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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제5대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 يحيى السنوار | Yahya Sinwar | |
출생 | 1962년 10월 29일 |
아랍 연합 공화국 가자 칸유니스 (現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 |
사망 | 2024년 10월 16일 (향년 61세) |
팔레스타인 라파흐 | |
국적 | [[팔레스타인| ]][[틀:국기| ]][[틀:국기| ]] |
재임기간 | 제5대 하마스 최고지도자 |
2024년 8월 6일 ~ 2024년 10월 16일 | |
가족 | 동생 무하마드 신와르 (1975~) 배우자 사마르 모하메드 살레 (1980~) |
학력 | 가자 이슬람 대학교 (아랍학 / B.A.) |
군사 경력 | 이즈 앗딘 알카삼 여단 |
주요 참전 |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2023~2024) |
종교 | 이슬람 수니파 |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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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팔레스타인의 정당 하마스의 강경파 가자 지구 지도자이자 前 하마스 최고 정치지도자.2. 생애
1962년에 칸유니스 난민 캠프에서 출생했다. 그의 가족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시오니스트 준군사조직들로부터 쫒겨난, 이른바 나크바(대참사)에 따른 난민이었다. 가자 이슬람 대학교를 아랍어 전공으로 졸업했다. 1985년에 하마스의 창립자 아흐메드 야신과 가까워졌으며, 1987년 하마스 설립 당시 내부 스파이들을 색출해 숙청하는 방첩부서 '알-마즈드'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의 손에 죽은 이스라엘 협력 팔레스타인인이 많아 '칸 유니스의 도살자'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결국 1989년 이스라엘 군인 2명과 팔레스타인인 4명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4개의 종신형을 선고받고 이스라엘 감옥에서 22년을 복역했다. 복역 중 히브리어를 능숙하게 배웠고, 2008년 뇌종양 발병 시 이스라엘인 의료진의 치료를 받았다.2011년 이스라엘 군인 길라드 샬리트가 납치되자 포로 교환으로 그도 함께 석방된 후 하마스에서 가자 지구 지도자로 빠르게 승승장구했다. 2017년 가자 지구 총책임자로 선출됐는데 2021년에 재선됐고 이스라엘에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지만 한편으로는 핵무기도 가진 강력한 이스라엘과 어떻게 싸워 이기겠나 같은 말로 이스라엘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이는 기만술로 철저히 이스라엘에 보복을 다짐했으며 결국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계획하고 대규모 공격을 실현했다. 이후 하마스 땅굴로 도망쳐서 이스라엘의 추적을 피했다.
지도자는 숨고 부하들은 투항…하마스, 신와르 갈아치우나/ 연합뉴스 (Yonhapnews) |
2024년 8월 7일, 암살당한 이스마일 하니예의 후임으로 하마스 최고 정치 지도자에 선출됐다.
이스라엘에 휴전 조건으로 자신의 생존 보장을 요구했다.#
2.1. 사망
야히야 신와르는 땅굴 및 터널을 이용하며 귀신같이 이스라엘의 감시를 피해갔으며, 이스라엘 역시 여러 터널 지도와 신체 정보들을 결합하여 3개월 전부터 그의 근거지를 추정하고 포위망을 좁혀갔다.# 여러 차례 사망설에도 불구하고 다시 모습을 보이곤 했으나, 2024년 10월 16일, 가자 지구 남부에서 순찰중이던 이스라엘군에게 사살당했다. 전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가 암살당한 지 불과 2개월 반 정도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다.신와르의 사망과정은, 가자 남부 라파지역 '탈알술탄'이라는 지역에서 미상의 하마스 전투원 3명이 이스라엘 육군 순찰대에 포착되어 교전이 시작되었고, 이스라엘군은 흩어진 하마스 대원 중 근처 건물에 도주한 하마스 대원 1명에게 전차 박격포[1] 포격을 진행하여 이들을 완전히 제거한다. 이를 미루어 보아 신와르의 제거는 이스라엘군이 위치를 정밀히 특정하고 진행한 암살이라기보다는 정말 IDF측에서 우연찮게 얻어걸려 사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 국방부가 공개한, 신와르가 사망하기 직전 드론이 촬영한 영상. |
죽기 직전 신와르는 동행하던 다른 대원들과 떨어져, 이미 머리에 총상을 입고 오른손이 부분 절단되는 중상으로 사실상 인사불성이 되어 소파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으로 이스라엘 육군의 정찰용 드론에 포착됐다. 위 영상을 자세히 보면, 두건 위 머리 부분과 오른손에 닿은 소파 부분이 피가 나온 듯 붉은색으로 물든 모습을 볼 수 있다. 부상이 심각해 정신이 온전치 못한 탓인지 건물에 들어온 드론을 보고도 굉장히 오랫동안 드론을 멍하니 쳐다만 볼 뿐 숨거나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자신에게 가까이 접근하자 뒤늦게야 온전한 왼손으로 막대기를 집어 던졌으나 맞히지 못했다. 그를 포착한 이스라엘 육군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하마스 대원의 신원을 특정하지 못한 채 단지 드론을 공격하는 모습을 통해 항복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드론을 철수시키자마자 저격수의 총격과 메르카바 전차의 전차포와 박격포 사격으로 그를 공격했다. 교전이 끝난 뒤 무너진 잔해 속에서 널브러진 그의 시신을 확인했다.
숨어있던 건물이 무너져 내려 사태 당시 이스라엘군은 직접 시신을 확보하진 못하고, UGV를 들여보내 시신에서 DNA 샘플을 채취하여 부검하는 식으로 신원을 확인했다. 이는 신와르가 이스라엘 교도소에서 복역하여 이스라엘이 DNA 기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시신은 비교적 온전하지만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무릎 등에 여러 파편상을 입었으며, 이스라엘군 저격수의 총격을 받아 머리 부분에 치명적인 두부 외상을 당한 모습이었다.
이스라엘군이 공개한 신와르의 유류품. |
그의 사망 이후 하마스의 3대 지도자를 역임했던 칼레드 마샬이 다시 한 번 지도자로 지명되었다.
이스라엘 국립법의학센터는 신와르의 사인을 총상에 의한 뇌손상으로 밝혔다. 즉, 드론에게 막대기를 집어 던진 후 숨어있던 건물이 무너지기 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사망했으며, 포격에 무너진 건물 잔해에 이미 시신인 상태로 깔린 것으로 보인다.
3. 여담
-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그의 지인에 따르면 사건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고 한다.# 원래 그의 목적은 이집트와의 관계 개선과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포위를 해제시키고 인질 교환으로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석방하는 데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피의 보복으로 하마스와 가자 지구의 피해가 날로 커지자 당황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고한 이스라엘인들이 살해당했기 때문에[2] 결과적으론 죽음을 앞당기는 결과가 되었다.
- 그는 사건 초기에 땅굴로 피신해 생사불명이었다. 이스라엘은 그를 끝까지 추적하여 제거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끝내 이를 성공시켰다.
- 신와르의 신원이 밝혀진 직후 이스라엘은 신와르의 시신사진을 삐라로 제작해 가자 지구 남부 칸 유니스 상공에 살포했다. #
- 팔레스타인 관리 4명과 중동 정부 소식통 2명에 의하면 그는 무장 투쟁만이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강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 아내인 사마르 모하메드 아부 자마르(Samar Muhammad Abu Zamar)는 신와르보다 18세 연하로, 2011년에 결혼했다. 신와르는 49세였으므로 상당한 만혼인데, 오랜 기간 동안 감옥에 수감된 탓이 컸다. 자녀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었으나 2024년에 이스라엘 정보부에 의해 그와 같이 탈출하는 세 명의 자녀들이 포착되었다.#
- 이스라엘이 공개한 사진에서 신와르가 사망시 보유하고 있었던 위조 여권과 돈뭉치로 그의 행적에 대한 여러 추측이 나오는 가운데, 위조 여권의 주인이 이집트 국적 UN난민기구 소속이라는 신분이 밝혀지면서 UN과 뭔가 협상중이 아니였나 하는 의심과 이집트로 밀입국을 시도 하기 위해 가자 남쪽에 어슬렁 거리다 사살된것이 아니냐는 설이 돌고 있다.
- 이스라엘은 신와르가 알아크사 홍수 작전 직전 땅굴로 숨어드는 영상이나 신와르의 아내가 도피하는 영상에서 가방으로 버킨백을 소지했다고 그의 영웅화를 막으려 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도 사망 직전 까지 잘못된 판단을 한 지도자로 평가가 좋지 않았다. 반면 최후까지 막대기 하나만 가지고도 저항하는 모습으로 재평가 받아 아랍권에선 순교자로 추앙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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