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09:47:08
1차 아르투아 전투 First Battle of Arto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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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914년 12월 17일 ~ 1915년 1월 13일 |
장소 |
아르투아 |
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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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프랑스 제3공화국|]] 프랑스 제3공화국
[[영국|]][[틀:국기|]][[틀:국기|]] | [[독일 제국|]][[틀:국기|]][[틀:국기|]] |
지휘관 |
[[조제프 조프르|]] 조제프 조프르 [[틀:깃발|]][[틀:깃발|]][[더글러스 헤이그|]] | [[틀:깃발|]][[틀:깃발|]][[에리히 폰 팔켄하인|]] |
전력 |
[[프랑스 육군|]] 제10군 [[틀:깃발|]][[틀:깃발|]][[영국 육군|]]제1군 | [[틀:깃발|]][[틀:깃발|]][[독일 제국군|]] 제6군 |
피해규모 |
[[프랑스 육군|]] 48,000여 명 [[틀:깃발|]][[틀:깃발|]][[영국 육군|]] 50,000여 명 | [[틀:깃발|]][[틀:깃발|]][[독일 제국군|]] 20,000여 명 |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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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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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arfix]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 아르투아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제1차 이프르 전투 이후 독일군이 수세로 돌아가면서 서부전선이 교착화되었다. 독일군은 참호와 요새를 만들어가며 파리에서 머지 않은 지역에 눌러앉아버렸고 이는 프랑스에게 위협이 되었다. 전선이 교착화되면서 여유가 생긴 독일군은 동부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동맹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구원하고 러시아군에게 공세를 바하고 있었다. 때문에 조제프 조프르는 러시아에 대한 독일의 압박을 줄일 겸 전선을 후퇴시키기 위해 상파뉴와 아르투아 지역에서 공세를 가하기로 하였다. 12월 17일 프랑스군이 아르투아 지역의 독일 제6군을 공격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악천후와 안개로 인하여 공세속도가 상당히 지연되었고 독일군이 만들어 놓은 요새와 참호 때문에 이내 프랑스군과 독일군의 의미없는 소모전 양상으로 흘러갔다. 결국 프랑스군은 별 이득을 얻지 못한 채로 철수하면서 1914년 서부전선이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