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금속공예 | <colbgcolor=#fff,#191919>유기 · 숟가락 · 장도 · 떨잠 |
도자공예 | 가야토기 · 신라토기 · 고려청자 · 고려백자 · 분청사기 · 조선백자 (철화백자 · 청화백자 · 달항아리) · 조선청자 · 옹기 · 귀면와 · 청기와 · 잡상 · 토우 | |
목공예 | 병풍 · 솟대 · 상여 · 꼭두 · 장승 · 나막신 · 채상 · 낙화 · 윤도 | |
석공예 | 곡옥 · 석탑 · 석등 · 돌하르방 | |
섬유공예 | 오방낭 · 제웅 · 청사초롱 · 금줄 · 조각보 · 매듭 (노리개 · 선추) · 갓 (흑립 · 삿갓) · 망건 | |
종이공예 | 탈 · 종이 우산 · 접부채(합죽선 · 칠첩선) · 채화 | |
칠공예 | 나전칠기 | |
종합공예 | 열쇠패 · 곰방대 | }}}}}}}}} |
1. 개요
경기도 안성에서 산출되는 유기안성유기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이다.
안성맞춤이란 대명사가 바로 안성유기에서 유래 되었다.
2. 역사
유기는 청동기시대부터 제작되었던 것인데, 특히 안성유기는 예로부터 안성의 가죽꽃신과 더불어 ‘안성마춤’이라는 말이 유래될 만큼 유명하였다.서유구(徐有榘)가 지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는 구례·개성·정주 지방에서도 유기가 나지만 안성유기가 으뜸이라 하였고, 『안성약기(安城略記)』에서는 안성은 유기가 명산인데 그것은 견고하고 정교하여 전국에서 환영받았다고 하였다.
유기는 옛날에는 궁궐의 진상품이나 불상·종 등의 불교용품 또는 가정의 생활 용품으로 널리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스테인리스스틸 그릇이나 플라스틱 그릇에 밀려 사양길에 들어섰다. 다만 안성유기는 전통 공예 미술품으로 전승되고 있는데, 2024년 현재도 안성시 봉산동'의 유기장'에서현재도 전통적인 유기 제작이 계승되고 있다.
3. 기록
60년 '유기장' 김근수옹(인간문화재)[1]안성맞춤박물관' 안성맞춤 박물관에서 안성맞춤의 유래와 안성유기 그리고 안성역사를 알 수 있다.[2]
[1] 2009년 향년 93세로 별세,살아생전 기록을 보면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인정된 뒤 안성유기 기술을 전수하는 데 힘써 왔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장남 (김수영씨가 계승을 받아 안성유기에 대를 잇고 있다.[2] 안성맞춤 박물관의 위치는 중앙대학교 앞에 있다.