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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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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호돌이.svg
1. 개요2. 평가3. 탄생 과정4. 잊혀진 호돌이?5. 만화애니메이션: 달려라 호돌이
5.1. 애니메이션
5.1.1. 표절 논란5.1.2. 기타
5.2. 만화
6. 기타

[clearfix]

1. 개요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공식 마스코트. 모티브는 호랑이이다. 머리에는 조선시대 때 노래부르고 춤추며 거리공연을 하던 남사당패들이 착용하던 모자인 상모를 쓰고 있다.[1] 목에는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 메달이 걸린 것이 특징. 상모의 물채를 S자 모양으로 배치하여 역동성과 Seoul을 강조했다.

호돌이는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도 등장했다. 공식적으로 마스코트를 안 만들고 올림픽 홍보 차원에서 호돌이를 사실상 마스코트처럼 썼기 때문이다. 목에 걸린 오륜 메달도 수정 없이 그대로 썼고[2] 개회식 매스게임에도 묘사되었으며 폐회식에서는 다음 베이징 아시안 게임 마스코트와 함께 등장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호돌이를 88 서울올림픽 마스코트라고 얘기하지 아시안게임 마스코트에 대한 말은 일언반구도 없다.

여담으로 호돌이가 마스코트로 선정된 이후부터는 국내 전국체전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이 참가하는 온갖 종류의 국제대회에서 한국 선수단이나 임원들은 어김없이 호돌이 마스코트와 서울올림픽 휘장을 등장시켜 홍보에 열을 올렸다.[3] 이러한 올림픽 홍보 몰빵에 아시안게임도 예외가 아니었던 셈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공개한 호돌이 관련 공식 자료집/2편[4]

2. 평가

역대 마스코트를 평가한 미국의 팝아트 비평가 피터 하틀라웁은 상모를 뚫어뻥 같다고 하기도 했다. # 물론 비하하려는 의미는 아니고 단지 그가 한국 문화나 역사를 잘 몰랐기 때문에 그저 자신이 상모를 보고 느낀 첫인상을 그대로 이야기한 것. 역대 3위라는 아주 좋은 평가를 주었다는 걸 보면 비하의 목적은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한편으로는 호돌이의 디자인이 컴퍼스를 이용하여 사물을 단순화하는 '도안'이라는 오래된 틀에 갇혀 진보된 이미지를 제시하지 못한 점을 한계로 지적하기도 한다. 불과 4년 후에 열린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마스코트 코비와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다.[5]

3. 탄생 과정

파일:FieJ1V4.jpg

캐릭터 디자인은 공모[6]를 통해서 1983년 산업 디자이너 김현[7]이 제안한 지금의 호돌이 캐릭터를 선정하였으며 최종 공모 당선작에서 수정을 가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호돌이 캐릭터. 다소 곡선적인 디자인이었던 초기의 호돌이를 두고 조직위 측에서는 다소 소극적인 느낌이 드는 디자인이라 평했는데 김현은 거의 5개월 가까이 독방에 들어앉아 수정작업을 거치며 현재의 호돌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주최측에서 호랑이는 맹수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보니 군사독재를 부각시킬 위험성이 있어서 토끼로 하는것을 더 선호했지만 가장 윗분이 호랑이를 선호해서 그냥 호랑이로 가기로 했다고. 까라면 까

1983년 11월 29일, 공식 마스코트가 발표된 이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름 공모를 하였고 이듬해인 1984년 4월 호돌이(HODORI)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여성형 캐릭터는 호순이. 그리고 이 호랑이는 적극적으로 정부에서도 하나의 홍보 수단으로 다 호돌이로 채워져있을 정도로 모든 생활품에 호돌이 마크가 넣었다. 이름을 채택하는 과정에 범돌이범 내려온다, 복돌이(...) 등이 후보에 올랐으나 압도적인 표로 호돌이가 선택되었는데 호돌이의 영문명인 HODORI가 불어권에서는 '오도리'라 발음될 수 있는 점[8]을 감안하여 호돌이는 제외될 뻔했으나 최종적으로 호돌이로 낙점되었다.

탄생 비화에서 하마터면 호돌이가 쓰이지 못할 뻔 했는데, 미국의 켈로그 측에서 조직위원회측이 자사의 '토니 주니어'[9]를 표절했다고 클레임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에 박세직 조직위원장이 미국까지 날아가 켈로그 회장에게 설득을 하였는데, "토니는 다이어트를 해서 그런지 매우 말랐지만, 호돌이는 포동포동하지 않느냐. 호돌이는 토니를 표절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득하였다고 한다.[10](토니의 변천사) 그 덕분에 서울올림픽 공식 후원사에 시리얼 부문은 빠져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켈로그의 영원한 경쟁사인 포스트(제너럴 푸즈), 운영사 제너럴 푸즈 측의 한국 제휴처인 동서식품에서 후원사로 참여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포스트랑 계약을 맺으면 상표권이 대놓고 꼬이니까, 이걸 체결하지 않겠다는 조건도 설득 내용 중에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4. 잊혀진 호돌이?

종종 호돌이는 잊혔다느니 왜 캐릭터로 안 쓰느니 하는 의견이 보인다.

그러나 호돌이에 관한 지식재산권은 올림픽 경기 전과 경기 중에는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가 행사하다가, 올림픽이 끝나고 난 후 올림픽 헌장[영어][한국어번역]에 따라 모든 권리가 IOC에 귀속되어 있고, 해당 국가올림픽위원회는 IOC를 대신해서 수탁관리 업무만 담당할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그대로 승계[13]해 구성된 준정부기관이라는 특성상 이쪽에서 맡긴 하는데, 이것 역시 수탁업무에 한정될 뿐 캐릭터의 소유권 등은 올림픽 헌장에 따라 IOC가 소유하고 있다. 당연히 지적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는 IOC의 허락 없이는 상업적 이용은 불가능하다. 2013년에 호돌이 발표 30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열고 마스코트 활용과 호랑이 국가브랜드화를 위한 토론이 열리기도 했으나, 이후에 별다른 소식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

근래 들어 응답하라 1988의 여파로 호돌이에 대한 관심이 몰렸지만 일시적인 붐일 뿐이고, 설령 호돌이에 대한 관심이 전국민적으로 들끓는다 해도 올림픽 마스코트가 대회 종료 후 상업적 용도로 사용된 전례가 없음을 생각하면 호돌이가 다시 상품화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된다. 현재 인터넷상에서 판매되는 호돌이 관련 상품은 대부분 최근에 IOC 승인 없이 무단 제작된 것들로 IOC 규정과 한국 저작권법에 위배되는 불법 상품들이다.[14]

그럼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나온 호돌이 상품들은 뭐냐고 물을 수 있을텐데, 해당 상품들은 서울올림픽 공식 프로모션 기간인 1984~1988년 사이에 출시되었던 오리지널(=합법) 상품들을 구해서 방송에 내보낸 것이다.

5. 만화애니메이션: 달려라 호돌이

5.1. 애니메이션

1987년에 대원동화가 애니메이션화하여 MBC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총연출은 송창의 PD, 감독은 심상일, 극본은 한대희 & 이영준, 효과는 김주식, 오디오는 이영철, 음악은 '작은별 가족'의 강인구 등이 각각 맡았다.

어린이날 저녁 7시 55분에 처음으로 방영하여 그 다음부터 매주 일요일에 1회씩 1988년 9월 11일까지 1년 4개월에 걸쳐 방영하다보니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가장 긴 시리즈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알아둘 점은 호돌이는 1회당 10분 밖에 안하던 애니였다. 시간도 자주 달라졌는데 12월 26일까지 일요일 저녁 7시 55분. 1988년 1월 3일은 오후 7시 20분,1월 10일부터 5월 8일까지는 7시 50분, 5월 15일부터 9월 4일까지는 5시 55분. 마지막화는 9월 11일 오후 5시에 방영하여 1988 서울 올림픽 개막 1주전에 딱 맞춰 끝났다.

호돌이가 한국의 어린이들, 그리고 대학 교수와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15]하는 내용인데 여기서 주인공이 호돌이를 부를 때 쓰는 주문이 지금 보면 상당히 오글거린다.
달려라 호돌이 주제가 소리

방영 당시 호돌이의 목소리는 성우 송도순이며 나머지 배역들은 한규희, 정희선, 안정현, 송도영, 이종오, 이종혁, 이규연, 김진숙, 김순선 등이 각각 맡았다. 오프닝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얄리 얄리 얄량성! 호~ 돌~ 아~~~~" (....)
작가도 좀 오그라든다고 생각했는지 이후에는 호돌이를 소환하는 주문 없이도 주인공 일행과 계속해서 여행하게 설정해놨다.


대한뉴스 제 1694호에서 해당 애니의 제작과정을 담았다.

참고로 이 달려라 호돌이는 올림픽 기념으로 만들어진데다가 MBC에서 처음으로 방영된 국산 TV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때문에[16] MBC에서 꽤 밀어주는 만화영화로 방영당시에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 당당히 편성되었고, 심지어 토요일 재방송은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 시작 전에 편성되기까지 했을 정도였다.[17] 한국 애니메이션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고 2001년 TV동화 행복한 세상 편성 이전까지 달려라 호돌이보다 편수가 많은 한국 애니메이션은 단 한 편도 없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18]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방송한 떠돌이 까치, 까치의 날개, 달려라 하니, 천방지축 하니, 독고탁의 비둘기 합창 등과 다르게 위의 사유로 올림픽이 끝난 이후로 재방송이 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영상자료를 구하기가 참 힘들며, 운 좋게 당대에 녹화된 비디오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MBC, 대원미디어 등에서 근무하지 않으면 못본다 봐도 좋을정도.
자료 화면으로 나왔던 달려라 호돌이 일부 영상들[19]

그래서 달려라 호돌이가 당대에는 꽤 인기를 끈 만화영화였음에도 현재까지도 달려라 호돌이 방송자료는 MBC 아카이브실에서 고이 잠들고있다는 후문이다. 결국에는 환상의 작품이 된 셈이다. 그나마 영상 일부가 1999년 투니버스에서 방영됐던 <한국 애니메이션 40년사> 3부에 짤막하게나마 나오며, 굳이 내용을 확인하려면 후술할 금성출판사 만화책판에 의존해야 한다. 위에 상술하듯이 이 애니 또한 IOC에서도 저작권 관련이 있기에 재방영이나 다른 매체로 내자면 저작권 문제가 걸리는 점도 있다.

사실, 이 애니는 한국 홍보물인 성격이 강했기에 21세기 이후 시점에서 보자면 국뽕물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에피소드도 있다. 외국인 백인 노부부가 한국에 오니까 한국적인 게 없고 옷차림이니 건물이니 서구풍이라 실망한 것을 사물놀이이니 뭐니 그렇게 즐기고 하회탈 벗고 이 할아버지가 코리아 넘버원이라고 하고 끝나는 에피소드가 있기도 했다. 그런데 이건 단순 국뽕이라기보다는 해외에 나갔는데 생각보다 특색있지 않아서 실망했다는 경험담은 지금도 흔한 일이기는 하다.

애니 제작 관련 비화는 <MBC 가이드> 1987년 5월호에서 확인 가능하다.(#1, #2, #3, #4, #5)

에피소드도 액션 요소도 있고 호러적 요소도 있다. 유럽 어느 고성에 머물게 되는데, 밤마다 사람들이 뭐에 홀려 버린다. 알고보니, 그 고성에 오래전에 봉인된 악마가 깨어나 호돌이 빼고 죄다 빙의하여 괴물처럼 변한다. 호돌이가 격전 끝에 쓰러뜨린다.

5.1.1. 표절 논란

또한 디자인 표절문제도 있었다. 이 당시에는 저작권 인식이 없던 시절이라 그랬기도 했다.[20] 남주인공이 이웃집 막장 꼬맹이를 부모가 나가서 잠깐 맡았더니 개초딩 짓을 저지르는 걸 호돌이가 보고 장난감을 거대화시켜 실체화하여 그 개초딩 꼬맹이 엉덩이 맴매를 치게한다. 문제는 이 로봇 디자인이 선라이즈에서 만든 일본 애니메이션 초력로보 가랏트#(超力ロボ ガラット,1984)에 나온 주인공 로봇 디자인을 그대로 베꼈다.... 가슴에 나온 G 대신 호라는 한글이 달린것 빼고. 이 개초딩이 울면서 로봇이 나를 때렸다고 나중에 온 엄마에게 말하지만 당연히 믿을 리 없었다. 그 시절, 해적판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 로봇 대백과를 통해 로봇들을 접해본 당시 아이들도 여기 나온 로봇을 보고 '어?' 이럴 정도였다.

이게 심각한 게 바로 이 애니 제작사인 대원동화가 바로 이 가랏트를 하청 제작하던 곳이며, 대원은 도에이에서 하청받아 만들던 비디오전사 레자리온를 무단도용하여 바로 비디오 레인저 007이라는 괴작을 개봉시켰다가 도에이 측 고소로 대표 정욱이 벌금도 내고 옥살이를 해야했다는 것. 즉, 대원이 하청받아 만든 애니 로봇을 베껴 한국 홍보애니에 쓴 거다.

더불어, 한 에피소드에 나온 악당이 만든 사람형 로봇 디자인은 형사 가제트가 입은 옷과 모자를 그대로 베껴 나오게 하는 똥배짱으로 그렸다. 아무런 말도 없이 나오던 이 로봇은 호돌이가 용광로에 밀어넣어 기계 몸이 다 드러나고 목에 설치된 중요장치를 떼어내 동작이 멈춰진다. 이 로봇을 써서 요인 암살 및 폭탄 테러로 쓰려다가 실패한 악당은 마지막 발악으로 요인을 스스로 암살하려고 했으나 호돌이가 직접 나서 실패하고 사로잡히게 된다.

5.1.2. 기타

그렇다고 표절이나 단지 홍보물이라고 이 애니를 욕할 것만도 아닌데 당시 1980년대 후반, 한국 여러 일상도 풍자되거나 애니로 그려지고 있다. 이를테면 <굿바이! 노총각>이라는 에피소드에선 벌이도 좋음에도 결혼못하는 농촌 총각을 다루며 당시 큰 문제로 다루던 농촌 총각 미혼 이야기를 아이들이나 본다는 애니메이션에서 진지하게 그려내기도 했다. 이 문제는 거성관 방화 사건(농촌 총각이 우발적으로 술김에 저지른 일이기도 하지만) 한 원인이 되기도 했고 당시 수사반장이나 전원일기에서도 다룰 정도였다.

그 시절에는 교육자료로 찬양받던 효자 손순 이야기까지 호돌이에서 애니로 나왔다. 지금 보자면, 어린 아들이 밥을 더 먹는다고 생매장하자는 게 효라고 어이를 날릴 일이라 퇴출당했지만 이걸 또 애니로 만들었고 영어 더빙도 되었다는 것도 말이다.

이 작품에서 호돌이 일행은 여러 나라들을 방문하는데 가는 국가들 대부분이 이 만화가 나올 당시에 자본주의/민주주의 진영에 속해있던 제1세계 국가들이나 또는 중립국인 스위스, 남미나 중동, 아프리카, 인도 등 제3세계 국가들이 대부분이고 공산주의 국가들은 중국하고 1980년대 당시 멩기스투 공산주의 정권의 치하에 있었던 에티오피아[21] 단 2개국밖에 나오지 않는다.

오류도 여럿 나오는데, 요구르트네팔어라고 네팔 아이(성우는 이선주)가 자랑하듯이 말하기도 한다.

5.2. 만화

파일:external/pgr21.com/1371208622_contents_sub_img_3009_3_3.jpg
파일:나무위키에 올릴 호돌이 만화1.jpg 파일:나무위키에 올릴 호돌이 만화2.jpg
금성출판사에서 당시 애니코믹스 형식으로 애니메이션의 원화들을 이용해 만화판이 나왔었고 1997년에 호돌이의 세계여행이라는 이름으로 각 권의 제목을 바꾼 개정판이 나왔었다. 범민족올림픽추진중앙협의회[22]가 기획하고 금성출판사 미술부 및 금성아트프로덕션이 작화를 맡았다.(왼쪽이 <달려라 호돌이>만화책의 초판, 오른쪽이 <호돌이의 세계여행>으로 개명한 개정판.)

다만 위의 애니메이션과 달리 로봇 표절과 같은 부분은 전혀 없다. 전 세계의 핵무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멍구 박사의 '이레네 빔'과 그걸 만들기 위한 핵심 재료 '겜마 707'을 찾기 위한 세계 여행과 모험이 주요 스토리다[스포일러]. 덕분에 어린이 학습만화임에도 첩보물에 가까운 만화로 재탄생했으며,[24] 퀄리티 역시 준수한 편이다. 그 시절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모습과 문화를 최대한 객관적인 시점에서 보여주려고 한 노력이 돋보인다.예를 들어 미국을 '인종의 용광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인종차별이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 있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그려냈고,[25] 이외에도 정보수집에 나름대로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것을 알수있다.[26]

이 외에도 각권의 뒤편에는 수 페이지에 걸쳐 사진들과 람께 해당 회차의 배경이 된 나라를 소개하는 기사형태의 부록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절판된 데다 올림픽용 기획만화라 헌책방에선 준 희귀 수준으로 구하기 어렵고,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도 소장 중이나 열람 불가 상태.

6. 기타

파일:141024112629243_1988+Seoul+Mascot+-+Gomdoori_0.jpg

1988 서울 패럴림픽 마스코트는 '곰두리'이다. 이 마스코트는 송파구에 위치한 체육관 마스코트로 쓰인다.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거나 방문한 프랑스어권과 스페인어권 사람들은 ㅎ 발음을 못해서 '오도리'라고 불렀다.

공익광고협의회의 1985년도 광고 중 '자연보호'를 주제로 한 광고와, 1986년 광고 중 아시안 게임을 주제로 한 광고의 모델로도 등장했다. 이 때 호돌이의 성우는 두 편 모두 박영남이었다.

서울특별시의 해치 이전 공식 마스코트였던 왕범이는 설정상 호돌이와 호순이의 자식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홍콩 영화 폴리스 스토리 2에서 호돌이가 잠깐 등장한 바 있다.

2008년 미국의 MSNBC 2008 베이징 올림픽 특집 방송에서는 `역대 올림픽 최고의 마스코트’를 선정했는데, 20년 전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였던 호돌이가 무려 3위를 차지했다. 이 순위는 당시의 시대적 혹은 정치적 관점을 배제하고, 오로지 외관으로만 평가한 기준으로 매겨진 순위였다.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벽화에 그려져 있다. 승강장 안전문으로 가려져 있어 제대로 보기는 힘든 편이다.[27]

서울 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인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호랑이 캐릭터인 수호랑이 공식 마스코트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호돌이와 수호랑은 서로 먼 친척이라는 설정이 있다고 한다.[28] 그런데 '호돌이 아빠' 김현의 인터뷰에 의하면 이 설정 때문인지 수호랑을 김현이 만들었다고 아는 사람이 많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한 바 있다.[29] 이후 2018 평창 동계올림픽/폐회식 선수 입장식 때 수호랑과 함께 등장했다. 또한 배성재 아나운서는 아직 호돌이는 정정하다고 한다.

2020년 9월 17일 서울올림픽기념 국민체육 진흥공단에서 임직원과 함께 제작한 백호돌이 마스코트가 조용하게 나왔다. 아마도 귀빈분과 88 올림픽을 기여하신 분들에게 드리는 백호돌이 마스코트 특별 제작으로 보고있다. 전술했던 저작권 문제로 인해 정신적 후속작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1] 상모가 포졸들이 쓰던 모자인 포졸모에서 모티브를 따와 만든 모자라 비슷하게 생기기도 했고 흔히 한국 사람들에게 포졸복장이 임금님복장으로 유명한 곤룡포와 사또복장으로 유명한 구군복과 더불어 가장 친숙한 전통차림인지라 호돌이의 모자가 포졸들이 포졸복을 입고 머리에 쓰는 모자인 포졸모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정수리부분의 굉장히 길다란 천을 보면 엄연한 상모이다. 남사당패들이 고개 돌리며 재주를 넘을 때 흥을 돋구기위해 정수리의 천부분을 길게 했다.[2] 아시안 게임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승인 하에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주관하는 올림픽의 지역 버전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오륜 메달을 썼다고 크게 이상할 건 없다.[3] 85년 고베 하계유니버시아드 폐회식에 호돌이 마스코트가 서울올림픽휘장기를 들고 입장하는 모습을 보도한 기사[4] 해당 자료의 이미지들 등의 자료들은 당연히 영리 목적 이용은 불가하다. 저작권은 상기되어 있듯이 IOC와 국민체육진흥공단(구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 있다.[5] 코비의 디자인은 한국의 디자인계에도 영향을 미쳐서 이후 코비 아류의 심벌들이 쏟아져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는 코비가 특출난 것으로 봐야 한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마스코트가 역대 최악이라는 평을 받는 것을 보면 말이다. 참고로 호돌이가 디자인된 시기는 1983년이고 당시 서유럽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한국의 군사/권위주의 문화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6] 만화가 신동우 화백도 응모했다.[7] 호돌이 이후에도 여러 마스코트와 상업용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90년대 중반에 등장한 블레오LG 트윈스의 초기 로봇형 쌍둥이 마스코트도 이분이 주도한 결과물이다.[8] 불어에서는 'h'[a∫\]가 묵음 처리된다. 로망스어군 언어 대부분이 그렇지만.[9] "호랑이 힘이 솟아나요!" 광고로 유명한 콘푸로스트의 호랑이 마스코트 '토니 더 타이거'의 아들이라는 설정.[10] 그런데 그 설득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박세직 위원장이 가져간 와인이었다. 켈로그 社 사장이 본인의 창고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와인광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정성에 켈로그 社도 클레임을 철회하였다고 한다.(서울올림픽 우리들의 이야기 中에서)[영어] Olympic Charter, Bye-law to Rule 50, 4: "The OCOG shall ensure the protection of the property of the emblem and the mascot of the Olympic Games for the benefit of the IOC, both nationally and internationally. However, the OCOG alone and, after the OCOG has been wound up, the NOC of the country of the host, may exploit such emblem and mascot, as well as other marks, designs, badges, posters, objects and documents connected with the Olympic Games during their preparation and celebration and terminating not later than the end of the calendar year during which such Olympic Games are held. Upon the expiry of this period, all rights in or relating to such emblem, mascot and other marks, designs, badges, posters, objects and documents shall thereafter belong entirely to the IOC. The OCOG and/or the NOC, as the case may be and to the extent necessary, shall act as trustees (in a fiduciary capacity) for the sole benefit of the IOC in this respect."[한국어번역] 올림픽 헌장, 규칙 50, 4에 대한 부칙: "올림픽대회조직워원회(OCOG)는 국내 및 국제적으로 IOC의 이익을 위해 올림픽 엠블럼과 마스코트의 재산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나 올림픽대회조직워원회 단독 및 , 올림픽대회조직워원회가 종료된 후 개최국의 NOC는 올림픽 대회 준비 및 축하 기간 동안 해당 엠블럼과 마스코트, 올림픽과 관련된 기타 마크, 디자인, 배지, 포스터, 물건 및 문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올림픽 게임이 개최되는 역년 말 이전에 종료됩니다. 이 기간이 만료되면 해당 엠블럼, 마스코트 및 기타 마크, 디자인, 배지, 포스터, 물건 및 문서에 대한 모든 권리는 다음과 같이 적용됩니다. 그 이후에는 전적으로 IOC에 속한다. 올림픽대회조직워원회 및/또는 NOC는 경우에 따라 그리고 필요한 범위 내에서 이와 관련하여 IOC의 유일한 이익을 위해 (수탁자 자격으로) 수탁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13]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 파견 나온 사람들이 올림픽 끝나고 제자리로 돌아가려 보니 갈 곳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이 사람들의 고용 문제도 해결할 겸, 서울올림픽도 기념할 겸, 체육 진흥 사업도 할 겸해서 만든 기관이 국민체육진흥공단이다.[14] 다만 가끔가다 1984~88년 사이에 출시되었던 오리지널(=합법) 상품들이 팔리기도 한다.[15] 정확히는 대학 교수가 여행을 하는 목적이 전 세계의 핵무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무기인 '이레네 빔'을 만들 때 필요한 원소 '겜마 702'를 악당들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먼저 찾기 위해서라는 첩보영화스러운 설정이 붙어 있었고, 이로 인해 스토리 중간중간에 평범하게 여행이 진행되다가도 겜마 702를 두고 주인공 일행과 악당들이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들이 꽤 많이 나온다. 결국 교수는 파르테논 신전에서 겜마 702를 찾는데 성공하였지만, 악당들의 손에 겜마 702가 들어가게 하지 않게 어쩔 수 없이 파괴하게 되고, 교수가 전 세계의 어린이들과 농구를 하는 호돌이를 보며 '저렇게 전 세계의 아이들이 평화롭게 어우러진다면 이레네 빔 없이도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겠지' 라는 말을 하며 스토리가 마무리된다.[16] 그 이전에는 뽀뽀뽀 단편 애니메이션이나 명절이나 휴일, 기념일에 나오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재탕하는 것 정도만 국산이었고 어린이 시간대에 정기적으로 방송하던 애니메이션은 미국이나 일본 등 외국에서 수입해온 것들이었다. 물론 외제 만화영화만 방송하는 것에 대해 항의가 수시로 들어왔기는 했고, 국산 만화영화는 제작계획이 세워지지 않았던 것으로 것은 아니지만 제작에 돈이 많이 든다며 백지화 되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서울 올림픽이 다가오던 상황이라서 외제 만화영화만 방송하기는 좀 그랬던데다가 현실적으로도 시청료 거부운동으로 수신료 징수율이 날이 갈수록 떨어졌던 참인지라(다만 피해를 본 건 주로 KBS이기는 했다. MBC도 신뢰도 상에 손상을 입었기는 했지만 애초부터 수신료를 나눠먹거나 한 건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는 적었다.) 양대방송사 입장에서 공영방송으로써의 가치를 내건 신규 콘텐츠의 제작이 필요했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MBC 달려라 호돌이와 KBS 까치 시리즈다.[17] 그나마 비슷하게 버프를 받았던 적이 있던 애니메이션은 TV동화 행복한 세상 정도가 있었지만 이건 1년 정도밖에 못 갔고 이후로는 비 황금시간대로 밀려났다. 거기에다가 원래 KBS내에서도 2TV 메인 뉴스는 한직 취급받아서...[18] 사실 아기공룡 둘리가 이보다 더 장편으로 제작될 수 있었지만 원작의 사회풍자적인 면을 순화한 나머지 원작자가 연장방송을 거부해서 무산되었고, 이후로 2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외전격인 작품만 제작되었을 뿐, 신규 TV애니메이션 제작은 제작비 등의 문제로 인해 지지부진하여 새로운 에피소드가 제작된 것은 2009년에 와서였다.[19] 0:26초 부터는 소리가 작게 나온다, 참고로 0:51초 부터 1:02초 까지 짧지만 주제가가 들린다.[20] 예를 들어 프로축구 포항제철 돌핀스를 포항 아톰즈라고 명칭을 변경하고 아톰 마스코트를 쓰는것도 이 시대의 일이었다. 우습게도 이 시절, 일본도 그래서 일본 자국 여러 캐릭터들을 무단으로 게임이나 만화에 넣던 게 흔했다. 덕분에 이런 매체물들은 이후 2차 시장으로 재발매가 어렵게 된 원인이 되어버린다.[21] 말이 공산주의 정권이었지. 실상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 세력들이 독재정을 행하는 여타 아프리카권 국가들에서 볼 수 있었던 무능하기에 짝 없는 군부 독재 정권에 가까웠다. 실제로 멩기스투도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쿠데타 반란군 출신이었다.[22] 1985년 3월 발족, 1988년 12월 7일 해산.#[스포일러] 실제로 마지막 권인 그리스 편에서 겜마 707을 찾는 데 성공하지만, 도중에 자신의 밥줄이 끊길 것을 염려한 거물 무기밀수업자에게 겜마 707을 탈취 및 폐기당하고 만다.[24] 총기 및 인질극은 기본이고, 이중간첩, 국가기밀 유출을 둘러싼 암투, 악역들 간의 배신까지 나온다. 어린이들이 이걸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25] 물론 이 당시에도 AFKN에서 방송되는 ABC 뉴스같은 프로그램으로 실시간으로 정보를 접하는 경우는 있었다.[26] 주인공 중 한 명인 태돌이는 태권도를 통해 결정적인 활약을 많이 해낸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악당에게 기습을 했는데 실패하는 장면도 나온다.(...)[27] 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호돌이 벽화가 있냐면 당시 동대문운동장이 있었기 때문이다.[28] 공교롭게도 패럴림픽 마스코트인 반다비 역시 1988년 패럴림픽 당시 마스코트였던 곰두리와 마찬가지로 곰 캐릭터이다.[29] 꼭 틀린 말은 아닌 게, 수호랑을 만들도록 디자인팀에 압력(?)을 행사한 사람이 김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