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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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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년기와 학창 시절2. 탈북 이전3. 탈북4. 탈북 이후
4.1. 2017년4.2. 2018년4.3. 2019년4.4. 2020년4.5. 2022년4.6. 2023년4.7. 2024년

1. 유년기와 학창 시절

2. 탈북 이전

3. 탈북

"통일된 대한민국 만세!"
2016년 12월 27일, 기자간담회에서.

4. 탈북 이후

4.1. 2017년

4.2. 2018년

4.3. 2019년

4.4. 2020년

4.5. 2022년

4.6. 2023년

* 당선 수락 인터뷰에서 감동하여 큰 절을 올렸다. 이후 인터뷰에서 김정은도 놀랐을 것이라며 소회를 밝혔다. 또한 당 운영 방향에 있어 개혁보다는 당정일치와 안정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

4.7.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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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촌[2] 망명 초기에는 그의 아버지가 항일 빨치산 1세대이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한 태병렬 인민군 대장이라고 알려졌으나, 국가정보원에 의해 태병렬의 아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거기에 2016년 12월 27일 통일부 출입 기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태병렬 인민군 대장쪽 집안은 아니라고 부정한 바 있다.[3] 현재 명칭은 한자 직독으로 북경외국어대학부속외국어학교(北京外国语大学附属外国语学校). 당시 명칭은 북경외국어대학부속(고급)중학(北京外国语大学附属中学). 외국어고등학교격으로 현재는 북경외대부속중학과 별도 학교다.[4] 중국의 국가 설립자 마오쩌둥 초대 주석이 친인척을 외교부에 재직시키기 전 영어 학습을 위해 재수시켜 입학시킬 정도의 입결 및 위상을 자랑해 왔다. 태영호도 북한에서 베이징외국어대학에 성적우수자 및 출신배경이 좋은 학생만 선별해 입학시킨 것이라 학창시절 상당히 열심히 공부한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5] 본인이 인터뷰에서 평양외국어학원도 나왔다고도 밝혔으며, 베이징시제55중학 (잠시 재학), 베이징외국어대학부속외국어학교 (부속중학. 고등학교 졸업) →평양외국어학원 (고등학교 및 외대격), 평양국제관계대학 (졸업) → 베이징외국어대학 학사 졸업 순으로 진학했다. 학원은 중국에서는 4년제 단과대학을 의미하는데 북한에서는 고등학교 과정과 대학 사이의 존재라서 평양외국어학원을 다녔는데 평양외국어대학과 사실상 동급 취급이라고 한다.[6]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아들이라고 한다.[7] 이만갑 531회에서 밝힌 내용. 주선자가 지금 옆의 옆 어느 자리에 같이 앉아 있는데 쳐다보면 티난다고 쳐다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8] 태영호 2020년 저서 태영호의 서울생활[9] 영국의 체제를 비판하고 러시아의 사회주의를 으뜸으로 내세우며 러시아 2차대전 군가를 우리말로 번역한 정의의 싸움이라는 노래를 영국 반제국주의 모임 강연에서 부르기도 하는 등 대대적인 선전을 했다.[10] 귀순 소식이 보도되자 정부는 8월 17일 오전까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미 입국했지만 안전과 안보를 위해 일부러 공개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외신과 몇몇 기자들의 잘못된 기사로 인해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급하게 발표를 했다고 한다. 박근혜가 태영호의 탈북을 미리 알고 있어서 광복절 축사 때 주민 말고도 북한 당국 간부도 따로 언급했던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11] 명목상으로는 외국문물에 자국민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가족들을 인질로 잡는 것이다. 이는 남북한 아프리카 외교전을 바탕으로 한 영화 모가디슈에서도 언급된다.[12] 러시아에 벌목공으로 가게 된 어느 탈북민의 증언에 의하면 파견된 벌목공 상당수가 암암리에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김정은 비하를 서슴치 않고 할 정도라고 한다. 게다가 북한의 재외공관은 한 나라의 외교기관임에도 경제가 파탄난 자국의 사정으로 인해 지원은 해주지 못할 망정 오히려 외화벌이와 자력갱생을 강요해 그야말로 죽을 맛이라고 전한다.[13] 배급제가 무너지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처절한 생존투쟁에 들어간 북한주민들이 장마당을 시작함과 동시에 돈의 위력을 알게 되고 그 결과로 김씨 일가에 대한 충성도가 예전같지 않다는 소식들이 간간히 전해지고 있다. 일부 대북매체들은 만약 북한정권이 장마당을 폐쇄하려 한다면 그땐 진짜 들고 일어난다는 얘기까지 할 정도이다.[14] 강남 갑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경기도 광주시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지역구가 확정되지 않았을 때는 태영호와 함께 동행하며 이른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주었다고 알려졌다.[15] 더불어민주당 김성곤 후보와 경쟁하였다. 김성곤은 이미 4선의 경력이 있었으며,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강남구 갑에서 약 45%의 득표를 얻은 전력이 있었다. 당시 당선인 이종구 의원은 약 55%의 득표를 얻었다. 이 다음 총선이 태영호가 출마할 선거가 되었다.[16] 미래통합당의 안방인 경상도에서도 태영호보다 득표율이 높은 당선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17] 꽃제비 출신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초대된 것으로 유명한 북한인권운동가 지성호 씨도 미래한국당 비례대표에 당선되어 탈북민 출신의 국회의원이 한 번에 두 명이 나왔다.[18] 이에 새정치국민회의는 그를 당과 떼어 놓으려고 했다.#[19] 북한 당국에서는 태구민의 대한민국 국회의원 당선에 위협을 느꼈는지, 태구민에 대한 근거없는 악의적인 비난과 거짓 루머를 더욱 퍼트리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종북주의자 재미교포 신은미는 북한의 입장에 동조해 SNS 등을 통한 허위 사실 유포에 전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그 내용과 관련해서는 신은미 문서와 본 문서의 하단을 참조할 것.[20] Rumors surrounding Kim Jong Un not 'based on the facts' says former North Korean diplomat[21] Thae's comments, for which he did not provide any supporting evidence, ...[22] 특히 수입업체가 레몬법을 거부하고 있다.[23] 상술하다시피 태 의원이 6월 15일 발의한, 암표 판매를 방지하는 법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