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클라라 주미 강 Clara-Jumi Kang | |
한국명 | 강주미 |
출생 | 1987년 6월 10일 ([age(1987-06-10)]세) |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만하임 시 | |
국적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복수국적)[1] |
가족 | 아버지 강병운, 어머니 한민희 2남 2녀 중 차녀 |
직업 | 바이올리니스트 |
학력 | 만하임 음악대학 예비학교 줄리아드 스쿨 예비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 예술전문사) 뮌헨 음악대학 (최고연주자 과정) |
종교 | 개신교 |
링크 | | | |
[clearfix]
1. 개요
한국계 독일인 바이올리니스트. 재독교포 2세이다. 한국 이름은 강주미.파가니니아나(Paganiniana. 나단 밀스타인 작곡) 연주 영상.
2. 생애
1987년 독일 만하임에서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부모 모두 음악인으로 특히 아버지인 성악가 강병운(Philip Kang)은 독일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바그너 작품들로 이름을 날렸고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한국인 최초로 출연하기도 했던 베이스로, 이후 서울대 음대 교수로 초빙되어 귀국해 재직하다 현재는 은퇴했다. 어머니 한민희 또한 쾰른 음악대학교 출신의 성악가로, 독일에서 젊은 시절 오페라 주역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처음에는 피아노로 음악을 시작했지만,[2] 이후 바이올린으로 바꾸어 10살도 안된 나이에 재능을 인정받아 줄리아드 스쿨 등에서 수학했다. 줄리어드 시절에는 이작 펄만, 장영주 등을 발굴했던 도로시 딜레이를 사사하기도 했다.
12세때 학교에서 농구를 하던 중 왼쪽 새끼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당시 대여받았던 고가의 바이올린을 반납하고,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협연도 무산되었다. 게다가 좀처럼 손가락이 회복되지 않아서 연주를 다시 하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기도 하는 등, 하마터면 연주자로서의 경력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다. 다행히 3년 동안의 재활을 통해 연주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3] 이때의 일은 그녀가 겪었던 가장 힘든 시기로 회자된다.
연주를 재개한 2004년(당시 16세)에 한예종을 들어가 김남윤 교수를 사사했고,[4] 이후 다수의 콩쿠르에 입상하였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신지아, 피아니스트 손열음 등과 함께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1980년대생 출신의 대표적 연주자로 손꼽힌다.
3. 수상경력
연도 | 대회 | 수상 |
2009 | 서울국제음악콩쿠르 | 1위 |
2009 | 하노버 국제콩쿠르 | 2위 |
2010 | 센다이 국제콩쿠르 | 1위 |
2010 | 인디애나폴리스 국제바이올린콩쿠르 | 1위 |
2015 |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 4위[5] |
4. 발매 음반
2011년 데카 제작으로 '모던 솔로'(Modern Solo)라는 음반을 발표했다. 외진느 이자이, 나단 밀스타인, 하인리히 빌헬름 에른스트, 이영조 등의 작품 9곡 연주를 담고 있다.
2016년에는 역시 데카에서,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함께 슈만, 브람스의 곡들을 담은 음반을 발표했다. 해당 곡들은 11월 17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연주회에서도 연주된 바 있다.
2021년에는 같은 한예종 출신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함께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으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음반으로 발매했다.
5. 기타
- 언니와 오빠도 각각 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음악가 가족이다. 다만 동생은 음악과 무관한 분야(보다 정확히는 호텔 경영)를 전공하여 유일한 예외. 집은 독일 뮌헨에 있다.[6]
- 개신교 신자이며, 10대 초반 손가락을 다쳐 한동안 연주를 못하게 되었을 때, CCM 작곡을 하기도 했다. 한예종 입학 초에는 복음성가를 작곡하고 직접 불렀다. 노래도 꽤 하는 편이다.[7]
- 2010년 커니의 후원을 받았다.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International Violin Competition of Indianapolis)에서 우승한 실력파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경영 컨설팅 전문기업인 AT커니 코리아의 후원을 받음
- 2018년 기준 삼성문화재단에서 후원받은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쓰고 있다. 그 전에는 역시 삼성문화재단에서 후원받은 1725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를 사용했다.
- 2016년부터 베를린에서 거주중이라고 밝혔다.
- 자신보다 1살 위인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매우 친한 사이이며, 자주 함께 연주를 한다. 한예종 재학 시 친해졌다고. 전술한 것 처럼 2016년에는 슈만, 브람스의 곡들을 담은 음반을 발표하고 연주회를 가지기도 했다. 또한 손열음이 감독으로 활동 중인 평창 대관령 음악제에도 매년 열성적으로 참가 중이다.
- 한국어, 독일어, 영어 3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본인 말로는 영어가 가장 편하다고. 한예종에 진학하기 위해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한국어가 잘 안돼서 힘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자세히 들어도 교포인 티가 거의 안 날 정도로 유창하게 구사한다.
- 디시인사이드에 클라라 주미 강 갤러리가 별도로 있으며 해당 갤러리에서는 갤주로 불리고 있다.
- 2022년 7월 6일 SBS 나이트라인 초대석에 출연하여 인터뷰했다. 영상
- 2023년부터 '엑스 튀니(Ex-Thunis)'라 불리는 1702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기아에서 무상으로 대여받아 사용하고 있다. #
[1] 링크[2] 클라라라는 이름도 슈만의 부인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에서 따왔다.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인데, 피아노로 음악 공부를 시작했던 것을 생각하면 딸이 피아니스트가 되길 기대했던 듯.[3] 당시 '1년만 더 해보고도 안되면 미련없이 그만 두자'는 각오로 연습을 재개했는데, 다행히도 부상 전의 연주감각을 회복할 수 있었다.[4] 당시 한국어가 익숙지 못해서 한예종으로의 '역유학'을 주저하기도 했지만, 연주 연습에만 전념하면 된다는 김남윤 교수의 설득, 배려를 받아들였다.[5] 함께 출전한 김봄소리는 그 다음 순위인 5위에 입상했다.[6] 정명화, 정경화, 정명훈 집안도 7남매 중 6명이 음악을 했으나 막내이자 정명훈의 남동생 정명규는 의사이다.[7] 20대 초반인 2006년 자신이 직접 작곡하고 부른 노래를 녹음한 데모 CD를 들은 미국의 한 음반 제작자(1990년대를 대표하는 디바 셀린 디옹의 담당자였다고 한다)로부터 가수 제의를 받았다는 일화가 있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