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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11:39:09

오키나와 음악

류큐 음악에서 넘어옴
1. 개요2. 특징3. 하위 장르
3.1. 고전 음악3.2. 민요
3.2.1. 주요 곡들
3.3. 우치나 팝
3.3.1. 주요 음악가
3.4. 오키나와 록
4. 오키나와 음악으로도 분류되는 곡

1. 개요

오키나와 음악(沖縄音楽)은 일본 오키나와 현에서 불려지는 음악을 말한다. 대개 전통적으로 불려진 궁정음악과 민요, 현대에 발달된 우치나 팝(ウチナーポップ)[1],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을 통해 발달한 오키나와 록까지 아우른다.

시마우타(島唄, 섬 노래)라고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원래 시마우타는 정확히는 아마미 군도의 민요를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게다가 일본의 밴드 THE BOOM이 발표한 오키나와풍의 곡 '시마우타'가 히트를 치는 바람에 이것과도 헷갈리곤 한다.

2. 특징

오키나와 출신의 가수가 불렀다고 해서 전부 오키나와 음악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오키나와 음악의 기법을 쓰거나, 오키나와의 언어로 곡을 만들거나, 오키나와의 정서를 담고 있어야 한다. 때문에 아무로 나미에가 오키나와 출신 뮤지션 가운데에는 가장 유명한 인물에 들지만, '오키나와 음악'이라는 장르를 하는 것으로는 분류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류큐에서 쓰이는 음계는 류큐 음계(CEFGB)라고 하는 5음계로서, 일본 본토의 민요와 엔카에서 쓰이는 요나누키 음계(CDEGA)와는 구별된다. 이 류큐 음계는 오키나와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중국, 부탄에도 다른 이름으로 존재한다. (류큐음계와 같은 인도네시아 전통 음계 / 12:10부터)
요즘 만들어지는 곡들은 류큐 음계에 약간의 변화를 주어 쓰기도 하는 듯.[2]

오키나와의 전통악기 가운데에는 본토와 구분되는 것들이 여럿 있으며, 특히 그 가운데 산신은 현대에도 자주 쓰이며 인지도 또한 높다.

오키나와에서 예로부터 불려지던 음악이다 보니 류큐어로 된 가사가 많다. 그 중에서도 류큐어의 '서울말' 취급을 받는 오키나와어가 가장 많이 쓰이며, 미야코어 등 지역의 언어를 쓰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오키나와의 뮤지션들이 일본 본토에 진출하면서 아마토구치(야마토의 말, 즉 본토 일본의 표준 일본어)로 가사를 쓰거나, 원래 류큐어로 되어있던 가사를 야마토구치로 번안하여 부르는 경우도 많다.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하며 발전하던 시절의 오키나와 록에는 영어 가사가 많이 쓰였다.

3. 하위 장르

3.1. 고전 음악


류큐 왕국의 전통 궁정음악으로는 실내악인 우자가쿠(御座樂)와 행진곡인 루지가쿠(路次樂)가 있다. 18세기에는 슈리의 음악가였던 상전모(全謨)[3]쿤쿤시(工工四)라는 악보를 만들어 당시의 곡들을 기록하였다.

류큐 고전음악의 유파로는 하덕용(夏德庸)[4]을 스승으로 삼는 탄스이류(湛水流), 이비현(伊丕顯)[5]에게서 전수를 받은 아후소류(安冨祖流), 모문양(毛文楊)[6]의 가르침을 이어가는 노무라류(野村流)가 있으며, 이들 유파의 전승자들은 현재 인간국보(무형문화재)이다.

3.2. 민요

지구상 여느 민족과 마찬가지로, 류큐인들도 자신들만의 민요를 발달시켰다. 현재에도 자주 불리는 곡들이 많다. 오키나와 민요 가수들의 상당수는 우치나 팝 또한 발전시키기도 했다.

일본 본토에서도 인기가 꽤 있으며, 여러 뮤지션들의 관심을 받기도 한다. 사카모토 류이치도 오키나와 민요를 자신의 음악에 자주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7]

3.2.1. 주요 곡들

3.3. 우치나 팝

오키나와 민요를 바탕으로 하여 발달한 오키나와의 대중가요이다.

3.3.1. 주요 음악가

키나 쇼키치&참프루즈(喜納昌吉&チャンプルーズ)의 '꽃-모든 사람의 마음에 꽃을-'
2004년 후지테레비 보쿠라노 온가쿠에서 Gackt와 치나 사다오(知名定男)가 부른 The Boom의 시마우타(島唄).
BEGIN의 '三線の花(산신의 꽃)'
네네즈의 '평화의 류카'
코자 미사코의 '와라비가미'. 나츠카와 리미가 일본어로 부르고 코자 미사코가 오키나와어로 부르는 영상이다.
나츠카와 리미의 '눈물이 주룩주룩'. 1절이 표준 일본어, 2절이 오키나와어.

3.4. 오키나와 록

오키나와의 록밴드 컨디션 그린(Condition Green)의 1980년대 공연 모습. 인간탑이 압권이다
어느 혼혈인 록 뮤지션은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간간히 "야, 베트남 전쟁 때는 대단했어. 연주를 겉날리기라도 하면 미군 병사 패거리들이 무대를 향해 맥주병을 던졌지. 살벌한 분위기였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맥주잔을 다 비우면서 "무대에서 연주를 하고 있으면, 내일 베트남으로 가는 군인들은 금방 알 수 있었지. 그들은 한쪽 구석에서 등을 구부리고 조용히 들이붓듯 술을 마시지. 그런 놈들을 보면 우리도 힘껏 연주해 보내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라고 말했다.
ー다카라 구라요시, <류큐 왕국> 서장 中

초창기 오키나와 록 음악은 주일미군 병사들을 위한 A사인 바[10]의 공연에서 시작하였다. 특히 베트남 전쟁 당시, 내일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미군 병사들의 불안을 달래주기 위한 하드록 계열을 많이 공연하면서 오키나와 록은 발전해나가기 시작했다. 이 때 오키나와 록의 중심지는 A사인 바가 몰려있던 코자 시(コザ市, 지금의 오키나와 시)였다. 64년에는 밴드 위스퍼스(ウィスパーズ)가 등장하여 서막을 알렸다. 위스퍼스의 멤버였던 카와미츠 카츠히로(川満勝弘, 일명 캇짱(かっちゃん))는 이후 인간 탑쌓기 같은 기묘한 퍼포먼스로 유명한 컨디션 그린(Condition Green)을 1971년 결성하였으며, 1972년에는 딥 퍼플의 영향을 받은 밴드 무라사키(紫)가 결성되었다. 또 '오키나와 록의 여왕' 캰 마리(喜屋武マリー)가 이끄는 마리 위드 메두사(Marie with Medusa)가 1974년 결성되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면서 이들 밴드는 일본 본토로 진출하였는데, 일본 록 신에 이런저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락의 문화가 일찍부터 뿌리내린 곳이니 만큼 현재까지 유명 락밴드들을 배출해 왔는데, 대표적으로 MONGOL800, HIGH and MIGHTY COLOR, ORANGE RANGE가 있다.

4. 오키나와 음악으로도 분류되는 곡

하츠네 미쿠가 부르는 <오키나와를 돌려다오> 헬리콥터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오키나와 현민들이 미군기지 앞에서 부르는 <오키나와를 돌려다오>


[1] 우치나(ウチナー)는 오키나와어로 오키나와를 이르는 단어이다.[2] 일본 내에서는 이 류큐 음계로 멀쩡한 다른 음악을 리믹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류큐 음계로 편곡한 PPAP.[3] 화명은 야카비페쿠미 초키(屋嘉比親雲上 朝寄)다. 생몰년도는 1716~1775[4] 호가 담수(湛水)고 화명은 코치웨카타겐츄(幸地親方賢忠)이다.[5] 화명은 아후소세이겐(安冨祖正元)이다.[6] 화명은 노무라사투누시페쿠미안쵸(野村里之子親雲上安趙)다.[7] 사카모토 류이치는 오키나와 민요 뿐만 아니라 월드 뮤직 전반에 조예가 깊다.[8] 일본어로 읽으면 온나 나베(恩納なべ).[9] 차크라가 있는 건물의 3층은 아니메이트 나하점이다.[10] A sign bar. 미군으로부터 위생검사 등을 받은 다음 병사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도 좋다는 허가인 A사인을 받은 가게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