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해수(명나라)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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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사에서는 두 사람이 존재하는데 모두 백제 사람이다. 이들의 혈연관게는 불명이지만 대성팔족 해씨로써 혈연관계가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2. 백제 전지왕대의 대신 解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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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국 상좌평 해수 | 解須 | |
<colbgcolor=#00A6A9> 직위 | 상좌평(上佐平) |
성씨 | 해(解) |
이름 | 수(須) |
생몰연도 | 미상 |
백제 전지왕대의 대신. 대성팔족중 일원인 해씨가문 출신으로 전지왕의 외척이다.
전지왕 3년 407년 당시 왜(倭)에서 돌아온 전지왕의 즉위에 있어서 해씨가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여졌고[1] 이에 대한 논공행상 차원에서 내법좌평의 벼슬을 내린 것으로 보여진다.[2]
이후 비유왕 3년째인 429년 10월 상좌평 부여신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상좌평에 올랐다.
455년 이전에 정계에서 물러났거나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무왕대의 좌평/장군 解讎
解讎생몰년도 미상
백제 대성팔족 중 하나인 해씨(解氏).
602년 신라가 백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자 이를 방어하기 위해 무왕은 좌평 해수에게 보기 4만명의 병력을 주어 막게 하였다. 해수는 이들 병력을 이끌고 신라의 소타(小陀), 외석(畏石), 천산(泉山), 옹잠(甕岑) 4개성을 공략했으나 신라 장군 건품(乾品)과 무은(武殷)이 군대를 이끌고 저지를 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백제군이 불리해지자 해수는 군대를 천산 서쪽의 큰 연못 한가운데로 후퇴시킨후 복병을 배치시킨채 신라군을 기다렸다.
이때 신라군의 장수 무은이 중무장한 보병 1천을 이끌고 큰 연못까지 쫒아왔고 이때 매복해둔 복병을 동원해 신라군을 공격하니 무은이 말에서 떨어졌다. 무은을 지키기 위해 무은의 아들 귀산(貴山)과 소장(小將)인 추항(箒項)이 격렬히 싸우다 전사하자 이를 본 신라군이 분노해 백제군을 쓸어버렸고 해수는 겨우 목숨만 살아 홀로 돌아왔다고 한다(...).
[1] 해충(解忠)의 경우에도 보여지듯이 부여설례가 왕위를 찬탈하는 반역이 벌어지며 긴박했던 국가 내부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 전지왕이 오를수 있게 도와주었다.[2] 같은 해씨가문인 해충도 병관좌평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