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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09:28:15

치하쿠 연락선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철도 연락선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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稚泊連絡船 (稚泊航路)
Chihaku Train Ferry / 치하쿠 연락선 (치하쿠 항로)

(폐지)
파일:Soyamaru.jpg
쇄빙객화선 소야마루(宗谷丸)
노선 정보
분류철도 연락선
기점왓카나이잔교역
종점오도마리미나토역
역 수2
개업일1923년 5월 1일
폐업일1945년 8월 25일
소유자운수성(運輸省)
운영자
노선 제원
항로거리210.0km

1. 개요2. 역사3. 운항 선박4. 오늘날의 왓카나이-코르사코프 이동5. 여담


[ruby(稚, ruby=ち)][ruby(泊, ruby=はく)][ruby(連, ruby=れん)][ruby(絡, ruby=らく)][ruby(船, ruby=せん)] / Chihaku Train F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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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홋카이도 왓카나이가라후토(현 러시아 사할린 섬) 오도마리를 이었던 일본철도 연락선. 이름은 왓카나이(稚内)의 '稚'와 오도마리(大泊)의 '泊'를 따서 지었다.

2. 역사

러일전쟁 승리의 대가로 일본1905년 사할린 섬 남부 절반을 차지했다. 이 섬은 러시아 제국에게 있어서는 땅끝 변방의 섬에 불과했지만 일본에 있어서는 일본 열도의 연장으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위치였기 때문에 일본 제국 정부는 개척을 위해 대대적으로 일본인을 이주시키고 일본 제국은 곧바로 철도 건설에 착수해 1906년에 개통시켰다. 제국의 수도 도쿄도쿄역에서 시작하는 도호쿠 본선~세이칸 연락선~하코다테 본선~소야 본선에서 치하쿠 연락선을 통해 가라후토선으로 토요하라역까지 이어지는 개념이었기 때문에 치하쿠 연락선은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대기중인 열차에 탑승하는 등 급행열차 시간표와 그대로 연계되어 운행, 운영도 일본국유철도의 전신인 철도성에서 직접 운영했다.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고 사할린을 소련군이 장악하면서 1945년 8월 23일 밤에 마지막으로 출항한 이후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3. 운항 선박

선명 운항기간 총 톤수 길이(m) 정원(명) 적재량(t) 속도(Knot)
이키마루(壹岐丸)[1] 1923.5 ~ 1931.5 1,680 82.4 337 300 15
쓰시마마루(對馬丸)[2] 1923.3 ~ 1925.12 1,679 82.5 337 300 15
다무라마루(田村丸)[3] 1926.4 ~ 1927.10 1,479 89.2 328 239 18
고마마루(高麗丸)[4] 1931.6 ~ 1932.10 3,029 102 603 930 16
아니와마루(亜庭丸)[5] 1927.12 ~ 1945.7 3,298 99.8 754 470 16.4
소야마루(宗谷丸)[6] 1932.12 ~ 1945.8 3,593 103.3 790 380 17.1

4. 오늘날의 왓카나이-코르사코프 이동

냉전이 끝난 후 1995년부터 왓카나이~코르사코프 간 카페리가 운항(겨울에는 휴항)하기 시작하였으나, 운항사인 하트랜드 페리에서는 채산성 악화를 이유로 2015년에 취항을 종료하였다.[7] 이후 러시아 사할린 측의 상선사 SASCO에서 2016년 8월부터 여름철 주 2회 코르사코프~왓카나이 간 페리를 운항하기로 하였다. 요금은 편도 18,000엔.

하지만 이 페리도 2020년 코로나19의 여파로 운휴 상태이다. 왓카나이 시의 정기선 안내 이후 포스트 코로나 시기가 도래했지만 그 즈음에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건이 벌어지면서 재개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야지 재개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상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기준, 왓카나이에서 사할린으로 가려면 삿포로 인근의 신치토세 공항으로 가서 중국행 항공편을 이용, 유즈노사할린스크로 가야 한다. 왓카나이 공항에는 유즈노사할린스크행 항공편이 없으며, 러시아발 삿포로행 항공편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 항공사들의 자유진영 국제선 노선이 단항되면서 모두 끊겼다. 바다를 두고 불과 150km 떨어진 이웃도시지만[8] 가깝고도 먼 관계라고 할 수 있다.

5. 여담



[1] 최초 취항 선박. 1923년에 치하쿠 항로에 전속되었다가 한파에 의해 노후화된 선체가 손상되어 1931년에 운항중지, 1932년에 오사카 상선(大阪商船)에 매각된다. 이후 류큐 항로, 치토(稚斗) 항로, 세이칸 항로를 돌아다니다가 1951년에 무로란에서 해체되었다.[2] 1905년부터 부관연락선에서 운항하던 선박으로, 1923년에 치하쿠 항로에 전속. 1925년 12월 17일 눈보라로 인한 시계악화가 원인이 된 좌초 사고로 침몰(사상자는 없음)[3] 1908년부터 세이칸 연락선에서 운항하던 선박으로, 1926년에 치하쿠 항로에 전속. 1929년에 오사카 상선(大阪商船)에 매각되었으며 1933년에 해체됨.[4] 1913년부터 부관연락선에서 운항하던 선박으로, 1931년에 치하쿠 항로에 전속. 1933년에 북일본기선에 매각되어 만슈마루(満州丸)로 운행하였으며 태평양 전쟁 와중에 일본제국 해군에 징집된다. 1944년 9월 9일 필리핀 해역에서 미 해군 잠수함 USS Queenfish의 어뢰를 맞고 격침되어 승선하고 있던 1600명 중 869명이 사망했다.[5] 처음부터 치하쿠 연락선에서 운항하기 위해 건조되었다. 1945년 7월에 미군 공습으로 세이칸 연락선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어 도와주러 갔다가 1945년 8월 10일에 미군기의 공격을 받아 격침되었다.[6] 처음부터 치하쿠 연락선에서 운항하기 위해 건조되었다. 패전 후 세이칸 연락선에서 배속되었다가 무로란~히로시마 간 석탄운송선으로 쓰이기도 했다. 1965년 8월 11일에 퇴역하여 이후 스크랩 처리되었다.[7] 2020년대까지도 레분/리시리행 페리는 여전히 이 회사에서 운영 중이다.[8] 육로 기준으로는 멀지만 바다로는 나름대로 가까운 편이다. 부산광역시-후쿠오카시 항속 거리가 약 200km 가량이다. 한일관계도 멀고도 가까운 관계지만 같은 서방 세계의 일원이고 민간 교류는 그 어떤 이웃나라보다도 활발한 편이기에 대한해협 간의 이동은 매우 빈번하다.[9] 정확히는 지금은 없어진 부산잔교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