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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31:08

피와 뼈(영화)

피와 뼈 (2004)
[ruby(血と骨, ruby=ちとほね)]
Blood and Bones
파일:chi-to-hone-japanese-movie-poster.jpg
감독 <colbgcolor=#ffffff,#1f2023>최양일
원작 양석일피와 뼈
제작 에노키 노조무
각본 정의신, 최양일
출연 기타노 타케시, 마츠시게 유타카, 아라이 히로후미, 스즈키 쿄카, 오다기리 조, 쿠니무라 준
음악 이와시로 타로
촬영 하마다 타케시
편집 오쿠하라 요시유키
제작사 파일:일본 국기.svg 쇼치쿠
배급사 파일:일본 국기.svg 쇼치쿠
개봉일 파일:일본 국기.svg 2004년 11월 6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5년 2월 25일
화면비 1.85:1
상영시간 140분
흥행 수익 $4,649,617 (최종)
상영 등급 파일:영등위_18세이상_2021.svg 청소년 관람불가

1. 개요2. 등장인물3. 줄거리
3.1. 결말
4. 기타

[clearfix]

1. 개요

동명의 일본 소설 피와 뼈를 원작으로 최양일 감독, 기타노 다케시 주연으로 만들어진 일본 영화이다.

이 영화의 이름이기도 한 《피와 뼈》는 영화 속에서 이어지는 폭력의 핏줄을 의미하는 측면도 있지만 실제로 작가의 원작 소설은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를 닮아가면서 작가가 느낀 소회와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미안함, 화해를 묘사하고자 쓴 소설이다.[1]

2. 등장인물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3. 줄거리

일제강점기1923년(다이쇼 12년) 고향 제주도를 떠나 일본 오사카로 건너온 김준평.[4] 김준평은 마치 괴물과도 같은 무시무시한 사람이다. 그는 오사카로 이주해와서 이영희(배우는 스즈키 쿄카)와 반강제로 결혼한다. 본래는 이영희는 제주도에서 10살의 철부지 신랑과 결혼했다가 못 참고 제주도를 뛰쳐나와 오사카로 건너가고 그곳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다가 그곳의 재일 조선인 주임과 눈이 맞아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쫓겨났다. 그 뒤 김준평에게 강제로 겁탈을 당한다. 오밤중에 김준평은 이영희의 집으로 불쑥 쳐들어와 ''김치'', 이렇게 딱 두 마디 요구를 한다.[5] 이후 김준평은 하나코와 마사오 등 자녀도 낳고 폭력을 휘두르며 살아간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김준평은 징병을 피해 갑자기 집을 나가버리고는 전쟁이 끝나자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들을 위협하고 다 쓰러진 폐가를 직접 고쳐서 고신의, 장찬명과 함께 어묵 공장을 차린다. 그리고 어묵 장사가 번창할 때 쯤, 그가 혼외정사로 낳은 사생아 아들 다케시(배우는 오다기리 죠)가 그를 찾아온다. 그리고 다케시가 떠날 때 돈을 좀 달라고 해도 돈이 없다고 하다 다케시의 만행에 폭발하고 다케시와 싸운다.[6] 이후 다케시는 이영희에게 약간의 돈을 받고 떠나지만, 마사오가 후술하길 김준평의 집을 떠난 지 열흘 만에 히로시마의 한 캬바레에서 야쿠자의 총에 등을 맞고 허무하게 죽었다고 한다.

이후 자기 집 근처에 있는 집을 사고 그곳에 살림을 차려 전쟁미망인 기요코(배우는 나카무라 유코)와 또 혼외정사를 일삼는다. 그리고 그는 어묵공장을 이용해 번 돈으로 고리대금업을 시작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기요코가 갑자기 뇌종양으로 쓰러지고 김준평은 아내와 딸을 위협한다. 그리고 딸을 계단에서 밀쳐서 이가 빠지게 만들었고 하나코는 자살하기 위해 쥐약을 16개나 먹었지만 다행인지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일로 아버지를 죽여버리기로 결심한 마사오는 목욕탕에서 아버지를 죽이려 하지만 그의 힘에 밀려서 욕조로 내동댕이쳐진다. 이 일로 마사오는 코뼈와 늑골 2개가 부러져 급성늑막염으로 다음 날 병원에 입원했다. 그 뒤, 기요코가 병들어 누운 탓인지 아니면 어묵 수입이 줄어든 탓인지 결국 그는 어묵공장 문을 닫았고 점점 지치기 시작한 건지 고리대금업에 집착하게 된다. 이 때 그에게서 돈을 빌린 철물점 조영생 (일본식 이름은 '난바라 에세'. 배우는 쿠니무라 준)씨는 그에게 계속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퇴원하게 된 기요코를 김준평은 정성을 다해 돌봐준다. 계속 성적인 학대나 폭력만 저지르는 괴물 김준평이 저러는 모습은 나름대로 감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후엔 죽여버리지만...

그리고 하나코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난다는 생각으로 원하지도 않은 결혼을 하게 된다.[7] 이후 김준평은 기요코를 대신할 새로운 내연녀 사다코를 데리고 온다. 그는 사다코에게도 아내에게 했던 것처럼 성적인 학대를 가한다. 이후 김준평의 집안은 계속 풍비박산나게 되는데, 누나가 짝사랑하던 남자인 찬명은 [8] 민족의 지상낙원인 공화국 건설에 동참할 것을 꿈꾸고 북한으로 월북한다. (월북하는 재일조선인들을 환송하는 장면에서 인공기와 조총련기가 화면 전면에 다수 배치되어 있는 가운데 김일성 장군의 노래가 불려지는 장면은 한국에서 삭제된 채 방영되었다.) 월북 이후 소식이 완전히 끊겨버린다.[9]

이후 기요코를 돌봐주는 것에 지친 김준평. 그는 결국 기요코를 적신 신문지로 눌러 죽인다. 그리고 마사오는 김준평이 기요코를 죽이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 기겁한다. 이 때 김준평은 지친 표정으로 말한다. '편하게 해줬어.' 이후 기요코를 죽인 일을 묵인하자고 하는 어머니와 신의 형이 못마땅해진 마사오는 화가 나서 집을 떠나 태수와 영수의 양돈장에서 일을 하는데 몇 번씩 고신의가 와서 마사오의 마음을 돌려보려 하지만, 그것도 통하지 않았다. 이후, 이영희마저 암으로 쓰러지고 어머니의 암 치료비 문제로 김준평을 찾아간 마사오. 하지만 그를 설득해봤자 전혀 효과가 없었다. 김준평은 돈 줄 생각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아내가 죽어가도 알 바 아니라고 했고, 마사오가 반항하자 상을 뒤엎기도 한다. 그러다 후에 마사오와 싸우다 마사오에게 수 차례 밟힌다. 마사오는 김준평이랑 크게 싸우는데 마사오는 김준평을 널판지로 덮고는 격렬하게 밟으며 '죽어! 이 놈아! 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열 받은 김준평과 마사오는 각자의 살림살이를 개발살내버린다.

그리고 하나코는 남편에게 계속 폭력을 당하자, 동생을 찾아가 사정을 얘기해보지만, 안타깝게도 마사오 역시 김준평을 닮아가고 있었다. 마사오는 가정폭력으로 힘들어하는 누나에게 아파트를 빌릴 돈을 주기는커녕 ‘그저 집이 최고라고. 손찌검을 해도 우리 아버지보다는 낫잖아. 그리고 어릴 때부터 죽어, 죽는다는 소리만 하고... 지긋지긋하다. 죽을 거면 정말 죽어보든가.’라고 말을 해, 누나가 진짜로 자살을 하게 만들었다. 그 후, 하나코의 장례식에 갑자기 나타난 김준평. 그는 그에게 시건방지게 행동하는 사위를 두들겨 패고 장례식장에서 난동을 부려댄다. 그렇게 난폭하게 난동을 피우던 도중 갑작스레 중풍으로 쓰러지게 된 김준평은 갑작스레 쓰러지면서 아내인 이영희에게 "애미... 애미야... 못 서겠어... 다리가 저려서... 못 서겠어..." 라면서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내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냥 죽어버리라면서 독설을 내뱉는다. 이전부터 그의 가족들이 얼마나 김준평을 불신해왔는지 볼 수 있는 장면이며, 더불어 무소불위의 폭력을 휘두르던 김준평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린아이같이 애원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다코는 김준평이 뇌졸중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자 김준평의 모든 돈을 챙겨서 자식들과 도망가버린다.

3.1. 결말

하지만 근성의 김준평은 이에 굴하지 않고, 그에게서 돈을 빌린 공장주인 오야마의 공장에 직접 찾아간다. 그의 사무실에 태극기가 있는 것을 보면 그 또한 재일 한국인인 듯 하다. 성씨로만 보면 본래 성은 최씨나 서씨였을 가능성이 있다. 예전에 김준평에게서 300만엔을 빌렸었다. 그도 고생 많을 듯 김준평은 오야마에게서 돈을 회수해 다시 악착같이 재산을 모은다. 시장에서 쓰레기로 버리는 배추잎을 주워다가 혼자 국을 끓여먹고 빨래도 직접 하는 등 절약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계속 지내다 아내 이영희가 죽자 이영희의 장례식에 찾아온다. 이때 신의는 마사오를 보고 '모셔올까?'라고 했으나 김준평을 증오하는 마사오는 '그럴 필요 없어요.'라고 말한다. 그래도 신기는 김준평을 모셔온다. 하지만 김준평은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조용히 가버린다. 그리고는 자신도 슬슬 뒷정리를 해야 함을 느끼고 신의와 함께 마사오에게 찾아가 자기 밑에서 일할 것을 종용하지만, 아들로부터 "지금까지 제멋대로 살아왔으니, 죽을 때까지 당신 멋대로 하라." 는 모진 소리만 듣게 된다.그러자 김준평이 마사오를 때리려고 하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의 그에게는 더 이상 힘이 없었다. 결국 단념한 김준평은 마사오의 곁을 떠나고, 어느 날 사다코가 낳은 어린 아들 류이치(배우는 이토 아츠시. 청년시절의 김준평을 연기하기도 했다.) 를 납치하다시피 끌고 가 북한으로 건너가 버린다. 일생동안 모은 재산을 북한에 기부하는데 이 때 북한에 기부한 재산은 독일제 자동제판기 5대, 자동차 5대, 2톤 트럭 5대, 고급 손목시계 백 개(세이코 시계), 의류, 신발, 화 7천만엔이라고 한다. 이후 김준평은 가난하게 살다가 1984년(쇼와 59년)에 세상을 떠난다.

김준평의 인색하고 몰인정한 성격은 북한으로 데려간 류이치에게도 그대로 유전되어서, 류이치는 김준평이 임종하기 직전까지 아비에게 죽 한그릇도 주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어린시절 가족들과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북한에 끌려간 데다가, 북한에서 '째포(제일교포)' 출신으로 차별까지 받았을 테니 영 제대로 된 환경에서 성장했을 리 없다. 게다가 김준평은 하나코와 마사오에게도 모질게 대했는데, 혼외자식 류이치에게만 다정하게 대했을리는 없다. 아마 폭력과 학대를 받으며 성장했을듯. 자신의 아버지를 증오하는 것은 당연지사. 자기를 어린나이에 강제 북송시켜서 인생을 망치게 해버렸는데 죽 한숟갈이라도 주고 싶을리가

결국 김준평은 아들의 방치 아래 낡은 초가집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는다.[10]

4. 기타


[1] 일부 블로거들은 영화에서의 폭력적인 부분만 보고 이 영화를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묘사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오독의 결과이다. 하지만 이러한 오독도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은 오로지 김준평이 저지르는 폭력과 그로 인한 가족들과의 대립, 가족들과 그의 비참한 죽음 등 영 좋지 않은 자극적 전개뿐이기 때문이다.[2] 언급되지 않았지만 결7호 작전을 수행했던 제58군 출신으로 보인다.[3] 김준평은 대뜸 술을 마시다 홧김에 잔을 깨버리고 그 파편으로 동맥을 그어 깨진 잔에다 자신의 피를 따른 후에, 조영생에게 먹으라고 협박을 한다.[4] 일본식 이름은 '가네모토 준페이'다. 배우는 기타노 다케시. 청년 시절의 연기는 이 작품에서 김준평의 막내 아들 류이치 역을 맡은 이토 아츠시가 연기했다.(전차남(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은 그 배우이다.[5] 김준평의 극중 몇 안되는 한국어 대사다. 그밖의 작중 한국어 대사로는 '내가 싫으냐?' '이 미친년' '이놈 새끼', '에미야' 등의 짧은 대사가 간간이 나온다.[6] 이 장면을 촬영하던 중 기타노의 어깨가 탈구되는 사고가 일어났지만 기타노는 고통을 참고 촬영을 마무리했다고 한다.[7] 이 때 남편인 박희범을 맡은 배우는 예전에 한국인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큰 논란을 일으킨 테라지마 스스무이다. 여담이지만 테라지마 스스무는 예전에 기타노 다케시가 주연으로 출연한 하나비에서 그의 후배 형사로 등장했었다.[8] 배우는 카시와바라 슈지. 아오야마 신지의 달의 사막이라던가 카뮈 따윈 몰라로 유명하다.[9] 마사오가 "이후 나는 북으로 못 갔다. 아니 안 갔다는 의미가 맞을 것인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 걸로 봐서, 찬명의 소식이 완전히 끊겨버렸음을 알 수 있다.[10]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임종하기 직전까지도 아들이 자기 밥상에 차려놓은 죽은 다 먹고 죽는 등 죽기 직전까지 탐욕스런 모습을 보인다는 해석이 많지만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밥상에 그릇이 있는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김준평이 죽을 먹는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밥상에 수저가 없었기 때문에 류이치가 일부러 식사를 주지 않았다는 해석이 더 자연스럽다. 류이치는 김준평이 죽기를 고대하는 것처럼 밭 한가운데에 무덤자리를 파고 있었고 김준평이 임종하는 순간에도 한번 곁눈질을 보낼 뿐 슬퍼하는 기색 없이 자신이 먹던 죽을 계속 먹는다는 부분에서, 아들은 김준평을 애초에 죽일 생각으로 밥을 주지 않았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11] 배우는 아라이 히로후미. 역시 재일교포 중 한 사람이다.[12] 터무니 없이 적은 봉급을 주고 강압적인 중노동을 시키자 가족들 역시 노동착취로 불만이 폭발했으나 결국 김준평에게 눌려서 끽소리 못하고 일하게 된다.[13] 실제로 일본 내에서는 재일조선인 1~2세대 가정의 남성 폭력이 장난이 아니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14] 그럼에도 영화 개봉 초창기에는 실제로 국내 일부에서는, 육고기젓 문화는 국내에 있지도 않은 음식문화라며 소설원작자 양석일이나 감독 최양일을 교포일 뿐 일본에서 살며 일뽕에 취한 변절자(실제로 당시에 검은 머리 외국인문제가 슬슬 대두될 때라 이와 연결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에서 심하게는 매국노로 취급하고, 기타노 다케시 문서에도 있듯 그의 혐한성향을 꼬투리잡으며 비난하는 논조의 글을 쓰기도 했다.[15] 원래도 뛰어난 연기파였지만 곡성의 외지인 역할로 출연한 후 한국에서도 명성을 떨쳤다.[16] 고독한 미식가를 통해 한국에도 넓은 팬층을 가지고 있으며 NHK의 김성근 감독 다큐멘터리 해설을 맡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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