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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던 前 야구선수 윤성환의 선수 경력에 대한 문서다.2. 아마추어 시절
부산상고 시절.[1]
감천초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2년, 야구부 유니폼을 입은 곽동훈이 멋있어 보여 야구를 시작했다. 본인 말로는 운동신경이 평범한 아이였고, 가정형편도 넉넉치 않았다고. 고교 입학 후 마운드에 오르기 시작해 1999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1년 후배 채태인과 함께 마운드를 지켰으나 이승호, 김상현, 이대수가 활약한 군산상고에 11 대 3으로 대패했다. 고교 시절에는 주로 벤치를 지키는 투수였다. 구속이 140km/h조차 되지 않았기에 3학년 때 프로에 지명받지 못했고, 이때 크게 좌절해 야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었으나 동의대 야구부의 김민호 감독이 "프로에 일찍 가는 것만이 좋은 게 아니다. 대학 4년 열심히 하면 더 좋은 조건으로 프로에 갈수 있다."며 손을 잡아줘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대학 시절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훈련에 매달리며 어떤 훈련이든 천 번씩 반복하는 지옥 훈련을 거쳤고, 그 결과 입학 당시 178cm에 70kg의 왜소한 체격이었으나 2학년에는 체중이 85kg으로 늘어났으며 구속도 145km/h까지 올라왔다. 턱걸이도 1학년 때는 2개밖에 못 했지만 매일같이 철봉에 매달리다 보니 4학년 때는 30개를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히 야구에 다시 재미를 느끼게 됐고 투수로서 기량도 많이 성장하면서 프로 팀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부산광역시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마친 만큼 프로 데뷔 전엔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었고, 본인도 드래프트에서 롯데의 지명을 받길 희망했었다. 대학 시절 팔꿈치 부상을 당해 재활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부상으로 인해 재활에 몰두하던 주형광을 우연히 만나 그를 선수생활의 롤 모델로 삼았다.
3. 삼성 라이온즈 시절
3.1. 2004 시즌
2004년 대학 졸업 후 입단 초창기 시절 |
3.2. 2007 시즌
2007년 4월 20일에 소집 해제된 후 바로 1군에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오른쪽 옆구리 부상이 생겨 치료를 받은 후 복귀했다. 6월 1군에 복귀한 후 주로 불펜에서 활약하면서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2007 시즌을 마친 후 선발 자원이 부족한 팀 사정에 따라 선발 투수로 전환하게 됐다.[3]3.3. 2008 시즌
2008년 시즌에는 전시즌 불펜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선발로 보직을 전환하여 배영수-외국인 선발 투수에 이은 3선발로 시즌을 출발했으며 결과 선발 8승을 거두는 등(구원승 2승을 추가해 총 10승을 거뒀다. 10승은 정현욱과 더불어 팀 내 최다승) 1선발급[4] 활약을 했다.3.4. 2009 시즌
2009년 시즌 14승 5패(완투승 2회)를 기록하며 다승왕에 올랐다. 시즌 초반에는 크루세타에게 밀려 2선발로 격하된 적도 있었으나 결국 14승을 기록하고 시즌 최초로 전 구단 상대로 승리, 2년 연속 10승을 달성하며 삼성의 1선발이 되었다. 2009년 9월 22일 시즌 마지막 선발 등판을 통해 승리를 할시 15승으로 단독 다승왕이 될 수 있었으나, 분위기를 타고 있던 SK에게 패배하며[5] 조정훈, 로페즈와 공동 다승왕을 수상하게 되었다.3.5. 2010 시즌
2010년 시즌 삼성 선발진의 한 축으로서 활약이 기대되었지만 어깨 부상, 왼쪽 무릎 건염 등으로 부진해 3승 6패에 그쳤고 2010년 한국시리즈에도 출전하지 못했다.3.6. 2011 시즌
2011 시즌 재활을 거치며 체중을 감량해, 다시 삼성의 선발진에 합류했다. 피안타는 다소 많았지만 피장타율을 줄이며 평균자책점도 3점대 중반으로 낮췄다. 그 결과 14승 5패을 기록하며 팀내 최다승 투수이자 개인통산 최다승 타이도 이뤘으며 [6] 정규시즌 이후 데뷔 첫 한국시리즈에 선발 등판했다.팀이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이기던 2011년 10월 29일, 인천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3⅓이닝 76투구수 4피안타 2볼넷 3탈삼진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하였다. 승패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팀은 이 날 8:4로 승리하였고 삼성은 3승 1패가 되었다. 그리고 이날 경기가 그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등판 경기가 되었다.
삼성 라이온즈가 2011년 한국시리즈 5차전을 승리하여 팀의 일원으로서는 처음으로 우승의 기쁨을 맛보았다. 2005년과 2006년에는 팀이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했지만, 그 때는 본인의 병역 때문에 멀리서 우승을 지켜보아야 했는데, 이 한을 푼 것이었다.
3.7. 2012 시즌
자세한 내용은 윤성환/선수 경력/2012년 문서 참고하십시오.2012년 초반에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득점 지원이 적었다. 6월 1일까지 득점지원 평균이 1.75점. 심지어 불펜진의 도움도 부족했는데, 단적인 예로 8월까지 오승환의 실점은 9실점뿐이지만, 이 중 7실점이 윤성환의 승리가 걸린 경기에서 나온 실점이다. 시즌 5번째 등판인 5월 8일 롯데전에서 8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첫 승리를 기록했는데, 이날 삼성 타자들이 낸 점수는 꼴랑 1점. 그리고 8월 16일 9이닝당 평균 득점 지원이 2.69점으로, 여전히 리그 꼴찌. # 링크된 기사에 따르면 퀄리티스타트 개수도 9개로 똑같고, 윤성환의 평균자책점이 더 낮지만 정작 승리수는 장원삼이 10승이나 더 많다. 게다가 용병 투수 미치 탈보트는 평균 득점지원이 7.05로 리그 1위를 기록 중이며, 평균 득점지원 2위는 배영수다. 그래서, 다른 때 같으면 윤석민상의 수상자로 하마평에 오르내릴 만 하지만, 류현진, 레다메스 리즈, 서재응 셋이서 윤석민상을 두고 다투는 지경인 데다 팀이 1위라는 특성 때문에 언급이 안 되고 있는 모양.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9승 6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1승만 더하면 1998년 현대 유니콘스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단일팀 10승투수 5명이 나올 수 있었으나 아쉽게도 10승에는 실패하였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 선발진 중 가장 낮은 방어율을 자랑하며 에이스의 면모를 확실히 보였다.
3.8. 2013 시즌
자세한 내용은 윤성환/선수 경력/2013년 문서 참고하십시오.장원삼과 배영수는 승수야 그렇다쳐도 평균자책점에서 작년에 미치지 못하였고 외국인 투수들까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올린 마당에 여전히 뛰어난 성적을 올리며 삼성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다만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거하게 털리며 하마터면 팀의 3년 연속 통합 우승 실패의 원흉이 될 뻔했다. 다행히 버퍼링하는 하마 한 마리가 일당백하며 위기를 넘겼지만.
3.9. 2014 시즌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취득해 4년 80억이라는 상상 초월의 대박 계약을 터뜨리며 팀에 잔류했다.
자세한 내용은 윤성환/선수 경력/2014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3.10. 2015 시즌
2015 시즌 막바지에 터진 도박사건에 연루되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 조사를 받게되는 등 충격을 주었다. 후에 일부 무혐의 판결 및 참고인 정지 처분을 받았다.[7]자세한 내용은 윤성환/선수 경력/2015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3.11. 2016 시즌
자세한 내용은 윤성환/선수 경력/2016년 문서 참고하십시오.3.12. 2017 시즌
자세한 내용은 윤성환/선수 경력/2017년 문서 참고하십시오.3.13. 2018 시즌
자세한 내용은 윤성환/선수 경력/2018년 문서 참고하십시오.3.14. 2019 시즌
FA 자격을 재취득하여 2019년 1월 29일 원소속팀 삼성과 1년 10억[8]에 계약을 맺으면서 잔류했다.# 계약기간으로 보아 현역 마지막 시즌이 될 가능성이 유력하였었는데, 올해 삼성 선발진 중에 가장 제 몫을 해줘서 앞으로는 1년씩 재계약으로 연명할 가능성이 커졌다.자세한 내용은 윤성환/선수 경력/2019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3.15. 2020 시즌
2월 4일 삼성 라이온즈와 2019년과 동일한 내용의 계약을 다시 맺었다.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프로야구 개막이 연기되면서 자체 청백전을 통한 윤성환의 기록은 14이닝 19안타 14실점(12자책), 평균자책점 7.71이었다. 사실상 올 시즌 5선발 역할을 해주어야하는데 아직까지 컨디션이 올라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아직까지도 컨디션이 올라오지 못한 것인지 4월 27일 롯데와의 연습경기에서도 3이닝 7피안타 3사사구 1피홈런 7실점 (7자책)으로 털렸다. 다만 2회에 2사까지 잡은 이후 본인 스스로 연속 사사구 이후 전준우에게 적시타를 허용 한 것도 문제였지만 이 상황에서 김동엽의 어이없는 실책성 플레이 이후 롯데의 중심타선을 상대할 때 계속해서 꼬이는 듯한 모습이 보이면서 대량 실점을 하게 된 부분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구위나 제구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향후 무관중 상태로 리그가 개막했을 때 5선발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 아직까지도 미지수인 상태이다.
결국 개막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선발진에 구멍이 나면 땜빵으로 투입하기 위해 대기시킨 듯하다. 만약 이번에도 그렇게 대체선발로 투입돼서 호투한다면 다시 선발 로테이션에 자리잡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백정현이 부진+종아리 통증으로 말소됨에 따라 5월 16일 수원 kt전에 대체선발로 등판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리고 5월 16일 진짜로 수원 kt전에 선발로 나왔으나 1회부터 상대팀 1~5번타자를 모두 출루시키며 4실점, 2회에 추가 2실점하면서 총 6점을 실점, 2이닝 6실점 방어율 27.00을 기록하고 내려갔다. 최고 구속이 135대에서 형성되었고, 120 후반의 공은 변화구가 아니라 직구였다.
삼성팬들은 KBO 통산 다승 8위이자 1900이닝 달성을 앞둔 윤성환이 이제 은퇴할 시기가 왔다며 슬퍼하고 있다. 이 시즌에 풀타임 선발로 활약한다면 통산 다승 140승 돌파[9]와 2000이닝도 가능했을 것이라 더욱 아쉬운 상황이다. 현재까지 통산 이닝이 1898⅓이닝인데, 순위가 거의 결정된 후 후반기에 적당히 한 경기를 골라 은퇴경기로 남은 1⅔이닝을 채울 수 있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2군에서도 깨졌다. 진짜 올해 저 경기 말고는 못 볼 수도 있다.
6월 25일 2군 한화전에서 오랜만에 얼굴을 보였다. 5이닝 7피안타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으로 1승을 획득했다. 경기 기록은 준수하나, 문제는 그 1승이 2군에서 간신히 따낸 것이다.
이후 백정현이 오른팔 염좌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고, 한번 더 기회를 받을 예정이다.
8월 2일 키움전에서 선발 등판한다.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인데 리그에서도 타격으로 손꼽히는 키움 타선을 만나는만큼 지난 경기력대로라면 더욱 힘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5이닝 64구 무실점으로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삼성 선발진의 희망으로 급부상했다. 1900이닝 달성은 덤. 특히 지난 이틀간 32점을 낸데다 러셀까지 있는 키움 타선을 상대로 낸 기록이라 더 빛난다. ERA는 7.71로 내려갔다. 아쉽게도 승리는 우규민이 쌓은 승계주자를 후발투수가 분식해서 N/D. 이날 경기는 삼성 7월 초까지 철벽불펜 핵심인원인 최-우-오 트리오가 모두 실점하며 졌다.
8월 8일에 등판해 5이닝 4실점(2자책점) 3피안타 3볼넷으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3루수 김호재의 실책과 삼성의 한심한 주루사들[10], SK의 호수비들로 인해 패배를 기록하게 되었다. 시즌 2패째이고 ERA는 6.00으로 떨어졌다. 이날도 구속은 130km 전후로 느렸고, 불안한 피칭을 했지만 위기관리가 좋았다.
8월 15일 대전 한화전에서 등판해 5이닝 무실점 3피안타 3볼넷으로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불펜진에게 넘겼다. 반대로 이번에는 내야진과 포수 김도환이 상대팀의 주자를 두번이나 주루사시키며 도왔다. 상대 채드벨도 호투를 펼치면서 승리투수를 가져오지 못한게 아쉽다만, 어쨌든 9회초 김동엽의 투런포로 팀은 승리했다. ERA는 4.24로 떨어졌다.
8월 21일 문학 SK전에 선발로 등판했으나 직구 구속이 126~131km 사이에 형성되면서 제구도 되지 않으면서 1.2이닝 2피안타 5사사구 4자책으로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이고 강판되었다. 특히나 1회부터 몸에 맞는 공을 두개나 내주며 극도로 부진했다. 팀 타선이 동점을 만들며 패전은 면했다. 그리고 선수생활 마지막 등판이 되었다.
이후 한번 쉬었다 간다는 허삼영 감독의 말과 함께 1군에서 말소되었으나 1군과 퓨처스 어느 곳에서도 등판하지 않은채로 시즌을 마쳤다. 삼성이 9월에 불펜데이를 가동할 정도로 선발진 부족의 문제를 심각하게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용 선발자원인 윤성환이 부상, 은퇴 등의 소식조차 없이 공식 경기에 등판하지 않는 점이 의아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시즌 말미까지도 윤성환의 거취는 오리무중이다. 10월 22일에 은퇴한다는 의사를 전했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이내 정해진 것이 없다는 반박하는 기사가 나왔으며, 최종전이 열리는 날까지도 입장이 밝혀지지 않은 것은 물론 권오준의 은퇴식마저도 참석하지 않아 팬들의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2021년 6월에 하술할 승부조작 혐의가 밝혀졌을 당시 기사에서 홍준학 단장이 언급한 바에 의하면 9월부터 연락이 거의 안 됐다고 한다. 2군 훈련에도 참가하지 않아서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아 전력 외로 간주하고 방출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며 방출 통보를 문자를 날리자 그제서야 전화가 왔다고 한다. 홍준학 단장의 발언으로 추청해보건데, 현역 마지막 경기 이후 팀 훈련에도 참가하지 않고 연락도 끊고 잠적한 것으로 보인다. #
3.15.1. 방출과 이후
뜬금없이 11월 16일 새벽 모 사이트에 그날 아침에 나갈 스포츠서울의 기사 내용이 유출되었는데, 신문 1면의 내용이 "삼성의 한 30대 프랜차이즈 선수가 도박으로 인해 100억대 빚이 생겼으며, 현재 지인들도 행방을 모르는 상태"라고 한다. 실명이나 이니셜이 거론되지는 않았으나 삼성의 30대 프랜차이즈 선수는 한 손에 꼽히는데다, 윤성환은 여름 이후 1군에서 내려간 뒤 구단에게 시즌 후 그 어떤 말도 없이 잠적했고 기사로도 행방불명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기에 수많은 야구팬들은 이 선수를 윤성환으로 추측하는 중이다. 해당 지면에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2015년 사건 당시 사법 보류 과정을 몸소 느꼈기에 잠적만이 답이라고 생각한 듯하다고 한다.#[11] 해당 기사에 나온 왼손투수 B는 오상민으로 추측된다. 2000년대 초반 왼손, 도박으로 인한 물의까지 잘 들어맞는다.이후 윤성환은 위 설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경찰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기사가 나왔다.# 윤성환 본인은 빚이 일부 있다는 사실은 시인했으나 도박과 폭력배 등의 일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하고 있으며, 잠적에 대한 것은 "통화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 연락을 피했다"라며 오히려 시즌 중반에는 윤성환 측에서 삼성에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한편 삼성 라이온즈 구단은 이와 관련하여 오전 10시경 사실 관계를 파악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으나, # 10시 경 윤성환을 자유계약선수로 방출했다. # # # # 구단 측은 도박 문제가 아닌 원래 예정된 일이라는 주장이지만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이자 책임 회피라는 평이 많다. 소속 선수가 결백을 주장함에도 방출을 함으로써 사실상 강제 은퇴를 시켜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윤성환의 도박 혐의가 오보로 밝혀졌던 상황에서 삼성 프런트의 대처는 성급한 것으로 여겨져 삼성 프런트는 당시에 큰 비판을 받았었다.
이후 서울신문이 서울지방경찰청, 경북지방경찰청, 대구지방경찰청 광수대에 문의한 결과 모두 "그런 사실은 모른다"고 답했다.# 또한 윤성환의 도박 사건을 보도했던 장강훈이 본인들의 보도 내용을 반박하는 윤성환의 인터뷰를 직접 실으며 본인들의 기사가 오보임을 사실상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의 직접적인 사과나 정정 보도가 없어 야구 팬들의 원성을 사던 중, 미디어오늘을 통해 오보와 관련된 스포츠서울의 기자 및 부장의 갈등 내역 및 오보 보도 과정이 기사화되었다. # 보도국장이 외부 정보원에게 들은 정보를 경찰 후배에게 들은 정보라며 기자들에게 알리며 취재를 요청하여 보도가 나갔다는 것. 또한 해당 보도를 내보낸 기자들의 정정 요청도 상부에서 묵살했다고 하나 구체적인 사실은 더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
결과적으로 스포츠서울은 최소한의 사실 검증조차 없이 한 선수의 개인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보도를 하였으며, 이로 인해 윤성환은 은퇴식은커녕 구단으로부터 최소한의 예우도 받지 못한 채 은퇴하게 되었다. 또한 삼성도 구단을 위해 20년 가까이 헌신한 최다승 프랜차이즈 선수의 개인사에 대해 최소한의 검증도 없이 묻지마 방출을 결정하는 도의에 어긋난 짓을 저질렀다. 윤성환의 경우 이 과정을 통해 3억 원을 갚지 않아 사기 피소를 당했다는 내용이 공개되었는데#, 본인은 여기에 대해 "아는 후배에게 사기를 당해 피해자가 생겼다. 경찰 조사는 이미 받았고, 해명할 수 있는 부분은 해명했다. 담당 형사도 내가 피해자라는 것에 공감하셨는지 따로 준비하라고 말씀하신 증거자료도 준비했다. 피해액은 변제할 수 있다. 이 사건도 잘 해결될 것"이라는 해명을 하여 추후 경과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야구부장의 크보 핵인싸'에 따르면 삼성 구단 측에서는 윤성환의 채무 사건이 잘 마무리된다면 윤성환의 은퇴식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 팬들의 입장 역시 은퇴식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이다. 구단 역사상 가장 최전성기, 왕조를 이끌고 암흑기를 지탱하기까지 해줬던 1선발 에이스를 이렇게 보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했다. 당연히 위처럼 사건이 잘 마무리되기를 바란다는 얘기도 많았다.
그렇게 윤성환은 구단의 잘못된 태도와 언론의 오보로 억울하게 방출당한 비운의 레전드로 남는가 했지만, 이듬해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12]
[1] 20여 년 전에도 한결같은 특유의 짜증난 표정이 인상적이다.[2] 팀 선배 지승민에게서 브로커를 소개받았으나, 병역기피를 시도하기 전에 해당 사건이 터지면서 처벌은 피했다.[3] 2007년 12승을 따낸 외국인 투수 제이미 브라운과는 재계약을 포기했고, 배영수는 토미 존 서저리를 받고 재활, 전병호는 노쇠화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고, 임동규는 군 입대, 임창용은 일본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을 한 상황.[4] 2008년 삼성이니 가능한 이야기.[5] 당시 통증이 있었지만 다승왕 욕심에 이를 숨기고 선발등판을 했으나 1회에 엄청 털려서 바로 강판당했다. 또 그때 경기를 지면 삼성은 포스트시즌 진출 탈락이 확정이 되는 것이었는데 져버리면서 결국 확정되었다[6] 2015년 17승으로 개인 최다승 기록을 경신했다.[7] 그런데 이 사건을 수사하다 더 큰 사건이 발견되고 도박의혹이 생긴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당했다. 결국 어쩌다 열사(?)가 되었다.[8] 연봉 4억, 인센티브 6억[9] 2020 시즌 기준 6위 배영수 (138승), 7위 김광현 (136승) 과 승수 격차가 별로 나지 않았다.[10] 5이닝동안 무려 3주루사를 기록했다[11] 기사 작성자가 장강훈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12] 결국 장강훈 본인조차도 도박 기사에 대해 오보라고 인정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장강훈의 기사 내용이 들어맞은 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