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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9:21:32

자스키아 에스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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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3년 의원직을 사퇴하고 연방 의약품생산자협회 대표가 되었다. 알렉산더 푀어가 비례대표로 의원직 승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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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7대 독일 사회민주당 대표
자스키아 크리스티나 에스켄
Saskia Christina Esken
파일:2021-12-07_Unterzeichnung_des_Koalitionsvertrages_der_20._Wahlperiode_des_Bundestages_by_Sandro_Halank–078.jpg
<colbgcolor=#E3000F><colcolor=#fff> 출생 1961년 8월 18일 ([age(1961-08-18)]세)
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 슈투트가르트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학력 슈투트가르트 대학교 (문학, 정치학 / 학사)
배우자 롤랑 에스켄 (1993 ~ )
정당

의원 선수 3 (연방의회)
지역구 바덴뷔르템베르크 비례대표[1]

1. 개요2. 생애
2.1. 정치 입문 이전2.2. 정치 입문 이후2.3. 사회민주당 대표 시절

[clearfix]

1. 개요

독일정치인, 2023년 기준 독일의 집권여당인 독일 사회민주당의 공동대표.

2. 생애

2.1. 정치 입문 이전

1961년, 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에 있는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난 에스켄은 슈투트가르트 대학에 입학해 독일 문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이후 패키지 디자이너 겸 웨이트리스로 일하다가 1990년 뵈블링엔에서 IT 전문 자격증을 취득한 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전직한다. 어찌 보면 현대적 직업 재교육의 수혜자인 셈.

사민당 내 대표적인 좌파 정치인이자 연방 사민당의 공동대표로 당의 중심에 선 지금과 달리 처음에는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부모님이 빌리 브란트 총리의 영향으로 독일 사회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중량감 있는 정치인들이 10대 초중반의 청소년 시절부터 정당 생활을 시작해온 독일의 정치 문화를 생각해보면 다소 이례적인 케이스.

2.2. 정치 입문 이후

1990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사민당에 입당했지만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한 건 육아 문제로 일을 그만둔 이후다. 기민련의 당세가 강한 바덴뷔르템베르크 주가 활동무대였는데 2007년부터 바드 리벤젤의 시의원을 지내고 2010년 칼브 지역위원장을 거쳐 2013년에는 드디어 바덴뷔르템베르크 사민당 지도부까지 올라갔다. 한편 2009년에는 처음으로 독일 연방의회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낙선하고 말았다.

2013년 9월에 열린 제18대 총선에서 칼브 지역구에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밀어 20.2%를 득표하면서 비례대표로 연방의회에 입성했는데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하기 전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주로 IT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2017년에는 제19대 총선에서 사민당이 20.5% 득표로 153석 확보에 그치는 괴멸적인 패배를 당하자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추진했던 하르츠 개혁이 여전히 당의 원죄로 작용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판해 존재감을 키웠다. 이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동맹 90/녹색당, 자유민주당과의 자메이카 연정 구성에 실패해 당원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 다시 한번 대연정을 구성해야하는 상황이 되자 그 협상단에 참여하기도 했다.[2]

결국 대연정의 대가로 유럽의회 선거에서 무려 15.3%라는 충격적인 득표율로 또한번 참패하고, 안드레아 날레스가 이끄는 지도부가 총사퇴하면서 당내 비판자 역할에 그치고 있던 에스켄에게 새로운 길이 열렸다.

날레스 대표의 후임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1993년 이후 처음으로 당원 투표가 도입되면서 또 한번의 대연정과 이를 주도한 당내 우파를 향한 불만을 가득 품은 당원들의 표심이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게 되었다. 에스켄 의원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재무장관을 역임한 노르베르트 발터보르얀스와 러닝메이트가 되어 도전장을 내밀었다.

올라프 숄츠 부총리와 클라라 가이비츠 전 브란덴부르크 사민당 사무총장 조합이 가장 유력한 차기 당대표로 꼽히는 상황에서 10월 14일부터 10월 26일까지 진행된 1차 투표 개표 결과, 에스켄과 발터보르얀스 조합은 21.04%를 득표해 22.68%를 득표한 숄츠-가이비츠 조합과 같이 결선 투표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특히 대연정을 얼마든지 재검토할 수 있다는 명확한 의사를 표시하면서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11월 30일 공개된 결선 투표 결과, 에스켄과 발터보르얀스가 숄츠-가이비츠를 53.06% vs 45.33%로 누르고 사민당의 신임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 결과로 인해 독일 정계는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다.#

2.3. 사회민주당 대표 시절

2019년 12월 열린 전당대회를 통해 대의원 75.9%의 동의로 발터보르얀스와 함께 공식 대표로 선출되었다. 대표 선출 이후로는 숄츠 부총리 등 자신과 대표 선거에서 맞섰던 당내 우파 후보들을 부대표로 신임하고 당초 대연정을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바꿔 최저임금 인상, 기후변화 대응 강화 등을 위해 연정안 재협상을 요구했으나 메르켈 총리와 기민련은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일단 무리하게 정국을 혼란으로 빠트리는 것보다는 대연정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했다.# 당내 좌파로서는 다소 싱거운 결말이었지만 그래도 이후 메르켈 총리가 일부 제안을 수용하는 식으로 부분적인 수정이 이루어지긴 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독일을 덮치자 메르켈 내각은 추경을 편성하기로 했는데 에스켄 대표는 재원 마련을 위해 4월 1일에 고소득자들에게 재산 부담금을 요구했다.#

한편 차기 총선을 앞두고 8월 10일에 대표적인 당내 우파인 올라프 숄츠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당의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인기를 높인 숄츠 부총리를 전면에 내세워 녹색당에 밀려 하락세인 당 지지율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평가받았다.#

본인과 발터보르얀스 대표가 좌파 성향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사이, 숄츠 부총리는 중도좌파, 이를 넘어서 이전에 메르켈 총리를 지지했던 중도우파 성향 유권자들까지 포섭에 나서는 이중 전략을 펼쳤는데, CDU/CSU에서 메르켈의 후임으로 내세운 아르민 라셰트 총재가 연이은 실책으로 자폭하면서 효과를 발휘했다. 결국 제20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2017년 대연정 이전 수준의 득표율인 25.7%(206석)를 회복하면서 2005년 총선 패배 이후 처음으로 원내 1당 지위를 탈환했다.

하지만 에스켄 대표가 목표로 했던 'R2G 연정'(사민-녹색-좌파 연정)은 좌파당의 선거 부진으로 무산되었고, 결국 숄츠 부총리의 복안대로 자민당을 연정에 포함시키는 '신호등 연정'(사민-녹색-자민)이 구성되었다. 당 유소년 조직인 Jusos 등 좌파 성향이 강한 당원들로터 반발이 조금 있긴 했지만 이를 억누르고 숄츠 부총리와 신호등 연정 구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3] 결국 12월 8일 숄츠 내각이 출범하면서 공식적으로 16년만의 정권교체를 성사시켰다.

이 공헌으로 12월 열린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76.7%의 지지를 받아 당 대표직 연임을 인정받았다. 다만, 공동대표였던 노르베르트 발터보르얀스는 총선 이후 사퇴 의사를 표명했던지라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물러나고 라르스 클링바일 사무총장이 새롭게 공동대표가 되었다.#

2021년 12월 29일, 올라프 숄츠 총리가 추진하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 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계속 러시아를 억지로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자 탈당할 것을 올라프 숄츠 총리 등과 함께 요구했다.#

2023년 12월 8일 열린 전당대회에서 82.6% 득표율로 공동 당대표인 라르스 클링바일과 함께 재선에 성공했다.

2024년 9월 23일 발생한 졸링겐 흉기 난동 사건에 대하여 다음날 ARD의 토크쇼에 출연해 보안 강화 필요성을 부정하며 이 사건을 별것 아닌 사건인것처럼 묘사하여 논란이 되었다. 당 대변인인 톰 슈라이버가 나서서 직접 에스켄의 이 발언을 비판했으나 이튿날 에스켄 역시 자신의 발언이 잘못되었다고 사과했다. 2024년 브란덴부르크 주의회 선거 유세 중이던 앙겔로아트린 랑게 주사민당 부대표도 이 발언에 대해서 날을 세우며 그런 식으로 발언할거면 아예 토크쇼에 출연하지 말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1] 칼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기민련의 클라우스 마크 의원에게 패하고 비례대표로 생환했다.[2] 에스켄 의원 본인 역시 당내 좌파로서 대연정 구성에 회의적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에 울며 겨자먹기로 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3]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시절, 총선 압승에도 불구하고 좌파 성향 오스카 라퐁텐 대표와 슈뢰더 총리가 계속하여 반목하다 기어이 라퐁텐 대표가 탈당했고 이것이 슈뢰더 내각 붕괴의 단초가 되었던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