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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 싱가포르 |
1. 개요
인도와 싱가포르의 관계.싱가포르는 해협식민지의 일원으로서 영국인들에 의해 인도인들이 쿨리로서 남부 타밀나두와 케랄라 등에서 유입되었다. 이후 이렇게 유입된 인도인 쿨리들의 후손들이 인도계 싱가포르인/ 인도계 말레이시아인들이 되었다.
그 덕분에 싱가포르 내에는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이 인구 5% 정도로 소수라기에는 상당수 거주하고 있으며 심심찮게 인도인들을 볼 수 있다. 흔히 중국계 싱가포르인의 70%의 인구 비중 때문에 한국인들은 싱가포르를 중화권으로만 인식하기 쉬운데 정작 식습관 등에서는 인도 요리의 영향이 강하다. 커리 소스가 굉장히 보편화되어 있으며 인도에서 많이 먹는 음식들은 싱가포르에서도 인기를 끈다.
인도와 싱가포르는 모두 영연방 회원국이며 영어가 공용어로 쓰이는 등 많은 공통점이 있고 거리도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비해서 싱가포르에서 인도로 가는 게 훨씬 가깝다. 특히 인도 남부는 4-5시간이면 갈 수 있을 정도다.
친서방 제1세계 국가면서도 중립외교를 펴는 싱가포르는 중국과 인도의 관계도 중재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이전
싱가포르가 19세기에 말레이시아 본토와 함께 해협식민지의 일원으로서 영국의 지배를 받을 당시에 수많은 중국인들과 인도인들이 쿨리로 싱가포르섬에 정착했다.영국은 해협식민지 당시 해협식민지의 대도시였던 싱가포르에 여러 인프라와 건물들을 세웠다. 싱가포르도 영국의 지배를 받을 당시에 말레이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제2차 세계 대전기간에 일본군은 말레이반도를 점령했다. 당시, 말레이시아 본토와 마찬가지로 싱가포르의 중국계 싱가포르인과 인도계 싱가포르인들도 일본군의 학살과 탄압을 많이 받았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싱가포르를 포함한 말레이시아는 다시 영국령으로 반환되었다. 곧 말레이시아는 1963년 영국에서 독립했다. 이 때 싱가포르는 독립한 말레이시아에 가입하여 싱가포르 주(州)가 되었다. 그러다가 말레이시아 측에서 화교들을 견제하기 위해 화교가 다수인 싱가포르 주를 독립시켰고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 의해 독립국이 되었다.
싱가포르가 독립할 당시에 당연히 말레이인들도 싱가포르를 떠나지 않고 원주민으로 남았으며 중국계 싱가포르인들과 함께 인도계 싱가포르인들도 싱가포르에 남게 되었다.
그리고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서 독립된 뒤에 인도와 수교했다.
2.2. 21세기
양국은 영연방 회원국이자[1] 영어가 공용어이다.그리고 양국간의 경제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싱가포르에는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이 5%로 소수자라고는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싱가포르와 인도가 교류를 활발히 하면서 인도인들도 싱가포르로 오는 경우도 많이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출산을 장려할 수 없는 도시국가 특성 상 이민으로 인구를 늘려서 인도인 부호들이 대거 싱가포르로 현재도 이민오는 중이다. 싱가포르 정부가 정책적으로 인도에서 이민을 받아왔다. 부호들의 영구 정착목적 이민 말고 남인도의 빈농들을 중심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력수입도 활발하여 수많은 인도 노동자들이 방글라데시인 등 같은 처지의 타 남아시아 사람들과 함께 건설현장 등에서 육체노동에 종사 중이다.
싱가포르는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 타밀어가 공용어에 포함되어 있다.
싱가포르의 전 대통령인 할리마 야콥이 말레이인과 인도계 싱가포르인의 혼혈인 프라나칸이었으며 현 대통령인 타르만 샨무가라트남은 100% 완전한 인도계 대통령이다. 상징적 국가원수인 싱가포르 대통령은 그 특성 상 소수계가 꽤 우대받아 말레이인이나 인도계에서 대통령이 많이 나오는 중이다.
2010년대부터 싱가포르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늘어나고 있어서 서방 국가들은 물론 한국, 일본, 인도, 호주와의 협력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리고 인도측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싱가포르와 협력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가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척을 지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중재 목적일 뿐이고 어느 정도 선을 긋는데 비해 인도와의 관계에서는 일방적으로 인도 측 입장을 지지해준다.
2022년 5월 10일, 싱가포르에서 카슈미르 문제를 다룬 인도 영화 상영이 금지됐다.#
2024년 9월 6일, 인도와 싱가포르 양국이 포괄적전략동반자 협의를 체결했다.#
3. 문화 교류
싱가포르는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 인도 문화도 싱가포르에 영향을 많이 주었다.인도 요리를 판매하는 식당들이 싱가포르 내에 많이 있다.[2]
그리고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은 과거에 인도 남부의 타밀나두지역에서 이주한 경우가 많다보니 타밀어가 인도계 싱가포르인 사이에서 널리 쓰이고 있고 타밀어는 영어/중국어/말레이어와 함께 싱가포르의 공용어 중의 하나에 속해 있다. 교육과정에서도 가르치고 있다.
물론 인구 비중상 가장 다수인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의 모어인 중국어(표준 중국어)와 제1언어로서 인종 간 링구아 프랑카 역할을 하고 가장 권위가 높게 부여된 영어가 널리 쓰이기 때문에 싱가포르는 타밀어가 널리 쓰이지는 않고 있다. 그래도 꼬박꼬박 병기되고 공공 안내방송 등에도 같이 나오는 언어라 그렇게 지위가 낮지는 않다.
전술했듯 인도 요리를 판매하는 식당들이 싱가포르에 널리 퍼져 있다. 그외에도 남인도 요리도 싱가포르에 유명하다.
종교적인 면에서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힌두교신자의 비중이 5% 정도로 상당하지만 인도계 내에서는 이슬람교, 시크교를 믿는 경우도 자주 있다. 약 5% 정도의 인도계는 크리스탕이라 부르는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아 가톨릭을 믿고 포르투갈어 성명을 쓰는 그룹 및 사도 토마스 교회나 성공회 등을 믿고 영국식 성명을 쓰는 인도 기독교인들이다.
어쨌든 힌두교가 꽤 있는 관계로 힌두사원들도 잊을 만 하면 볼 수 있으며 힌두 명절인 디파발리(Dipavali)도 싱가포르의 주요 공휴일 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3]
싱가포르의 인도계 집결지인 리틀 인디아(Little India)에는 인도문화센터(Indian Heritage Centre)가 있어서 인도 문화에 대해 타 인종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차이나타운의 중국문화센터, 부기스의 말레이 해리티지 센터 등도 같은 목적으로 정부가 설립한 기관들이며 인도문화센터는 인도 정부, 중국문화센터는 중국 정부와 협의해 투자를 받아내어 설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