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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르셰바 전투는 1917년 10월 31일 중동전선에서 일어난 오스만군과 ANZAC군 사이의 전투다. 이 전투에서의 안작군의 승리로 인해 팔레스타인은 1948년 이스라엘 정부 수립까지 30여년 동안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2. 배경
19세기 영국은 이집트를 보호령으로 삼고, 아프리카 종단정책을 실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중동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오스만 제국과 대적하게 되었다. 당시 영국은 아랍권 민족들에게 독립을 약속하며 대오스만 반란을 부추겼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랍 반란과 헤자즈 왕국의 건국이었다. 이와 같이 원래 오스만 제국의 토후국들이었던 아랍 민족이 반란을 일으키며 연합군에 가세했다.3. 전투
우선 영국은 오스만 제국을 항복시키기 위해 벨푸어 선언을 했다. 그렇게 유대인들의 지지를 받아내고, 이집트에서 레반트 지역 방향으로의 북진을 결정했다. 이를 위해 새로 창설된 이집트 원정군과 필립 체트워트 경이 이끄는 XX군단이 북진을 개시했다. 이때 작은 마을이었던 베르셰바에서 팔레스타인 주둔 오스만 제국군과 충돌했다.당시 이집트 관할 대장이었던 앨런비 장군의 지략과 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ANZAC) 소속[1] 경기병의 놀라운 기동력과 담대함으로, 베르셰바를 탈환하여 전세는 연합군 쪽으로 기울었으며, 전투력을 상실한 오스만군은 팔레스타인을 고스란히 영국에 넘기게 되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인 1918년 10월 31일 오스만 제국과 연합국 사이에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4. 기타
사막의 용사 |
당시 전투의 주역이었던 호주에서는 오늘날까지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2] 2017년에 호주 수상 등이 이스라엘의 베르셰바 현지를 방문해 승전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했을 정도다. 또한 2010년대 호주 육군에서 진행한 전력 개편안을 '베르셰바 계획'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