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9 13:33:03
[clearfix]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벌어진 전투이다.
세르비아 침공으로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으나 단기간에 점령될 것으로 예상했던 세르비아 왕국이 예상외로 선전하고 오히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격퇴시키자 협상국과 동맹국 모두 세르비아의 측면에 위치한 불가리아 왕국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당시 불가리아는 제2차 발칸 전쟁의 여파로 세르비아 왕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고 마케도니아 지역을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이런 조건에 협상국은 세르비아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으로 나섰지만 동맹국은 적극적으로 요구를 수용하였고 결국 불가리아는 동맹국 편으로 참전하게 된다. 불가리아는 참전하자 마자 세르비아를 털고 다니면서 전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고 협상국은 세르비아를 지원하는 한편 오스만과 베를린의 철도연결을 저지하기 위해 영불연합군이 그리스 테살로니키 부근에 상륙하였으나 불가리아군이 이들을 격퇴시키기 위해 1915년 늦가을 공격을 시작하여 크리볼락 전투에서 프랑스군에게 승리를 거두어 세르비아를 지원하기 위한 이들의 목표는 수포로 돌아갔다. 11월 중순 코소보 전투 이후 세르비아는 완전 점령되었으나 잔존 협상국 병력은 마케도니아 지역에 여전히 주둔중이였는데 불가리아는 기세를 모아 영불 연합군을 완전히 철수시키기 위한 공세를 준비했다.
크리볼락 전투 이후 불가리아는 요새에 틀어박힌 영불연합군을 공격하기 위해 마케도니아 전역의 병력을 증원했다. 한편 영국군은 불가리아 탈영병들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방어준비를 강화했으나 불가리아군이 12월 4일부터 12월 6일까지 맹렬한 포격을 퍼붓자 인근 고지의 점령을 허용하고 말았다. 결국 영국군은 유리한 방어를 위해 일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12월 8일 불가리아군은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분리시키기 위해 양군의 방어선 사이를 돌파하고자 했으나 프랑스군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이후에도 불가리아군은 파상공세를 하였으나 협상국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하고 퇴각했으나 12월 11일 불가리아군이 인근의 보그단을 점령하고 통신과 보급로를 끊자 협상군은 포위를 우려하여 12일 새벽 철수를 시도하였고 일부는 매복한 불가리아군에 의해 사살되거나 포로로 잡혔으나 최종적으로 그날 저녁 그리스 국경지대를 통해 탈출에 성공하면서 전투가 종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