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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5 00:19:47

유희열/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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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장훈

김장훈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여친을 사귀고자 했던 유희열을 소개팅[1]으로 낚아 "한국사람"이라는 인디밴드의 키보디스트로 활동시킨다. 즉, 여자 소개시켜준다고 했던 자리에 여자 대신 긴 머리를 하고 나와 있었다(...) 이후 연습 과정에서 김장훈이 유희열을 감금하기도 하는 남고생 감금사건(?)이 자행 되었다고.[2]

그렇다고 유희열이 당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서 한손으로 하기 싫은 티 팍팍 내며 공연을 하거나 공연 직전에 잠적하기도 했다고 한다. 약속시간에 늦는 게 잦아 다른 밴드 인원들이 그동안 당구실력이 100이 넘게 늘었다고. 이때 유희열은 "형, 난 리베로야"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어쨌든 친하긴 친하다. 김장훈이 잠적하는 등 여러 기행을 벌일 때 관련자들이 유희열의 집에 전화를 걸며 김장훈 어딨냐고 묻기도 했을 정도로.

1996년 3집으로 가수로서의 입지가 다져지기 전에 "유희열의 음악도시"의 출연을 통해 어느 정도 인지도를 알렸다. 유희열의 추천을 통해 김장훈의 게스트 출연이 성립되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완전 고정이 아닌 방송 반응에 따라 앞으로의 거취가 결정될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당시 김장훈의 매니저가 "형, 우리 잘 해야해!" 했었다고. 다행히 반응은 좋았고 고정이 되어 마지막 방송에까지 출연했다. 지금도 라디오에 두 사람이 출연하면 당시의 이야기를 할 정도로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았다.

라디오 방송에서 서로에게 섹드립을 수시로 날리는데, 이 강도가 보편적인 성적 취향을 가지지 않은 것이 아닌가(...)라며 주변사람이 의심을 가질 정도. 심지어 유희열이 장가간 이후에도 이러한 시선은 지속된다.

또한 이후 가수 김장훈은 1998년에 발매된 자신의 4집에서 대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인기 가수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그의 대표적 히트곡인 '나와 같다면',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가 4집 수록곡이다.

유희열이 만든 김장훈의 히트곡은 난 남자다가 있다. 정확히는 김장훈 유희열 공동 작사, 유희열 작곡. 김장훈이 밝힌 바에 따르면 난 남자다를 작사할 당시 유희열과 밤을 새며 솔로의 이야기를 써가기 위해 노력했다고.

2. 이승환

이승환과는 서로가 서로의 과거를 폭로하는 사이. 유희열은 이승환의 배만 볼록 나온 아기몸매, 탈모[3], 여자에게 잘 보이려드는 행동 등을 폭로한 바 있다. 이승환 역시 그런 유희열에게 지지 않고 그의 해군홍보단 시절의 모습과 그의 음악활동, 마찬가지로 여자에게 보이는 행동 등을 폭로한 바 있다. 해상병 362기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기도 하는 사이. 유희열은 자기의 어린 시절 어두운쪽 방면으로 자신을 끌어들인 인물로 이승환을 꼽은 적이 있고, 이승환은 어린왕자라 불리는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의 원인을 따져보면 유희열이 기저에 깔려 있다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왜 내가 유희열을 망쳐놨다고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다면서 항변. 재밌는 점은 이러한 말이 나온 원인이 함께 유흥문화를 보냈기 때문[4]인데 당시 이승환은 여자에게 이상하게 인기가 있는 유희열에게 질투를 느낀 적이 있다고. 정작 유희열은 이승환이 아닌 신성우장호일에게 질투를 느꼈다.

앞선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친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방송에 나와 하는 것. 애초에 이승환이 전국투어를 할 당시 키보디스트로 유희열이 참여한 바 있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 당시 유희열은 천일동안을 부르는 이승환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실제로 드림팩토리 전신인 우리기획 시절부터 두 사람의 인연은 이어져 왔고, 드림팩토리에서 나온 이후에도 해당 사이트엔 유희열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유희열은 이승환이 1995년에 발표한 4집 <Human>에 수록된 "변해가는 그대"라는 곡을 필두로 이승환의 5집, 6집, 7집까지 참여했다. 이승환의 음악적 전성기를 함께한 프로듀서라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5] 이후 유희열과 음악적 성향이 달라지면서 함께 작업을 하지 않게 되는데, 이를 두고 이승환은 "음악이 많이 달라진거죠. 희열이 같은 경우는 처음엔 나랑 같이 많이 했지만 태호 (오태호) 랑 그랬듯이 이제 서로 음악들이 많이 달라져서 자연스레 같이 안하게 된거고..."[6] 라 말했다. 이승환은 점점 가볍게 가고 싶었던 반면, 유희열은 점점 무거운 음악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승환은 5집 앨범 Thanks to에서 유희열을 "늘 자신을 놀래키고 분발케 하는" 두 명 중 한 명으로 꼽고 있다.

이승환 역시 토이 앨범에 "애주가", "좋은 사람 Sad Story" 이 두 곡으로 참여한 바 있다. 재밌는 점은 이승환이라는 이름이 아닌 이철민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는 점인데, 이승환이 '이소라의 음악도시'에 나와 밝혔던 바에 따르자면 어린 시절 자기가 동경했던 이름이라고. 하지만 목소리만 들으면 누군지 다 안다.

지금 오덕으로 유명한 이승환이지만, 이것이 유명하게 된 최초의 계기는 주변 인물들에게 다양한 물품을 선물했던 것. 실제로 자신의 라이브투어에 참여해 준 사람들에게 아직 국내에 플레이스테이션이 정발되지 않은 시절 선물했었다.

이러한 영향인지 유희열은 자기 앨범에 참여해 준 아티스트에게 선물을 하는 걸로 유명한데, 예를 들어 2007년 당시 윤하는 메이커 가방을 선물받았는데 정작 성시경은 벨트 선물받았다 한다(...) 물론 성시경의 체격이 워낙 커서 그것도 벨트 두 개 이어붙인 거라고 한다(...)

3. 정석원

본격_선배_디스_방송.mp3

유희열을 소위 말하는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리는 것에 엄청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일단 유희열이 아직 민간인이 되기 직전의 신분에서 이장우의 솔로 데뷔 앨범에 참여하게 된 것 부터 시작해서 그리고 유희열은 이후로 내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고 농을 쳤다. 이승환, 윤종신 등의 앨범에 참여하게 된 것도 정석원의 역할이 크다. 정석원은 당시 이승환에게 잘 하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만나보지 않겠냐면서 주선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의 결과는 이승환의 4집 앨범에 변해가는 그대, 부기우기[7] 이 두 곡을 선사하면서 등장.

유희열은 본인이 진행했던 라디오천국에서 토이도 015B의 객원보컬제를 영향받아서 도입했다고 인증했다. 또한 정석원에 대한 존경심을 방송에서도 자주 표한다. 그런데 정작 두 사람은 안 친하다고한다. 유희열은 존경, 그러나 정석원은 어색하다라는 말이다.

유희열은 The Sixth Sense에서 메인테마를 작곡하기도 했다.

공일오비 6집 앨범 재킷의 Thanks to 목록에서는 유희열을 언급하며 "넌 곧 가요계의 법이 될 것이다"라고 적기도 했다.

4. 윤종신

파일:external/img.sbs.co.kr/30000192596_700.jpg

유희열이 다수 참여한 윤종신의 5집 '우()'는 윤종신 음악 인생의 전반기를 대표하는 앨범. 윤종신 음악 커리어의 최고 앨범을 꼽을 때 늘 1,2위를 다툰다.[8]

윤종신은 당시 유희열에게서 천재끼를 보았는데 너무 칭찬해주면 거만해질까봐 앞에선 "어 그래 잘하고 있어 더 해봐"라고 데면데면하게 반응하고 안 듣는 곳에서 정석원과 "쟤 진짜 천재야"하면서 놀라곤 했다고 한다. 이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윤종신의 대표곡 중 하나인 '환생'도 "희열아 슈가팝 하나 써봐"라고 툭 던지자 건반을 두드리며 만든 곡이라고 한다. 유희열이 천재인 걸 유희열만 몰랐을 때 적절하게 잘 이용했다며, 한국 음악 명반 100선에서 토이 앨범보다 자신의 5집이 더 높은 순위에 있다는 게 그 증거라고 우쭐(?)댔다. 역시 음악노예 1호(...)

앞선 김장훈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유희열과 윤종신이 모이면 김장훈을 씹는다. 우선, "해방 직후에 흡연하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며 나이드립을 친다.[9] 심지어 과거 소속사를 자주 옮기는 것을 두고 철새(...)라고 놀려댔다. [10] 또한 굶고도 지금의 키라며 많이 먹었으면 압둘자바처럼 되었을 거라는 둥 키로도 놀린다.

그러다가 유희열과 김장훈이 모이면 윤종신을 씹는다. 2008년 벌어졌던 윤종신이 회와 매정관련 망언(...), 영계백숙 유료 배포 사건 등으로 한창 까일 때 유희열과 김장훈 두 사람이 라디오에서 수시로 언급했다. "라디오 천국 윤종신 이대로 좋은가"라는 컨셉으로 방송을 하기도 했고, 심지어 고등학생 때 단체로 플라멩고 춘 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수소문했고 사실로 밝혀지자 한동안 라디오에서 다음 앨범의 타이틀 이름은 플라멩고라며 놀려먹었다.

반대로 김장훈과 윤종신이 모이면 유희열을 씹는다. 나보다 마른 사람은 처음봤다느니, 마른 이유가 기생충 때문이라느니, 여자를 밝힌다느니, 자기 곡은 쉬운걸로 발표하면서 다른사람이 부탁해서 준 곡은 되게 어렵게 만들어서 준다느니 이마의 핏줄이 어떻다느니...

즉, 세 사람은 매우 친하다.(?!) 이는 과거 음악도시, 정확하게 말하자면 김장훈이 3집으로 재도약하기 위해 포장마차에서의 만남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으로 지금이야 윤종신이 각종 예능 등에서 MC로 맹활약하고 있지만 과거 인지도가 비슷비슷할 때는 노총각4인방 컨셉 외에, 이 세사람의 앙숙 컨셉도 적잖이 유명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실제로 음악도시에서 유희열 주관하에 두사람의 대결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가끔 김장훈이 라디오에서 빙고드립을 치는데 그게 이걸 뜻한다.

윤상과 3인방이 엮이기도 하는데, 1박 2일에서 윤종신과 유희열에 따르면 윤상의 리즈시절은 "문민정부 전"이었다느니, 헤어스타일이 김병지 선수 닮았다느니(...), 반대로 유희열에 따르면 윤종신을 처음 봤을 때 "알 밴 시샤모"라느니(...), 반대로 유희열을 처음봤을 때 "과연 저 친구가 피아노 건반을 눌렀을 때 피아노 건반이 들어갈 수 있을까(...)"라며 놀리기도 했다.

유희열이 한참 7년 동안(...) 음반작업을 하고 있을 때, 2시의 데이트를 진행하던 윤종신의 각종 사건 사고로 대타DJ를 맡기도 했다. 장 수술과 관련한 문제로 두 번, 신혼여행으로 한 번. 야행성인 유희열이 2시에 생방송으로 라디오를 진행하다보니 몽롱해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서로를 놀리는 관계지만 필요할 땐 도와주고 도움 받는 친구같은 관계. 2012년 12월 발매된 월간 윤종신 2012년 12월호 'Merry Christmas Only You'는 다름아닌 유희열 작곡이다. 중간에 깨알같은 유희열의 나레이션은 덤(...) 그리고 깨알같이 2013년에 서로 데모로 디스한다(...)

이보다 앞선 월간 윤종신 2012년 10월호 '나쁜'은 윤상 작곡인데 윤상이 곡을 제때 내놓지 않아 작업이 엎어질 뻔하기도 했다. 그래서 스튜디오에서 급하게 편곡을 하는데 마침 옆 스튜디오에 있던 유희열이 편곡에 도움을 주고 참견을 하다하다 못해 키보드까지 직접 치고 갔다. 곡 마지막에 "미안해"라고 찌질하게읊조리는 부분 역시 유희열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월간 윤종신 2015년 10월호 '기억의 주인'의 편곡에도 참여. 윤종신 작사작곡에 유희열과 박인영 공동 편곡이다.

여담으로 윤종신이 있던 술자리에 합류했던 유희열이 처음으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고 한다.

5. 정재형

정재형의 경우 함께 안테나뮤직에 소속된 아티스트로 양자모두 키보드로 포지션이 겹친다. 심지어 박새별까지 키보드를 주로 사용하는지라 안테나 뮤직 워리어즈의 경우 키보디스트가 세명인 상황.[11]

다만 정재형의 섬세한 터치만큼은 모두가 인정한다. 다만 루시드폴의 <세계음악기행> 중 안테나뮤직워리어즈가 게스트로 나왔을 때 밝힌 바에 따르면 공연때 많이 틀린다고. 참고로 해당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는 서로가 노래를 못한다며 까고 있다. 정재형에게는 콧소리가 많다고, 유희열에게는 그게 노래냐고(...), 루시드폴에게는 노래인지 시낭송인지 모르겠다며 까고 있다.

라디오나 TV 등의 방송에서 화려하고 정확한 유희열의 언변에 정재형이 먹히는 분위기였으나, 무한도전 출연 이후 정재형의 인지도가 급격히 상승하며, 방송상에서의 입지도 더욱 굳건해진 듯.[12]

6. 신해철

신해철과는 애증(?)이 겹친다. 유희열이 "신해철의 음악도시"의 후임DJ로 활동한 초창기, 기존의 팬덤으로부터 많은 압박을 받아 적잖은 마음 고생을 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13] 물론 이후 명실상부한 2대 음악도시 시장으로 활동했다.

신해철의 경우 그런 유희열에게 바치는 노래로 넥스트의 싱글 "희열, 나 여기 있어나 너 때문에 섰어(Here I stand for you)"를 발표했다는 드립을 친다.[14] 본인들도 이 음악을 라디오에서 틀 때마다 이 드립을 수시로 날린다.[15]

그리고 유희열은 그런 신해철을 "마지막 로맨티스트"의 보컬로 토이 앨범에 참여시켰다. 국내 가요 역사상 가장 느끼하다고 평가받는 곡 가운데 하나로, [16] 신해철은 이 노래를 부르며 '얘도 제 정신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하며 유희열은 초반부 신음소리에 가까운 애드립을 넣는 신해철을 보며 '역시(?) 신해철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참고로 곡의 마무리에 반주가 끝나고 "됐냐?"라는 신해철의 물음에 "예"라고 답하는 유희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문닫는 소리로 음악이 끝이 나는데 볼륨을 높일 경우 신해철이 나지막하게 내뱉는 '미친 놈'(…)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7집 Da Capo의 마지막 트랙 '취한 밤'은 앨범 완성 후이자 신해철 사후 만들어진 곡이다. 포토그래퍼와 앨범에 쓰일 사진에 대해 논의하다가 신해철의 부고를 듣고, 다 필요없다며 엎어버리고, 술에 만취하고는 집에 돌아와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직업이 잔인하게 느껴지는 게, (신)해철이 형은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그 감정으로 곡을 쓰더라"면서 "참 그 형 답더라. 과거에 나를 라디오 <음악도시>로 불러준 형이었는데 가는 상황에서도 내게 곡을 한 곡 주고 갔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

7. 윤상

이 동영상 하나로 설명된다.


본인 데뷔 전부터 팬이었으며, '내가 데뷔하고 유명해지면 윤상하고 친해지는게 꿈이었다'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윤상 오덕' '윤상은 옛날 노래 외모 다 안 촌스럽다' '예전에 갈기머리 하고 노래하는 게 너무 멋있어서 한번 저 품에 안겨보고 싶었다(!)' 등의 발언으로 여러번 빠심(?) 을 인증한 바 있다. 한때 자기 음악색이 뭔지 고민하던 때 윤상이 "색이 없는 것도 네 색이야" 란 말에 용기백배 했다고. 그의 그림책 '익숙한 그 집 앞'의 첨부 앨범에는 대놓고 윤상의 오마주로 만든 트랙이 있으며, 소품집 '여름날'의 셀프타이틀 트랙의 '너의 꿈은 아직도 어른이 되는 걸까'라는 노랫말은 윤상 3집의 명곡 '문득 친구에게'에서 따온 것이다.

윤상의 보컬도 매우 좋아해 토이 앨범 등에 자주 객원보컬로 초대한다.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자주 부르고, 윤상 노래도 자주 틀어주며 윤상 찬양모드로 간다 (...). 얘기를 들으면 둘 다 결혼 전에는 서로 집에도 자주 놀러 다녔던 모양.

둘이 안 맞을 것 같은데 죽이 잘 맞는지, 유희열이 오만가지 개드립을 시전하거나 짓궂은 장난을 걸어도 다른 사람 같으면 당황하거나 부끄러워 할 윤상이 그걸 또 맞장구치면서 다 받아준다 (...)

특히 윤종신과 더불어서는 세 사람은 1박 2일에 출연한 바 있는데, 세 사람이 서로 폭풍디스하는 부분이 백미(...)

99년 음악도시 시절에 앗!윤상이다. 코너를 들어보면 지금보다 더 날이선 윤상의 과감하고 독기어린 멘션들을 들을수있는데 유희열은 찬양과 함께 그런 멘션들을 잘 말아주는 모습을 들을수있다.

8. 그 외의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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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희열은 이미 고등학생때 피아노 천재라고 지역 내에 소문이 났었기에, 소문을 들은 김장훈이 연주자를 시키고 싶어 했던 것이다. 한편 유희열의 친구의 친누나와 김장훈이 아는 사이였다고 하는데, 정확히 어떻게 알게 된 인연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 친구 누나를 이용해서 여학생을 소개시켜준다고 속이게 했다고 한다.[2] 유희열이 말하길.. 김장훈의 연습 방식이 너무 싫어서(1주일 내내 1곡만 가지고 연습했다고 한다.) 탈출할 생각을 했는데 김장훈이 그걸 눈치채고 감금시켰다고.(...)[3] 탈모치료 과정에서 이승환은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 자기가 먹던 건강식품의 사장이 뉴스를 탔던 것. 하지만 당시에 이승환은 이 뉴스를 보고 그럴리가 없다고 부정했다고 한다.(...)[4] 본인들의 설명으로는 한창 재밌게 놀 시절(1995년으로 추정되는 시기)로 말하는데 당시 신성우, 장호일과 윤종신, 이승환, 유희열, 정석원 이렇게 놀았다고 한다. 참고로 이승환의 회상에 따르면 음악하는 사람들끼리 클럽에 갈 때 윤종신과 이승환이 끼어들면 그 날은 허당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5] 5,6,7집의 타이틀 곡이 모두 유희열과의 공동 작곡이었다. 다만 5집의 두번째 후속이었던 애원은 그놈의 뮤직비디오 귀신 사건 때문에...[6] http://cafe.naver.com/musicy/325[7] 지누(당시에는 최진우, 유희열과 군동기라고.)랑 공동 작사/작곡, 두 사람은 이 곡을 장난삼아 만들었는데 이승환이 엄청 좋아했다고, 그래서 결국 Human에 수록되었다.[8] 후반기는 10집 Behind The Smile[9] 김장훈은 지금은 63년생이 정설로 굳어진데다가 본인도 2023년에 자신이 환갑이 되었다고 언급하고 기사까지 날 정도이지만, 그전에도 공식 나이인 67년생이 진짜가 아니란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무릎팍도사는 당시 보조MC인 유세윤이 게스트의 프로필을 읊으며 "올해 나이 ~~!!"했는데, 유독 김장훈 출연편에선 "올해 나이 마흔하나! 방송용! 마흔하나! 마흔하나가 어떻게 방송용입니까?! 무슨 20대도 아니고 마흔하나를 방송용으로 할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개그를 쳤다. 김장훈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팬이면 누구나 저게 진짜 나이란게 아니란 건 알고 있던 시절이라 친한 동생들이 관련 드립을 칠 수 있었던 것.[10] 당시 연예계는 소속사가 연예인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분위기이며, 소속사를 옮기려 할 경우 해당 연예인의 루머를 퍼뜨리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잦았다. 특히나 노예계약 등 많은 연예인에게 불리한 경우가 많았다고. 당시 김장훈 성격이 상당히 좋지 않아서 소속사들이 반쯤 포기한채 방출한 사례로도 볼 수 있다.[11] 기타와 베이스는 페퍼톤스의 신재평, 이장원이 맡고 있고, 드럼은 페퍼톤스에서 드럼을 연주하는 신승규가 안테나 공연이 있을때마다 연주한다.[12] 음악적인 면이 아닌, 방송에서의 컨셉과 태도면에서[13] 재밌는 점은 유희열 이후 3대 음악도시 DJ로 활동한 이소라의 경우, 신해철에서 유희열로 이어지는 승계(?)과정 이상으로 기존 라디오 팬들로부터 많은 마음고생을 했었다는 점.[14] 토이 7집 Da Capo의 Special Thanks에서 "here i stand for you 해철이형, R.I.P."이라고 적어두기도 하였다.[15] 이 노래 녹음때문에 신해철이 3박 4일간 DJ자리를 비우자 대타 를 친히 맡아주기도 했다. 참고로 유희열은 당시 음악도시 수요일 게스트였다.[16] 대중음악 평론가로 활동했던 이종현이 언급[17] 2024년 현재 김동률의 최근 TV 출연은 2011년말 유스케였다. 게다가 존박김동률이 TV에 내비치는 것을 꺼린다고 말한 바 있다.[18] 타이틀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곡의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6:08) 하림 작곡, 윤종신 작사의 You Mean Everything To Me로 바뀌었다.[19] 실제 최저음, 최고음이 다 쓰인 것은 아니다. 아말아것의 최저음은 1옥타브 파(F3), 박정현의 최저음은 1옥타브 도#(C#3)고 아말아것의 최고음은 3옥타브 파(F5), 박정현의 최고음은 3옥타브 라(A5)이며 아말아것의 가성 최고음은 3옥타브 라(A5), 박정현의 가성 최고음은 4옥타브 파#(F#6)이다.[20] 남아있는 영상은 수요예술무대(2000), 유희열의 스케치북(2009)이 있다. 콘서트에선 아주 드물게 선곡되는데, 가장 최근은 2014년 <SYNCROFUSION>으로 14회간 불렀다. 전국투어 마지막 콘서트에서 열광하는 관객들을 향해 "이 곡 또 안 부를까봐요?!"라는 말을 남겼고 그 후 아직까진 또 선곡되진 않았다.[21] 참고로 유희열과 윤도현 모두 1994년에 데뷔했다고 한다.[22] 참고로 앞 부분 허밍 코러스는 조규찬이 담당했고, "아직도 생각나요~" 이 부분은 이적이 피처링했다.-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이 곡이 발표된 당시 별밤지기였던 이적이 본인의 방송에서 틀면서 소개한 바에 따르면 "앞부분 아직도 생각나요~ 이 부분을 내가 했다고 알고들 계신듯 한데, 이 부분은 조규찬씨가 불렀다"고 직접 정정한 바 있다.[23] 사실 정승환과 이진아 이 두 사람은 경연 내내 엄청난 화제를 몰고 다녀 프로그램의 흥행을 이끌다시피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종영후 스페셜 편의 말미에 제작진들이 시즌3부터 우승자에게만 주어지는 특전인 본인이 소속될 기획사의 즉시 선택권을 예외적으로 이 둘에게도 주고 선택을 받은 기획사의 의향과 일치할 경우 그 기획사에 들어갈 수 있도록 주선했다. 그 때 둘 다 안테나 뮤직를 선택했고 사측도 내부 논의를 통해 이를 수락해 영입되었다.[24] 사실 결승 경연 및 특별 무대 종료 후 우승자 발표직전까진 심사위원 점수에서 다소 앞섰던 안예은(준우승자)의 우승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았다. 그녀가 거의 대부분의 경연을 자작곡으로 치렀고 그 곡들이 자신만의 색깔과 개성이 짙게 배어있다는 평가를 받았음을 감안하면 그녀가 우승할 경우 십중팔구 안테나 뮤직행이 예상되었다.[25] 이수정은 본인이 학업의 마무리를 희망했고 유희열도 이를 수락해 학업 종료 후 합류할 예정이다.[26] 정확히는 박진영의 솔로데뷔년도(1994) 기준이다. 박진영은 1992년도 '박진영과 신세대'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바 있으나 대중들이 기억할 정도의 활동은 남기지 못했다.[27] 이러한 이유에는 유희열과 박진영 둘 다 이전 동아기획 출신 아티스트였어서 그런지 그 회사에서 연습생으로서의 데뷔를 준비하던 시기가 서로 겹치면서 친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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