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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14:17:34

토머스 홀랜드(제2대 켄트 백작)

성명 토머스 홀랜드
Thomas Holland
출생 1350년
잉글랜드 왕국 랭커셔 주 업홀랜드
사망 1397년 4월 25일 (향년 46~47세)
잉글랜드 왕국 아룬델 성
아버지 토머스 홀랜드
어머니 켄트의 조앤
형제 에드먼드, 조앤, 모드,
아내 앨리스 피츠앨런
자녀 엘리노어, 토머스, 존, 리처드, 조앤, 에드먼드, 마가렛, 엘리노어, 엘리자베스, 브리짓
직위 켄트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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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장군. 백년전쟁에서 프랑스군을 상대했으며, 이부동생 리처드 2세의 섭정 위원회의 일원이었다.

2. 생애

1350년 잉글랜드 왕국 랭커셔 주 업홀랜드에서 초대 켄트 백작 토머스 홀랜드와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의 막내 아들이자 초대 켄트 백작인 우드스톡의 에드먼드의 딸인 켄트의 조앤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1360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켄트 백작 칭호를 물려받았고, 1361년 어머니 및 형제자매들과 함께 가스코뉴로 이주했다. 어머니의 새 남편인 흑태자 에드워드는 토머스가 그의 동생 존과 함께 어린 나이에 전투 기술과 기사 토너먼트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습득하도록 했다.

1366년 아키텐 주둔 영국군 장교가 되었고, 1367년 흑태자 에드워드와 함께 카스티야 원정을 떠나 기사 작위를 받았고, 1375년 가터 기사단의 기사가 되었다. 이후 캠브리지 백작 랭글리의 에드먼드의 군대에 가담해 브르타뉴 원정에 참여했다. 1377년 이부 동생 리처드 2세가 잉글랜드 국왕이 된 후 섭정 위원회의 일원이 되었으며, 1380년부터 1385년까지 잉글랜드 원수를 맡았다. 1380년 12월 신성 로마 제국의 사절로 가서 리처드 2세와 바츨라프 4세의 누이인 보헤미아의 안나의 결혼을 협상했다.

1381년 켄트에서 와트 타일러의 난이 발발하자 이를 진압하는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반란군의 기세가 강렬하자 감히 진압을 시도하지 않았다. 반란군이 런던에 접근했을 때 왕과 켄트의 조앤 및 형제들과 함께 런던 탑으로 피신했지만, 나중에 목숨을 잃을 것이 두려워 그곳에서 도망쳤다. 이후 난이 진압되자 켄트로 돌아가서 반란군 잔당을 소탕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385년 어머니가 사망한 후 그녀가 소유한 풍부한 영지를 모두 상속받았으며, 1389년 런던 탑의 순경이자 추밀원 의원이 되었다. 1396년 리처드 2세와 프랑스의 이자벨의 결혼 협상에 참여했으며, 1397년 카리스브룩 성주가 되었다. 1397년 4월 25일 아룬델 성에서 사망했다.

3.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