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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6 20:58:04

이진(1921)

<colbgcolor=#29176e><colcolor=#fff>
대한제국 고종의 손자
이진 | 李晋
파일:원손 이진.png
출생 1921년 8월 18일
도쿄부 도쿄시 토리이사카 별저
(現 도쿄도)
사망 1922년 5월 11일 (향년 0세)
경기도 경성부 덕수궁 석조전
(現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묘소 숭인원(崇仁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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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9176e><colcolor=#fff> 본관 전주 이씨
진(晋)
부모 부친 영친왕
모친 이방자
형제자매 남동생 이구(1931~2005)
}}}}}}}}} ||

1. 개요2. 생애3. 사후4.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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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제국 고종의 7남 영친왕 이은(의민황태자)과 이방자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다.

2. 생애

1921년 8월 18일에 태어났다. 생후 1주일이 지난 8월 25일순종에게서 이름 '진(晋)'을 하사받았다.## '나아갈 진(晋)'자로, '어떤 운명이나 역경 속에서도 밝고 행복하게 살라.'는 뜻이었다. 탄생 당시 아버지 이은이 이왕세자(李王世子)였으므로, 이진은 이왕세손(李王世孫)으로 불렸다.#

생후 8개월이던 1922년 4월순종황제를 뵈러 부모와 함께 조선에 갔다. 아직 도 안 된 아이를 데려가는 것에 대해 이방자와 그의 친정 식구들은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나 조선의 왕위[1]를 이을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좋다는 주변 의견에 따라 이은 부부는 이진을 같이 데리고 갔다.

조선에 도착한 이은 가족은 창덕궁에서 순종순정효황후에게 문안을 드리고 일정을 소화했지만, 머문 곳은 창덕궁이 아닌 덕수궁 석조전이었다.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인 5월 10일에도 이은 가족은 석조전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이진은 갑자기 얼굴이 파랗게 질리더니 초콜릿 색을 띤 덩어리를 계속 토해 냈다. 의사들이 계속 힘썼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 다음날인 5월 11일 새벽 3시 15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외가 #==
쇼와 22년(1947년) 직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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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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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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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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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라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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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후

원래 조선 풍습상 어린 아이가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장례를 치르지 않았고[2] 왕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순종이 특별히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배려해 주어 1922년 5월 17일 장례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궁중 의례에 따라 어머니 이방자는 장례식에 참석도, 입관하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다만, 생전에 이진이 입던 비단옷, 이방자가 직접 짠 털실 옷, 토끼 장난감 등을 이진의 관에 넣어 주는 것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장례 다음 날에 영친왕과 이방자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무덤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있는 숭인원으로, 할머니 순헌황귀비 엄씨가 묻힌 영휘원 옆에 있다.

당연하겠지만, 이진의 죽음은 이방자의 일생에서 가장 슬픈 순간이었으며 이방자는 평생 이진을 그리워했다. 흥선대원군의 형 흥완군의 현손녀 이남주의 회고에 따르면,[3] 1973년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변한 석조전에 이방자와 함께 피카소 그림을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이방자가 아주 담담하게 (어느 한 쪽을 가리키며) "저기 저 방에서 진이 죽었어."란 말을 했다고 한다. 이진 사후 5 ~ 60년이 지난 뒤였는데도 마음 한 켠에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방자가 1984년에 《경향신문》에 연재한 회고록 〈세월이여 왕조여〉에도 그런 마음이 절절히 녹아들어 있다.

남동생으로는 10살 터울의 이구가 있는데, 이구는 이진 사후 태어났기 때문에 두 사람이 생전에 만난 적은 없다. 이구는 광복 이후 영친왕의 권유에 따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이 후 쭉 일본과 미국에서 거주했다.[4] 2005년 향년 74세의 나이로 별세했으며, 이구가 후손 없이 사망함으로써 조선-대한제국 황가는 의친왕계로 이어지게 된다.

4. 음모론

사망 원인은 돌도 안 된 어린 아기가 장거리 여행을 하여 생긴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알려져 있으나[5], 독살이라는 음모론도 있다.

독살 주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한제국 황실의 대를 끊으려는 일본 강경파의 소행이라는 주장과, '왜놈의 피가 섞인 아이를 대한제국 황실의 후계자로 둘 수 없다.'라는 황실 내부의 소행이라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남아 있는 자료들에 따르면 이방자 여사는 황실 내부 소행설을 은근히 믿었던 듯하다. 1984년 6월 20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이방자 여사의 회고록 〈세월이여 왕조여〉에 따르면, 이방자는 이진이 죽은 직후 "내가 일본 여자라고 해서, 그래서 진이 일본인의 피를 받았다고 해서 죽어야 한다면 왜 나를 죽이지 않았던가."라며 통곡했다. 그 모습을 본 주변에서는 "그럴 리 없다. 누가 왕통을 노리고, 또 무슨 원수를 갚겠다고 그런 짓을 저지르겠느냐."며 위로했지만, 이방자는 "그렇지 않고서는 생후 7개월밖에 안 된 이진이 죽을 이유가 없다."면서 위로받을 때는 물론이고, 회고록을 연재하던 1980년대까지도 이진이 (황실 내 누군가에게) 독살당했다고 생각했다.

[1] 나라가 망한 뒤의 허울뿐인 이왕 직위였지만, 한때 일국의 군주였다는 상징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2] 단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만 이게 엄격하게 지켜졌고 아버지만 돌아가신 상태에서 어머니가 살아있는 경우에는 엄격하게 지켜지진 않았다.[3] 2014년 최봉림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소장과 한 인터뷰에서 회고.[4] 광복 이후 부모님과 함께 귀국하려 했지만, 이승만 정부의 반대로 귀국하지 못했고,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의 주선으로 1963년에 잠시 귀국했으나, 얼마 안 가 다시 일본으로 떠났다.[5] 의학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영아가 작은 병에도 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아직 돌도 안된 몸으로 일본에서 조선까지 먼 거리를 여행했으니 몸에 무리가 가도 이상할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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