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환단고기
1. 개요
환빠의 왜곡에서 특징적인 사실은 국가가 필요한 결론을 요구하고 이에 맞춰 논증이 성립하는 중국의 답정너식 역사 왜곡, 또는 이미 보이는 결론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논증이 성립하는 일본의 과거사 부정형 역사 왜곡과 달리 독자연구적 성향과 대리만족적 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다. 이는 환빠의 주장이 하나로 결집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그 대처에 전면적이고 막대한 노력을 소요하지는 않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 반대로 일거에 제거되지 않는 잡초와도 같은 성격을 지니면서 일일이 논박할 수 없는[1] 자잘한 궤변으로 아직 자신의 역사관이 확립되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을 근저부터 왜곡시킨다.이는 마치 나치의 등장 이전에 있던 반유대주의나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등장 이전에 있던 이슬람 근본주의와도 비슷한 형국이다.[2] 실제로 사회학자들은 경제가 어려워지면 나타나는 파시즘 현상의 첫 단계가 대한민국에서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또한 나치의 전철을 모방이라도 하려는 듯 2011년부터 증산도가 대대적으로 환독을 교리에 편입하고 그 경전으로 환단고기를 찍어내며, 이에 수반해 어마어마한 홍보를 전국적으로 뿌려댄다.
따라서 이러한 이들이 주장하는 바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건전한 비판으로 이들을 지속적으로 물리치는 태도가 필요하다.
대륙설에 관한 고찰.
또한 '환빠'라는 명칭이 식민사학보다 낫다며 자신들이 환빠라는 걸 자랑스럽게 인증하는 경우도 있다. 모순적 이중잣대도 은근히 있다. 대표적으로 신라를 반민족적이라며 까는데 반면 금나라가 신라계였다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믿는다. 정작 이성계는 여진족일 가능성이 있다며 매우 혐오하는 모순을 보여주는 건 덤이다. 그리고 외세 민족들과 싸웠다면서 저항한 모습은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조선 자체를 막장스럽게 까내린다. 참고로 조선도 명, 그리고 훗날 청에 대한 조공을 하게 된 것만 제외하면 고려 못지않게 외세와의 대결이 많았던 시기였다. 일부 환빠들의 경우 만주족 포함한 퉁구스 제족들, 몽골계 민족들을 친형제 취급하는 반면 진짜 해외동포 중 하나인 조선족을 혐오하는 모습도 어찌 보면 또다른 대표적인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고려 및 조선시대까지 북방 기마민족들을 야인 또는 오랑캐라며 경멸했었던 걸 감안하면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따로 없을 정도다. 비슷한 사례로는 주원장 고려인설이 있는데, 주원장이 고려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긍심을 가지는 환빠 및 유사역사학자들이 있다. 참고로 명나라는 당연히 중국사이며, 중국 한족 문화권에 해당되는 나라이다. 게다가 조선에 온갖 조공을 바치라며 요구하였고 이 때문에 당시 조선에서는 명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기도 했었다. 정작 환빠들이 명나라에 대해서도 비난하면서도 주원장 고려출신설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모순점도 있다.
1.1. 의혹기
아직 환독의 무서움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나마 온건한 것처럼 보이는 일부 주장을 먼저 접하고, 그것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인정한다. 달리 말하자면 기성 사학계가 합의한 통설에 대해 의혹과 의문을 품는 단계이다. 물론 사람들의 의견을 그로부터 한 발 물러나서 바라보고 그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건전한 회의론'은 언제나 유효하게 요구되는 자세이지만, 그것도 의혹이라는 것이 올바른 방법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경우에나 통하는 이야기. 논리가 맹목적인 편견에 의한 답정너 구조로 굳어진다면 답이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직 논리가 닫힌 구조로 굳어지지 않은 상태이기에 올바른 방법을 통해 올바른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다. 이들은 정보를 외재적으로 수용한 것이지 내재적으로 도출한 것이 아니므로 결론에 자존감이 걸리지 않은데다가, 또한 환단고기와 같은 위조된 텍스트를 아직 접하지 않았으므로 다른 세계사적 텍스트들을 널리 공부한다면 비교 및 대조를 통해 오롯이 자신의 결론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널리 퍼진 비뚤어진 민족주의적 통념을 깨고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은 자못 고통스러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여러모로 아직까지는 환빠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경계선상에 서있는 단계.
이들은 특정 단체의 홍보나 교육을 통해 양산되는 경우가 많고, 이외에도 드라마나 서적 등 대중매체에 투영된 굴절된 역사상을 접하면서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뜻밖에도 환단고기를 통해 곧장 환빠에 입문하는 경우는 적은데, 이는 환단고기 자체가 굉장히 재미없는 책이라는 점이 큰 요소로 작용한다. 게다가 정상적인 사고로 받아들이기에는 거기에 담긴 내용이 너무 허황되기에 오히려 반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인데, 일반적인 선동에서 그 내용에 대한 해석을 조금씩 맛보여주며 밑밥을 까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주장하는 내용은 대체로 민족주의의 연장선에 있으며, 주류사학계에서도 논란이 되는 견해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논란이 되는 설을 모두 '한민족'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단정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기원전 2333년이라는 단군의 신화적 연대를 역사적 사실로 확신하고, 이 시기의 단군조선에 한참 뒤에나 등장하는 영역국가의 모습을 대입하며, 이에 따라 온갖 잡다한 이족(夷族)들을 모두 한민족과 그 지파를 가리키는 단어로 정의하는 것[4] 등이 있다. 고조선 이후로는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의 위치, 백제의 요서경략설[5], 고구려의 유주경략설, 고려의 동북 9성 위치와 같이 강역에 대한 확장주의적 비정 정도가 예시가 될 수 있다.[6] 일본을 한민족의 지파로 인식하는 것도 비슷한 해석선상에서 나오는 오독이다.[7]
무서운 건 저건 진짜 환빠들에 비하면 그냥 애교 수준이라는 점. 물론 강역의 문제는 현재까지도 논란과 논쟁의 대상점이고 당시의 정복, 진출, 정벌 등의 단어는 개념의 혼용이 심한데 상기한 주장들은 현재 논란점이 되고있는 문제들을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해석한 것에 가깝다. 상태가 심각해지면 서서히 한민족을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만들어놓거나, 타민족을 한민족의 지파라고 여기기 시작한다. 북방민족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북방민족과 혈연적 연계성이 있다는 말로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한사군이 한반도에 입지했다든가 중국의 영향을 받고 사대했다든가 하는 말을 들으면 염증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결론짓자면 대체로 여기까지가 환빠와 정상인이 나뉘는 경계 지점이며, 사학도로서의 마지노선이다. 이곳에서 더 나아가지만 않으면 그저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으로 남게 되지만, 혹시라도 더 나아가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1.2. 확신기
여튼 승급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전도력. 관련 정보를 퍼트리는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확실히 의도한 것이 아니라도 환독을 접하지 못한 사람에게 환독의 길을 안내한 바 있으면 이 범주에 포함시킨다. (약한 경우) 대중매체, 특히 역사소설과 드라마 작가의 경우에 많다.환단고기, 단기고사, 부도지, 천부경을 위시한 각종 위서류 책을 직접 접했거나 적어도 2차 저작물로 수용한 뒤 자체적으로 소화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저작물을 배출하여 퍼트린다.
고조선 이전 국가의 존재, '한민족의 시조' 치우천황의 실존 등을 주장하는 것이 보통이다.[8] 이로 인해 서서히 동아시아 동북방의 여러 사건들이 이들이 말하는 '한국사'에 포함되기 시작. 다만 의외로 통일신라 이후와는 별 관련이 없어 '고대까지 이랬다가 쭈그러들었다' 식으로 패배적 민족주의 사관을 접합시키기도 한다. 물론 이들이 주장하는 민족주의 사관도 과장된 부분이 많은 쪽이긴 하지만.
전도의 일환으로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관련 자료를 은폐 왜곡했다는 어거지를 쓰기 시작한다. 비판하는 이들을 '친일파', '매국노', '화교' 등 감정적으로 몰아가는 식. 위와 마찬가지로 현 사학계가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주장한다. 물론 현 사학계는 식민사관의 극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오히려 자신들이 식민사관의 주어가 한민족으로 도치된 형태일 뿐이라는 사실은 그냥 무시해버린다.
아주 간혹, 대부분 약한 경우에 한하여 환독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으나, 지난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그대로 덮어가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에 반해 대중에게 끼치는 전도력은 커서 벗어난다 해도 득보다 실이 더 많다.
한편 환빠가 이 단계에 접어들면 환국기원(환기)과 신시개천 같은 엉터리 연호를 단군기원과 함께 사용하기 시작한다.
1.3. 비약기
역사관을 현실과 분리시킨다. 전도력은 주된 기준이 아니지만 굳이 속성을 따진다면 불굴.환단고기를 접하지 않고 이 단계에 이르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흉노와 훈족을 비롯한 북방 기마민족 내지는 유목민족을 동이의 범주에 포함시키며, 한국과 동일한 혈연적 집단이 이루어낸 성과라고 찬탄한다. 한반도의 고대국가들이 중국 대륙에 상당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으며, 중원의 역사를 한민족의 분파로 여기는 경우도 있는데 역의 경우는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 생각하지 않는 듯 싶다. 대표적으로 단재 신채호를 언급하며 일제 강점기 하, 사학자들의 보편적인 인식이었다는 첨언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단재는 북방민족을 야만족, 우리의 敵, 노비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같은 민족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즉, 환단고기에도 없고, 일제강점기 시기에도 없던 북방민족 = 우리민족이라는 공식을 현대 환빠들이 생산해 낸 것이다.
오히려 공자나 황제가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는 등 중국과 일본 내 혐한파에게 좋은 구실이 된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일본 극우파도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그 본질은 이 단계와 동일하다. 게다가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이제 식민사관에서 나아가 각종 음모론과 진정한 역사의 은폐와 세뇌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심화될 경우 환단고기에서 나아가 각종 위서류 사료를 망라하여 분석과 연구를 진행하게 되며, 나아가 부도지의 신화를 받아들이고 역사적 사실로 믿는 경우도 있으나 아직 믿음의 대상만큼은 기록의 액면 그대로에 머물러 있어 신앙 단계와는 기준이 다르다.
저작물을 자체적으로 생산해 환독을 확산시키는 2단계를 거치지 않는 경우도 제법 있다. 자신은 환단고기를 비판한다면서 환빠짓을 하는 씨알도 안먹히는 말을 하는 인간들의 경우 2단계를 거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1.4. 신앙기
위서류 사서의 확대 해석 단계에 이른다. 자기합리화를 통해 가히 무적에 수렴한다.신앙이 아닌, 자기 신앙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미 각종 사서나 기록 등의 이성적 해석을 배제한, 자기만의 생각을 진리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 영역에 가면 환단고기나 단기고사, 부도지등으로 만들어낸 과거의 영역을 뛰어 넘기 때문에 환빠끼리도 싸우게 만드는 놈들이다. 즉, 환빠를 초월한 환빠. 사이비 종교 중독자의 모습을 보인다.
초고대문명설과 유사한 면모를 보인다. 한민족은 동아시아에서 나아가 전 세계의 중심이 되며, 그 역사는 인류와 문명 발생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고대 한민족은 지금보다 따뜻하던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전 아시아를 석권한 뒤, 동남으로 이주해 정착, 동아시아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 환단고기마저도 이런 주장은 안했다! 이것은 삼한과 백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고대국가들이 사실은 대륙에 있었다는 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아주 희귀한 사례지만 아예 한국과 중국의 고대사를 서아시아로 떠다 놓는 주장도 있다!
"서울올림픽 메달리스트 칼 루이스는 한국계로 로스앤젤레스 갈씨의 시조이자 한국명은 갈윤수다!" 뭐 이 정도급 개소리다.
뭐, 이외에도 인간이 천지기운의 감응으로 창조(!)되었다면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둘다 부정하기도 하는데... 이건 종교적인 것에 더 가깝고, 타클라마칸 사막이 '큰 나라 마한'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거나[9], 엔릴이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한 소호국 장군 '얹날'이라거나, 그리스가 단군의 둘째 아들 부소가 다스리던 구려국이라거나[10], 치우가 티베트 찍고 그리스로 진출했다던가 뭐, 애초에 단기고사의 각종 오버 테크놀로지는 기본이다.
전 단계까지만 해도 존재하던 일말의 학구적 자세조차 보기 힘들어, 무리한 영토와 지명 비정은 이미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일단 중국사를 내륙으로 축소시킨 건 좋았는데 이러한 주장에 의해 밀려난 중국의 지명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고고학적 연구와 발굴 증거물, 전문가의 권위는 그들에게 있어서 한낱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쯤되면 한반도는 원래 왜의 땅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우리 민족이 이주해 와서 박정희 정권기에 전국민을 세뇌(…)했다든가, 사실 중국이 한민족이고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일본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의외로 이 단계에서 홍보하는 이들이 많이 보이지만, 그 수준이 상식적으로도 무리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상당히 떨어지며, 눈에 가장 띄는 만큼 통제도 최우선으로 당한다. 이념이 현실을 덮어버리는 가장 극단적이고 가장 대표적인 사례. 이로 인해 일부 인사들이 작성금지 처리가 되기도 했다.
1.5. 실행기
단순히 개인이나 소규모 단체 수준에서 믿는 수준을 넘어 조직을 구성하고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단계다. 한국의 경우 식민사학을 규탄한답시고 재야사학 단체 협의체가 출범한 사례 등을 들 수 있다.# 이게 심해지면 나치가 게르만 우월주의에 입각해 레벤스라움 운운한 것처럼 될 수도 있다. 민족주의가 극우로 치달으면 우월주의에 빠져 고대 강역을 되찾아야 한다는 정신나간 발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한 구 일제나 중화민족과 중국 내셔널리즘를 내세우며 주변국을 속국으로 만들려 하거나 자국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중국공산당과 다를바 없어지게 될 것이다.그런데 환빠들이 일제나 중국공산당과 다를 바 없어지게 된다는 말이 단순한 비유나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환빠들 중에서 가장 그 성향이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민족이다.[11] 그러니 일제 강점기 36년은 동족이 동족을 다스린 것에 불과하니, 한국인들은 일본을 미워하면 안 된다. 오히려 한국인이 미워해야 할 상대는 이민족인 중국이다. 조선 왕조 500년은 중국의 식민지 기간이었으니, 일제 강점기 36년보다 훨씬 길다. 그러니 한국인은 일본과 힘을 합쳐 중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라는 친일파스러운 길로 빠지게 된다.[12]
[1] 정확히 말하면 논박할 가치(필요)가 없다.[2] 실제로도 반유대주의적 시각을 깔고 있는 환빠들의 숫자도 상당하다..[3] 짤은 예능 프로그램 느낌표의 코너인 위대한 유산 74434의 한 장면으로, 원래는 해외로 수탈, 반출된 문화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는 좋은 코너이나 가끔 이런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브라운관에 실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4] 이병도도 저지른 오류다. 정반대라고 까면서 자기 입맛에 맞으면 수용하는 것이 재미있다. 서울대 한영우 교수가 저술한 '다시 찾는 우리 역사'에서도 이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한영우는 환단고기류를 경계하고 있으나 민족주의가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된다.[5] 다만 요서경략설은 불분명하지만 중국 측 사료에 쓰여 있기 때문에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한 학설이다. 현재는 대체로 황해의 제해권을 확보하고 요서와 산동반도에 무역 거점을 설치하는 정도였을 것이라는 설이 주류이다.[6] 웃긴 사실은 이렇게 확장주의적 비정이 거듭되다 보면 정작 역사적 사실을 찾을 수 있는 땅덩이는 한반도 안에 하나도 남지 않는다. 그 결과 한반도에 대한 한민족의 엄밀한 연고성이 사라지고, 급기야 한민족의 정체성은 기화해버리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러한 환빠들의 해석 논리는 민족주의적으로도 틀렸다.[7] 간단히 A와 B가 사촌 사이라고 할 때, B가 A를 낳은 것이 아니듯 A가 B를 낳은 것도 아니다. 둘은 단순히 같은 할아버지 C로부터 갈라진 동등한 수준의 혈통을 받은 존재들인 것이며 따라서 A와 B의 사이에는 혈통적으로 아무런 선후관계~우열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결국 이러한 논리는 A가 장남이므로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식의 구시대적 종법질서로 회귀하는데, 그마저도 사실은 B가 장남이라는 식의 반전(위조)이 일어나기 십상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그 악명높은 식민사학의 일선동조론.[8] 단 붉은 악마의 영향으로 치우 관련 이야기가 너무 많이 퍼져버려 이를 믿고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9] 이래놓고 정작 타클라마칸 사막에 마한을 그린 지도는 하나도 없다.[10] 그리스인들은 자국을 그리스가 아닌 헬라스(엘라다)라고 일컫는다.[11] 이게 왜 말이 안 되는 소리냐 하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글자와 언어가 완전히 다르다. 또한 서기 6세기에 그려진 양직공도를 보면 고구려와 백제, 신라 사신과 왜국(일본) 사신의 옷차림은 완전히 다르다. 무엇보다 지금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한국인과 동족 또는 근연관계에 있는 민족이라는 의식 자체가 거의 없으며 오히려 일본 극우 인사 및 혐한 성향 일본인들의 경우 한국인을 열등한 인간이자 일본에 다시 지배되어야 할 노예 집단로 간주하고 있다![12] 실제로 환단고기에는 일제에 주권을 빼앗겼던 1911년을 가리켜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해라고 적었다. 환단고기의 저자가 다분히 친일파스러운 경향이 있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