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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01:05

진복기

파일:Screenshot_20220409-035239_YouTube.jpg
성명 진복기(陳福基)
출생 1917년 11월 17일
사망 2000년 (향년 83세)
학력 중학교 (졸업)
만주북경대학 (정치학 / 학사)
총신신학연구원 (졸업)
종교 개신교
정당
파일:기독성민당글자.png

1. 개요2. 생애3. 여담4. 선거 이력

[clearfix]

1. 개요

파일:진복기.jpg
제7대 대통령 선거 당시의 벽보

대한민국정치인, 종교인. 제7대 대통령 선거 후보 중 한 명.

2. 생애

1917년 11월 17일생으로, 을종(3년제) 중학교를 졸업하고 만주로 건너가 만주북경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그 뒤 193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직속 한국광복군에 입대해 오광선 장군의 휘하에서 활동했다고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공보에 기재되어 있으나, 오광선 장군은 1933년 당시 한국독립당 산하 한국독립군의 중대장으로 있었고, 한국광복군 또한 1940년에서야 창설되었기에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그 뒤 귀국해 1941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소속 전라북도 군산부 개복정1정목(현 군산시 개복동)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1943년에는 군산중앙교회에서 집사로 시무했다.

8.15 광복 후 1946년 한국광복청년회 중앙총본부의 지방 조직부장, 지도위원 등을 역임했고, 1947년 대동청년단에 입단해 중앙총본부 조직위원이 되었다가 1948년 대한청년단이 창단되자 이에 입단하여 중앙총본부 조직위원을 지냈다. 이후 1950년 청년방위대가 창설되자 군산시·이리시· 익산군·옥구군·김제군 등을 관할하는 제2연대장에 부임했다. 같은 해 6.25 전쟁이 발발하자 102사단 제5연대 지리산 토벌대장(대한민국 육군 대위)에 임명되어 지리산에서 빨치산 토벌전에 참여했다. 이 때 몇 달동안 수염을 자르지 못했는데, 토벌전이 끝나고 나서도 기념으로 카이저(당시엔 카이젤) 수염은 남겨두었고, 이것이 이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그 뒤 예편한 그는 1955년경 군산시의회 의원을 역임했다. 1963년 1월 민정당에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나 그해 3월 탈당했다. 그리고 4월 자유국민당 창당발기인에 가담했으나 이내 탈당하고 6월 정민회에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그해 실시된 제6대 국회의원 선거정민회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을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민정당 서범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정의당이 창당되자 입당했고, 그해 실시된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신민당 서범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정의당 총재에 선출되었고, 그해 실시된 제7대 대통령 선거에 기호 6번으로 출마했다. 이때 카이저 수염을 기른 진복기 정의당[1] 후보는 전쟁을 통해 북진통일을 완수하겠다는 말과 함께 신안 앞바다에 가라앉은 보물을 발굴해 국민들을 부자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며 122,914표(1%)를 득표해 전체 3위(!)에 올랐다.[2]

이후 대통령 직선제가 폐지되면서 다시는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못했지만 신군부 일당이 집권한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상습 대선 출마자로 몰려 1980년대에 3김씨와 함께 정치규제대상이 되기도 했다. 본인은 1980년대 언론에서 "나는 한 번 밖에 출마 안했는데 상습출마자가 되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이후 민족 복음화 본부 전국 평신도 부장을 역임하면서 종교계에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 뒤 1985년 11월 기독성민당 중앙당을 결성해 총재가 되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당을 등록했다. 그리고 1987년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자 다시금 정치에 도전하기 시작하여 1987년, 1992년, 1997년 등의 대선 등에도 모두 출마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실제 출마로 이어지지는 않아 영원한 대선 후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사실은 이 당시 후보 공탁금(1987년 당시 1억원)이 없었기 때문인듯 하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 서류를 가지고 왔다가 마감 후 되돌아가기도 했다는 후문이 있다.

다만, 대한예수교장로회 삼양교회 강도사로 시무하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독성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긴 했다. 그러나 9명의 후보가 난립한 끝에 평화민주당 이철용 후보에 밀려 9명중 꼴찌로 낙선했다.(901표 0.89% 9위)
파일:13대 총선 진복기.jpg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도봉구 을) 선거벽보

3. 여담

파일:Screenshot_20220409-035239_YouTube.jpg
사진에서 알수 있다시피 세묜 부됸니빌헬름 2세와같이 카이저 수염이 상당히 인상적이기에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고, 본인도 자신의 콧수염을 좋아해 말년까지 유지 관리하고 다녔다. 1994년 인터뷰에서는 "남들은 복수염이라고 그래. 카이젤 수염이 아니야 이게, 코리안 수염이지."라며 수염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제7대 대통령 선거, 제13대 대통령 선거, 제14대 대통령 선거, 제15대 대통령 선거 때마다 출마 의사를 밝혔기에 당시에는 일종의 밈처럼 "또 출마 안 하냐"같은 농담이 돌았다. 이러한 '매번 대선 출마하는 특이한 사람' 이미지는 다음 세대에서 허경영이 뒤를 잇게 된다.

고은 시인이 이 사람을 소재로 시를 쓰기도 했다.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63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제8선거구)[A]

파일:정민회 글자.png
1,004 (1.82%) 낙선 (6위)
1967 제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제8선거구)[A]

[[정의당(1967년)|
파일:정의당(1967년) 흰색 로고타입.svg
]]
773 (0.78%) 낙선 (6위)
1971 제7대 대통령 선거 122,914 (1.03%) 낙선 (3위)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도봉구 을)

파일:기독성민당글자.png
901 (0.89%) 낙선 (9위)
역대 후보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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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투표 도장 문양(흰색 테두리).svg 제7대 대통령 선거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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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005BA6,#FFC224> 기호 정당 이름 비고
1 민주공화당 박정희 당선
2 신민당 김대중
3 국민당 박기출
4 민중당 성보경 사퇴
5 자민당 이종윤
6 정의당 진복기
7 통일사회당 김철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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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합진보당에서 갈라져 나온 현재의 정의당과는 전혀 다른 정당이다.[2] 이 선거는 박정희, 김대중 2명의 양강 구도로 진행되었으며, 3선 개헌, 지역감정, 부정선거 의혹 등으로 유명하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허경영 후보가 득표한 96,756표보다는 많았으니 나름 선방한 셈이다.[A] 성북구 을.[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