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보경 관련 틀 |
성보경 成輔慶 | |
<colbgcolor=#C9252B><colcolor=#fff> 출생 | 1926년 5월 2일 |
경상남도 창녕군 | |
사망 | 2015년 5월 9일 3시 57분 (향년 89세) |
본관 | 창녕 성씨 |
학력 | 동국대학교 |
가족 | 배우자, 2남 3녀[1] |
종교 | 개신교 |
최종 당적 | [[새누리당|]] |
경력 | 대한반공단 단장 대한멸공단 단장 한국항공대학 학장[2] 신민회 대표 민중당 총재 동국대학교 명예 이사장 21세기선진포럼 총재 국가원로회 회장 세계 효 운동본부 상임고문 한나라당 상임고문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상임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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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7대 대통령 선거 후보이자 제2대 민중당 대표를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2. 생애
1926년 5월 2일,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태어났다.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창녕 민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57년부터 대한반공단 단장을 역임하며 반공 활동을 해 왔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반공단 소속으로 창녕 민의원에 출마하려 했으나 사퇴했다. 1959년 대한멸공단을 창설했고, 대한멸공단은 1년 뒤 신도환이 총재로 있던 자유당의 정치깡패조직 대한반공청년단에 흡수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공천을 받아 창녕 민의원에 출마하려 했으나 최종 불발되었다.#
1963년 신민회를 창당했다. 같은 해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회의 전국구 1순위로 올랐으나 낙선했다.#
1965년 재보궐선거에서는 중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67년 신민당 창당 즈음, 신민회의 당명을 신민당으로 변경하려고 하는 등[3] 훼방을 놓으려 했다.# 결과적으로는 선관위가 당명 변경을 불허하며 신민회는 민중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준연을 옹립했다. 이후 부정수표를 팔아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다.#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중당 전국구 1번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69년 재보궐선거 당시에는 창녕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민중당 대선 후보로 출마해 기호 4번을 받았으나, 야당 단일화를 위해 사퇴했다. 대선 후에는 부산성지곡공원에 보트장과 낚시터를 개설해 주겠다며 9월 16일부터 여섯차례 이계하 씨로부터 84만원을 뜯은 혐의로 또 구속되었다.#
이후 한동안 정계에서 떨어져 있다가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창녕의 민주정의당 공천 신청자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
2010년대부터는 보수 활동에 매진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단체 '시민유권자운동본부'와 '한미FTA지키기범국민운동본부'의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2013년의 모습 |
2015년 3월에는 세계 효 운동본부 상임고문에 위촉되었다.#
말년에는 새누리당 중앙위 상임고문으로 지내다가 2015년 5월 9일 3시 57분 사망하였다.# 21세기선진포럼 사이트에 따르면 사인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나오는데, 날짜가 2016년 3월로 잘못 나와 있다.#
3.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54 - 1960 | 정계 입문 |
[[자유당(1951년)|]] | 1960 - 1961 | 입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61 - 1963 | 정당 해산[4] |
| 1963 - 1967 | 창당 |
[[민중당(1967년)|]] | 1967 - 1973 | 당명 변경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73 - 1988 | 정당 해산[5] |
| 1988 - 1990 | 입당 |
[[민주자유당|]] | 1990 - 1995 | 합당[6] |
[[신한국당|]] | 1995 - 1997 | 당명 변경 |
| 1997 - 2012 | 합당[7] |
[[새누리당|]] | 2012 - 2015 | 당명 변경 사망 |
4.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54 | 제3대 국회의원 선거 | 경남 11[8]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624 (5.19%) | 낙선 (3위) | |
1957 | 제4대 국회의원 선거 | 경남 19[9] | 후보 사퇴 | |||
1960 | 제5대 국회의원 선거 | [[자유당(1951년)|]] | ||||
1963 | 제6대 국회의원 선거 | 전국구 | | 165,124 (1.7%) | 낙선 (1번) | |
1965 | 1965년 재보궐선거 | 서울 2[10] | 841 (3.52%) | 낙선 (7위) | ||
1967 | 제7대 국회의원 선거 | 전국구 | [[민중당(1967년)|]] | 180,324 (1.7%) | 낙선 (1번) | |
1969 | 1969년 재보궐선거 | 경남 8[11] | 1,121 (22.42%) | 낙선 (3위) | ||
1971 | 제7대 대통령 선거 | 대한민국 | 후보 사퇴 |
역대 선거 벽보[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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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후보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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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기돈(現 21세기선진포럼 이사장), 성기홍, 성경옥, 성경숙, 성은주[2] 7대 총선의 민중당 선거공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역대 총장 중 성보경이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데 임기가 너무 짧아서 기록이 안 되었거나 사칭일 가능성도 있다.[3] 실제로 유명 정당의 이름을 선점해 유권자들의 혼동을 일으켜 그 표를 얻으려는 예시는 한국 정치에 꽤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한나라당-한나라당(2012년), 새누리당-새누리당(2017년). 이 때문에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미래통합당에서는 자유한국당 창당준비위원회를 창당해 이 사태를 막았다.[4] 5.16 군사정변으로 인한 강제 해산.[5] 지구당 등록 미달로 인한 등록 취소.[6]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7]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8] 창녕군[9] 창녕군[10] 중구[11] 창녕군[12] 제3~6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벽보는 확인 되지 않고 있다. 이는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벽보 보존의 필요성을 못 느껴 선거벽보를 보존하지 않은 것이 그 원인으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을 비롯한 1950년대 부터 정치를 시작한 원로 정치인들의 선거벽보 상당수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