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02:43:48

집단지도체제

집단체제에서 넘어옴
국체 및 정체의 구분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국체
정체
파일:왕관.png군주제 파일:프리기아 모자.png공화제
<colbgcolor=#F5F5F5,#1F2023> 민주정 입헌군주제 민주공화제
독재정 전제군주제 대통령독재
군정(軍政)
신정(神政)
혼합 체제 선거군주제 민주집중제
참주제 과두제
비주권군주제
협동조합주의
기업국가
기타 무정부 상태
}}}}}}}}} ||


1. 개요2. 상세
2.1. 사회주의 국가의 집단지도체제2.2. 집정부제(執政府制, Directorial System)2.3. 국가 이외
3. 창작물

[clearfix]

1. 개요

collective leadership system

하나의 조직구조 안에서 권력이 분산되어 있는 체제.

이 체제가 자리잡은 국가라면 총리주석국가원수는 그 본인이 국가 권력의 전권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 집단 회의의 대표자로서 제한적 권한을 행사한다.

2. 상세

2.1. 사회주의 국가의 집단지도체제

아래 서술은 반공주의에 기초하고있으니 유의하자. 사회주의자 혹은 사회주의 법학계에선 스탈린 시기 소련, 북한을 집단지도체제라고 하는 등 아래 서술과 정반대로 주장한다.

현대의 국가 가운데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되는(되었던) 국가들은 대부분 냉전시대(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프롤레타리아 독재명분으로 당-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사회주의 국가들이다.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중국소련이다. 소위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명분으로 공산당이 국가를 지도하는 당-국가 체제를 수립했다. 따라서 공산당의 중앙지도부가 곧 국가의 최고 통치기관으로 소련은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중국은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이다. 대체로 인원은 10명 내외로 거의 과두정에 가까운 통치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당대회에서 중앙위원들을 선출하고, 중앙위원회에서 정치국원들을 선출하며, 정치국에서 서기장[1](혹은 총비서, 총서기)을 뽑는 형식이다. 다른 공산국가들도 이름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거의 유사한 구조이다. (대부분의) 소련 공산당 서기장,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공산당 중앙지도부의 수장으로서 당을 통제하고 동시에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주석,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이란 명목상 국가원수 직함을 겸하며 국가를 통치했었다.[2]

중국덩샤오핑 이후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했으나,[3] 2022년 10월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공청단 파벌인 리커창, 왕양이 밀려나고 시진핑 파벌 습가군이 정치국 상무위원을 모두 차지하면서 완전히 형해화됐다. 즉 시진핑 주도 단일영도체제가 된 상태로 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북한도 원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이름에서 보듯이 집단지도체제로 운영했었으나, 8월 종파사건을 시작으로 다른 세력들[4]을 대대적으로 숙청한 뒤 스탈린 체제와 같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1인 지배체제가 되었다.

공산주의 국가이긴 했지만 결속력이 더 약했던 유고슬라비아 또한 티토 사후 각 소속 공화국의 수반이 모인 회의에서 각 수반이 돌아가며 국가원수를 맡는 제도를 채택했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요인이 겹치면서 1980년대 중반 이후로 각 공화국들의 수반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프라뇨 투지만을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이 차지하게 됐고 이로 인해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집단지도체제는 한 명의 절대 권력자의 출현을 막는다는 의도는 좋을지 몰라도, '정책 실패의 책임' 대상이 굉장히 모호해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주요 정당이 집단지도체제로 돌아갈 때 계파 갈등이 얼마나 심한지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정책을 국가 단위에서 작동시킨다면 당장 대통령 선거를 해놓고 1위로 득표한 후보와 2위로 득표한 후보가 동시에 지도부에 들어가는 일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는 소련처럼 지도부가 과두정처럼 똘똘 뭉쳐 하나의 귀족 엘리트층이 되거나, 중국처럼 한 명이 주도권을 잡아 집단지도체제가 무너지거나, 레바논의 정치 상황처럼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책임의 모호함' 때문에 국가가 굉장히 보수적으로 작동하며 어떤 종류의 개혁도 실행하지 않아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가 소련(7-80년대 경제침체)이나 일본(잃어버린 20년)처럼 쇠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부 내각책임제 국가의 경우에는 내각 결의가 존재하는 등의 모습은 보이고 집단지도체제와는 달리 내각이 한 묶음으로 명확한 책임 소재를 규명한 다음 구성되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아래 스위스 항목 참고.

2.2. 집정부제(執政府制, Directorial System)

스위스의 경우 연방의 최고 권력 기관으로 연방의회가 있고, 연방의회에서 선출한 각 부의 장관이 모여 형성한 최고 집행 기관인 연방평의회 7인이 존재하며 1인이 1년씩 대통령직을 맡는다. 연방 수상도 있는데 연방평의회에서 투표권이 없는 기술관료직이다. 스위스식 회의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위스에서 공산 국가와는 달리 집단지도체제의 문제점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국가 중대사를 국민투표로 정하는 일부 직접민주주의 요소에 일당이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입법부[5] 등 문제점을 보완할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각 불신임 결의나 의회해산, 심지어 개별 각료에 대한 불신임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지위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6]. 이 연방평의회 자체도 연립정부형 내각이 아니라 일종의 상설 대표회의에 가깝고, 법률안 제출권도 평의회와 의회 둘 다에 존재한다. 즉 상호 해산권을 아예 없앰으로써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집단지도체제 특유의 보수성을 최대한 줄이고, 개별 연방평의회 각료 개인의 책임은 무조건 연방평의회 전체가 지게 한 것.[7]

산마리노도 동시에 6개월 임기의 집정관 2인을 둔다.

우루과이에서도 1954년부터 1967년까지는 대통령제를 없애고 스위스를 본떠 9명으로 '정부 국가평의회' 제도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래서 '남미의 스위스'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대통령제에 익숙한 라틴아메리카인들에게는 너무 낯선 제도이기도 했고, 여러 단점들이 제기되면서 폐지됐다.

2.3. 국가 이외

국가 말고도 정당 및 사회단체들이 이 집단지도체제인 때가 많다. 특히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일부 공산당 및 좌익 정당들은 현재도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되는 경우가 꽤 있다.

특히 한국에서 집단지도체제라고 하면 보통 전당대회에서 선거를 치른 뒤 최고득점자가 당 대표를 맡고 차점자부터 순서대로 최고위원을 맡아 당을 이끄는 체제를 일컫는다. 이와 반대되는 말은 단일지도체제.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별도로 선출한 뒤 대표에게 더 큰 권한을 주는 경우는 원래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라 불렀으나 총재 중심의 옛 단일지도체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 단일성 집단지도체제가 보편화되면서 최근에는 이 체제를 단일지도체제라고 부른다.

기독교정교회, 그리고 일부 개신교 교단에서 이 집단지도체제로 교단을 운영하기도 한다. 로마교황이 전권을 행사하는 가톨릭과는 달리 정교회의 경우 각 독립교회의 주교들이 모이는 주교단 회의에서 교단을 운영한다. 흔히 가톨릭의 교황과 동급으로 여기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는 어디까지나 이 회의를 주관하는 의장이자 대표의 역할을 할 뿐이다. 주식회사의 최고기관인 주주총회도 보유지분에 따라 의결권이 분배되므로, 1인이 절대다수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 사실상 대주주들의 집단지도체제처럼 작동한다.

3. 창작물



[1] 공산당 정치국 리더의 직책을 총비서, 제1비서, 총서기, 서기장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하지만 사실 영어의 Secretary에서 온 것이다.[2] 중국의 경우에는 군 통수권자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실권직이다. 덩샤오핑이 대표적.[3] 정확히 말하면 각 파벌의 합의로 정치국 상무위원을 선출하고 이 상무위원회가 국정을 운영하는 구조였다.[4] 남로당파, 연안파, 소련파, 갑산파 등. 다만 갑산파는 8월 종파사건 이후인 1967년에 숙청당했다.[5] 4개 정당이 4분의 1씩 의석을 점한 일도 있었다.[6] 스위스에서 대통령이라 부르는 지위는 일반적인 내각제로 치환하면 부총리에 지나지 않는다.[7] 여기까지만 보면 그럴듯하겠지만, 이 보수성 문제는 스위스에도 존재한다. 스위스는 직접민주주의국가라는 유명세와는 달리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국가 중 하나로 여성 참정권조차도 1971년에 최초로, 1990년에 마지막으로 인정되었다.[8] 대의회 의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스위스식 회의체인 것으로 여겨진다.[9] 수장은 신관회의 신관인 아르타니스이지만, 역시 부족들과 분파들의 집정부제인 것으로 묘사되며, 아르타니스는 이 신관회를 주관하는 의장이자 대표의 역할 뿐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아르타니스가 부족과 분파를 가리지 않는 대영웅이라서 바지사장은 아니다.[스포일러] 하지만 이들의 진정한 왕이 있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