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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의 샬럿 공녀(1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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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0F8FF><colcolor=#000000> 웨일스의 샬럿 공녀
Princess Charlotte of Wales
파일:Princess_Charlotte_of_Wales_by_Dawe_(1817).jpg
이름 샬럿 오거스타
(Charlotte Augusta)
출생 1796년 1월 7일
영국 잉글랜드 런던 칼턴 하우스
사망 1817년 11월 6일 (향년 21세)
영국 잉글랜드 서리 클레어몬트 하우스
장례식 1817년 11월 19일
영국 윈저 성 세인트 조지 예배당
배우자 레오폴드 1세 (1816년 결혼)
아버지 조지 4세
어머니 브라운슈바이크의 카롤리네
서명 파일:웨일스의 샬럿 공녀(1796) 서명.svg

1. 개요2. 작위3. 생애
3.1. 탄생3.2. 어린 시절3.3. 결혼과 죽음
4. 가족관계

[clearfix]

1. 개요

조지 4세브라운슈바이크의 카롤리네의 외동딸. 더 오래 살았더라면 조지 4세의 뒤를 이어 영국여왕이 되었겠지만, 아이를 낳다 21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그리하여 윌리엄 4세를 거쳐 작은아버지 에드워드 왕자의 딸인 사촌 빅토리아 여왕이 대영제국의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2. 작위

파일:Coat_of_Arms_of_Charlotte_Augusta_of_Wales.svg.png
<colbgcolor=#F0F8FF> 문장

3. 생애

3.1. 탄생

파일:A0907286-3884-465E-914A-0E48C9096569.jpg1795년 당시 왕세자였던 조지 4세는 고종사촌[1] 브라운슈바이크의 카롤리네와 결혼했다. 조지 4세와 캐롤라인은 서로를 너무나 싫어했는데, 훗날 조지 4세가 그녀와 부부관계를 딱 세 번 밖에 안했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그들은 혼인 몇 주 만에 각방을 썼고 이러한 와중에 기적적으로 아이가 생겼다.

혼인한 지 딱 9개월이 지난 1796년 1월 7일, 캐롤라인은 딸을 출산했다. 후계자가 될 아들을 원했던 조지 4세와 달리 당시 국왕이었던 조지 3세는 태어난 손녀딸을 매우 예뻐했다. 딸의 탄생으로 부부관계가 좋아질 것 같았으나, 조지 4세는 캐롤라인이 딸에게 접근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자신의 정부인 마리아 피츠허버트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파일:2019-08-04-02-01-11.jpg
어린 시절의
당시 영국 왕실은 국민들에게 인기가 좋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탄생을 기뻐했다. 1796년 2월 11일, 칼턴 하우스에서 '샬럿 어거스타' 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샬럿은 할머니 샬럿 왕비로부터, 어거스타는 외할머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부인 어거스타로부터 따왔다.

조지 4세는 딸의 육아에 있어 캐롤라인이 절대 간섭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캐롤라인은 정부유모가 없는 환경에서는 절대 딸을 볼 수 없었고 육아에 있어 어떠한 결정도 내릴 수 없었다. 보다 못한 유모가 몰래 자리를 비켜 주었을 때 비로소 딸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3.2. 어린 시절

샬럿이 자라면서 조지 4세와 캐롤라인의 사이는 점점 더 나빠졌다. 그들은 딸을 국왕 부부의 애정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고, 결국 1797년에는 별거하게 되었다. 아들을 원했던 조지 4세의 노력으로 잠시동안 관계가 회복되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는 더욱 악화되었다. 캐롤라인은 딸을 보러 종종 방문하곤 했으며 샬럿 역시 어머니를 찾아가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집에서 머무는 것은 절대 허락되지 않았다.
파일:Princess_Charlotte_Augusta_of_Wales_1807.jpg
1807년

그러던 중 1810년 할아버지 조지 3세의 정신병이 극에 달하였고 1811년 2월 6일부터 아버지 조지 4세가 섭정을 하기 시작했다. 샬럿은 엄격한 교육 속에서 점차 반항적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려는 10대로 성장했다. 공부도 다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만 공부해서 피아노승마는 정말 잘했지만 다른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조지 4세가 섭정으로 바쁜 틈을 타 몰래 남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조지 4세를 제외한 대부분의 왕실 사람들은 이를 알고 있었지만 그가 얼마나 엄격한 지 알기에 공주에게 아무 간섭도 하지 않았다.

1813년부터 조지 4세는 샬럿의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처음에는 부마 후보로 네덜란드 빌럼 1세의 아들 빌럼 왕세자[2]를 생각했다. 하지만 샬럿은 빌럼 왕세자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미래의 영국 여왕이 될 자신이 왜 외국인과 결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샬럿의 결혼을 이용하여 북유럽까지 영향을 미치고 싶어했던 조지 4세는 끝까지 빌럼 왕세자와 결혼할 것을 고집했고, 그녀는 결국 1814년 6월 10일 혼인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러던 어느날, 파티에 참석한 샬럿은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레오폴트 공자[3]를 만났다. 레오폴트 공자에게 첫눈에 반한 샬럿이 빌럼 왕세자와 결혼을 못 하겠다고 하자 조지 4세는 딸을 감금해버렸다. 샬럿은 거리 밖으로 뛰쳐나왔고 이를 본 어떤 시민이 그녀를 캐롤라인의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며칠 뒤 다시 궁전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이 일은 순식간에 가십거리가 되었다.

샬럿은 모습을 나타내면 영국 사람들은 샬럿이 이미 여왕이 된 것처럼 환호할 정도로 국민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런데 네덜란드로 시집 가 버린다고 하니 사람들은 빌럼 왕세자와의 결혼을 싫어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1815년 초 샬럿은 레오폴트 공자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 조지 4세는 여전히 빌럼 왕세자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샬럿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 해 7월, 마침내 아버지로 부터 레오폴드와의 결혼을 허락받았다. 맨 처음에 조지 4세레오폴드를 탐탁지 않아했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딸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3.3. 결혼과 죽음

파일:Charlotte_and_Leopold_wedding.jpg
파일:1280px-Princess_Charlotte_Augusta_of_Wales_and_Leopold_I_after_George_Dawe.jpg
샬럿과 레오폴드의 결혼식
1816년 5월 2일, 샬럿과 레오폴드의 성대한 결혼식이 칼튼 하우스에서 거행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을 보려고 런던에 몰려들었다. 두 사람은 결혼 후 정말 행복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고 말 할 정도로 사랑이 넘쳐흘렀던 두 사람에게는 그렇게 행복한 날들만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1816년 8월 오페라를 보던 샬럿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고 곧 첫 아이를 유산했다. 다행히도 1817년 4월에 그녀는 다시 임신 소식을 발표했고, 그것은 영국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새로 태어날 로열 베이비가 아들일지 딸일지 내기를 하곤 했다. 임신 말기에 담당 주치의는 아이가 너무 커지는 것을 우려하여 샬럿에게 체중 조절을 하도록 했는데, 이는 샬럿을 약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였고 결국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예정일이 2주가 지난 11월 3일 저녁, 샬럿의 산통이 시작되었다. 주치의는 여전히 그녀에게 음식을 먹지 못하게 했고, 진통은 이틀이 지나도록 진행되었지만 아이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1월 5일, 샬럿은 아주 큰 남자아이를 사산했다. 죽어서 태어난 아이를 본 사람들은 영국 왕실 가족들을 닮은 아주 잘생긴 남자아이였다고 말했다. 샬럿은 출산 후 회복 중이었고 레오폴드는 긴장이 풀린 탓에 아편을 먹고 잠에 들었다.

그러나 그날 밤, 샬럿은 구토를 하며 배가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그녀는 호흡이 불규칙했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주치의와 레오폴드를 데려왔을 때 그녀는 이미 사망해 있었다. 사산의 후유증으로 숨진 듯하나 사인이 영국 왕족들이 앓던 유전병인 포르피린증라는 얘기가 있다. 그렇게 샬럿은 결혼한 지 1년 6개월 만에 향년 21세를 일기로 요절했다.
파일:The_Funeral_Ceremony_of_Her_Royal_Highness_the_Princess_Charlotte_of_Wales_and_Saxe_Coburg_by_James_Stephanoff.jpg
장례식
샬럿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온 나라는 슬픔에 잠겼다. 모든 사람들은 검은색 옷을 입었고 상점은 2주간 문을 닫았다. 조지 왕세자는 너무 슬픈 나머지 몸을 가눌 수조차 없어서 외동딸의 장례식에 불참하였다. 임종을 지킬 수조차 없었던 캐롤라인은 뒤늦게 딸의 사망 소식을 듣고 혼절했고, 심지어 옛 약혼자였던 빌럼 왕세자마저도 애도를 표했다.

하루 아침에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은 레오폴드는 평생 샬럿을 그리워했다. 샬럿과 사별하고도 십여 년이 지나도록 재혼하지 않다가 벨기에 국왕으로 추대된 후에야 샬럿을 닮은 여성인 오를레앙의 루이즈 마리와 재혼했고, 루이즈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고명딸의 이름도 샬럿의 프랑스식 인명인 샤를로트로 지었다. 심지어 레오폴드 1세는 임종 직전에도 '샬럿!'을 외쳤고 이것이 유언이 됐다고 한다.

이후 샬럿은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 아들과 함께 묻혔다. 샬럿의 사망 당시 조지 3세의 적손자녀는 아무도 없었고[4], 조지 왕세자는 아내 브라운슈바이크의 카롤리네와 관계가 파탄나서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다. 결국 조지 3세의 아들들은 급히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고 그 결과 4남 켄트 공작 에드워드 왕자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빅토리아 공녀[5] 사이에서 태어난 빅토리아 여왕이 왕위를 잇게 되었다.

4. 가족관계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웨일스의 샬럿 공녀
(Princess Charlotte of Wales)
<colbgcolor=#fff3e4,#331c00> 조지 4세
(George IV)
<colbgcolor=#ffffe4,#323300> 조지 3세
(George III)
<colbgcolor=#e4ffec,#00330f> 웨일스 공 프레더릭
(Frederick, Prince of Wales)
작센고타의 아우구스타 공녀
(Princess Augusta of Saxe-Gotha)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샤를로테 공녀
(Princess Charlotte of Mecklenburg-Strelitz)
메클렌부르크의
카를 루트비히 프리드리히 공작
(Duke Charles Louis Frederick
of Mecklenburg)
작센힐드부르크하우젠의
엘리자베트 알베르티네 공녀
(Princess Elisabeth Albertine
of Saxe-Hildburghausen)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카롤리네 공녀
(Princess Caroline of Brunswick-Wolfenbüttel)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

(Charles William Ferdinand, Duke of Brunswick)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작 카를 1세
(Charles I, Duke of Brunswick-Wolfenbüttel)
프로이센의 필리피네 샤를로테 공주
(Princess Philippine Charlotte of Prussia)[6]
영국의 어거스타 공주
(Princess Augusta of Great Britain)
웨일스 공 프레더릭
(Frederick, Prince of Wales)
작센고타의 아우구스타 공녀
(Princess Augusta of Saxe-Gotha)


[1] 조지 4세의 아버지 조지 3세와 캐롤라인의 어머니 어거스타 공주가 남매이다.[2] 훗날의 빌럼 2세로 나중에는 파벨 1세의 막내딸 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과 결혼했다.[3] 훗날 벨기에의 초대 국왕이자 빅토리아 여왕앨버트 공의 삼촌이 된다.[4] 3남 클래런스 공작 윌리엄 왕자와 6남 서식스 공작 어거스터스 프레더릭 왕자에게 자녀가 있긴 했지만 모두 서자들이었다.[5] 레오폴드 1세의 누나이다. 즉, 샬럿의 시누이.[6]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3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