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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5:20:31

태황

1. 개요2. 상세3. 인종4. 지역
4.1. 동방4.2. 서방4.3. 남방4.4. 북방4.5. 중앙
5. 정치/사회6. 외교7. 용어
7.1. 귀족가 부인의 서열7.2. 후궁의 품계7.3. 기타 용어
8. 관련 문서

1. 개요

다음 웹툰 작약만가 시리즈의 배경이 되는 가공의 국가. 정식명칭은 대명태황이다.[1] 500년 가량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이웃 나라인 탄에 비해서는 역사가 짧은 편이다.[2] 대륙 안에 있는 나라들 중 최대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 자부심이 굉장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굉장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2. 상세

모티브는 중국인 듯하다. 등장인물의 의상도 한푸 복식을 따른다. 태황 중앙의 복식은 당나라 때 한푸와 매우 유사하고[3] 북방의 복식은 청나라 복식을 연상시키는 차이나 칼라가 특징이다.[4]

다른 나라들이 남녀차별이 별로 없어보이는 반면, 태황만큼은 유독 남존여비와 남녀차별이 심하다. 다른 나라들은 여자도 왕위계승을 하거나 왕족 호위에 소속되는 등[5] 권력계승이나 직업 등에 성별적 구애가 없어보이는 현대식 체제에 가까운 반면, 태황은 여자의 경우 귀족 계층은 귀족가문 안주인이나 내명부 소속일 따름이고[6] 남자들처럼 관직에 앉는 것은 불가능.[7] 그 이하 계층의 경우 궁녀나 평민, 노기 정도로만 묘사된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다수의 국가에서 문명이 많이 발전한 시기에도 여성은 직업도 제한되어있고 관직에 앉을 기회도 거의 없었음을 고려해보면[8] [9] [10] 태황 혼자서 현실고증(...)[11] 이외에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경우 300년 동안 수천만명의 식민지인들을 착취해서 백인 하층민들이 했어야할 막노동을 떠넘겨 본국 남녀 경제적 기여가 조금 더 빨리 평등해진 것처럼, 성평등을 이룬듯한[12][13]다른 나라들과의 차이를 보면 페미니즘 계통[14]에서 비판하는 남존여비 가부장제 사회의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한듯한 나라. 따라서 매우 박약한 지식으로 판타지에 이상적인 타국을 만들고 현실 세계를 비판하려는 헤타리아비하국가를 만든 듯하다.

4부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태황의 현 지배가문인 황씨는 원래 '대록씨' 라는, 태황 자리에 있던 다른 나라의 지배층 휘하의 가문이었던걸로 보인다. 황씨가 대록씨를 배신하고 윗선 물갈이가 진행되어 현재 황씨 위주의 황가와 중앙집권체계가 갖춰진 걸 보면 전형적인 쿠데타를 설립기반으로 삼은 국가인듯. 참고로 황씨에게 배반당했던 대록씨 지배자가 죽기 전 남긴 유언에서 중국 신화의 삼황오제 중 하나인 제곡을 언급하는 걸로 봐서 삼황오제 신화를 믿었거나 현재도 믿는 동네일지도 모른다.

3. 인종

면적이 넓기 때문에 지방별로 외모적인 차이가 상당하지만[15] 기본적으로 흑발의 황인이다. 눈동자 색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칙칙한 색이다.

4. 지역

4.1. 동방

아직까지 작중에서 묘사된 바가 거의 없다.

4.2. 서방

서방 사람들은 녹색~녹갈색 눈동자를 가지기도 한다. 정확히는 녹안은 원래 태황 서부 이민족들의 특징이었는데, 서방에 살던 태황인들이 이민족과 통혼을 하면서 국적도 태황이고 용모도 전반적으로 태황인에 가깝지만 서부 이민족의 녹색 눈이 발현된 사례들이 있는 것이다. 의상은 송나라 복식처럼 민소매인 속저고리를 먼저 입고 그 위에 저고리를 입으며[16] 마지막으로 허리보다 약간 위에 치마를 두르는 양식이다.

태황 서쪽의 여러 소국들과 가까우며 이 때문에 타국 혼혈이 많다고 한다.[17] 태황 동방처럼 타국 피가 섞이지 않은 태황인들은 짙은 흑안의 소유자들이다.

4.3. 남방

파일:작약만가.남경계령 토착 복장.png
작약만가: 불환곡 시즌3 후기에서 나온 남경계령 점령국 토착 복장.[19]

남방 사람들은 주로 녹갈색 눈을 지니고 있다. 의상은 서방과 유사하지만 서방을 포함한 태황의 다른 지역들과 달리 허리띠를 앞쪽에서 매는데, 이는 백제, 가야, 베트남, 고대 일본, 류큐 왕국 등에서 주로 보이는 방식이다.

서리꽃의 삼미랑이 남방계 혼혈이라 하며, 본편의 권곤명이 남방 출신.

4.4. 북방

파일:태황.북경계령 복장.png
작약만가: 불환곡 시즌3 후기에서 나온 북경계령 복장.[20]

북방 사람들은 주로 푸른색 눈을 지니고 있다. 의상은 A라인의 치마와 차이나 칼라가 달린 짧은 망토가 특징이다.[21] 하늘하늘한 치마에 남녀 불문하고 목이 노출되는 저고리를 입는 중앙과 대조적이다.

태황과 사이가 별로 안 좋은 이목국과 국경을 마주한 지대로, 무신 가문들이 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22] 그러나 태황은 쿠데타로 건국된 국가여서 황실 쪽은 무신을 견제하고 천대하는지라 중앙과는 지역감정이 별로 좋지는 않은듯.

4.5. 중앙

중앙 사람들은 주로 회색 눈을 지니고 있다. 불환곡에서의 의상은 당나라 때의 한푸처럼 저고리를 먼저 입고 I라인에 가까운 치마를 가슴 위까지 올려 입는 양식이다. 또한 어깨 쪽에서 시작되어 가슴 쪽으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역삼각형 칼라가 자주 쓰인다. 그러나 불환곡 시점으로부터 약 2~30년 후인 서리꽃에서의 의상은 불환곡과 큰 차이가 난다. 남성의 경우 차이나칼라가 달려 있는 등 북방 양식의 영향을 받았으나 불환곡에서 등장한 북방 의상에서도 보이지 않는 단추 여밈이 보인다. 한편 여성의 경우 속저고리가 보이고 치마를 허리보다 약간 위에서 두르는 등 서방 양식의 영향을 받았고 목과 윗가슴이 많이 드러난다. 세대가 바뀐 만큼 복식의 유행도 함께 바뀐 듯하다.

굉장히 따뜻해서 겨울에 노숙을 해도 얼어죽지 않으며 겨울에 물도 얼지 않는다고 한다.

* 황씨: 현 황실 가문. 이전 왕조인 대록씨를 멸망시키고 대명태황을 건국하였다.

5. 정치/사회

신분제가 존재해 황족-귀족-평민-노비로 극명하게 나뉘어진다. 평민과 노비는 귀족에게, 귀족은 다시 황족에게 수탈당하는 구조. 사회 최하층에는 노비보다도 더 천하게 여겨지는 '노기(노비+기생)'라는 신분이 존재하는데, 이들과 이들의 자식들은 딱 사람 모양 가축으로 취급당한다. 노기를 셀 때는 가축 세는 단위로 센다고.[30]

다른 나라들에 비해 남존여비에서 기인한 성차별이 심한 편이다. 남자는 일부다처 + 축첩제를 장려하고 고관대직에도 오를 수 있지만 여자라면 신분이 높고 유능하기까지 해도 관직에 앉지는 못하고 귀족가문의 아내나 황실 내명부에 입적하거나 하는 선에서 신분상승이 가능하고 딱 거기서나 만족해야하는 신세. 때문에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편이다.[31] 여자도 군에 들어갈 수 있다는게 암시되는 송하국과는 대조적.[32]

이마저도 황제의 의중에 따라 강제로 이혼당하거나 약혼이 파기되어서 내명부에 들어가는 수도 있고, 아이를 못 낳는다고 강제로 이혼당하거나,[33] 내명부 내에서 아들을 낳자 못했다고 처리당하거나[34] 하는 등 답이 없다. 태황의 여자들 중 태생적 지위는 가장 높은 적통 황녀마저도 황제의 명에 따라 타국을 떠돌아다니며 연이은 정략혼의 소재(...)로 쓰일 정도로 여권이 바닥이다.

사실 여권 뿐만이 아니라 그냥 남녀 불문 인권 자체가 바닥이다. 보장되는 인권은 권력줄 쥔 황제와 일부 남자 귀족 뿐이라고! 송하 출신의 후수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인신매매나 노예제도가 버젓히 존재하는게 태황이며, 머리색이 좀 옅다는 이유로 회렵자라는 멸칭까지 만들어가며 사람을 오랑캐 취급하다 못해 친부모가 겨우 그 이유 하나로 기르기를 포기하고[35], 가차없이 회렵자로 취급된 자식을 갖다가 인신매매에 보내버리고, 한미한 가문 소속이라면 제아무리 귀족이라고 해도 더 위쪽 가문이나 황가의 말도 안 되는 폭거를 가문 전체가 억울하게 감수하다 죽어나가고[36], 제아무리 황제의 친아들이라고 해도 기형이면 태어나자마자 자식 취급은 커녕 바로 죽여버리고, 호적에서도 등재시켜주지 않는 등, 전반적으로 인권 낮고 신분제가 철저하던 고대~중세 동네가 지니는 시궁창적 면모를 그대로 옮겨온듯한 동네이다.

일부다처제처첩제를 동시에 쓰는 나라이기도 하다. 정식 부인으로는 정공인/측공인/측서인 총 3명을 두고 그 외에도 첩들을 둘 수 있다. 물론 극심한 성차별 국가답게 이것도 남성 한정이고, 여성의 경우 남편이든 남첩이든 정식으로 여러 명을 거느릴 수 없다. 아예 '여자가 남자를 여럿 두면 악행'이라고 할 정도. 다만 여자라도 노기의 아들들을 여럿 소유하는 건 무방하다고 한다. 노기가 가축으로 취급받으니 노기의 아들도 사람이 아니라서 괜찮다고....

요약하면 인권 의식이 거의 자리잡지 못하여 성차별, 신분 차별, 장애인 차별 등이 매우 극심하고 공고한 곳. 여성은 남성에게, 하층민은 상류층에게 무자비하게 수탈당하며, 최상위 계급의 사회 지도층 남성 - 심지어 황실의 남성일지라도 그 또한 황제에게 명줄을 잡혀 있다.[37]

불환곡과 서리꽃의 내용을 보면 순장제가 시행되는 나라이다. 순제가 죽었을때 온빈을 비롯한 빈들과 희희들이 순장당했고 삼미랑이 사형을 당하고 나서 신분을 막론하고 삼미랑의 측근들이 1000명이 넘게 뽑혀 순장당했다. 물론 운이 죽었을때도 경비에 의해 목저아가 태자비로 꾸며져 강제 순장당했다. 순장 자체가 리스크가 큰 풍습이라 정적들을 해치위기 위해서 꺼내드는 마지막 카드인 것으로 보인다.[38]

6. 외교

선민의식이 매우 강한 탓인지,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을 오랑캐라 무시한다.[39] 타국어를 배우는 것조차 타국에 고개 숙이는 것이라 여겨 꺼릴 정도. 특히 북방의 국경을 마주하는 이목과는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다.[40] 다만 탄과는 사이가 좋은 편이라고 한다.

이는 타국을 보통 '속국' 의 방식으로 식민지화하고 지배하는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번 속국화/태황 영토화 작업을 시작하면 그 지역의 원래 문화는 아예 뿌리를 뽑아버리는 작업을 실시하고 태황 문화를 강제 주입(...)시키며, 지배자도 태황 중앙 측에서 지정한 이를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혈통 레벨에서 태황에 가까워지게 테라포밍을 시키는 기가 막히는 짓까지 저지른다.[41]

추측이지만 이런 강경파적인 면모가 과도한 외교정책을 하는건 쿠데타로 세워진 역사가 짧은 국가였기에[42] 그만큼 힘을 과시하고 입지를 박는 것에 과하게 초점을 맞추느라 그런 것일수도 있다.

7. 용어

7.1. 귀족가 부인의 서열

전반적으로 적복진 - 측복진 - 서복진(시첩) 으로 구분되는 청나라의 외명부 제도와 닮아있다.[43]

7.2. 후궁의 품계

7.3. 기타 용어

8. 관련 문서





[1] 작약만가 서리꽃 여는문에서 나온다.[2] 쿠데타로 건국했다는 언급이 있다. 이 때문인지 문인보다 무인을 더 견제하고 천시한다.[3] 똑같지는 않다. 작가가 의상 관련 코멘터리를 한 적이 있는데, 당나라 복식과 태황 복식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직접 비교해 보여주었다. 아마도 참고만 한듯.[4] 북방은 이목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이목도 태황과 인접한 국경 쪽에 산악지대가 있다고 하는 걸로 봐서 이 지역은 전반적으로 기후가 추울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더 꽁꽁 싸매는 복장이 되었을지도.[5] 불환곡의 후궁 롱희의 송하국 출신 시녀인 후수와 주수는 원래 차기 송하 왕인 롱희의 호위군이 될 예정이었다. 즉 현재야 시녀지만 원래는 군인 출신. 그래서 검을 쓸 줄 안다.[6] 작중 불환곡의 황후 숙정씨는 정치에 매우 빠삭하고 대국을 보는 능력도 좋으며, 현재 관직에 앉은 오빠에게서 '네가 남자인 우리보다 더 낫다' 는 평을 들었음에도 관리직에 앉지 않고 황후가 되었으며, 서리꽃의 주인공 리빈도 작가 왈 남자였으면 크게 한 탕 해먹는 인물이 되었을거라고 했다. 말인즉슨 아무리 유능하고 신분까지 받쳐줘도[49] 여자는 관직에 앉을 수 없다는 말이 된다.[7] 서리꽃에서 황후 자리에 앉는 리빈이 서리꽃 닫는 문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 관리들을 등용하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8] 페미니즘 계통에선 이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라 본다. 허나 여성은 대외적 활동에서 제외되었기에 웬만해선 국가의 위기가 닥쳤을때 징병 등에 대해선 오히려 제외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1차적으로 남성들이 많이 죽어 방어선이 무너지고 군인들에게만 아니라 민간인까지 전쟁범죄 터지면 남녀 안 가리고 피해입는다...고 해도 남자들은 고문당하다가 죽고 여자들은 납치혼이라도 당해서 살 수 있게 북유럽의 바이킹이 이 짓으로 유명했다. 유럽에서도 “북유럽에 아름다운 사람이 많은 이유는 과거 온 유럽을 들쑤시고 다니며 예쁜 여자들만 납치해서 본국으로 데려가 여영 고향과 가족들을 못보개 하면서도, 다음 세대에 똑같은 악랄한 납치강간 바이킹 짓을 할 애를 강제로 낳게 했기 때문”이라는 반쯤 농담이 있다.[9] 차별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생기는 게 아니다. 기계의 발달 이전 육체 노동이 많았던 과거 시대에는 각 가정의 경제적인 기여도와 필수불가결함이 여자보다는 건장한 남성에 유리하게 치우쳐져 생긴 거다. 역으로 집안에 유력한 남자에게 시집가면 당연히 그 집 남자들보다 그렇게 대단한 사위를 찾아준 여자에게 힘이 넘어갔고, 지금도 제3세계 국가에서는 시집으로 출세길이 열린 아름다운 여자가 보통의 남자 형제보다 훨씬 더 높은 대우를 받는다.[10] 역사적으로 수세기 노예제를 유난히 심하게 굴린 백인들이. 그 돈으로 기계화에 투자해서 노예 노동의,가치가 줄어들어 차라리 해방시켜 자유민으로서 납세와 징병 자원으로 쓰가 위해 노예제 철폐한 것처럼 (그리고 미국의 경우 신분제 철폐한다고 그 반발로 5년 지속된 크나큰 남북 전쟁이 일어났다). 여권신장 또한 필요에 따른 것이지 그냥 갑자기 어느날 사람들이 계몽되어 생기는 게 아니다. 한국처럼 여성징병을 거부하면서 제도적 여성만 누릴 수 있는 권리는 더 받으려하는 건,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방에 적국이라서 여성징병제에서 보면 매우 괴상한 현상이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군조차도 여성들이, 가장 흔한 핑계인 출산을 필두로 남성은 절대 못누리는 각종 여성만 쓸 수 있는 편법으로 많이 빠지려고하며 군 당국에서도 어쩔 수 없이 속는 척 눈감아 준다.세계대전 시절은 전후무후한 총력전 시절이라 서양 여성들도 집에서 나와 남자들이 총맞고 죽어나갈 때 남자들이 다니던 공장에서 여성들이 안전하게 물자 싱산에 일부 참여했다. 그나마 기계화도 오늘날 로봇이 발명되길 한참 전이라 육체노동의 비중이 큰 부분들이 많이 있었고 이런 곳은 여전히 남성들이 담당했다. 미국과 달리 국토 절반이 독일군의 침략으로 초토화되어 국가 자채가 풍전등화 상태였던 소련의 경우 마지못해 여군들까지 징집했어야 한 실정이었고 평등을 빌미로 노동자들을 이제 성별 불문하고 평등이라는 달콤한 말로 살제로는 다같이 쥐어짜내는 공산국가의 특성상 알맞았다. 이래도 대부분 후방 지원이나 일반적인 병사들과는 다른 육체적 힘이 덜 필요한 저격병들로써 차출되었다. 성차별은 둘째치고 군입장에서는 여군들은 그냥 약골 남군 취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었다. 이래도 어찌저찌해서 소련의 여군들의 경우 여권신장에도 나중에 큰 역할을 했다.[11] 여성의 사회 진출은 못해도 노동력이 상당수 기계화되어 양성이 기여할 수 있는 경제력과 그에 따른 가정에서의 지위가 예전보다 평등화 된 현대에서나 본격화되었다. 참정권을 인정받은 것도 이 무렵.[12] 탄, 송하 등은 여성만 왕위계승을 하니 대놓고 남자를 사회적으로 차별한다.[13]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는 태황처럼 보란듯이 한쪽을 차별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14] 특히 레디컬~Victim(희생자)/infirmary 계통 (“불구.” 페미니즘 파벌 중에서도 자꾸 나약한 피해자로 이미지 메이킹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용어다.)[15] 여러 나라를 속국화 + 자기 영토화 시키면서 혼혈들이 많아진 것도 있다.[16] 저고리를 여미지 않아 속저고리가 드러난다.[17] 여기 사는 원거주민들의 경우 인도~중동풍의 의상을 입고 있는걸로 봐서 서남아시아~중동 쪽이 모티브로 보인다.[18] 외모는 태황인이나 눈이 녹갈색~녹색 계열이었던건 서쪽 원거주민들의 피가 섞였기 때문.[19] 남경계령 복식을 입고있는 사람은 서방 사람인 가백문 채려. 해당 복식 및 헤어스타일은 남방 출신인 권곤명이 공모전에서 착용했던 것과 유사한 스타일이다.[20] 북경계령 복식을 입고있는 사람은 같은 북방 출신인 황후 숙정씨.[21] 내부 의상은 작중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22] 이목과 국경을 마주하고 싸울 일이 잦다보니 무신 가문들이 몰려있는듯.[23] 불환곡의 태정군, 공모전의 태정군[24] 불환곡의 태정군은 머리색이 백발인데다 눈색도 옅고, 공모전 태정군은 회갈색에 희미하게 푸른빛이 감도는 머리색에 탁한 청회색 눈을 지녔다.[25] 덤으로 태황에선 머리색이 옅으면 '회렵자'라는 멸칭으로 부르며 오랑캐 취급한다(...)[26] 한때 태자였으나 이복 형제인 순제에 의해 숙청당했다.[27] 숙정씨의 가신 비슷한 위치의 가문으로, 온빈 방씨가 자기 가문을 소개할 때도 숙정씨 휘하의 가문으로 소개한다.[28] 일단 황제는 숙정씨 일파 등 현제의 권세를 쥔 일파와 반대되는 신흥 무가 세력을 만들고자 목씨를 밀어준건데, 저아와 목 장군 모두 숙정씨 가문의 편을 드는 형세가 되었으니 당연히 나가리 처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목씨가 무가라는 점과 지방 소귀족 취급을 받았다는걸 보면 무보다 문을 더 숭상하는 태황 황실 아래에서 목씨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 한미한 무가 가문은 꽤 있을테니 그들 중 하나를 다시 골라도 황제 입장에선 별 디메리트가 없다. 결국은 저아의 짧은 판단과 이를 따라버린 목 장군이 금동앗줄을 스스로 짤라버린 셈. 그렇지만 황후가 기어이 1황자에게 누명을 씌워서 처리해버린 꼴을 보면 무사히 1황자 쪽에 붙었다고 해도 미래가 좋지 않았을 게 뻔하다.[29] 유력 후보로는 현재 경비 강씨와의 연줄로 황실에까지 방문한 하씨 가문이 있다.[30] 불환곡에서 서쪽 지방의 관리가 후수에게 노기의 아들들을 남첩으로 들일 것을 권하면서, "여자가 남자를 여럿 두는 것은 악행이지만 이것들은 사람이 아니니 상관없다."는 불후의 명언을 남겼다.[31] 남자는 대를 잇고 신분이나 기회가 따라주면 고관대직에 오르는 것이 가능하나, 여자는 그런 게 없기 때문에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게 잡아지는 것. 직장을 얻을 수는 있어도[50] 관직에 나서서 정식으로 정치에 참여하는게 불가능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32] 송하 출신 태황 후궁 롱희의 시녀인 후수와 주수 자매는 원래 롱희의 호위역으로 길러졌으며 무예를 단련했다. 이를 통해 여자들에게도 징/모병제가 적용될 가능성을 볼 수 있다.[33] 경비 강씨의 사촌 언니이자 불환곡 태정군의 후처가 이 사례. 이 사람은 본래 방씨 가문에 시집을 갔으나, 아들을 못 낳고 박색이라는 이유로 가정폭력을 당하다가 결국 이혼당한 뒤 태정군의 재취로 들어갔다. 다행히 태정군은 부인을 지극히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인지라, 이번에는 혼인하자마자 아들과 딸을 얻고 금슬 좋게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태정군은 이를 두고 부인의 전 남편인 방씨 가주를 신랄하게 조롱했다.[34] 잊을만하면 언급되는 혜화비가 표면적으로는 이 사례. 이 외에도 아들을 낳았으나 기형아로 태어나 자식을 죽이라는 명을 받아 차마 자식을 죽이지 못하겠다고 절규하다가 끝내 아이와 함께 갈려나간 후궁들도 많다.[35] 전거이가 바로 이 사례.[36] 가백문 채려가 이 사례. 이쪽은 아예 2황자의 패악과 황실의 외면으로 가문 전체가 인간 사냥 당하고 생매장 당했다.[37] 불환곡 시점에 황제의 장남 이 대표적인 사례. 이쪽은 아예 외국 혈통의 서자라는 이유로 멸시받는 걸로도 모자라, 어머니친동생의 안위 때문에 사실상 황제의 사냥개로 이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38] 길선이 죽었을때도 길선의 세력이 순장당했다는 묘사는 없다. 최측근 환관은 살해당했지만…[39] 중화사상의 안 좋은 면을 극단으로 길러놓은듯한 느낌이다.[40] 이목인들이 태황에 끌려가는 식으로 제법 시달린게 있기 때문. 서리꽃 닫는 문에서는 리빈이 정권을 잡은 후 이목과 국교를 수립했다고 한다.[41] 이런 덕에 다른 나라들에겐 상당한 피해를 줬지만, 그에 비례하게 영토도 넓고 국력도 강해서 웬만한 중소국가는 태황과 싸우기보다는 항복을 택하거나 아예 태황에게 패배해 망국이 되는 루트를 밟는다. 송하와 아니타가 그 예시. 태황이 친교를 나누는 탄이나 태황과 질기게 싸우면서도 용캐 나라를 유지하는 이목의 경우 태황에게 먹히지 않을 수준의 국력을 보유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51][42] 태황 이전에 있던 나라의 지배층인 대록씨를 태황의 현 지배층 황씨가 배신해서 몰락하게 만든 후 지배권을 차지해서 만든게 현재의 태황이다.[43] 청나라 종친들은 청 초기에는 여려명의 적복진(정실)을 둘 수 있었고 이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정처를 대복진으로 칭하였으며 첩실에 해당하는 측복진과 서복진도 존재했다. 후에 청 또한 일부일처제가 되자 대복진을 제외한 나머지 적복진들이 측복진으로 강등당하면서 측복진은 고관대작의 여식들이, 서복진은 하급 귀족이나 평민들이 선발되었다.[44] 작가의 말에 따르면 시비, 시첩 신분은 실제로도 다른 호칭으로 불렸을 뿐 실존했던 신분들이고, 작중의 열악한 여성인권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한다. 후기에서 '꼭 사람을 이렇게 굴려야겠니...'라고 비난하는 걸 볼 수 있다. 작중에서 굳이 다루지는 않기 때문에 설정집에서 푸는 거라고.[45] 황후 바로 아래.[46] 서리꽃에서 롱희를 '망모비'라 칭했었던걸 보면 서리꽃 연재 당시의 설정은 롱희가 비까지 올랐던걸로 보이는데 설정오류인지 불환곡에서는 귀비가 되었다.[47] 이미 ‘비’라는 후궁의 품계가 정1품이라고 나온 것, 서리꽃의 주인공인 리의 품계가 정2품 ‘구빈’이었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태황의 내명부 품계는 중국 당나라나 송나라의 내명부 품계를 모티브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당나라에서는 측천무후 시기까진 귀비가 숙비, 덕비, 현비와 함께 정 1품으로 존재하였으나, 후에 귀비만이 무품으로 승격되고 나머지는 봉호 + 비의 형태로 정 1품에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귀비가 무품이라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망모비라고 불린 이유는 간단한데, 실제로 수많은 중국사에서는 황제의 후궁을 성씨 또는 별칭 + 비로 불린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명대의 현비 권씨도 권비로 불렸다. 애초에 비라는 단어 자체가 왕의 정실, 황제의 후궁의 품계 뿐만 아니라 그냥 황제의 후궁 전체를 통칭하는 뜻도 존재하고 롱희가 망모비로 불렸을 당시엔 폐비된 상태였던 데다가 롱희귀비가 봉호인 롱희 + 비로 불린 것도 아니고 성인 망모씨 + 비라고 불린 것이기에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48] 이 또한 청나라의 제도와 비슷한데, 청나라에서는 포의라고 불리는 하급 귀족들이 궁인으로 선발되었다. 그 궁녀들은 입궁을 했다 출궁한 후에야 결혼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보통 매우 어린 나이인 13살에 입궁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