Deegie나 Tequila Addicted[1]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음지에서 활동했을 때는 DG.esq라는 이름을 쓰고 이외에도 있는 등 이름을 상당히 많이 썼으나 본인 내키는 대로 바꿔댄 것이라 큰 의미는 없다. 2008년 정식 컴백 이후에는 대강 김디지란 이름을 사용 중이며 무브먼트 크루의 멤버이자 특유의 똘끼와 재즈식 힙합에 소질이 많은 천재형 프로듀서로 많이 알려져있다.

실용음악과의 영향인지 재즈풍이 들어간 힙합을 추구하며 정규 2집에서는 오케스트라풍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스스로의 랩을 저질 랩으로 규정하며 실제로 랩을 못하는 대신 가사 전달성과 작곡, 프로듀서, 엔지니어에 집중하고 있고 일단 재즈에 대한 넓은 지식과 프로듀서로서의 자질은 타고났다고 평가받고 있다. [2]

그런데 가사의 경우 문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보면 가사를 잘 쓴다고 하기엔 좀 그렇다. 사회 비판한다고 쓰는 가사도 뭔가 욕설로 도배해 놓긴 했는데 뜯어보면 그냥 당연하고 막연한 가사로 점철돼 있는, '없어보이는 컨셔스랩'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다. 2015년에 내놓은 'Insane.D Deegie 3 (The Orchestra)'의 수록곡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가사를 보면 그냥 총체적 난국이다.

얀키와 함께 무브먼트 크루의 대표적인 금수저 힙합퍼중 한 명이다.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 유학을 많이 다녔다. 한국에 있을 때는 어디서 건반 하나 얻어서 원래부터 하고 싶던 음악에 대한 피가 끓었으나 그거 하나로 뭐 할 것도 크게 없었고, 가장 하고 싶던 랩도 당시에는 듀스 등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랩 외에는 알 길도 없어서 뭐가 어떻게 하는지 모르다가 대강 힙합은 비트구나.하고 생각하고 건반을 활용해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10대 캐나다 유학 생활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캐나다에 널린 스튜디오에서 무급 인턴으로 음악을 배우고 그외 생계비나 유흥비 등은 다른 알바로 때웠다고 한다.

귀국한 후 Pe2ny, DJ soulscape, Fantastik Dos로 활동하고 있는 명덕크랩 등과 함께 PDPB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당시 힙합씬 내에서도 간지와 저항성 등을 추구하며 진지한 얘기를 많이 했으나, 디지가 주도하는 팀은 욕설과 외설적 퍼포먼스로 점철된 공연 그룹이었다. PDPB라는 이름조차 또라이 그룹이 있다는 얘기에 취재가 와서야 서로들 이름... 우리 이름... 우물우물하다가 나오는 대로 뱉고 난 이후 핏덩어리가 돼버린 피바다, 피차 드러운건 피하고 보자 등의 뜻을 갖다 붙인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 그룹은 김디지의 욕설과 좋지 않은 행태로 팀원들이 혀를 내두르자 스스로 독립하여 원맨 프로젝트 Tequila Addicted로 활동한다.

2000년 클럽 MP의 컴필레이션 앨범인 MP 힙합 超에서 적나라한 내용의 No Sex, No Love라는 곡을 선보이며 비로소 본격적인 작업물을 대중 앞에 선보이기 시작했고 다음해인 2001년 첫 앨범인 Insane Deegie를 내놓는데, 역시 재지한 음악에 저질 가사가 어우러진 적나라한 음반이었다.

2001년 겨울 EP 성격이 강한 앨범 The Last Winter Story를 마지막으로 외국계 무역회사 과장으로 일하고 달의 땅을 분양하는 등 비즈니스에 손을 대며 음악에서 당분간 손을 떼는 듯 했으나 중간 중간 세 장의 부틀렉 음반을 내놓기도 하였다.[3] 두번째 부틀렉 앨범에서는 단순한 재즈 샘플이 아닌 라이브 재즈 세션곡에 랩을 얹는 등 어느 정도 변화한 음악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성향이 2집을 걸쳐 프로젝트 앨범 The Musium에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에 대해선 디지 스스로도 '재즈 샘플따서 곡만드는 건 이미 프리모가 다 보여줬다'고 언급하고 있다.

2009년 발표한 비정규 싱글 개는 이전의 앨범들처럼 부틀렉으로 내놨으며 666장 한정으로 6,660원에 판매되고 이후 667장 부터는 18,180원에 판매하는 괴이한 유통방식으로 판매되었다. 예상대로 정식발매될 수 없을 법한 강도 높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사가 과격해서 녹음하던 도중 스튜디오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발매가 늦춰졌다고 한다. 초반에 싱글치고 엄청나게 푸짐한 트랙 리스트로 사뭇 기대를 불러모았으나 정작 뚜껑을 열자 제대로 된 곡은 6곡 정도에 나머지 트랙은 스킷 등으로 채워져 있어서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다. 일단 제목만 공개한 뒤 각종 커뮤니티들에서의 반응을 보고 이를 수록한 뒤 일장연설을 펼치는 Fxxxing VJ[4]나, 라디오 토크쇼를 듣는 듯한 10분 토론은 그야말로 리스너 우롱의 극치였다.

디스의 대상도 상당히 광범위했는데 조PD, 이정현,[5] 문희준, MC 스나이퍼,[6] 조선일보, 전직 대통령, 고위 관직자, 국회의원, 경찰[7] 등을 디스했으며 특히 조선일보와 정치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강했다.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Damn EX-Presidents[8]'를 청와대 앞에서 기습공연하려다가 연행되었으며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가지고 조선일보를 비난하는 곡인 'J.N.P'를 부르기도 했다. 이런 관점은 이후에도 이어져 내려와 디지털 싱글인 "Mad Bull"이나 비정규 싱글 "개"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난적인 메세지를 볼 수 있다.

아래는 디지의 2004년 부틀렉 앨범 '클리토레스'에 수록된 '오냐 씨발 것들아'[9]라는 곡의 일부이다.
Yo 잘들었어? 2008년도까지 기다려 이 개새끼들아,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말라서 못 나오는데 씨발 그 때까지 입 좀 닥치고 있어 개새끼들아

그리고 2008년, 끝내 직장 생활로 모은 돈으로 정규 2집을 발매하고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기에 이르렀다.[10] 선거 기간 내내 자기를 안 뽑아도 좋으니까 제발 투표장 가서 투표 좀 하라고 외치며 유세를 하였다.[11] 결과는 1,782표 득표로 지지율 1.89%. 7명의 후보자중 4위.[12]



3월 15일 토요일, 대한민국 국회 앞에서 게릴라 콘서트 겸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끌려갔으나 곧 풀려난 후 홍대 놀이터에서 더 놀다 갔다고 한다. 덧붙여, 어딜봐도 합성같아 보였지만 진짜였던 포스터도 꽤나 이슈가 되었다.

파일:김원종(벽보).jpg

문재인 대통령 헌정곡을 낸 적이 있다.

3. 회사 설립 이후

2009년 디라인 아트미디어라는 엔터테인먼트사를 설립, 최고 마케팅 경영자 및 프로듀서로써 여성 랩퍼인 이비아(본명 이옥주)와 슈퍼스타K 출신의 김국환 등을 서포트 중...이었지만 김국환은 밀어주는건지 뭔지 흐지부지하다가 결국 다른 기획사로 떠나 보냈고, 계약 및 해지 과정에서도 잡음이 좀 있었다. 요점만 말하자면 1급 시각 장애 때문에 계약서를 직접 읽을 수 없는 김국환에게 디라인 측이 상세한 설명 없이 계약을 제안했으며, 계약금도 주지 않고 전속 계약으로 붙들어 놓으려고만 했다는 것. 엄연히 노예계약급 불법이다.

이비아는 과도한 노이즈 마케팅으로 힙플 등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논란만 불러 일으키다가 별 성과를 얻지 못했고, 이비아 역시 디라인과의 계약 해지 과정에서 이비아라는 이름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등 잡음을 빚었지만 디지는 2012년 12월부로 디라인 아트미디어를 떠났으므로 그나마 이 쪽은 관계없는 이야기. 여하튼 디라인의 홈페이지마저 닫혀 있는 등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디라인은 결국 말아먹은 듯 하다. 참고로, 이비아의 Shake!(쉐이크!)는 굉장히 김디지 본인에게나 이비아에게나 서로 루즈루즈. 심지어 이 곡은 핏불의 Hotel room service를 그대로 가져다 쓴 주제에 자기 이름을 걸어 놓은 명백한 표절곡이기까지 하다. 아무튼 온갖 까임 지분을 양분했다.

2010년 5월 1일 4년 동안 사귀어온 1살 연상의 연인과 결혼했으며 랩으로 자축가를 불렀다고 한다.

2011년 드렁큰 타이거 뮤직비디오 두두왑바바루에 우정출연.
2011년 9월에는 프로듀싱 앨범인 'Bleu Film : 2 Jazzy for Hiphop Vol.2 / Deegie's In Trumental'을 내놓았다. 말그대로 자신은 거의 프로듀싱에만 전념하고 랩과 보컬은 다른 이들이 맡아주는 식으로 제작된 앨범이며, 독특하게 한 앨범을 여러 개의 싱글로 쪼개서 발표하기도 했다. 참고로 본 앨범은 인스까지 합쳐서 3CD 분량.

이 때쯤 자신이 예전에 발표했던 디스곡 음원 불법 공유건로부터 불거져 자신에게 비판을 넘어 패드립급 악플을 남긴 다수의 네티즌들에게 자비없이 고소미를 때려버린 '김디지 힙플 국밥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1억 7800만이라는 피해액 정산 등의 문제와 역시 욕설을 써가며 개싸움을 벌였던 디지의 태도 때문에 이슈가 되긴 했으나 결국 1차적인 잘못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남긴 악플러들에게 있기에 어찌 어찌 넘어간 분위기.



19대 총선에는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예비후보로 출마 준비를 했으나, 2차 면접에서 탈락했다고 한다.

2016년 힙합플레이야와의 인터뷰에서는 MC 스나이퍼페이스북 친구라고 한다. 만나면 술 먹고 전화하고 친하게 지낸다고.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 이미 2012년에 발매된 스나이퍼의 앨범에 피처링한 적이 있어 화해한 지는 꽤 되었다. UMC/UW를 다시 음악을 하도록 꼬드기겠다고 한다.

프로듀싱으로는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Sean2slow의 곡 MOMENT OF TRUTH[13] 디지의 프로듀싱이다.[14] 아예 통샘을 하거나 조악한 수준의 곡이 범람하던 시기에 디지는 외국에서부터 배워와서 그런지 상당히 괜찮은 수준이었다. 앨범들도 들어 보면 샘플링 기법을 매우 잘 사용한다. 스컬과 하하의 RAGGA MUFFIN을 편곡하기도 했으며 걸그룹에게 곡을 준 적도 있다.

2019년 12월 16일 자신의 유튜브에 싱글 출시를 암시하는 영상이 올라왔고#[15] 12월 18일 XXII INTERMISSION이라는 싱글을 출시하였다. 데뷔한 지 22년만이다. 수록된 곡은 리메이크한 '너는 천사다 난 아닌데'와 '사람은 기다리지 않는다'.

추후 밴드 중식이의 앨범 음주남녀의 보컬로 참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남 갑

[[무소속(정치)|
무소속
]]
1,782 (1.89%) 낙선 (4위)
역대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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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 (서울 강남 갑) }}}}}}}}}

5. 논란

타이미가 이비아 시절에 냈던 곡 중에서 Shake!(쉐이크!)는 명백하게 핏불Hotel room service를 통째로 표절했다. 음반저작권협회 사이트에서도 검색한 결과, 작곡자에도 본명인 김원종이라고 써놨다. 애초 뮤직비디오 자체도 이비아를 싸게 만들어놓는 바람에..

2015년 3월 언프리티 랩스타에 나온 타이미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악플심경글을 썼다고 한다.

타이미가 이비아 때 이끌어주었던 장본인이었고 위에 서술한 것처럼 디라인을 설립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타이미가 이 지경까지 된 만악의 근원이라고 알려진 듯 하다. 하지만 이 글을 보면 설립한 건 맞지만 바지사장? 사장이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고 위에서 서술했듯이, 타이미가 소속사와 마찰이 있기 전에 나갔고 "이비아 때는 좋았지"라는 걸로 봐서 타이미와 그렇게 마찰은 없었던 걸로 보았지만... 이전 글들을 보면 태도가 이랬다저랬다 바뀐데다 이 글은 "쟤 왜 저러지"라는 반응이여서 현재 여론이 타이미의 호감이 높아진 지금으로써는 김디지도 욕을 한사발로 먹고 있다.

위의 글와는 또 다른 글이 하나 있는데, 이 글은 완전히 타이미를 저격하는 글이다. 사실상 폭로에 가까운 글인데, 타이미 측은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 사실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는 중.[16] 그리고 순식간에 묻혔다

더불어 이른바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로 힙합을 접한 팬층이 '저 듣보잡은 뭔데 타이미 언니한테 이래라 저래라죠?' 라며 김디지를 공격하고 있다.

2018년 4월에는 리드머의 강일권 편집장의 페이스북 게시물에 갑자기 시비를 걸었다.

강일권 편집장이 올린 글은 다음과 같다.
힙합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힙합이 양아치 문화인 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걸 볼 때마다 뜨악하다.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에 현직 래퍼도 이런 말을 한 적 있는 걸로 아는데...

물론, 힙합 아티스트 중에 양아치 같은 부류도 있었겠지만, 또한, 힙합에 천박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힙합을 천박하고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들(양아치)의 문화로 정의하는 건 정말 몰상식하고 무책임한 짓이다.

힙합을 양아치 문화에 빗대는 이들은 보통 갱스터와 갱스터 랩의 예를 들고 오는데, 블랙 커뮤니티 내에서 흘러온 갱 컬쳐는 한국의 깡패나 양아치 사례와 결이 많이 다르다.

힙합은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나 계급의 커뮤니티에서 탄생한 하위문화지, 양아치 문화가 결코 아니다.

힙합 관련 지식에 관해 논하는 건 그토록 싫어하는 사람들이 어쩜 그리 함부로 정의하긴 좋아하는지.

정말 힙합을 사랑한다면, 꼰대 타령하기 전에 좀 읽고 보면서 배웠으면 좋겠다.

미국 본토의 많은 힙합 아티스트도 말하지 않는가.

힙합을 좋아한다면 본인들의 문화에 대해 먼저 리스펙트를 보내주고 배워달라고.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개인의 페이스북 게시물일 뿐이다. 그런데 인세인 디지는 여기에 비꼬는 게시글을 계속 달더니 "키디비 블랙넛 기사 쓰자" "한국 힙합 판 키우자" 뭐 이런 이상한 이야기만을 중얼거렸다.

여기에 퓨처리스틱 스웨버가 댓글을 남겼는데 이게 맞는 말이라는 게 중론이다.
디지님 저 디지님들으면서 힙합 시작했는데 제삼자가 보기에는 형이 더 꼰대같아요 이게 뭐 비꼬아가면서 화낼일이라고 열불내세요

결국 강일권 편집장은 인세인 디지와의 페이스북 친구를 끊었고, "참아주기엔 너무 피곤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인세인 디지는 자기 페이스북에 저격글을 올렸다(...)

그때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덧붙이자면, 결론적으로 디지가 뒷담화를 대놓고 했다. 예전부터 강일권 편집장과 형 동생하면서 나름 서로 알고지낸 사이인데, 앞에서는 형이라고 하면서 뒤에서는 너라고 욕하는... 강일권 편집장이 쓴 위에 있는 글을 인용하면서, 누가 봐도 그를 욕하는 글이었다. 댓글로 누군가가 디지가 올린 그 글을 캡쳐해서 바로 올렸고, 그걸 본 강일권 편집장이 관계를 끊겠다는 글을 올린 것. 이후에 디지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서로 아는 사람에게만 공개했는지 비공개로 보이지 않는다. 이후에 다시 저격을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와 친구 맺어진 사람에게나 보여지겠지. 참으로 치졸하고 비겁한 행동이 아닐수가 없다. 그의 그동안의 행적을 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되기도...

예전에 썼던 가사들은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몹시 이상하고 놀라운 가사가 꽤 있다. 디지는 그런 옛날 충격적인 가사 중 대표격으로 가끔 거론되곤 한다.

http://m.music.daum.net/song/vcliplyrics?song_id=254681&album_id=7109 당시 같이 작업을 하기도 했던 조PD와 이정현을 디스했던 'Insane Deegie'의 가사. 2001년 5월에 나온 Deegie의 첫 앨범 "Insane Deegie" 수록곡이다. 처음부터 fuck Stardom[17]이라고 말하고 들어가는 이 곡은, 가사에서 보듯 "Fever"와 "조PD Rules" 가사를 비꼬면서 조PD를 욕하고 있다.
세나는 조PD의 Fever에 피쳐링했던 이정현이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의 극중 이름. 조PD를 디스하는 부분은 1절 뿐이지만 당시엔 나름대로 유명했다.

http://lyrics.jetmute.com/viewlyrics.php?id=355167 문희준을 디스한 곡 '크게 라디오를 켜봐'의 가사. 당시 문희준이 락 활동을 했기에 유명한 시나위의 명곡 '크게 라디오를 켜고'에서 제목을 빌려와 디스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예전에 썼던 가사들은 현재 기준으로 보면 랩퍼들은 거의 안 하는 성향의 노래들이 많다. 힙합 초창기에는 미국 힙합을 국내에 도입하려는 시도가 많았는데 이중에 미국 힙합 수준의 디스나 비난을 도입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디지는 또라이 기질이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도가 강했다. 아래의 노래들도 사실 대표적인 유명인 디스랩퍼 에미넴에 비해 보면 더 심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 당시 에미넴이 가장 압도적인 미국 랩퍼였으며 90년대의 치열한 미국 디스전도 매우 화제였기 때문에 현재의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그렇게까지 나쁜 반응은 아니었다. 그러나 데프콘이 말하듯 한국힙합은 워낙 판이 좁기 때문에 디스나 비난은 자연스럽게 매우 약해지게 되었다. 또한 사실 00년대 초반 감성은 조폭이나 일진영화가 판치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현재보다 양아치 감성이 상당히 강하고 거칠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현재의 감성과는 매우 어긋난 부분이 있다. 김디지는 아직까지도 옛날 감성을 많이 유지하고 있어서 현재의 판에 뛰어들려면 위화감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18]

6. 앨범 목록

발매 시기 종류 제목
2001년 5월 정규 1집 Insane Deegie
2001년 12월 EP The Last Winter Story
2003년 4월 비정규반 417일간의 세계일주
2004년 4월 비정규반 Bleu Film : 2 jazzy for hiphop
2004년 4월 EP 클리토레스 (상기 음반과 동봉하여 판매)
2008년 3월 정규 2집 Insane Deegie 2
2009년 3월 비정규 싱글
2011년 9월 프로듀싱 앨범 Bleu Film : 2 Jazzy for Hiphop Vol.2 / Deegie's In Trumental

7.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08-2012 정계 입문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2012-2013 입당


[[민주당(2013년)|
파일:민주당(2013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13-2014 당명 변경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2014-2015 합당

파일:zsdkl3gasdg.svg
2015- 당명 변경


[1] 원맨 프로젝트의 개념. 일부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된 트랙에서만 사용했다.[2] 1세대 원로 래퍼이자 실력파 래퍼로 잘 알려진 데프콘도 힙합플레이야와의 인터뷰에서 존경하는 뮤지션이자 함께 작업하고 싶은 뮤지션들 중 프로듀싱 부분에서 김디지를 꼽았을 정도다.[3] 참고로 부틀렉으로 내놓은 두 장의 앨범은 일부 물량만 풀고 재고를 모두 불태워버려 지금은 구할래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 되었다. 돈주고 구할 방법이라고는 중고앨범 판매를 통해 사는 방법말고는 없다.[4] 제목만 보면 버벌진트 디스처럼 보이나(실제 곡 부제가 '디지가 버벌진트에게.... 당신의 거울'이다.) 나중에 밝혀진 제목은 Feeling VJ였다. 4분 33초에서 모티브를 따온 곡.[5] 이 둘은 디스가 아니라 패러디의 의도라고 훗날 발언했다. 그러나 f word를 당당히 집어넣는 바람에 상대편은 디스로 받아들였다.[6] 부틀랙 앨범 <417일간의 세계일주> 수록곡 <난 니가 정말 싫어>에서 적나라한 디스를 선보였으며, MC 스나이퍼도 3집 수록곡 <대화>에서 이를 언급했다.[7] '오냐 씨발 것들아'라는 노래에서 언급.[8] 원제는 대통령 X까이지만 앨범에 수록되면서 제목이 변경됐다.[9] 이 때 당시 디스 대상자는 대통령, 국회의원, 비투표자 등이였다. 이 앨범의 인터뷰에서 김디지는 삼성이 소니를 제치는 등 한국의 경제력이 올라가고, 종합주가지수가 850선이 넘어감으로써 분명 한국이 풍요로와야 하는데, 다들 돈이 없고, 배고프고 힘들며, 한국에 출장올 때마다 물가가 올라가니, 이로 인해 믿었던 노통과 노통보다 더 문제였던 국회의원들이 정치를 못해 이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 비판했다. 또한 탄핵이 터지니깐 막상 투표 안한 사람들이 더 뭐라고 한다고 하였다.[10] 토야마 코이치 처럼 정치권을 까기 위해 출마했다고 한다. 본인은 노무현 탄핵 정국 당시 딱 1살 모자라서 출마 못하는 바람에 피꺼솟했다고.[11] 참고로 18대 총선은 당시 집권여당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측된 데다가 선거일 당일 폭우가 내려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당시 전국 투표율은 50%도 안되는 46% 남짓을 찍었고 그가 나왔던 이 지역구의 경우, 심지어 40%도 안되는 무려 39.1%라는 역대급 투표율이 나왔다.[12] 참고로, 당시 당선인은 한나라당 이종구 후보.[13] "언제나 당신의 열정이 곧 당신의 결정"이라는 구절로 유명한 곡.[14] 디지가 말하길 편곡과 사운드엔지니어링을 비롯한 작업을 자신이 한 것이라며 자신이 거의 공동 프로듀싱을 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15] 테이프에 흘러나온 곡은 '너는 천사다 난 아닌데'.[16] 하지만 김디지의 과거도 그렇고 디라인에서의 타이미의 대우가 워낙 시궁창이라서 오히려 김디지만 '구질구질하다.', '뻔뻔하다.' 등의 비난과 욕을 먹고 있다.[17] 당시 조PD의 회사[18] 물론 과거에도 미친 놈 취급이긴 했다. 요는 현재 감성과는 더욱 위화감이 심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