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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2:56:03

신지아(바이올리니스트)

<colbgcolor=#B68D97><colcolor=#fff> 신지아[1]
Zia Hyunsu Shin
파일:external/aspen.jp/Lpict004.jpg
출생 1987년 7월 16일 ([age(1987-07-16)]세)
전라북도 전주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전주예술중학교 (졸업)
전주예술고등학교 (명예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사)
가족 언니 신아라[2]
악기 1710년스트라디바리우스[3]
과다니니[4]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수상 경력4. 평가5. 영상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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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임지영, 클라라 주미 강[5], 김봄소리, 김다미 등과 함께 대표적인 차세대 바이올리니스트로 손꼽힌다.

한국 출신 월드 클래스 클래식 연주자 중 해외 유학 경험이 전혀 없는 순수 국내파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는 인물이다.

2. 생애

4살 때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하여 10세 때인 1997년 한국일보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14세가 된 2001년에는 대한민국 청소년 콩쿠르에서 1위 및 대상(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하여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났다.

고향이 위치한 전주에서 전주예술중학교(2002년), 전주예술고등학교에 입학(2003년)했는데 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로 조기 입학했다. 한예종은 초등학교 때부터 영재과정 프로그램을 이수했으며, 한국 바이올린계의 대모 김남윤 교수를 사사했다.[6]

3. 수상 경력

4. 평가

순수 국내파로서 위의 경력을 쌓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대단한 성과지만, 실력과는 별개로 국제적인 뮤지션이 되는 데에는 여전히 많은 한계가 있는 듯하다.

훌륭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수학한 연주자들과 비교해볼 때 국내외 음악계에서의 스포트라이트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10] 일례로 2014-2015년 기간동안 일본에서 몇 차례 연주가 있었지만, 서양음악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유럽, 북미에서의 연주는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서양에서 수학한 경험이 없어 음악계의 네트워크를 쌓지 못한 점, 세계적 명성을 얻은 한국 출신 음악인들이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11]을 받았던 것에 비해, 신지아는 그런 배경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12]
이에 중남미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와의 크로스오버 연주, 방송 진행(KBS 음악프로그램 <더 콘서트>2015.01.07.~2016.04.06), 광고출연 등으로 꾸준히 음악 애호가,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활로를 모색하는 듯 하다. 흥미롭게도, 신지아라는 현재 이름으로 개명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의 다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물론 그동안 쌓은 콩쿨과 연주 커리어 덕분에 위키피디아에도 한글, 영어는 물론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로 신지아 문서가 작성되어 있다.

5. 영상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 연주 모습


♪ 사라사테, 찌고이네르바이젠 (P.Sarasate, Zigeunerweisen Op. 20)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1악장 도입부(2023년 4월 21일, 예술의전당에서). 연주를 하는 오른팔의 근육이 확연히 눈에 띄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다만 근육의 경우는 마른 체형이기 때문에 더 도드라져 보이는 걸 수도 있다.

6. 기타

파일:external/pimage.design.co.kr/1366870662120.jpg
* 4살 터울 언니 신아라(오른쪽)도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동생처럼 해외 유학을 하지 않은 국내파 연주자다. 현재 서울시향 부악장을 맡고 있다.


[1] 2013년 신현수(申鉉洙)에서 개명했다.[2] 바이올리니스트. 서울시향 부악장.[3] 일본음악재단에서 대여.[4] 금호문화재단에서 대여.[5] 클라라 주미 강과는 1987년생 동갑이며, 한예종에서 함께 수학했다.[6] 가정형편이 넉넉치 않은 것을 알고 레슨비 없이 가르쳤다고 한다.[7] 초중등 레벨에서는 한국 최고 권위의 콩쿨이다.[8] 청소년콩쿨이 아닌 성인콩쿨 첫 도전으로 최연소 입상.[9] 본인에게는 성인 무대에서의 첫 우승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음악계에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10] 동갑내기 클라라 주미 강의 예를 들면, 독일과 미국에서의 명문 음대에서 수학했다는 점, 부모가 각각 독일에서 활동한 음악가이자 서울대 음대 교수라는 후광 효과를 통해 좀더 활발한 국내외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11]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 정경화, 장영주, 클라라 주미 강 등이 연주 실력은 물론이요, 부모 및 학교 스승을 통해 세계무대로 활동의 폭을 넓힐 수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12] 집안형편이 어려워 학창 시절에는 두 자매들 가운데 한 명이 콩쿠르에서 입상하여 상금을 받으면, 그 돈으로 다른 한 명이 콩쿠르 출전을 준비했을 정도였다고 한다.[13] 한예종 재학 시절의 스승인 김남윤 교수의 영향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