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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37:03

양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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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aaaaa><colcolor=#ffffff> 양영순
梁英淳 | Young-soon Yang
파일:양영순.jpg
필명 양군
출생 1971년 12월 2일 ([age(1971-12-02)]세)[1]
전라남도 여수시[2]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가족 배우자 신동현(차차심)[3](2000년 결혼~현재)
딸 양휘모(2004년 6월생)
학력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 학사)
데뷔 1994년 곤충채집가 K와 L
별명 양신, 양형, 양가놈
대표작 덴마
오너 캐릭터

1. 개요2. 경력 및 특징
2.1. 그림 스타일2.2. 성적 코드2.3. 장편 전개2.4. 연재 지각과 중단
3. 그 외
3.1. 저작권 헌터 오해3.2. 여담
4. 작품
4.1. 만화4.2. 게임
5. 외부 링크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만화가. 입버릇처럼 잘 쓰는 말은 "~한 내가 나빠".

고2 시절 국내에 해적판으로 대거 유입됐던 시티헌터공작왕 등의 성인향 일본 만화들을 보고 자신도 이런 자극적인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쾌감을 안겨주고 싶다고 생각해 만화가의 꿈을 키운다. 원래는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지 않고 독학했지만 이케가미 료이치크라잉 프리맨을 보고 전통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으면 이런 그림은 그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에 입학한다. 시각디자인학과였던 이유는 만화 쪽하고 더 맞을 거라는 지인의 충고 때문이었다고.[4]

대한민국 웹툰 작가를 통틀어 우수한 작화와 연출력, 서사력과 개그코드를 모두 갖추었다고 여겨진 작가으나 장편 연재의 역량은 매우 모자라며, 이것이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가 덴마. 덴경대라고 불리는 충성심이 높은 팬덤이 존재했을 정도이고[5], 제대로 마무리 된다면 대한민국 웹툰 역사에 손꼽힐 명작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역시나 양영순식 용두사미 결말을 맞이하였고 10년 동안 희망고문만 당한 덴경대는 대부분 양영순 안티로 돌변하였다. 앞으로 양영순이 네이버 등 메이저 플랫폼에서 연재활동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가는 상황이며, 설사 연재를 하더라도 독자의 싸늘한 시선을 뒤집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2. 경력 및 특징

2.1. 그림 스타일

대학 재학 시절에는 그림 스타일이 지나치게 만화적이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만화가로 데뷔하고 첫 히트작인 누들누드는 회화적인 뎃생력이 뛰어나 인기를 끌었다.[6] 이후 여러 작품을 거치면서 점점 그림체를 간략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미숙한 그림실력으로 시작해서 작화력이 상승함에 따라 세밀하고 탄탄한 그림으로 바뀌는 일반적인 만화가들과는 정반대의 케이스.[7]

등장인물들이 목이 대단히 굵고 발이 기둥처럼 나오는 경우가 많다.

2.2. 성적 코드

누들누드를 비롯하여 초기에는 호흡이 짧은 단편만화를 통한 성에 대한 독특한 상상과 표현기법이 돋보였다. 언뜻 보면 야하고 천박해보이나 사실 남자라면 한 번쯤 해봤을 지저분하고 음란한 생각을 귀엽고 재기발랄한 그림으로 엮어낸 것이 특징이다. 한편, 생리오줌, 사정과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등 여성의 몸에 대해선 이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누들누드의 인기로 성적 농담이라는 소재가 양지로 올라오면서 OVA로도 제작됐는데, 한희작이나 강철수, 배금택 같은 기존의 유명 성인 만화가들과 달리 젊은 층의 공감을 산 점이 컸다. 결혼 후에는 성에 대한 판타지를 잘 그리지 않지만 인터뷰 등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에 성적 코드가 없어 그리지 않는 것뿐이라고 답했다.

2.3. 장편 전개

여러 성향의 캐릭터들과 에피소드들의 소개로 초반부에서 큰 기대를 끌어모으는 강점을 보이지만 기대를 온전히 만족시키지 못하는 후반부로 장편 전개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 최대한 좋게 말해서 용두사미이고 후술할 내용을 보면 장편작가로선 심히 무능력하다.

1001의 연재 종료 후 파란 카툰에서 철학적인 주제의 <삼반이조>를, 다음에서 <란의 공식>을 연재했다. <란의 공식>은 <삼반이조>보다 빠른 전개로 호평을 받았으나 역시 후반에 힘이 빠져 아쉬움을 자아냈다.

야후에서 라미레코드, 네이버[8]에서 플루타크 영웅전을 연재하다가 중단한 이후 덴마를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초반에는 플루타크 영웅전의 연재 중단 때문에 큰 인기를 끌지 못하다가 연재가 진행됨에 따라 치밀하고 넓은 세계관이 드러나면서 인기를 끌었다. 세계관이 여러모로 <라미레코드>과 비슷한 것으로 볼 때 상당히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작품인줄 알았으나 잦은 지각과 네이버 웹툰상 역대급 최악의 결말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즉흥적으로 작품을 하는 편"이라고 이야기했고, 즉흥성에 의존하는 작품 연재방식'을 가진 작가들은 양영순 외에도 많다. 다만 상당한 지식과 달리 제대로 된 구상도 하지 않은데다가 스토리텔링에 대한 기본지식도 없이 모조리 얄팍한 창의성과 잔머리로만 해결하려는 타입이다보니 장편연재에서 기승전결이 아예 없으며, 고난 묘사에만 집중해 기승전전전전전만 되풀이하는 타입이다. 즉, 깔끔한 작화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개연성핍진성도 없이 스토리를 못짜는 축이었던 것.[9]

2.4. 연재 지각과 중단

이걸 인생웹툰이라고 소개하고 다녔던 내 10년이 아깝다
- 덴마 완결편 베스트 댓글 1위[10]
데뷔한지 25년이 넘는 베테랑 작가지만 제대로 마무리한 작품이 거의 없다. 연재 중단작이 대부분이며, 완결된 작품도 졸속 결말이라는 악평을 듣는다. 철견무적, 협객전, 라미레코드, 플루타크 영웅전 등 장편을 연재 중단하는 경우가 잦다. 작가도 라미레코드 1부 완결(사실상 중단)글에서도 잦은 연중을 시인했다. 덴마는 전작 플루타크 영웅전의 연재 중단으로 초기에 별점이 낮았으며, 이 때문인지 2013년에는 덴마 완결이 목표라고 한 바가 있다.[11] 그러나 작가 본인의 바람과 다르게 덴마는 장기 연재작으로 거듭났고 늘어난 분량만큼 많은 떡밥을 뿌렸으나 2019년 12월 29일 덴마 최종화까지 그 떡밥들을 거의 그대로 남겨둔 채 작가의 다른 작품들처럼 연중이나 다름없는 급완결을 맞게 되었다. 작가의 작품중 드물게도 1414화 10년간의 장기연재로 엄청난 스케일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스페이스 오페라 웹툰이 될 뻔 했으나, 예외는 없었다. 독자들은 덴마 역시 무늬만 완결이지 사실상 연재 중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웹툰으로 전향한 뒤에는 연재 지각이 눈에 띈다. 금요 웹툰이 금요일 밤 자정 직전에 게시되거나 다음날에 올라오거나 한 화 휴재될 때가 잦다. 자세한 건 덴마/지각연재 문서 참조. 그때 생긴 별명이 양가놈.[12] 2014년 8월 4일, 덴마의 5회 연재분이 밀려 항의를 받자 10월까지 휴재하기로 하고 트위터에 사과문을 올렸다.[13] 2015년 7월 7일, 오랜 휴재 끝에 덴마 연재가 재개되었다. 연재가 지연된 것에 대해 변변한 의사 표시가 없었기 때문에 독자들의 반응이 좋지는 않았다. 이후 세이브 원고가 떨어지자 실질적으로 자유연재로 변경했다. 자세한 건 덴마 문서 참고.

3. 그 외

3.1. 저작권 헌터 오해

누들누드, 아색기가, 1001 등 유료서비스되거나 단행본으로 나온 작품은 웹에 올리면 저작권에 걸릴 수 있으니 주의를 바란다고 직접 언급했던 적이 있다. 링크 전체가 아니라 컷 한 두 개만 잘라올려도 해당 법무법인에서 소송을 걸고 상당한 합의금을 요구했던 시절. 한국만화가협회 차원에서 거의 일괄적으로 업무를 일임했기 때문에 작가의 의사 없는 법무법인의 과도한 단속이 문제되던 시기였다.

저런 일들이 있었던 탓인지 양영순의 작품 그림 캡처를 올리면 큰일나는 것처럼 잘못 알려져 있는데 기본적으로 저작권에 유의해야하는건 다른 만화들도 마찬가지이므로 양영순의 작품 조심해야 하는 건 아니다. 양영순의 경우 유명작가인 데다 본인 스스로가 직접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주의를 당부한 바가 있기 때문에, 당시 마치 '이들의 작품 조심해야 하는 것'처럼 소문이 잘못 퍼졌던 것. 그래서 당시 다른 만화 리뷰들이나 캡쳐들은 그대로 두면서도, 양영순의 작품 관련 게시물 내리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학술적 목적까지는 안 가더라도 리뷰라는 최소한의 목적도 없이 그냥 캡쳐만 올려놓으면 문제가 되는 건 양영순의 작품뿐만 아니라 모든 저작물들이 동일하다.

3.2.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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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작품

4.1. 만화


태모신교 세계관 작품
철견무적 라미레코드 덴마 덴큐

[20]

또한 2019년에는 누들누드처럼 애니매이션이 만들어졌다. 퀄리티는 인디 애니매이션 수준으로 KT올레TV, 네이버 시리즈온 등에서 볼 수 있다.

덴마에 아색기가 패러디가 꽤 나왔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덴마/패러디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2. 게임

5. 외부 링크



[1] 출처[2] 출처[3] 대표작은 꽁심이 노트. 차차심이라는 예명은 원래 시어머니의 성함이라고 한다.#[4] 당시 국민대 시각디자인과는 국내에서 2-3위권이었으므로 가고 싶다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데가 아니기에 실력으로는 입학만으로 증명된 셈이다.[5] 충성도만 따지면 모든 웹툰의 팬덤 중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6] 당시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의 커리큘럼은 묘사력 위주의 수업은 적었고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이론 수업, 광고 기법, 포장디자인에서 영상디자인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를 모두 가르쳤기 때문에 묘사력이 좋다는 것만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다. 사실 실기시험이 어려웠기에 묘사력으로는 이미 다들 잘 하기도 했고.[7] 희귀한 케이스는 아니다. 초기부터 그림 실력이 좋은 작가는 그림체가 손에 익숙해짐에 따라 불필요한 움직임이나 선을 쓰는 것이 줄어들어 양영순과 같은 변화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누구도 천재임을 부인하지 못하는 고우영, 이두호 같은 경우. 그 극단적인 예가 바로 피카소이다.[8] 정확히는 일간스포츠에서 시작되었다 네이버로 연재처를 옮겼다.[9] 덴마/설정구멍만 보더래도 수많은 핍진성 오류들이 노출되어 있으며, 심각한 설정오류가 있더래도 급조해서 떼워넣는게 대부분이다.[10] 좋아요 개수 약 16000개.[11] 한 뉴스기사에서 덴마가 실버퀵에 탈출하는 내용일 때는 1년 반~2년안에 스토리를 완결시킨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떡밥 회수는 포기하고 그냥 메인스토리만 쭉 끌어서 완결시킨다는 듯.[12] 물론 작가는 자신이 양가라는 이름으로 까인다는 걸 알고 있다. 다만, 집 가(家)로 알고 있어서 덴마 <The knight> 109화에 나오는 호텔의 이름이 梁家이다.[13] 이후 트위터 계정은 폭파되었고 페이스북 계정은 살아 있지만 전처럼 페이지에 직접 글을 쓰는 건 제한.[14] 디즈니가 디즈니 프린세스 등으로 떴으면서 그걸 영화화할 때에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만드는 것 등.[15] 작가가 가끔 여성주의 도서를 읽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는데, 여성주의 도서보다는 야한 책(?)이 더 많다는 이유.[16] 관련이 없을 수는 있지만 2016년 그 사건이 일어난 후 얼마 뒤인 8월 15일에 갑자기 덴마에서 가장 고어한 장면(스포일러)이 나오는데 당연히 이때도 채색담당이 채색을 했다.[17] 이외에 이 사람도 독자들이 작가의 오너 캐릭터로 추정한다. 한 화만에 터져 죽었지만...[18] 현존하는 동명 웹진과는 다른 곳이다.[19] 상금 500만원은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드렸다고 한다.[20] 사실 위의 마트(MAAT)(1995)도 포함해야 하나 남아있는 정보가 없기 때문에 여기에는 포함하지 않는다.[21] 바로 아래 문단에 언급된 코믹테크와의 인터뷰에는 "Mr.블루에서 출간되는 ‘영 레드’라는 영지와 아이큐점프에서 연재할 예정"이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 연재된 잡지는 영 점프 하나뿐인 것으로 추정된다.[22] 진영논리 때문이었다. 스카웃되어서 연재하던 쿵다리맨은 버리고 갔다, 기획된 개색기가(個色氣歌; 후일 아색기가로 개명)의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등으로 말이다.[23] 학습만화 시장의 경우 작가 교체는 드물지만 큰 사건이라고 보기는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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