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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00> 1940 하계 올림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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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최 예정지 | [[일본 제국| ]][[틀:국기| ]][[틀:국기| ]] 도쿄 → [[핀란드| ]][[틀:국기| ]][[틀:국기| ]] 헬싱키 | |
개최 예정일 | 1940년 9월 21일 ~ 10월 6일(도쿄) → 1940년 7월 20일 ~ 8월 4일(헬싱키) | |
주경기장 | 메이지 신궁 외원 경기장(도쿄) 헬싱키 올림피아스타디온(헬싱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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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40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개최가 예정되어 있던 하계 올림픽이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취소되었다.2. 상세
1932년, 1940년 대회 개최 도시 후보를 뽑는 데에 바르셀로나, 로마, 헬싱키 그리고 도쿄가 후보지로 이름을 올렸다.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세운 일본 제국은 국제연맹에서 탈퇴하고 국제적으로 고립되자, 관료들은 이에 대한 차선책으로 올림픽 개최를 통한 국제 외교를 모색하려 하였다. 하지만 군사 정부는 해당 올림픽에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군사 문제 관련 논의만 했다. 결국 정부 관료들은 같은 개최지 후보인 로마를 유치한 방공협정 대상국인 이탈리아에 접근해 이번 후보지에 올림픽을 일본이 개최할 수 있게 해준다면 다음 올림픽(1944년)에는 로마를 밀어줄 것이라 했고, 이에 이탈리아는 로마 유치를 포기하고 내전 상태로 혼란으로 인해 포기한 바르셀로나를 제외한 도쿄와 헬싱키의 경합에서 도쿄를 밀어주어 1936년 12월 유치에 성공했다.메인 경기장은 처음에는 1964년 하계 올림픽에서 사용된 메이지 진구 가이엔 경기장으로 100,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도록 재건되었지만, 메이지 진구 구역에 대한 관할권을 가진 내무부 신사국은 재건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 후,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고마자와 올림픽 공원에 새로운 경기장이 계획되었다. 올림픽 마을은 현재의 키누타 공원이나 토도로키 협곡에 지어질 예정이었다. 일정이 작성되었고, 지침은 4개 언어로 인쇄되었다. 월간 잡지와 포스터는 국제적으로 인쇄되고 배포되었다. 일부 건물에 대한 공사가 시작되었고, 호텔, 여행사 및 항공사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준비되었다.
그러나 중일전쟁이 1937년 7월에 발발함에 따라 고노 이치로 의원의 올림픽 철수규탄을 시작으로 점차 올림픽은 회의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1938년 3월, 일본은 조직의 카이로 회의에서 IOC에 도쿄가 여전히 개최 도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러나 일본의 많은 의회 의원들은 이미 전시에 올림픽을 주최하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고, 군대는 주최측이 전쟁 전선을 위해 금속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무로 경기장을 지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결국 당시의 회장이었던 앙리 드 바이에-라트르의 요청과 미국의 보이콧 뉘앙스로 인해서 1938년 7월 16일, 일본 정부는 자진해서 개최권을 반납하고[1] 그렇게 비어 있던 개최권이 당시는 경쟁하던 핀란드 헬싱키로 넘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1939년 9월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핀란드 또한 소련의 침공으로 인한 전쟁이 발발한 바람에 결국 취소크리를 먹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은 미국을 공격했다.
이런 우여곡절로 올림픽 개최를 하지 못한 핀란드와 일본은 각각 1952 헬싱키 올림픽과 1964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게 됐다.
야구계로서는 실로 안타까운 것이, 이 대회부터 야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 될 예정이었고 유도도 편입될 예정이었다. 그나마 유도는 나중에라도 정식종목에 들어갔으나 야구는 현재까지 어정쩡한 상태로 정식종목에서 들락날락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