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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회민주당 당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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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키아 에스켄 라르스 클링바일 | |||||
기독교민주연합 당수 | 자유민주당 당수 |
제17대 독일 사회민주당 대표 라르스 클링바일 Lars Klingbeil | |
<colbgcolor=#E3000F><colcolor=#fff> 출생 | 1978년 2월 23일 ([age(1978-02-23)]세) |
서독 니더작센 하이데크라이스 졸타우 | |
국적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라이프니츠 하노버 대학교 (정치학 / M.A.) |
배우자 | 레나소피 뮐러 (2019 ~ ) |
소속 정당 | |
의원 선수 | 5 (연방의회) |
지역구 | 로텐부르크 1구·하이데크라이스 |
경력 | 연방의회의원 사회민주당 사무총장 사회민주당 공동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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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정치인.독일 사회민주당의 제17대 당대표이며, 자스키아 에스켄 대표와 함께 공동대표 체제를 이끌고 있다.
2. 생애
2001년부터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하이노 비제 의원의 선거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계에 입문하게 되었고, 2005년에는 얀 피터 얀센 의원이 폭스바겐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급여 형식으로 받았다는 혐의를 받아 사임하자 비례대표 의원직을 승계, 본격적으로 선출직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첫 의원생활은 1년이 가지 못했고, 같은 해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다시 가렐트 두인 의원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정치 경력을 이어나가게 됐다.2009년에 고향이 속해있는 로텐부르크 1구·하이데크라이스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35.2% 득표율로 기독교민주연합 후보에 패해 비례대표로 구제받아 의원직을 유지했다. 4년 뒤인 2013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래도 비례대표로나마 3선에 성공하면서 니더작센 주에 지역구를 둔 사민당 연방의원들의 대표 역할을 맡으면서 몸집을 키웠다.
19대 총선에서 클링바일이 속한 사민당은 참패를 면하지 못했지만, 클링바일은 41.2% 득표율로 기민련 후보를 누르고 드디어 첫 지역구 당선에 성공하면서 전화위복이 되었다. 예상밖 총선 참패를 수습해야되는 상황이 된 마르틴 슐츠 대표의 제안으로 당의 신임 사무총장으로 선임된 것.#
사무총장이 된 이후 첫 행보로 녹색당, 자민당과의 자메이카 연정 구성 실패로 곤란한 상황이 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그녀가 이끄는 CDU/CSU와의 대연정을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당 내 반발이 극심하긴 했지만, 덕분에 재무장관, 외무장관, 법무장관 등 요직을 사민당이 차지할 수 있었다.[1] 특히 이때 올라프 숄츠 전 함부르크 주총리가 부총리 겸 재무장관으로 입각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4년 뒤 짜릿한 역전극을 만들어내는 씨앗이 되었다.
하지만 당장 당내의 반발은 결코 적지 않았기에 슐츠 대표는 대연정을 받아들인 대가로 사임을 선택해야 했고, 당 지지율은 추락해 녹색당에게도 2당 지위를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후임 안드레아 날레스 대표도 유럽의회 선거에서 다시 한번 참패하면서 사퇴. 결국 2019년말 노르베르트 발터보르얀스와 자스키아 에스켄이라는 두 당 내 좌파 의원들이 새롭게 대표가 되었다.#
대연정에 반대하는 새로운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이를 주도했던 클링바일이 물러날 것이란 예상이 있었지만, 행정력을 높이 사기도 했고, 계파를 안배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지도부는 클링바일을 그대로 사무총장으로 유임했다. 이후 숄츠 부총리와 함께 슈뢰더의 길을 잇는 당내 우파로서 당의 무게 중심을 맞추는 역할을 맡았다.
2021년 총선 기간동안 당의 사무총장으로서 실질적인 선거운동 전략을 담당했는데 여기서 클링바일이 짠 '이중 전략'이 빛을 발했다. 발터보르얀스와 에스켄 대표가 당내 좌파와 진보 성향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동안에 공식적으로는 숄츠 부총리를 선거전 전면에 내세우면서 과거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지지했던, 그리고 16년만에 생긴 메르켈의 공백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중도 내지 중도우파 성향 유권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기간 기민련과 녹색당의 연이은 자폭에 힘입어 무려 16년만에 지지율 1위를 탈환하고 기어이 25.7% 득표율로 16년만에 원내 1당 탈환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연정 실무단으로 녹색당, 자민당과의 신호등 연정을 숄츠 총리와 함께 인내심 있게 추진해 연방 정부 역사상 첫 3자 연정을 현실화시켰다.
이렇게 숄츠 총리가 12월 8일에 공식적으로 연방의회에서 메르켈의 뒤를 이을 신임 총리로 선출되면서 정권교체에 성공했고 이 공헌으로 클링바일 역시 3일 뒤 사임을 선택한 발터보르얀스의 뒤를 이을 당대표로 추대되었다.#
2022년 3월부터 FC 바이에른 뮌헨 행정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이전부터 뮌헨의 팬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2023년 12월 8일 열린 전당대회에서 85.6% 득표율로 자스키아 에스켄과 함께 당대표 재선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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