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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증권배 2002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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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증권배 2002 프로야구
기간 2002년 4월 5일 ~ 2002년 10월 20일 (정규시즌)
2002년 10월 21일 ~ 2002년 11월 10일 (포스트시즌)
참가팀 KIA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현대 유니콘스,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 이상 8개팀.
스폰서 삼성증권

1. 개요2. FA3. 중계 방송
3.1. 정규시즌 중 지상파 방송 경기
4. 정규시즌 최종순위5. 신인드래프트6. 포스트시즌

1. 개요

2002년에 열린 프로야구 시즌. 팀당 133경기씩 총 532 경기가 열렸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때문에 한국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경기가 치러지지 않았다.[1] 그리고 이 해 한국이 4강까지 가게 되면서 프로야구는 인기 하락의 길로 접어든다. 거기에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휴식기도 가졌다. 당해 관중 수는 2,394,570명으로 프로야구 초기1983년과 비슷한 수치다.

특히 인기구단이던 롯데 자이언츠는 이해 6월 백인천이 감독에 취임하고 35승 1무 97패[2]라는 처참한 기록과 함께 압도적인 꼴찌로 떨어졌다. 그 결과 한화 이글스와의 홈 최종전에서 유료관중 69명이라는 기록을 남겼다.[3] 이 해의 롯데 승률은 전무후무한 1할 승률의 1982년 삼미, 1997년 외환 위기로 선수들을 몽땅 판 1999년 쌍방울을 이은 역대 최저 승률 3위다.

SK 와이번스문학 야구장을 사용한 첫 해다.

2. FA

자격 취득 선수 17명중 4명이 신청을 하였다.

잔류

SK 김원형 : 4년 14억 원 (옵션 3억 원 포함)
현대 전준호 : 3년 12억원 (옵션 2억 원 포함)

이동

LG 양준혁 → 삼성 : 4년 27억 2천만 원 (옵션 4억원/ -6억원 포함)
롯데 김민재 → SK : 4년 10억

3. 중계 방송

지난해까지 중계를 맡은 KBS 위성2가 KBS KOREA로 개편되었고 KBS SKY SPORTS가 개국하면서 KBS의 케이블 중계 채널이 변경되었다.

3.1. 정규시즌 중 지상파 방송 경기

4. 정규시즌 최종순위

순위 경기수 게임차 승률
1 삼성 라이온즈 133 82 4 47 0.0 0.636
2 KIA 타이거즈 133 78 4 51 4.0 0.605
3 현대 유니콘스 133 70 5 58 11.5 0.547
4 LG 트윈스 133 66 6 61 15.0 0.520
5 두산 베어스 133 66 2 65 17.0 0.504
6 SK 와이번스 133 61 3 69 21.5 0.469
7 한화 이글스 133 59 5 69 22.5 0.461
8 롯데 자이언츠 133 35 1 97 48.5 0.265

전년도와 다르게 승률 인플레가 역대급으로 심했던 시즌. 6할 승률 팀이 두 개나 나왔는데 그 두 팀간의 승차도 4경기나 된다.[9] 여기에 7위의 승률이 0.461 이 한마디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며, 그 이유 역시 무엇인지는 잘 알 것이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3한화도 안 이랬다, 이놈들아! 승률도 승률이지만 1위와 7위의 격차보다 7위와 8위의 격차가 더 크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0] 이 시즌의 두산 역시 5할 찍고 가을야구 못 나갔으니 심각한 승률 인플레의 피해자이다. 한화도 승패에서 -10을 기록하고도 꼴찌에서 두번째를 기록했으니 나름 피해자. 참고로 이 해가 2023년 현재까지 승률 2할대 팀이 나온 마지막 시즌이다. 작년 시즌에는 야구다운 야구를 했던 8개구단 이라면 롯데 빼고 야구한 느낌 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 해 삼성 라이온즈KBO 한국시리즈를 우승한 시즌 중 정규시즌 승률이 가장 높았다. 삼성의 단일 시즌 별 승률중 1985년, 1982년, 1986년에 이어 4번째로 높았다. 물론 삼성이 이마양이라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클린업트리오를 보유한 것도 이유로 볼 수 있지만 시즌 중반만 해도 3위까지 떨어진 점을 감안하면 승률 인플레의 영향이 없진 않다. 7월에 7연패로 선두 KIA에 7.5경기차 3위로 추락하는 등 위기를 겪다가 전력을 추스린 뒤 9~10월에 15연승을 기록하면서 KIA를 제치고 선두를 탈환했다. 타선들이 좋았지만 반대로 도루수는 지난시즌 보다 1.5배 가량 감소하면서 8개구단 개편 역대 최소 팀 도루를 기록[11]했다.

한편, 이 해 KIA 타이거즈김성한 감독이 "감의 야구"를 잘 활용하고 일본에서 돌아온 야구천재 이종범, 한창 커리어 하이를 찍던 장성호와 신진 선수들의 대활약으로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오랜만에 가을잔치에 복귀했다. 외국인 투수인 마크 키퍼다니엘 리오스[12]가 신인 투수 김진우와 함께 원투쓰리펀치를 형성했다. 물론 여기도 승률 인플레를 많이 봤지만. KIA는 두산과의 개막시리즈에서 싹쓸이하는 등 시즌 초반부터 선두권으로 치고나갔고 6월부터 9월까지 3달간 선두를 유지했었지만 막판에 뒷심부족과 함께 삼성의 연승행진으로 결국 선두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사족으로 이종범은 시즌 후 골든글러브 시상때 살짝 논란[13]이 되어 유야무야 묻혀버렸다.

현대 유니콘스는 뚜렷한 성과는 전혀 없었고 이해 데뷔한 신예 마무리 투수 조용준과 중간계투 선배들인 이상열/신철인/권준헌 등등 함께 마운드를 거의 짊고 다녔다. 타자쪽은 이숭용 답지 않은 홈런 19개를 치며 심정수의 뒷타석에 든든한 조력이 되어줬다. 한편 심정수는 삼성의 이승엽과 함께 홈런왕 싸움을 벌였고 아쉽게 1개차이로 2위를 기록하였지만 팬들에게 많은 박수와 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국가대표 출신인 박재홍박경완이 현대 소속기간으로 커리어로우를 기록하며 팀을 떠나게 된다. 물론 이해 현대 타선은 심정수와 이숭용 전준호를 제외한 나머지 투수와 타자들이 지난해 보다 성적이 개막장화 되었다.

LG 트윈스는 초반 부진으로 한때 최하위를 기록해 김성근의 경질설이 나왔지만 '야생마' 이상훈의 국내 복귀 및 여러 부상 선수들의 복귀와 맞물려 이동현장문석신나게 굴리면서 9연승 등 상승세를 타며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갔다. 그러나 서용빈의 시즌 중 군 공백, 타선의 핵심 김재현의 고관절 부상 등 전력누수가 발생하며 정규시즌을 4위로 마쳤다.

지난 해 우승팀 두산 베어스는 전반기 10승 투수를 3명 배출하고, 44승 2무 29패 1위 KIA에 3.5차 2위로 마감했고 5위 LG와 8경기 차로 넉넉하게 앞서있었지만, 후반기 개막하자마자 8월에는 알 수 없는 차를 타며 충격의 9연패를 당하더니 심재학우즈도 부진[14]에 빠졌고 빅터 콜은 태업[15], 시즌 막판 SK 상대 6연패로 고춧가루를 당해 수렁에 빠지더니 결국 LG에 밀리며 5위로 가을야구조차 나가지 못했다.

30년간 인천 연고팀의 홈구장으로 쓰였던 낡고 좁은 숭의야구장을 벗어나 당시 KBO 리그의 최신식 경기장으로 각광을 받던 문학야구장으로 홈구장을 옮긴 SK 와이번스강병철 감독의 유망주 중심 기용으로 이진영, 이호준이 중심 타자로 성장하였고 호세 페르난데스가 45홈런을 치는 대활약을 보인다. 또한 이승호는 1선발로, 채병용, 조규제는 전천후로 마운드를 지탱하였으나 페르난도 에르난데스가 전년도의 혹사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으며, 조니 러핀의 부진으로 대신 들어온 대니얼 매기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등 외국인 투수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며 시즌을 전년도보다 1계단 오른 6위로[16] 마치게 된다. 결국 강병철 감독은 시즌 종료 후 계약기간을 1년 남겨두고 자진사퇴하게 된다.

한화 이글스는 전년도보다 조금 낮은 승률을 기록했지만 이번에는 4위가 아닌 7위였다. 송진우가 다승 2위인 18승, 송지만이 38홈런으로 맹활약에 이영우가 20홈런을 때리며 건재했지만 국내복귀한 정민철이 위장선발급 평범한 투수로 전락했으며 제이 데이비스는 국내에서 뛴 3시즌간 보다 이해에 살짝 떨어지는 성적을 보였주듯이 못했고, 장종훈은 15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에 성공했으나 타율이 점차 내려가며 노쇠화를 보였으며 신인왕 김태균은 ~백골퍼의 디버프를 받아~ 소포모어 징크스에 시달렸다. 그나마 3년차 이범호가 커리어 첫 두자리수 홈런을 기록하며 포텐을 거의 터뜨린게 위안거리였다. 6월에 롯데 다음으로 나쁜 4승 15패를 기록한 것이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의 결정타로 작용했고 8~9월의 상승세로 두산의 추락과 맞물려 잠시 희망고문했으나 다시 연패에 빠지며 7위로 마쳤다.

롯데 자이언츠는 이게 지난해 승률 4할 5푼을 기록한 팀이 맞을까 싶을정도로 처참히 무너졌다.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와 맞먹는 시즌급으로 떨어지며 한동안 암흑기를 거쳐야 했다. 이 시즌이 바로 롯데팬들이라면 치를 떠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불리는 백인천이 재임한 시즌이었다. 이 시즌은 도루와 실책을 제외하면 팀 기록이 전부 8위를 찍을 정도로 막장화가 되었고, 롯데는 이후 가을야구를 가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5. 신인드래프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프로야구/2003년/신인드래프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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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6. 포스트시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프로야구/2002년 포스트시즌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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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기 편성이 없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5월 31일 금요일 개막일, 6월 4일 화요일 폴란드전, 6월 14일 금요일 포르투갈전, 6월 18일 화요일 16강 이탈리아전, 6월 22일 토요일 8강 스페인전, 6월 25일 화요일 4강 독일전, 6월 29일 토요일 3, 4위 결정전 터키전[2] 참고로 이 97패는 쌍방울 레이더스가 1999년 시즌에 거둔 패수와 일치한다.[3] 롯데의 홈경기는 1,000명조차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우취] 우천 순연[DH1] 더블헤더 1차전[DH1] [DH1] [DH1] [9] 단일리그제에서 6할 승률을 기록하고도 정규리그 우승에 실패한 팀은 1995년 LG 트윈스, 2002년, 2003년 KIA 타이거즈, 2009년 SK 와이번스, 2014년 넥센 히어로즈, 2019년 SK 와이번스, 2019년 키움 히어로즈, 2022년 LG 트윈스가 있는데 이 해의 KIA를 제외하면 모두 1,2위간의 승차가 2경기 이내였다.[10] 이 결과 전년도에 4할 5푼 8/7리로 7/8위를 한 SK와 롯데의 성적은 그냥 묻혀버렸다. 특히 전년도 롯데의 승률은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꼴찌 팀이 승률 4할 5푼을 넘긴 유니크한 사례다.[11] KBO 초창기 6개구단 한정으로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35개도 있다.[12] 시즌 초에는 마무리로 뛰다가 선발로 돌아갔다.[13] 성적은 중박 정도 되는데 저정도급이면 타팀에도 몇몇이 있기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이해는 한일월드컵의 4강신화 분위기와 야구팬들의 암흑기라 알고있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었다.[14] 특히 그놈의 우즈 존 때문에 심판이랑 툭하면 말다툼 나오기 일삼았다.[15] 나중에 우즈도 태업을 "하고있다" 라는 소문까지 나왔다.[16] 시즌 초 팀을 먹여 살리던 타자이자 효자용병인 틸슨 브리또와 묵묵히 팀을 위해 던지던 마당쇠 투수 오상민이 트레이드로 떠나면서 삼성에 받아온 6명의 선수들을 기용했으나 전원 신통치 않았고 트레이드 승자는 삼성이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