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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3:31:40

한강 영화촬영 헬기 추락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파일:한강_영화_촬영_헬기_추락_당시.png
사고 헬기의 추락 당시 사진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 1993년 6월 14일
유형 조종사 과실, 정원 초과
발생 위치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서울특별시
한강 잠실선착장 부근
기종 Sikorsky S-76
운영사 SK에코플랜트
기체 등록번호 HL9245
탑승인원 승객: 7명
승무원: 1명
사망자 승객: 6명
승무원: 1명
생존자 승객: 1명
출발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잠실 헬리패드
도착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잠실 헬리패드
1. 개요2. 사고 경과3. 사고 원인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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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3년 6월 14일 서울 한강의 잠실선착장 부근에서 영화를 촬영하던 중 헬기가 근접 촬영을 위해 고도를 낮추다가 추락하여 7명의 사망자를 낸 추락 사고이다.

사고 원인은 헬기의 정원 수 초과와 조종사의 과실이다.

2. 사고 경과

1993년 6월 14일 오후 4시경 서울 송파구 한강공원 부근의 잠실선착장에서 미도영화사[1]가 제작하는 영화 <남자 위에 여자(고영남 감독)>의 첫 장면인 선상 결혼식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당시 주연이었던 변영훈[2]과 영화사 관계자, KBS 연예가 중계 촬영팀이 헬기에 탑승한 후 이륙하였고 선착장 부근에서는 상대 주연이었던 황신혜가 촬영을 위해 대기 중이었다.

이날 오후 3시 50분경 잠실 헬리패드를 이륙한 헬기는 10분 가량 한강 50여 m 상공에서 두 차례 선회하며 선상 결혼식 장면을 촬영했다.

오후 4시경 촬영감독인 손현채가 최정조 기장에게 '앵글이 잘 안 잡힌다'며 '근접 촬영을 위해 고도를 낮춰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최정조 기장은 헬기의 고도를 수면으로부터 10여 m 떨어진 곳까지 낮추었고 이 때 헬기가 기우뚱거리면서 수면으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최정조 기장, KBS 카메라맨 백순모[3], 촬영감독 손현채, 촬영보조 김종만, 선경건설 (現 SK에코플랜트) 직원 김성준은 현장에서 즉사했다. 미도영화사 사장 이상언과 영화배우 변영훈은 구조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상언은 이송 4시간만에 사망했고 변영훈은 뇌사 상태에 빠져 75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생존자인 KBS 김일환 PD는 헬기 안에서 허우적거리다 깨진 창문으로 빠져 나와 기체 위로 올라가 목숨을 건졌으며 선착장에 있던 세모[4]유람선 소속 구조요원들이 그를 구출했다.

추락한 헬기는 사고 다음 날 인양되었고 당연하지만 영화는 제작이 영원히 중단되었다. 감독인 고영남도 충격을 받아 한동안 요양을 가야 했다고 한다.[5]

3. 사고 원인

사고 헬기는 미국의 시코르스키 사의 S-76 기종으로, 1977년 비행을 시작하였으며 1990년부터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이 운행하고 있었다. 최종현 당시 SK그룹 회장이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정원을 초과하여 탑승한데다 반드시 탑승해야 할 부기장 이용운이 탑승하지 않았으며[6] 최정조 기장은 조종석에 촬영감독인 손현채를 앉히고 부조종석에서 헬기를 조종하는 바람에 사고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다. 촬영감독의 요구로 기장이 안전 고도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하강비행을 하다가 결국 추락하고 말았다. 당시 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항공기 전반에 검사를 실시했는데 기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당시 추락 지점에서 불과 50여 m 앞에 한강 순찰대 본대가 있었으며 순찰대원들은 추락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 작업이 늦게 이뤄져 결국 안타까운 비극을 낳고 말았다.

4. 기타



[1] SKC로부터 자본 등 지원을 받는 영화사로, 삼성-스타맥스대우-우일영상 관계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2] 주연이 탑승한 이유는 헬기에서 뛰어내린 후 배에 착지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3] 그로 인해 사고가 일어난 지 6일 뒤에 방송된 드라마 게임 제471화는 그가 제작에 참여한 마지막 드라마가 되었으며 엔딩 크레딧 직전에 생전 사진과 함께 추모 문구를 방송했다.[4] 훗날 그 이상을 능가하는 사고를 일으킨 청해진해운의 전신인 그 회사 맞다.[5] 이 영화의 감독인 고영남은 이후 활동이 저조해졌다가 1999년 그림일기를 찍었으나 평가는 감독 항목에 나와 있듯이 최악이어서 은퇴작이 되었고 2003년 9월 17일 사망하였다.[6] 항공 교범에는 시계 거리가 5km를 초과한 경우에는 부기장 없이도 기장 단독으로 비행이 가능하지만 5km 이내인 경우에는 반드시 부기장을 탑승시키고 비행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사고 당시에 김포공항과의 시야가 4km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부기장인 이용운이 탑승하지 않았다.[7] 대한항공의 자회사였다.[8] 당시 동국제강 대표이사 회장 김종진 등 8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