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및 정유재란 전투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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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朝]: 조선군의 승리 / [日]: 일본군의 승리 / [明]: 명나라군의 승리 |
임진왜란 조선 육군의 주요 승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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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 신각 | 곽재우* | 권율 | 김면* | |
전투 | 청주 전투 (1592. 8. 1.) | 북관 대첩 (1592. 9. 16. ~ ) | 진주 대첩 (1592. 10. 6.) | 행주 대첩 (1593. 2. 12.) | |
주장 | 영규* | 정문부* | 김시민 | 권율 | |
* 의병장 | }}}}}}}}}}}}}}} |
우척현 전투 牛脊峴 戰鬪 | ||
<colbgcolor=#C00D45,#01454F><colcolor=#f0ad73,white> 시기 | 1592년 (선조 25년) 8월 16일 (1592년 음력 7월 10일) | |
장소 | 경상도 거창 우척현 | |
원인 | 왜군의 전라도 진공 | |
교전국 | <rowcolor=black> 조선 (수세) 승 | 일본 (공세) 패 |
주요 인물 | 지휘관 김면 정인홍 황응남 이형 † 변희황 변청 변혼 이홍우 장응린 † 장응사 | 지휘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
병력 | 조선군: 2,000명 (의병) | 일본군: 1,500명 |
피해 | 피해 규모 불명 | 피해 규모 불명 |
결과 | 조선의 승리 | |
영향 |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 좌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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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
고바야카와 다카카케는 임진왜란 당시 제 6군의 사령관을 맡아 전라도를 함락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에 고바야카와 다카카케는 병력을 나누어 본인은 이치로, 부하 안코쿠지 에케이는 웅치로, 그리고 별군은 거창을 지나 지례로 진군케 하였다. 하지만 먼저 웅치에서는 조선군을 격파했으나 전주성 인근 안덕원에서 조선군에게 패퇴했고 그 다음 이치에서 고바야카와의 본진도 분전과 더불어 포위될지 모르는 사실에 후퇴하며 패했으며 전라도 함락에 큰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하지만 지례로 진군하던 병력이 남아있었기에 김성일은 급히 김면에게 연락을 넣어 일본군을 막을 것을 명했다.김면은 4,5일 동안 병력 2000을 모았고 김성일 역시 황응남과 이형을 포함한 관군을 보내어 이들을 지원했다. 김면은 병력 2천을 인근 요소마다 배치하고 전투를 기다렸다.
2. 전개
일본군은 지례를 공략하고 거창으로 향하던 중 공격을 받자 금산방면으로 퇴각했다. 그러고는 금산에서 거창으로 가는 방면인 우척현으로 향하다 김면군이 다시 기습하자 크게 놀라 패주하였다. 이 때에 황응남의 용맹이 으뜸이었다고 하며 이형은 산척을 이끌고 돌격하다 전사했다.3. 결과
이 이후 김면은 거창에 병력을 매복시켜 적의 동태를 살피자 적이 더이상 진군하지 못했다. 이 이후 일본군은 더 이상 전라도로 진군하지 못했고 김면은 이후 병력을 이끌고 정암진으로 향해 곽재우와 적을 막았다.4. 참고 문헌
- 송암 김면의 의병활동(최효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