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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체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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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체코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중세2.2. 19세기2.3. 20세기2.4. 21세기
3. 문화적 관계4. 관련 문서

1. 개요

폴란드체코의 관계.

전통적으로 폴란드 왕국보헤미아 왕국은 역사적인 라이벌이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나치 독일에게 점령되기 전에는 두 나라 국경 지대를 가르는 치에신과 체스키테센 등 올자강 유역 일대 도시들의 영유권을 두고 국경/영토 분쟁도 빚었을 정도였다.[1] 보헤미아가 합스부르크 가문에 종속되기 이전까지 중세 당시에는 두 나라 모두 국력이 고만고만했고, 예나 지금이나 국경을 길게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수시로 싸워댔다. 그런 한편으로 상대 나라가 외세에 의해 심각한 위협에 시달리게 되면 가끔씩 서로 돕거나 주요 특정사안에서도 함께 입장을 같이 하고[2] 문화적으로도 같은 서슬라브 문화권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관계가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일단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사이가 불편하기도 하지만 현재 폴란드인들이 체코를 바라보는 인식은 역사/외교적으로 폴란드와 철천치 원수 그 자체인 독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 등 다른 주변국가들에 비하면 좋은 편이다.

2. 역사적 관계

2.1. 중세

870년 경 체코인의 나라 보헤미아 공국이 먼저 세워진 이후 약 90년 뒤 폴란드인의 나라가 폴란드 공국이 세워졌다. 폴란드 최초의 왕 미에슈코 1세의 아내인 도브라바는 보헤미아 프르셰미슬 왕조 출신이었다. 폴란드는 체코로부터 성직자를 받아들이고 가톨릭 관련 용어들을 도입하는 등 자국의 가톨릭화에 큰 도움을 받았다.[3]

12세기 중반까지 두 나라는 수시로 싸웠다. 특히 실레시아(폴란드어: 실롱스크, 체코어: 슬레스코) 지방을 놓고 크게 싸웠다. 1137년 양국의 국경을 획정하며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이 기간 동안 1241년 폴란드에 몽골 제국군이 침입하자 보헤미아는 대규모 원병[4]을 파병하기도 했다. 하지만 14세기 초반에는 보헤미아의 룩셈부르크 왕조에서 폴란드 왕위를 요구하는 바람에 다시 두 나라는 깊은 대립을 하기도 했는데, 1335년 남슬라우 조약으로 카지미에시 3세가 보헤미아에 실레시아를 넘기면서 다시 화해했다. 그 뒤, 보헤미아 왕국은 그룬발트 전투에서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폴란드 왕국 측으로 원군을 파견했다. 보헤미아의 후스파이르지 스 포데브라트교황에게 파문당하고 헝가리-크로아티아 국왕 마차시 1세에게 침공당하자 카지미에시 4세의 맏아들 브와디스와프 왕자를 국왕으로 선출할테니 원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2.2. 19세기

체코와 폴란드 모두 외세의 지배를 받게 되었을 때, 폴란드 남부와 체코 모두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과거 두 나라의 국경이던 지방에서 민족간 이동이 활발해졌다. 특히 19세기 초반 오스트리아는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에서 폴란드인의 기득권을 점차 축소시키고 그 자리에 독일인과 체코인 관료들을 이주시켜서 메꾸었다. 이 과정에서 체코인 관료 외에도 사업가들이 크라쿠프 등 폴란드 남부 지역에 대거 정착했다.

한 편 1848년 혁명 당시 체코인 민족주의자들은 슬라브 민족 회의를 개최하였고, 여기에 상당수의 폴란드인 민족주의자들이 호응하였다.

2.3. 20세기

상술한 이유로 두 나라가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양국 국경의 민족분포가 애매해졌고 두 나라는 독립하자마자 다시 국경분쟁을 벌였다. 분쟁은 1919년 양측에서 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국지전으로 번졌고 1938년에는 폴란드가 뮌헨 협정에서 주테텐란트를 합병한 나치 독일, 남슬로바키아 지역을 차지한 헝가리 왕국 등 추축국들과 합세해 전간기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와 분쟁을 치렀던 체-폴 국경 지역의 영토였던 치에쉰(테셴, 테신)을 합병하기도 했다.[5]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나라를 빼앗긴 두 나라의 망명정부는 런던에서 서로 협력하며 관계를 개선해 나갔지만 1943년 폴란드 망명정부의 수장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할 때 체코인 조종사는 살아남으면서 이상한 루머가 번져 다시 관계가 나빠졌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고 1968년 '프라하의 봄' 사건 때엔 폴란드군이 체코를 침공하면서 관계는 극악으로 치달았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두 나라의 공식적인 관계는 나빴지만, 양국의 반공주의자들은 1970년대부터 서로 협력하고 있었다. 1978년 두 나라의 반공운동 지도자였던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과 야첵 쿠론(Jacek Kuroń)은 두 나라의 국경에 위치한 스네슈카 산 정상에서 회동을 가지고 공산당 붕괴 이후의 미래를 도모하고 미래의 양국 간 협력과 관계개선을 다짐했다. 1989년 두 나라의 인민정부가 모두 붕괴되고 스네슈카 산의 회동에서 만난 인사들은 모두 두 나라의 중요 인사가 되었기 때문에(바츨라프 하벨은 체코의 대통령이 되었다.) 반공운동의 동지였던 그들은 두 나라의 관계를 쉽게 개선할 수 있었다.

냉전이 끝나고 더 이상 왕위 계승에 관한 문제도, 국경 분쟁도 없어진 양국은 경제적으로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6] 1991년 지역 공동체인 비셰그라드 그룹을 만들었다.

2.4. 21세기

2009년 9월에는 폴란드의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이 1938년 뮌헨 회담에 폴란드가 끼어들어 체코의 영토를 강탈한 것을 '죄(sin)'라고 하며 과거사를 사죄했고, 2010년 4월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이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체코 정부는 이틀간 국가 애도 기간을 가졌다. 이런 사건들로 인해 이제 두 나라의 관계는 대단히 좋으며, 2013년 경제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폴란드를 방문한 체코 총리가 두 나라의 관계는 완벽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양국 국민감정도 꽤나 좋은 듯 한데, 유튜브의 폴란드/체코 관련 영상의 댓글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참고기사 ##2#3

3. 문화적 관계

체코의 민속 무용이었던 폴카는 근대 폴란드에서도 수입되어 인기를 끌었다.

4. 관련 문서



[1] 결국 나치 독일이 패망하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에는 폴란드령 치에신 시와 체코령 체스키테센 시로 각각 폴란드령과 체코령으로 영토분할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했다.[2] 현재 2022년 우러 전쟁에서 폴란드와 체코가 러시아와 싸우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것이 이 대표적인 예다.[3] 다만 폴란드의 가톨릭화가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으며 이교도의 손에 성직자가 순교하기도 했고 1030년대에는 가톨릭화에 불만을 품은 이교도들의 반란으로 나라가 아예 뒤집어진 적도 있다. 지배적 종교가 된 것은 13세기의 일이다.[4] 하지만 보헤미아 군이 당도하기 직전 폴란드군은 레그니차 전투에서 완패하고 말았다.[5] 그나마 치에쉰은 전간기 시기 영토 분쟁의 당사국이던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모두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마자 나치의 피해국가로 전락한데다 전후에 양국이 영토를 동서로 분할하는 식으로 서쪽 영토는 체코슬로바키아, 동쪽 영토의 일부를 폴란드가 차지하는 등 그나마 체면치례는 하였지만 추축국에 전범국이었던 독일과 헝가리는 수테텐란트와 남슬로바키아를 다시 뮌헨 협정 이전으로 체코슬로바키아에게 강탈한 영토를 다시 돌려줘야 했다.[6] 폴란드와 체코는 동유럽에서 대표적인 공업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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